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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1장 12-17절 불의한 것을 바로잡으시는 그리스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성전 안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필요한 제물들을 파는 장사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의 호객행위로 인해 매우 소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내쫓으시며, 돈을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그 일 후에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 계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화를 내면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리고는 성밖으로 나가셔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말씀내용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행하시는 일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불의한 것을 바로잡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의한 것이 사람들이 보는 것과 예수님이 보시는 눈이 서로 다릅니다. 보십시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대신 그들에게서 세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배자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와서 드리는 헌금과 제물들을 자기들의 개인적인 이익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장사꾼들과 같이 말입니다. 장사꾼들은 장사를 통해 이익을 보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 장사들로부터 이익을 본 것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까?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하면서 하나님은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을 세계 각지에 흩으셨습니다. 그들중 일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과 가옥을 재건했지만 나머지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인들은 돌아오지 않고 그 나라에서 머물러 살았습니다. 또는 다른 나라로 이동하면서 여기저기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가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몇 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제사를 드리러 가는데 있어서 제물은 손상되기 쉬웠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께 돈으로 예물을 드릴 때 유대인의 돈이 아니면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이익이 밝은 장삿꾼들에게는 돈벌이의 찬스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알아도 어떻게 항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제물을 파는 곳과 동전을 유대돈으로 바꾸는 장사들에게 찾아가서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 장사들이 더 욕심을 내어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찾아가서 의견을 냈습니다. “우리가 성전으로 들어가서 장사를 한다면 당신들에게 세금을 내겠오. 그러면 당신들도 이익을 보고 우리 역시 조금이나마 이익을 볼 것이 아니겠소” 그 말을 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대환영했습니다.
그때부터 성전 안은 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범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비호를 받는 이 상인들은 제물과 동전을 바꾸어 주는 데 있어서 폭리를 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인해 그 먼길을 하나님께 제사하러 온 순례자들과 예배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그 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온전하게 드려질 리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인들의 행동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장사꾼들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역시 그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악인들의 문제입니다. 악인들은 자기들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중요시 여기시는 것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 눈 앞에 진리가 역사를 하고 있어도 눈을 감아버리거나 외면하거나 아니면 진실을 왜곡시킵니다,
그런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예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향해 화를 냈습니다. 우리 15-16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이 예수님께 화를 낸 이유가 무엇때문이라고 합니까? 우선은 예수님이 하시는 이상한 일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이 그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저게 뭐하는 짓이야?”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있으며 특히 종교를 통해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도 이상하게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 41절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자신들이 맹인인줄 알았다면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해서 고침을 받고 진리를 보는 눈을 얻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눈을 뜨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기는 했지만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좋은 것도 나쁘게 보며, 오히려 나쁜 것도 역시 좋게 보는 삐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죄를 고백하여 회개하고 고침을 받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고치시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십니다. 그 전에는 악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자기들이 악에 속한 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눈이 어둡다고 느끼십니까?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 속에서 같이 환영하고, 찬송하는 무리 속에서 같이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13절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13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성전을 두 가지 관점으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집이 지어진 원래 의도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기 워해 기도하는 집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의 기능을 두 가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하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은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몸이 거룩해졌음을 의미하며 그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아뢰고, 또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음으로써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지속하게 됨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된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면서 쉬지말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기능의 두 번째는 공동체적인 관점입니다. 교회입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기도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만 강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인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도 기도해야 하고 교회에서 모여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을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결과는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를 나누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결과 사람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보이게 되었고, 집에서 떡을 떼었고, 기쁨과 순전함으로 음식을 먹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로인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47절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 믿음으로 기도했고 그들의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전 건축을 다 마치고 나서 성전 봉헌식을 할 때 솔로몬은 성전의 용도가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의 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의 결론 부분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6장 39-40절입니다.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 하나님의 성전인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회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는 헌신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보신 것은 그들이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분명 그들이 하는 일은 합법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예배와 기도라는 본질보다는 형식을 위해 장사를 하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자기 이익과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빼앗고 훔쳤습니다. 그들의 이런 행위로 인해 영적인 본질이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달려들어가 성전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심판자의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있는 탐욕도 물리치십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 계신 예수님 자신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와 기도 응답입니다. 교회에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권세로 인한 구원과 치유와 회복사역이 기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자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이 일들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에 나오는 가난한 자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찾아오는 가난한 자들은 바로 예수님이 섬기셨던 사람들이며, 오늘날도 교회를 통해 섬기고자 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그들을 외면해거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일들을 마치시고 자신을 믿지 않는 그들을 떠나셔서 성밖에 있는 동네인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베다니는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 남매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유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이제 불의한 것을 바로 잡고 예수님이 의도하신 일들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여러분들의 몸을 기도하는데 사용하시고 기도하다가 가르쳐주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과 치유와 회복의 사역을 이루시는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