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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이깁니다
시편 76:1~12
오늘 저녁 읽은 시편 76편은 ‘전쟁시’라고 말할 수 있는 시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시인은 우리 하나님에 대하여 위대하시고 용감하시며, 근엄하시고 천하에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영웅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후대에 와서는 이 의미를 살려서 신년을 맞이하여 희망을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는 예식이 있을 때든지, 왕의 즉위식에 그를 축하하여 왕의 형통과 번영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시편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성경학자 중에 많은 사람이 이것을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산헤립의 군대가, 멸망시키는 사명을 지닌 천사에 의해서 아예 망해 버리고 말았을 때 지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시대에는 다른 종류의 승리를 거두어 종교적으로 개가를 올렸던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 시편의 주제가 될 만한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그 역사적인 배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민족을 치러 들어올 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얼굴을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야하시엘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백성에게 말씀했습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중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때 “왕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말하자면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이 이렇게 기도하니까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 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 속한 레위 사람들, 말하자면 성가대원들은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때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일찍이 일어나 드고아 들로 나아갈 때에 신념에 찬 격려를 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면서 노래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이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 사람들을 치게 하셨으므로 저희가 완전히 패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어찌나 많았는지 능히 가져갈 수도 없을 만큼 많아서 그 전리품만을 거두는 데에 사흘씩이나 걸렸다고 했습니다. 전리품을 다 거둔 후 그 골짜기의 이름을 브라가 골짜기(송축의 골짜기)라 했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이 여기에 제시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경험이 풍부해도, 권력을 가졌다 해도 마귀는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저희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확신을 가지고 찬미하면 마귀의 세력을 능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간증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은 강한 성이요, 방패가 되시므로 우리를 마귀의 손아귀에서 구하여 내십니다. 마귀들이 모략과 권세를 가지고 아무리 덤벼든다고 해도 사람으로는 당할 자가 없지만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 주실 때 넉넉히 이기고도 남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들에서 양치는 목동이었지만 온 이스라엘 군대가 벌벌 떨며 쫓기고 있는 강한 도전자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물 맷돌 하나로 쳐죽인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경험이 많아서 이겼습니까? 골리앗보다 키가 컸습니까? 무기가 우수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할 때 인간적인 견지에서는 감히 적수가 될 수도 없는 다윗이 인간의 예상을 뒤엎어버리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대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습니까?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 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 제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았긴데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도 없고 이긴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신령한 전쟁에서 우리가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면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 생활은 사사건건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감격과 찬송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억울하게 갇혀서 밤중에 찬미하고 기도하더니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리고 옥사장이 회개하여 그 가족이 구원받게 된 것은 분명히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바울과 실라)의 승리는 기적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오늘 본문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 바 되셨으며 그 이름은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지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리스도인의 사회적인 사명을 말씀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며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다니엘서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함으로 왕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공포한 그대로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한 풀무불에 던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웠던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런데 불 속에 던짐받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결박이 그 뜨거운 불에 다 타버려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사람이 함께 함으로 세 사람이 불 가운데 던짐을 받았는데 네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을 느부갓네살 왕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왕이여, 옳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그러면서 느부갓네살 왕이 당황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아귀에 가까이 가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했습니다. 아마 이 말을 할 때까지도 혹시 자기가 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도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기적입니다. 그 뜨거운 불이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했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때 느부갓네살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조서를 내리노니 백성과 각 나라와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다”고 하여서 저희를 바벨론 나라에서 더욱 높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한 경험이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승리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영광이 돌아가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이 시인이 얼마나 신앙적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는 인간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분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자기의 힘이나 지식 그리고 경험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잘되면 자기가 훌륭해서 그렇게 된 줄 생각하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생각한 대로되지 아니하면 근심하고 걱정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맙니다.
왜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중심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은 전쟁에서 참으로 기적인 승리를 거두게 될 때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고 그 절대적인 권능이 방방곡곡에 알려져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때가 없어지리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앙적인 표현입니까?
2절을 보십시다.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온 땅에 알려지셨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위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 장막’과 ‘그 처소’는 살렘 곧 시온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제물로 표하는 경의를 받으셨고, 제물로 잔치를 베풀게 해서 그의 백성을 즐겁게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거기에 와서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말씀을 상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요, 예배당은 특별히 성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집이기 때문에 이 집에 모여서 예배드리게 될 때 우리에게 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지방에서 서울 오셨던 어느 성도님이 우리 교회에서 방송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찾아뵙지 못하고 내려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수박을 한 통 사서 보내 주신 것을 받으며 참 감격해했습니다.
저는 그 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시라고 말씀도 안하시고 그저 지방에서 다녀가는 성도라고 하고 다녀가셨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성도님이 베푸신 사랑에 감격하면서 받았고 앞으로 더욱 힘을 내서 열심으로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방송을 들으면서도 이렇게 은혜받고 좋아하시는데 우리는 이렇게 예배당에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드리니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을 얼마나 사모했습니까?
시편 84편을 보세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4,10)
여러분, 얼마나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면 그럴까요? 아마 이 자리에 나오신 분 가운데 그런 분이 많고 많으시리라 믿습니다. 멀리 인천, 수원, 의정부에서 오시는 분은 말할 것도 없고 예배 시간에 늦지 않으시려 앞을 다투어 예배당을 향해 오시는 발걸음을 볼 때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오늘 저녁 하나님의 장막인 예배당을 향해 사모하는 마음 가지시고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으로 더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3절을 보십시다. “거기서 저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도다”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원수에 대한 승리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저가 화살을 깨치시도다” 하나님 앞에는 인간의 힘을 과시하는 활과 살, 방패와 칼, 그리고 전쟁에 사용하는 모든 무기가 아무 소용이 없어집니다. 전쟁 무기가 다른 민족을 치는 데에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그 목적에 응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그 거룩한 민족을 향해 겨누어졌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부러뜨리고 마십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한 자의 화전을 소멸하셨기 때문입니다.
50년 전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어떻게 건져 주셨습니까? 우리에게 힘이 있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자기들의 힘이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나섰던 교만한 일본 군국주의를 하나님께서 미국의 손을 빌어 원자폭탄의 세례를 퍼부었더니 꼼짝 못하고 손을 들고 말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 민족의 해방은 기적이요, 독립은 선물입니다. 왠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향한 기대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복 5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한국 전쟁에서 돈 벌고 군사 경비 쓰지 않아 경제력이 커지니까 그 동안 버리지 못하고 있던 군국주의 정신이 다시 태동하고 있음을 볼 때 일찍이 저들에게 삼킴 당한 너무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국민으로서는 울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믿는 것은 우리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 대통령을 위시해서 온 국민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끊고 우리의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그리고 저희의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깨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때 우리 정부도 일본 정부의 경제 협력 문제 때문에 눈치보며 주저하지 말고, 한국 민족을 위한 정부라고 할 것이면 의분을 가지고 민족을 대표하여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그들과의 경제 협력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각오를 가지고 나선다고 하면 오히려 국민들이 허리를 졸라매고 정부를 도와줄 것을 믿습니다.
한 나라가 서는 것이 경제력이나 군사력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삽니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 당시 그의 부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편이 되어야 승리하네.” 이것은 너무나 유명한 말이고, 만고 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는 나라, 이는 벌써 승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시편 28편에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도움을 얻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능력은 한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6-7절을 같이 읽으십시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 들었나이다 주 곧 주는 경외할 자시니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찬송가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만유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없네
구약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려 할 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매달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이 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 19:35)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꾸짖으시면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어버리고 맙니다. 주님이 노하시면 그 앞에 설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를 삼키려고 마귀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드는 이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능력을 얻어 승리하며 하나님의 집에서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