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 없다."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
정도전은 깨어있을 때 이렇게 위대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깨어있지 못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지만 역적으로 최후를 마감했다.
그에게 있어 미친 마음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이성계가 늙었을 때 막내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고 하는데 동의했다.
조선은 명분을 잃었기 때문에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공과 과오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많은 의병이 일어났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바쳤고 7년동안 이땅에서 일어난 전쟁이었기에 조선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래도 조선은 승리했다. 그러나 공과 과오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조차 역적으로 몰아 전쟁의 막바지에 충신으로 남을 것인지 역적으로 죽을 것인지 선택을 했어야 했다. 그 결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의병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나는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과를 제대로 평가해야 하며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하여, 또는 연장자라고 하여, 또는 재산이 많다고 하여, 또는 지위가 높다고 하여, 또는 리더십이 강하다고 하여 말씀의 사역자로 받아들인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이 예수님의 것인가? 이것이 영에서 나오는 것인가?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 없다."
얼마전에 공동체 모임에서 사도행전 15장을 공부하며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는 말씀을 읽고 말씀을 나누었다.
여러명의 형제 자매들이 바울이 너무 심했다고 했고, 모임장이 되는 형제님 또한 바울의 혈기로 인한 다툼이라고 인본주의적 결론을 내렸다. 바나바에게 많은 은혜를 입은 바울이 바나바와 다투고 마가를 품지 않았고 바울이 너무 혈기 왕성했었다고 모든 형제 자매들이 결론처럼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나 우리는(박자매님과 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바울과 바나바의 명분을 성경 기록을 근거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나바는 혈과 육정으로 마가를 데려가자고 주장하는 것이고, 정과 욕심에 의해 주장을 펼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그 이후 성경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런데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교회의 인도를 받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한다.(40절, 41절) 그러니 바울이 명분이 맞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마가는 회개하고 마가복음을 쓰는 일꾼으로 쓰임을 받게 되고 돌아오게 되지만 바나바의 이름은 이후 성경에서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명분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또한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며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인정한 자들이기 때문이고 명분을 잃고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면 교회를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