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공자께서 칠조개에게 벼슬을 하도록 하시니,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그것에 대한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기뻐하셨다.
○ 漆雕開, 孔子弟子, 字子若. 斯, 指此理而言. 信, 謂眞知其如此, 而無毫髮之疑也. 開自言未能如此, 未可以治人, 故夫子說其篤志. 칠조개는 공자의 제자로서 자는 자약이다. 斯는 이 이치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信이란 그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진실로 알고서 터럭만큼도 의심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칠조개는 아직 이와 같지 못하여 남을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하였기에, 공자께서 그 돈독한 뜻을 기뻐하신 것이다. 新安陳氏曰 未能眞知此理而無毫髮之疑 則正當學時 未是學優而仕時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이치를 진짜로 알아서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기가 아직 불가능하다면, 바로 마땅히 배워야 할 때이지, 배우다 여유가 있어서 벼슬을 할 때가 아직은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不先自信 何以治人 정자가 말하길, “먼저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이로써 어찌 남을 다스리겠는가?”라고 하였다.
朱子曰 斯之一字甚大 有所指而言 如事君忠事父孝皆是這箇道理 若自信得及 則雖欲不如此不可得 若自信不及 如何勉强做得 欲要自信得及 又須自有所得於這箇道理上 見得透全無些子疑處 方是信 주자가 말하길, “斯라는 글자 하나가 대단히 위대하니, 가리키는 바가 있어서 말한 것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길 적에는 충성으로 하고, 아버지를 섬길 적에는 효도로써 한다는 것과 같으니, 모두 다 이러한 도리이다. 만약 스스로를 믿을 수 있다면, 비록 이렇게 하고 싶지 않더라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억지로 해낼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믿고자 한다면, 또한 반드시 이 도리 위에서 터득하는 바가 있어야 하니, 철저하게 알아보아서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부분이 없어야만, 비로소 이러한 믿음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斯只是這許多道理 見於日用之間 君臣父子仁義忠孝之理 於是 雖已見得如此 却自恐做不盡 不免或有過差 尙自保不過 雖是知其已然 未能決其將然 故曰吾斯之未能信 斯는 그저 이러한 수많은 이치일 뿐인데, 일상생활 중에 드러나면, 군신과 부자, 인의와 충효의 이치인 것이다. 이에 비록 이미 알아봄이 이와 같을지라도, 오히려 스스로는 제대로 다 할 수가 없거나, 혹시라도 지나침이나 못 미침이 있음을 면할 수 없어서, 자신을 보전하는 것도 아직 해낼 수 없음을 두려워한 것이다. 비록 자신이 이미 그렇다는 것을 알았을지라도, 장래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결단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아직 그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
3 | 又曰: “古人見道分明, 故其言如此.” 또 말했다. “옛사람이 도를 보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말이 이와 같았다.”
或問開未能自信而程子以爲已見大意見道分明 何也 朱子曰 人惟不見其大者 故安於小 惟見之不明 故若存若亡一出一入而不自知其所至之淺深也 今開之不安於小如此 則非見乎其大者不能矣 卒然之間一言之對 若目有所見而手有所指者 且其驗之於身 又如此 其切而不容自欺也 則其見道之明又爲如何然 曰見大意 則於細微容或有所未盡 曰見道分明 則固未必見其反身而誠也 혹자가 묻기를, “칠조개는 아직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지만, 정자는 이미 대의를 보았고 도를 봄이 분명하다고 여겼는데,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사람은 오직 그 큰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작은 것에 편안해하는 것이고, 오직 보는 것이 밝지 않기 때문에, 있는 듯하고 없는 듯하며 한번은 나왔다가 한번은 들어가는 식으로, 자신이 이른 곳의 얕고 깊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칠조개가 작은 것에 안주하지 않음이 이와 같으니, 그 큰 것을 본 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창졸지간에 한마디 대꾸하는 말임에도, 마치 눈으로 본 바가 있고 손으로 가리키는 바가 있는 것 같고, 또한 자신의 몸에 그것을 증험함이 또한 이처럼 간절하고도 스스로 속임을 용납하지 않았으니, 그가 분명하게 도를 본 것은 또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대의를 보았다고 말한다면, 미세한 것에 있어서는 혹시라도 미진한 바가 있음을 용납하는 것이고, 도를 봄이 분명하였다고 말한다면, 본래 그가 반드시 제 몸에 돌이켜서 정성스럽게 함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人惟見道不分明 故所言含糊不決 今開斷然以爲未能信 未可以仕而治人 故知其見道分明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사람은 오직 도를 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는 바가 흐릿하고 결단성이 없는 것이다. 지금 칠조개는 과단성 있게 아직 믿을 수 없고 미처 벼슬하여 남을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가 분명하게 도를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謂之見道分明者 凡毫釐之未信皆自知之也 호씨가 말하길, “그를 일컬어 도를 분명하게 본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무릇 털끝처럼 아주 작은 것일망정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라면, 전부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4 | 謝氏曰: “開之學無可考. 然聖人使之仕, 必其材可以仕矣. 至於心術之微, 則一毫不自得, 不害其爲未信. 此聖人所不能知, 而開自知之. 其材可以仕, 而其器不安於小成, 他日所就, 其可量乎? 夫子所以說之也.” 사씨가 말했다. “칠조개의 학문은 고증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성인께서 그로 하여금 벼슬을 하도록 하였으니, 반드시 그 재목은 벼슬을 할 만하였을 것이다. 심술의 은미함에 이르러서는, 터럭 하나만큼을 自得(스스로 터득함)하지 못한 것이라도, 그가 아직 믿지 못하는 것이 됨에 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성인이 알 수 없는 것이고, 칠조개 스스로만 아는 것이다. 그 재목이 벼슬을 할 만하였으나, 그 그릇이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날에 이룰 바를 그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공자께서 그를 기뻐하신 까닭이다.”
慶源輔氏曰 聖人明於知人 何不能知 但其未信之實毫釐纖悉處與意味曲折 不若開自知之精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성인은 사람을 아는 데에 밝으니, 어찌 알지 못하였겠는가? 다만 그가 아직 믿지 못하는 것의 실질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과 의미곡절에 대해서는, 칠조개가 스스로 아는 것처럼 그렇게 정밀하지 않았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據他之材已自可仕 只是他不伏如此小用了 又欲求進 是他先見大意了 方肯不安於小成 若不見大意者 只安於小成耳 如人食藜藿未食芻豢 只知藜藿之美 及食芻豢 則藜藿不足食矣 又曰 他是不肯便做小底 所謂有天民者 達可行於天下而後行之者也 주자가 말하길, “그의 재주에 근거하면, 이미 저절로 벼슬할만하였으나, 단지 그가 이와 같이 작게 쓰이는 것에 불복하고서, 다시 나아가기를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그가 먼저 대의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비로소 작은 성취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대의를 보지 못한 자라면, 그저 작은 성취에 안주할 따름이다. 예컨대 사람이 명아주와 콩잎만 먹고서 아직 풀 먹는 가축과 곡식 먹는 가축을 먹어보지 못하였다면, 그저 명아주와 콩잎이 맛있다고 알겠지만, 芻豢을 먹음에 이르면, 곧 명아주와 콩잎은 먹을만한 것이 못 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 말하길, “그는 작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으니, 이른바 ‘하늘이 낸 백성이라는 자가 있으니, 영달하여 천하에 행할만하게 된 연후에 행하는 자’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開之未信 若一理見未透卽是未信否 曰 也不止說一理 行一不義殺一不辜 得天下不爲 須是眞見得不義不辜處 便不可以得天下 若說略行不義略殺不辜 做到九分 也未甚害 也不妨 這便是未信處 這裏更須玩味省察體認存養 亦會見得決定恁地而不可不恁地 所謂脫然如大寐之得醒 方始是信處耳 누군가 묻기를, “칠조개가 아직 믿지 못한 것에 있어서, 만약 이치 하나를 미처 철두철미하게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아직 믿지 못하는 것인가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단지 하나의 이치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不義한 일을 하나 행하고 무고한 사람을 하나 죽여서 천하를 얻는 짓도 하지 않는다. 반드시 진짜로 불의하고 무고한 부분을 알아보아야만, 곧 이로써 천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불의한 일을 약간 행하고 무고한 사람을 약간 죽여서 90%를 해내는 것은 심각한 해가 되지도 않고 무방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바로 아직 믿지 못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더욱 반드시 음미하고 성찰하며 체득하여 인식하고 보전하고 길러야 하니, 또한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마치 큰 잠에서 깨어나듯이 훌쩍 행해야만, 비로소 이것이 바로 믿을 수 있는 부분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開所謂斯是他見得此箇道理了 只是信未及 他眼前看得闊 只是踐履猶未純熟 他是見得箇規模大 不入這小底窠坐 曾點被他見得高 下面許多事 皆所不屑爲 到他說時 便都恁地脫洒 想見他只是天資高 便見得恁地 都不曾做工夫 칠조개가 말한 斯라는 것은 그가 이러한 이치들을 깨달았지만, 다만 믿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눈앞에 있는 것은 넓게 잘 보았지만, 단지 실천하고 이행하는 것은 오히려 아직 純熟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깨달은 것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이렇게 작은 둥지에 들어가서 앉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증점은 그에 의해 고상하게 평가되었는데, 아래의 수많은 일들은 모조리 달게 하려 하지 않는 바였으니, 그가 말하는 때에 이르자, 곧바로 모두 이렇게 시원하게 털어냈던 것이다. 생각하건대, 그는 그저 천부적 자질이 높았을 뿐이므로, 곧 알아본 바가 이와 같았던 것이니, 이는 전부 일찍이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點見得高 却於工夫上有踈略處 開見處不如點 然有向進之意 點規模大 開尤縝密 증점은 깨달은 것이 高遠하였지만, 공부함에 있어서는 소략한 부분이 있었다. 칠조개는 깨달은 부분이 증점만 못하였지만, 향해서 나아간다는 뜻이 있었다. 증점은 규모가 컸고, 칠조개는 더욱 치밀하였다.
論資稟之誠慤 則開優於點 語其見趣超詣脫然無毫髮之累 則點賢於開 然開之進 則未已也 자품의 정성과 성실을 논하자면, 칠조개가 증점보다 낫고, 그 식견과 취향, 그리고 조예가 초탈하여 터럭만큼의 얽매임도 없는 것을 말하자면, 증점이 칠조개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칠조개의 정진은 미처 끝남이 없었다.
慶源輔氏曰 器言其志量也 所見者大 所知者明 則其志量自然不肯安於小成 其進進不已之意 不至於大而化化而不知之神 不止也 則他日所就 果可量乎 경원보씨가 말하길, “器는 그 뜻의 도량을 말한 것이다. 본 것이 크고 아는 것이 밝으면, 그 지량은 자연히 작은 성취에 안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其進이란 나아가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大而化와 化而不知의 신묘한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다른 날에 나아갈 바를 과연 헤아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胡氏曰 開得其大而不局於小 호씨가 말하길, “칠조개는 그 큰 것을 터득하였으면서도 작은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集註釋悅字有三 朱子謂悅其篤志 程子謂悅其已見大意 謝氏謂悅其不安於小成 其實相貫 惟其見大意 故不安於小成 惟其不安於小成 故篤志 쌍봉요씨가 말하길, “집주에서 悅자를 풀이한 것이 셋이다. 주자는 그가 뜻을 독실하게 함을 기뻐한다고 말하였고, 정자는 그가 이미 대의를 본 것을 기뻐한다고 말하였으며, 사씨는 그가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음을 기뻐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서로 관통하고 있으니, 오직 그가 대의를 보았기 때문에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고, 오직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뜻을 독실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按程氏遺書曰 曾點漆雕開已見大意 集註采之 以曾點事在後不欲學者躐之 故去上二字 정씨가 남긴 글에 따르면, 증점과 칠조개는 이미 대의를 보았지만, 집주에서 이를 채록할 적에 증점의 일은 뒤에 나오므로 배우는 자가 건너뛰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위의 두 글자를 제거한 것이라고 한다.
雲峯胡氏曰 已見大意 已字有意味 蓋漆雕開已見大意而未析其微 曾點已見大意而易略於細 使二子之學 各有所進 則其已然者 固如此 而其未然者 當不止於此也 已字當如此看 운봉호씨가 말하길, “이미 대의를 보았다에서, 已자는 의미가 있다. 대체로 칠조개는 이미 대의를 보았지만, 아직 그 미세한 것은 분석하지 못하였고, 증점은 이미 대의를 보아서 미세한 것에 소략하기가 쉬웠다. 만약 두 사람의 학문에 각자 나아가는 바가 있다면, 이미 그러한 것은 원래 이와 같겠지만, 아직 그러하지 않은 것은 마땅히 여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已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曰: “漆雕開, 蔡人, 字子若. 少孔子十一歲, 習『尚書』, 不樂仕. 孔子曰: ‘子之齒可以仕矣. 時將過,’ 子若報其書曰: ‘吾斯之未能信.’ 孔子悅焉.” 공자가어의 72제자해에 이르길, “칠조개는 채나라 사람이고, 자는 자약이다. 공자보다 11세 어리고, 상서를 익혔으며 벼슬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하길, ‘그대의 나이가 벼슬을 할 만하다. 때가 장차 지나갈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자약이 그 편지에 답하여 말하길, ‘저는 그것을 아직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께서 그에 기뻐하셨다.”라고 하였다.
○ 『韓非子』 「顯學篇」曰: “漆雕之議, 不色撓, 不目逃. 行曲則違於臧獲, 行直則怒於諸侯. 世主以爲廉而禮之.” 한비자 현학편에 이르길, “칠조개는 의논할 적에 얼굴빛이 흔들리지 않았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행동이 바르지 못하면, 장획(노비)에게서도 벗어났고, 행동이 곧으면 제후에게도 화를 냈다. 세상의 주인들이 청렴하다 여기어, 그를 예로써 대하였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