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300 년대의 역사를 보면 전 세계에서 근세조선 같이 500년 간 지속 된 왕조는 하나도 없습니다.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있는 것은 근세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전 세계에서 하나도 없습니다.
근세 조선이 건국 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통일 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세계 역사상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2], 조선시대 우리는 다양한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백성의 다양한 상소제도는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에게 편지를 보내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하는 상소 제도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한문 상소가 있었지만 한문 모르는 사람의 불만을 달래느라 나중에는 언문상소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또 글을 모르는 사람의 불만을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신문고가 서울에 거주 하는 사람에게 만 유용한 것인 만큼 지방 사람들을 위해 격쟁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서 왕에게 불만-민원을 해결 하라 라는 제도였습니다.
영조 같은 왕은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백성들에게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일국의 왕이 이런 다양 한 상소-소통의 제도를 이용해 백성의 뜻을 알고 불만을 해결한 경우는 세계 역사 상 근세조선 뿐 입니다.
[3], 500년 동안 임금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역사에 없는 우리나라만의 기록 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을 경우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근세조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면서 아무도 볼 수 없는 역사서를 500년 적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통령 또는 수상의 행적을 어느 나라에도 기록한 바 없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왕의 기록은 세계역사상 유일한 기록 입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해 보니 전 세계에서 근세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4],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동안 썻던 것은 세계 역사상 우라나라가 유일합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 비서실입니다.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 매일 회의를 하고 기록을 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근세조선 초부터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은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5], 일성록(日省錄)’이라는 150년 동안의 왕들의 일기가 있습니다,
150년 안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등을 니누어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일기를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6], 우리나라는 근세조선시대부터 사형수에 관해서는 오늘날의 3심제 재판을 시행 하였습니다.
3심제는 근대 개화기에 도입한 재판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노예근성의 자기 비하적인 주장 입니다.
조선시대에 3심제는 모든 재판에서 적용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하였습니다.
사형수에 대한 재판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 서서 기록을 남겨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사형수에 대한 심리를 하면서 혐의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를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7],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는 1444년께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 하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수리적으로 계산, 증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증명은 서양의 갈릴레오보다 약 190년이 빠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주위를 지구가 돈다고 하는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서양에서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였습니다.
이순지의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이미 계산을 해냈습니다.
[8], 이순지(李純之)라고하는 학자는 1400년대 이미 일식, 월식을 예측 하였습니다,
당시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 월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아라비아, 중국, 우리나라-조선 3개나라 뿐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9], 우리는 682년, 신라 신문왕 때 국학(國學)이라는 국립대학을 세웠습니다.
세계 역사상 국립대학의 효시(嚆矢)는 우리나라 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에스파냐, 스페인이. 1490년대에 새운 국립대학 입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하면 서기 682년, 신라의 제31대 신문왕 때 박사 또는 조교를 두고 역(周易), 상서(尙書), 모시(毛詩), 예기(禮記), 논어, 효경, 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 문선(文選)을 가르치는 국학(國學)이라는 “국립대학”을 세웠다. 라고 ‘삼국사기’에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국학(國學)에서는 별도로 명산과(명산과)를 더 설치하고 요새 말로 하면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공무원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 입니다, 삼국시대 때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10],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신라) 때부터 이미 2차 방정식과 π의 값을 정리 하여 산출 한
뛰어난 민족 이었습니다.
주(周)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구장산술(九章算術),의 제 8~9장을 보면 방정,방정식이 나오고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삼국시대에 이미 또 π의 값이 3,14 인 것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순지가 달력을 계산해 낸 “칠정산외편”에 보면 π(밀률)의 값은 3.14159로 되어 있습니다.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 이라고 불렀습니다,
국자감은 고려시대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인데, 서기 992년(성종 11)에 국자감을 창건하라는 성종의 지시가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11], 서양과학이 전래되기 전 근세조선시대에 이미 sin, cos, tan, cot, sec, cosec, 1-cosA, 1-sin,를 개발 하여 이용하였고 삼각함수표를 만들어 사용 하였습니다.
sin, cos, tan,등이 서양에서 전래된 수학이론 이라는 주장은 자기역사를 내팽개치는 노예근성입니다.
1700년대 중반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잘 해서 ‘담헌서(湛軒書)-주해 수용(籌解需用)’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湛軒書)-주해 수용(籌解需用)’ 에서는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설명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하는데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 함수표가 나와있습니다.
첫댓글 허성도 교수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로 정년퇴직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친구 입니다.
학식있고 재담이 좋아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지요.
우와~~~!
글쿠나.
감사 감사^^
잘 읽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비하해서도 않되지만 과장도 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