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왜 글이 이렇게 올라오는지 모르겠다.
글 올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맞침표 하나 공간 앞뒤 좌우 여백도 중요한데, 왜 올린 글이 이 모양인지 도동 모르겠다.
난 영어를 잘 안 쓴다. 한문도 거의 안 쓴다.
철저하지는 못 하지만 순전 우리 말로 글 쓸려고 애 쓰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 부스러기다.
그러니 영어는 내가 쓴게 아니다.
왜 이러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읽기 불편하게 해서 미안 하다.
많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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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난 홀로 다니는 산행을 좋아한다. 처음부터 그렇고 끝도 시작처럼 늘 쓸쓸히 끝나는 그런 흔적 없는 산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혼자
다닌다. 그것도 일부러 그런다. 이런 나의 성격 때문에서인지 선택하는 산행코스도 내 안만큼 쓸쓸한 곳이다.
<BR> <BR>아무도 없는 산에
조금씩 나를 조용하게 밀어낼 때, 그 때 그 때마다 나는 무척 조심스러움을 두렵게 느낀다. 어쩌면 나는 이런 것을 즐기는지 모른다.
그래서 선택한 산이 국망봉이다. 이 산은 늘 거기
있지만 어쩌다 찾아 간 나에게는 거의 나 혼자일 때가 많다. 서로 외로움이 만나서일까. 그래서 난 이 곳이 좋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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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국망봉 산행을 하다가 사람을 만나면 일단 무척 반갑다. 그래서인지 이 곳에서 산행인사는 무척 다르다. 일단 '반갑습니다.'이다. '수고
하십니다', '안녕하세요' 등 여러 여러 산행인사도 많지만. 이 곳에서 만큼은 그냥 '밥갑습니다'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야 만
하는 것도 아니데, 어쩌다 만나는 모두가 그렇게 한다. 그러고 미소를 띠우며 곧 서로를 스쳐간다. 참 신기할 정도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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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가끔 걱정이 되어 뒤 돌아 보기도 하는 데, 서로 오가던 맞은 편 봉에 섯고 서로가 멀리서 마주쳤을 때에는 정말로 너무도 반가워
두 팔을 벌려 크게 원을 그리는 오바행동을 할 때도 있다. 어찌보면 일종의 이런 것이다. '너 무사하냐, 나 무사하다.'. 한참을 그러다간 다시
서로의 쓸쓸한 산행을 계속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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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근데, 이 번에 갔다온 국망봉 산행은 그렇지가 않다. 무척 붐볍다. 도봉산 북한산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전에 어쩌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한 팀을 만났을 때 비하면 무척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일단 많은 사람을 알려지지 않은 산에서 만났기 때문에 반갑다. 허지만 그
반가문 속에 뭔가 잃은 것도 있었다. </P>
<P>그것은 두려움 속으로 나를 조용히 밀어넣었던 그 윤희 말마따나 '거시기'라고 할까 아무튼 그것을 좀 잃은 것 같다. 또 어디서 이것을 찾아야 할지...</P>
<P> </P>
<P>모처럼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다. <BR>몇 일간의 숨 막히던 황사가 물러가고 맞이 한 아침 공기는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너무도
산뜻하다. <BR>오늘로 동아 대회가 끝난 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BR>이제는 내 생활의 징검다리가 되어 버린 봄 가을에 있는 마라톤 대회,
<BR>이제 그 하나가 지나갔다. <BR>아니, 벌써 하나를 넘겼다. <BR>그 많은 기다림과 설레임도 이젠 멀리 가 버린 황사처럼 먼 기억으로
넘어갔다. </P>
<P>뛰러 갈까, 등산 갈까. <BR>일요일 오전이면 늘 하는 고민이다. <BR>이 번 겨울은 작년 겨울에 비해 너무도 눈이 안 왔다.
<BR>그러니 눈 오면 가려 했던 산행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매주 다녔던 전 년에 비해 거의 없었다. <BR>그러고 보니 연중 빠트리지 않고
가던 철원도 이 번 겨울에는 못 가봤다. <BR>많은 망설임 없이 쉽게 결정 났다. <BR>그래 철원에 가자. </P>
<P>버스는 중량천 변을 따라 나 있는 동부간선도로로 달렸다. <BR>천 변으로 나 있는 자전거 도로에는 벌써 많은 시민들이 나와 달리고,
자전거 타고, 인라이닝을 하고 있었다. <BR>달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부럽고 등산 가는 것이지만 우두커니 버스에 앉아있는 내 자신이 조금은
후회스럽기도 했다.
<BR>작년에는 이 곳에 자전거 도로가 안 나서인지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BR>마라톤 붐이라고는 하지만,
이제까지 마땅하게 뛸 곳이 없던 강북 시민들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뜀터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BR>언젠가 코스 답사코져 와봐서 알았지만,
시에서인지 구청에서인지 상당히 정성 드려 만든 코스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BR>왠지 멀게만 느껴졌던 관청의 종사자들이 이젠
이웃처럼 많이 가깝게 느껴졌다. <BR>노원구 구간은 지금 한창 공사 중이였다. <BR>뒤 늦게 하는 공사인 만큼 잘 만들겠다는 구청의 다부진
의지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던 그 공사였다. <BR>그래서인지 상당히 기대가 되어진다. </P>
<P>시외버스 기사 아저씨의 입담은 정말 재미있다. <BR>곧 알게 되었지만, 비슷한 연대의 나이라서 그런지 마치 오래된 친구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 스스럼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BR>군대 얘기, 자가용이 너무 많다는 얘기, 담배 얘기, 술 이야기, 등산 얘기,
축구 얘기 등 서로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에 서로 즐거웠다. <BR>두 번 더 왕복해야 그 날 일과가 끝난다는 기사 아저씨와는 나의 목적지인
신철원 터미날에서 헤어졌다. </P>
<P>철원. <BR>군 시절 이 곳을 얼마나 싫어 했었나 생각해 보았다. <BR>모두들 그랬겠지만, 나도 제대하면 이 쪽 방향으로 오줌 안
눈다고 마음 먹었고, 제대하는 날 출발하는 버스 창문 밖으로 다시는 이 더러운 곳에 안 온다면서 침까지 뱉었다. <BR>맨 전술 훈련에, 백키로
행군, 꾸벅꾸벅 졸면서 걷던 야간 행군, 지독하게 추운 겨울날 야외 생활했던 혹한기 훈련, 지긋지긋한 재설 작업, 한가하면 집 생각난다고 행한
각종 작업들. <BR>유별나게 구속 받기 싫어 하는 성질 때문에 말썽도 많이 피웠고 그 만큼 고생도 많이 했다. <BR>거의 몸부림치다시피
살았던 3년 동안의 어린 시절. <BR>이젠 다 어디 갔는지, 하염 없이 바라보았던 그 주변 풍경만 남아있다. <BR>그 주변만 남아있는 곳이
이 곳 철원이다. <BR>그렇게 싫어 했던 이 곳 철원이었다. <BR>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해 마다 온다. <BR>마치 의식처럼 안 찾아오면
그냥 죄스럽다. <BR>이 산야에 묻어 버린 어린 날의 나 자신에 대한 죄 때문일까.
</P>
<P>일단 만두국을 시켰다. <BR>주인 아저씨가 주방에다 만두국이 되느냐고 물어보고 해드린다 했다. <BR>주방 음식구에 얼굴을 살짝 내민
주인 어머니의 얼굴을 뵙고 인사를 했지만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다. <BR>올 해도 건강하시다. <BR>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식당 아저씨가 마냥
부럽기만 했다. <BR>옆 방에는 면회 온 듯한 아버지와 군인 한 명이 식사하고 있었다. <BR>여기서는 흔하게 보는 모습이다. <BR>그러고
보면 이 식당도 꽤 오랫동안 했다. <BR>거의 20년 동안 변한게 별로 없다. 굳이 있다면 술광고 포스터 정도 뿐이다. <BR>만두국이
나왔고, 공기 밥 추가 했고, 군인과 아버지는 계산하고 나갔지만, 그 들의 대화는 등 뒤로 계속 들렸다. <BR>아마 얼마간의 용돈을 군대에도
월급 나온다는 아들에게 찔러 주는 듯 싶다.
<BR>...
<BR>사갈 만두 없느냐는 물음에 겨울 철이 지나서요라는 답변에 계산하고 인사하고
나왔다. <BR>올 해가 처음으로 이 집 만두를 못 사본 해가 됐다. <BR>이런 날씨에 사가져가본들 다 물러 터질 것이라고 안위도 해보지만,
그래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P>
<P>철원 군청소재지가 있는 신철원 도시이지만, 도시 한 복판에 나있는 도로 200여 미터만 지나가면 도시는 끝난다. <BR>언젠가 조그마한 살
집 하나 사려고 알아보았다가는 서울의 집값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BR>그러고 보면 생활 방식이고 뭐고 서울과
지방과의 차이가 없어진 것 같다. <BR>군데군데 서울처럼 pc방도 있고,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내내 같은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BR>20년 전에는 서울 생활과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BR>여기 철원만이 아니라, 이제는 부산이고 광주고 대구고 지방마다 그
지방의 고유 특색이 거의 없어진 듯 싶다. <BR>통닭집이고 호프집이고 거의가 전국 프렌차이저 점으로 운영되어서인지 어딜가나 똑같고 그게
그거다.. <BR>누군가의 말처럼 무 개성 시대는 이미 와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P>
<P>마라톤을 해서인지 군청 담벼락에 붙어있는 철 지난 마라톤 포스터가 한 눈에 들어왔다. <BR>‘3.1절 철원군민 마라톤 대회’ <BR>순간
어떤 죄책감을 느꼈다. <BR>작년인가에 이 곳 철원에서 논두렁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는 안내문이 서울마라톤 싸이트에 올라온 것이 생각나서이다.
<BR>당시, 너무도 무분별하게 올라오는 각종 대회 개최 안내문에 너무도 짜증이 났고, 안내문 자제 해달라고 글 올렸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BR>내가 알기로는 여기 철원 마라톤은 딱 한 번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 <BR>사실 짜증이 났던 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글을 올리는
타 대회 안내 내용 때문이었는데 재수없게 때 맞혀 싸잡힌 이 곳은 아니였었다. <BR>그 날 즉각 삭제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후로는
올라온 것을 못 봤다. </P>
<P>이렇게 조용히 치뤘구나. <BR>한 번쯤은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과 함께 상당히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BR>그리고 화도 좀
났다. </P>
<P>도시의 마지막 건물을 지나 내리막을 내려오자마자 벌판이 시작됐다. <BR>사방 탁 트여진 시원한 시야가 눈에 들어오자, 답답했던 마음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BR>멀리 명성산의 궁예봉, 뒤 돌아 보이는 금학산, 고남산, 그리고 북쪽으로 포대고지 그 뒤는 북한이다.
<BR>참
너무도 보고 싶었던 산하가 눈에 들어오니 정말 반가웠다. </P>
<P>삼부연 폭포로 가는 길은 그 시작이 내리막이어서인지 그냥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BR>몇 겹의 산으로 둘러싸여 도무지 길이 없을
듯 싶은 오르막 길은 성벽 같은 산새를 굽이굽이 돌아 아슬아슬하게 이어져있다. <BR>거의 절벽 계곡 사이로 나 있는 물길과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바로 정면에 놓인 절벽에 마주치게 된다.
<BR>물길은 그 절벽 왼쪽 어깨로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도로는 그 절벽을 뚫고 터널로
이어져 있다. <BR>이 삼부연 폭포는 햇빛이 안 들어서인지 언제나 서늘함이 감돈다. <BR>폭포가 주는 서늘함도 있겠지만, 이 곳 땅 기운이
주는 살벌함이 더 큰 듯 싶다. <BR>솔직히 말하자면 무섭다.
<BR>겨울이라 수량이 적어서 조용히 내려오지만, 언젠가 여름에 처음 왔을 때
무시무시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는 그만 기절할 뻔까지 했었다. <BR>마치 살아있는 어떤 괴물이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 공포를 쉽게 잊지 못한
적도 있었다.
<BR>언제나 그랬지만 폭포 관람 시설도 설치되어 있어도 이 곳에서 오래 있지는 않는다. <BR>이내 벼랑을 뚫고 나 있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더한 냉기를 느끼는데 실제 기온은 바깥보다 더 차다. <BR>이 터널 공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BR>사실 매연
때문에 지나는 자동차가 싫기는 하지만, 이 터널을 지나갈 때에는 그래도 곁에 자동차가 지나가길 바라며 지나갔다. <BR>터널을 다 나오자 자동차
한 대가 막 들어갔다. </P>
<P>터널 지나서의 풍경은 너무도 고요하고 순하다. 그리고 햇빛도 있다. <BR>산들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 때문인지 물도 조용하게 흐른다.
<BR>터널 하나 사이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BR>이 길은 외통 길이라 거의 자동차 왕래가 없다.
<BR>무거운 차들이 안 다녀서인지 아스팔트도 처음 깔았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이 깨끗해 보였다. <BR>몇 해 전인가 철원 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유실된 다리는 새로이 멋지게 놓여져 있었다. <BR>낙석 철망들도 새롭게 설치되어져 있었다. <BR>언제나 느끼지만 난 이 길을
너무도 좋아한다. </P>
<P>계속 이어지는 발걸음은 신철원 시민들의 상수원 목적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에 이르렀다. <BR>기억 속에서는 아스라이 보였던 저수지 맞은편의
건물이 이 번에는 상당히 가깝게 보여지는 것에 새삼 놀랬다. <BR>상당히 큰 저수지인지 알았는데, 이 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BR>전부 한 40가구나 될까. <BR>마을 확성기에서는 산불조심 켐페인 방송이 반복되고 있었다. <BR>용화동이라는 이 마을을 끝으로
아스팔트 길도 내가 가는 방향으로는 끝이 나있었다. </P>
<P>군 포 사격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곳이라서인지 접근금지 경고판이 계속 보였다. <BR>이 곳은 포 사격만이 아니라 비행기 폭격 훈련도
함께하는 곳이라 상당히 위험한 곳이다. <BR>허나 일요일 날은 훈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BR>이 때문에 얻는 소득도 없지 않다.
<BR>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곳만큼은 일반인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BR>즉,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BR>또한 군 훈련 지역인지라 비상
도로망이 잘 만들어져 있고, 관리 또한 지속적으로 하는 지역이다. <BR>군사 지역이라 자연적으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고, 일요일이라 훈련도
없으니 이 산 전체에 나 혼자 덜렁일 때가 일쑤였다. </P>
<P>그러나 그 날만큼은 나 혼자만은 아니였다. <BR>입구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산불관리원이였고, 그가 하는 일은 나같은 사람을
붙잡는 것이였다. <BR>뗑깡을 썼다, 산 불 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큰 소리도 쳤고, 애원도 했다. <BR>쉽게 산행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들어서인지, 제발 산불조심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풀어주었다. </P>
<P>얼마나 올라갔을까, 잣나무 숲 사이를 지나자 세찬 바람이 뒤에서 불어왔다. <BR>나무 사이를 비벼가는 바람소리가 몹시 기분 나빴다.
<BR>대개 산에서의 이런 바람은 역으로 한 번 더 불게 되어있어, 모자를 꼭 눌러썼다. <BR>그리고 언제 불어오나 하나, 둘 셈을 세자마자
곧바로 불어왔다. <BR>마치 모자 벗기기 장난치는 것 같았고, 이 게임에선 내가 이긴 것 같아, 나도 씩 웃었다. <BR>봄 날씨는 이렇듯 알
수가 없다. <BR>햇빛이 비추다가도 이내 구름이 끼고, 잔잔하다가도 가끔씩 무서운 바람도 분다. <BR>그래도 모진 한 겨울을 이겨낸 이 바람
속엔 어떤 향기가 스며있고, 이것을 우리는 봄의 향기라고 부르는가 보다. <BR>분명히 이제까지의 겨울바람과는 온도 뿐만이 아니라 냄새가
달랐다. </P>
<P>비포장길을 벗어나 얼마간의 좁은 산행을 오르자 시야가 탁 트인 중봉우리에 올라섰다. <BR>옆으로 주능선이 가로져 있으나 앞 뒤로는 먼
곳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였다. <BR>아무래도 주봉까지 오르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을 듯 싶었다. <BR>이 날 오르는 산행은 여기까지 였다.
</P>
<P>히야~, 조용하다. <BR>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BR>이명증 이라고 머리 속에서 늘 우는 귀뚜라미 소리 이외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BR>숨 차게 올라와서인지 멀컹멀컹 거리는 맥박 소리만이 이 정막 속에 울리는 소리 전부였다. <BR>의심스러워 재차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 아무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BR>옛날 표준연구소의 무음향실에 들어섰던 경험이 생각났다. <BR>온통 사방에 세모
모양의 스폰지를 붙여놓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귀를 통해서 무엇인가 빠져나가는 듯한 알 수 없는 기분을 경험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BR>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너무도 조용했다. <BR>이 정막을 지구 도는 소리라고 했던가. </P>
<P>우리는 너무도 많은 소음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BR>냉장고 소리, 보일라 순환모타 소리, 컴퓨터 냉각팬 도는 소리, 이웃집 양변기
내리는 소리, 예열 시키려고 미리 건 자동차 시동 소리, 배추장수 소리, 계란장수 소리, 꽁치장수 소리, 아파트 소독 안내 방송 소리, 잃어
버린 개 찾는다는 소리, 밥 먹었느냐는 헨드폰 소리, 머리 어디서 싸게 한다는 통화 소리, 기호 몇 번 찍어달라는 확성기 소리... </P>
<P>다 어떤 목적이 있는 소리다. <BR>그 목적은 바로 어떤 이익이다. <BR>그 이익은 누군가의 것이다. <BR>그 누군가의 이익의
목적으로 나는 것이 소리이다. <BR>그 누군가가 아닌 사람에게 이 소리는 곤욕스러운 소음뿐이다. <BR>어쩌지도 못한다. <BR>그렇게 우리는
모여 산다. <BR>나 역시도 그렇고. <BR>나 역시 어떤 소리를 내고 있지 않는가 않았는가 반문해 보았다. </P>
<P>풀어진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어 소리없이 다 마셨다. <BR>평소 같으면 빈 물병은 빠작 공기를 빼고 뚜껑 막아 납작하게 만들어 배낭에
넣어지만 그 날은 병마개만 조이고 넣었다. </P>
<P>방카인지 군 시설물 위에 걸쳐 앉아 먼 산들을 둘러보았다. <BR>바보 같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둘러 본 사방 정 한 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BR>이젠 이런 생각들도 지겹다 느꼈다. <BR>잠시 더 멍하니 있다가 내려가자 마음 먹고, 얼마 후 내려갔다. </P>
<P><BR>이동까지 6키로미터 라는 안내판을 지나치자 포터 화물차가 내 앞에 섰다. <BR>이동까지 나갈 것이면 타라고 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탔다. <BR>서울 비원 앞 무슨동에서 태어난 서울 사람인데, 7~8년 전 지금 내 나이 때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이라
소개했다. <BR>자식들은 다 유학 보내고, 관광버스 한 대로 그럭저럭 먹고 산다고도 했다. <BR>여기서 생활하다 서울에 볼일 보러 나가면
공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도 하며, 술집 유흥가가 없어서 그렇지 그것만 괜찮으면 여기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시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BR>이동 지난 다음 버스 정류장에 세워주셨다. <BR>서로 명함이 없는 관계로 한 번 더 연이 주어지면 만날 것이라며 헤어졌다.
</P>
<P><BR>식사 후 표를 끊고 춥지도 않은 날씨라 밖에서 버스오기를 기다렸다. <BR>잠시 후 한 일행이 왔다. <BR>나이 든 여자와 젊은
여자와 그리고 여자 애기 전부 3명이다. <BR>이내 젊은 여자가 표 끊기 위해서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BR>그러자 포장 오징어를 손에 쥔
여자 아기가 저도 들어가겠다고 유리 문을 미는 것이였다. <BR>상당히 작은 여자 아기였다. <BR>어떻게 저렇게 작을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로
작은 아기였지만 서 있는 모습은 이상스럽게 당당했다. <BR>연실 포장 오징어를 뜯고 먹으려 하지만 두 여자 어른이 차 타면 먹을 것이라고
달래주었다. <BR>저 정도 키의 아기면 대개가 업혀 있을 성 싶은데 서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BR>꼭 서 있는 인형
같았다. 사실 곰인형 만 했다. </P>
<P>한참 후 버스가 왔다. <BR>늘 맨 마지막에 버스를 타는 습관이 있는데, 그 날 따라 그 일행보다 내가 먼저 탔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었다. <BR>버스는 거의 빈 상태였으나 앞 자리는 다 찼다. <BR>나는 버스 문 쪽 2번째 칸에 앉았고 곧 잠 잘 태세였다. <BR>여자
아기는 들려서 버스에 올려 놓이자 앞자리 승객이 받아 안았다. <BR>나이 든 여자는 가득 찬 쇼핑-백 두 개와 빵빵한 가방을 메고 힘들게
올라왔다. <BR>그제서야 그 일행들에게 짐이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BR>이어 나이 든 여자는 짐들을 운전기사 쪽 2번째 칸 의자에 부렸고
여자 아기를 받아 그 옆에 앉았다. <BR>그때까지 젊은 여자는 열린 버스 문 안으로 몸을 들이밀고 연실 아기에게 안녕이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BR>곧 버스 문은 닫히고 버스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P>
<P>나이든 여자 앞에 아기는 앞 보고 안겨 있으며 어느새 인가 손에는 짤라진 오징어를 쥐고 있었다. <BR>아기 이름을 부르며 이모랑,
삼춘이랑, 할아버지랑 보고 싶지 하면서 지금 거기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지만, 아기는 오징어 빨기에 만 여념이 없었다. <BR>바로 옆
자리에 있는지라 가까이서 보게 된 아기는 너무도 착하게 생겼다. <BR>눈 끝은 처져서 더 없이 순하게 생겼다. <BR>머리는 한 번이라도
이쁘게 다듬어 본 흔적 없이 자란 상태 그대로 였지만 너무도 청순해 보였다. <BR>어떻게 이렇게 선하게 생긴 모습이 있는지 사뭇 내가 놀랬다.
<BR>의자를 뒤로 살짝 제치고 반쯤 기울인 자세에서 아기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윙크해 주었다. <BR>이제 자야겠다 마음 먹고 눈 감고 있자
나이 든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BR>엄마가 아야야 해서 아기는 이모랑, 삼춘이랑, 우리하고 살아야 한다며 좋겠지하고 아기에게 묻는 것이다.
<BR>눈 번쩍 뜨고 아기와 여자를 다시 보았다. <BR>아기는 오징어 빨기를 멈추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서는 ‘엄마 아퍼’하고 말하는
것이다. </P>
<P>그 순간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이다. <BR>이 여자는 이 아기의 외할머니이고, 아까 그 젊은 여자는 이 아기의 엄마였던 것이다.
<BR>그리고 어떤 가정문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 아기 엄마는 애기를 돌볼 형편이 못되어 친정 엄마에게 맡기는 것이고, 저 많은 짐은 이
아기의 옷 보따리 였던 것이다. <BR>그제서야 왜 이 아기 엄마가 버스 문 닫힐 때까지 안 떠날려 했는지, 그리고 왜 이 아기가 표 끊으러
들어간 엄마 곁에 가겠다고 유리 문을 밀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P>
<P><BR>순간 목이 매였다. </P>
<P>더 이상 여기 옆 자리에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P>
<P>계속되는 아기의 질문에 서너 번 그렇다고 답변한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했다. <BR>아기는 계속 물었다. ‘엄마 아퍼’.
<BR>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말만 되풀이 한다. <BR>슬그머니 옆에 있던 배낭을 들고, 아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머니에게는 아기 참
천사같네요 말하고 뒷자리로 옮겼다. </P>
<P><BR>여기서는 눈물 좀 흘려도 들킬 일이 없을 듯 싶었다. </P>
<P>저렇게 착하게 생기면 안 되는데... </P>
<P>어떻게 이 모진 세상을 살아가려구, 그렇게 착하게 생겼어... </P>
<P>착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이 너무도 서럽고 슬펐다. <BR>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도 서러웠다. </P>
<P>목장갑이 젖었다. </P>
<P><BR>일동에서 요란스럽게 치장한 중년 주부 3명이 올라탔다. <BR>그 중 한 명은 큰 목소리로 통화상의 오빠라는 사람과 통화 하면서
올라탔다. </P>
<P>우리 버스는 서울로 서울로 향했다. </P>
<P><BR>그날 그랬다. </P>
<P> </P>
<P> </P>
<P>hur.
애빠, 새해 복많이 받고 건강하게 지내라. 나두 대체로 홀로 산행을 좋아하는데, 혼자하는 산행은 산을 오르다는거보다 자신 속내를 헤집어 가는 여행~ 그러다 텅빈 산골짜기에서 딱 맞닥뜨리면 얼마나 반가울까? 명성산 안쪽에 있는 탱크사격장이 거긴가? ㅎㅎ, 앵자봉에서 길잃고 헤맨 얘기도 다시 듣고 싶다.
첫댓글 창수야 잘 지내고 있지
그래 국망봉 잘있~~~자
떡국은 챙겨 먹었는지.....
애빠, 새해 복많이 받고 건강하게 지내라. 나두 대체로 홀로 산행을 좋아하는데, 혼자하는 산행은 산을 오르다는거보다 자신 속내를 헤집어 가는 여행~ 그러다 텅빈 산골짜기에서 딱 맞닥뜨리면 얼마나 반가울까? 명성산 안쪽에 있는 탱크사격장이 거긴가? ㅎㅎ, 앵자봉에서 길잃고 헤맨 얘기도 다시 듣고 싶다.
잘 쉬었어
나도 그랬던적 있을지 모르지만, 인격 무시는... 글쎄~ 아마 오래갈것 같으이...
돌수야, 오랫만이네~ 설 잘 보냈나? 건강하길 바란다. 지난주 황우석에 관해 대필한 글에 달은 댓글때문이거 같은데, 기분 나빴다면 돌이켜 사과하마. 즐겁게 만나 같이 달리자는 모임인데, 재밌자고 친구의 `인격무시'란게 뭔 말이냐? 기분 나쁜거 오래가면 안좋다. 난 밴댕이속이라 바로 털어버리는데, 어쨌든 미안타~
청호랑~병학이랑~ 쓸데없는 '스트레스'에 체력을 낭비했구나~'노루'가까이 있으면 술자리 만들낀데~ 가까이 있는 술꾼들아 !~돈좀써라~
나도 컴맹이지만.. 글쓰기 방식 3가지(에디터, HTML, 텍스트) 중에 제대로 맞지 않는 것을 골랐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글을 퍼올 때는 제대로 맞는 방식을 써야 되는 모양이다.
천천히 읽었다.... 전에 일 때문에 그 쪽에 자주 갔었기에 대략 머리 속에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 사연도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