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북리뇌우의 마차가 달리고 있는 방향은 십방무림통사단의 기마전단이 사라져 간 쪽이
었다. 이를테면 그들 양자는 앞뒤로 나란히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셈이었다.
서로 목적은 달라도 어차피 소속은 하나인 그들이다. 서열의 상하는 그런 식으로도 구
별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관도에 면한 야산의 산정(山頂)이다.
그 곳에는 오래 전부터 북리뇌우를 주시하고 있던 수십 쌍의 무감동한 눈동자들이 존
재했다.
스스스.......
스산한 바람이 산정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흡사 강한 음모의 냄새를 사방으로 전하
려는 움직임과도 같았다.
바람결 외에 산정을 휩싸고 도는 것은 정적이었다.
주위는 어깨 높이밖에 안 되는 키 작은 관목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바람이 불 때마
다 나무들만이 크고 작은 마찰음을 일으켜 고요를 깨뜨릴 따름이었다.
관목림의 한가운데에는 백 인의 기마대가 도열해 있었는데, 그들에게서는 오히려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소음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움직임도 일체 없었다.
그들의 행색이 전해 주는 섬뜩한 느낌만은 별개였다. 그들은 숫자상으로는 백 명이나
되면서도 누구를 보아도 하나같이 핏빛 일색이었다.
피칠을 한 듯 전신이 시뻘건 혈마(血馬)를 타고 있는가 하면, 마상의 인물들도 일신에
짙붉은 혈의(血衣)를 걸쳤다.
뿐만 아니라 말안장도 예외 없이 핏빛이며, 심지어는 혈의인들이 뿜어내는 눈빛마저도
기이하게 혈색을 띠고 있었다.
이것 말고도 그들의 공통된 특징을 말하라면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감
정이라고는 도무지 지니지 않은 듯 시종 무표정했으며, 각자 하나씩의 병기를 소지하
고 있었다.
행색과 분위기가 같아도 병기의 종류만은 꽤 여러 가지였다. 검(劍)을 비롯하여 도(刀
), 창(槍), 편(鞭) 등.
그들 백 인의 혈기마대는 다름이 아니라 근자에 들어 무림 전역에 걸쳐 최악의 혈풍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이었다. 이른바 지옥척살단(地獄刺殺團)이라는 명칭을 지닌.
바로 그들이 북리뇌우를 감시하고 있었다.
혈기마대의 선두에는 일신에 걸치고 있는 적포와 마찬가지로 안색까지도 기이할 정도
로 붉은 한 인물이 서 있었다.
그 자는 단순히 말고삐를 쥐고 있을 뿐인데도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며 인상도 지
극히 사악해 보였다.
그의 눈에서는 냉기와 함께 강렬한 적광(赤光)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기도도 다르지
않아 웬만한 상대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질식하고 말 듯한 중압감을 자아냈다.
일견하기에도 혈기마대의 수뇌가 분명한 그 적포인이 문득 수하들을 돌아보며 조용히
손짓을 했다.
그의 신호에 답하기라도 하듯 척살단은 소리 없이 야산의 계곡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
했다. 백인백기(百人百騎)가 일제히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소음은 여전히 일지 않았
다.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그들이 부리는 혈마도 어떤 식으로든 극단의 훈련을 거친 모양
이었다.
그들의 전진 방향도 북리뇌우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의 마차가 달리고 있는 쪽의 전면으로는 이백여 장 정도로 길게 이어진 협곡이 보였
는데, 혈기마대는 그 곳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적포인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협곡을 응시하며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네 놈은 우리 지옥척살단에 걸려든 이상 살아남지 못한다. 나 혈천마령(血天魔靈)이
이 곳에 네 무덤을 써 주겠다."
그의 음성은 나직하나 죽음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따가닥...... 따가닥.......
북리뇌우의 마차는 소악이 이끄는 대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광경이란 유람
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마침 날씨도 화창하여 따사로운 햇살이 관도 위에 뿌려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들의
행차는 더욱 한가로워 보였다.
마부석에서 소악이 자못 의아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 분은 어찌된 걸까요? 내내 보이지 않던데."
북리뇌우는 씩 웃었다.
"만상구중련(萬像九重聯)에서 왔다는 조소협 말이냐?"
"네."
"후후, 넌 그를 걱정하느라 더 중요한 걸 잊고 있구나."
소악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더 중요한 것이라뇨?"
"우리들의 목숨."
"네에?"
놀라는 소악에게 북리뇌우는 설명해 주었다.
"십방무림통사단의 중갑기마대가 사라진 뒤부터 주위에 강한 살기가 뿌려지고 있었다.
그것도 초특급이지."
"맙소사!"
"왜, 두려우냐?"
"그렇지 않구요. 누구고 목숨은 하나 뿐이니, 아깝지 않다고 한다면 필경 거짓말일 거
예요."
소악은 짐짓 엄살을 떨었다.
"더구나 전 형님보다 훨씬 젊은(?) 걸요."
"뭐라구?"
두 사람은 경황 중에도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사실 소악은 북리뇌우가 곁에 있는 한 천하의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무
력(武力)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탓도 있었지만 설사 일이 잘못된다 해도 함께 죽으면
그만이라는 야무진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북리뇌우도 지난 시간들을 통해 소악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서는 상황
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소악과 더불어 이 곳에 뼈를 묻을 생각은 없었으
므로.
그는 마차 안에 실려 있던 철궤를 끌어당겼다. 뚜껑을 열자 그 속에는 여전히 각종의
병기가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북리뇌우는 개중에서 한 쌍의 륜(輪)과 투박하여 별 쓸모도 없을 것 같은 두 자루의
철검(鐵劍),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몇 개의 가죽주머니 등을 꺼내 들었다.
그는 가죽주머니들은 허리에 차고 륜은 자신의 옆에, 검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후 철
궤를 조용히 닫았다.
소악은 그 사이 긴장을 내비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 형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미루어 보건대 상대는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리라.'
그것은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 있는 한 뭔가 자신의 몫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 그런 기척을 알아차린 북리뇌우가 재삼 웃음소리를 전해 왔다.
"후후후, 녀석! 무리하지 마라. 그렇게 이곳 저곳 열심히 살펴봐야 아무 소용 없을 것
이다."
"왜요?"
"그들은 적어도 네 눈에 띌 정도의 인물들이 아니다."
"쳇! 사람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오."
"내가 널 무시하다니, 그럴 리가 있느냐? 나도 너처럼 젊었을 때에는 별 볼일 없었느
니라."
"어이구, 소제가 잘못 했습니다요. 노(老)형님."
"후후후......."
웃음 뒤로 소악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이 곳은 십방무림통사단의 세력권이 아닙니까? 이 범위 내에서 어찌 형님을 위협하는
무리가 있는 것이지요?"
소악의 의문에 북리뇌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건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어째서......?"
그는 또 웃음을 흘렸다.
"후후, 아직 세상에는 네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란 말도
있거니와, 악은 본시 예상하기 어려운 곳에 만연해 있기 마련이야. 정녕 슬픈 일이지.
"그럴까요?"
"음, 넌 지금부터 마차를 더욱 느리게 몰도록 해라. 절대로 아까 같은 긴장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소악은 더 묻지 않았다. 북리뇌우의 말뜻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마차는 곧바로 속도가 늦추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소악은 애써 나오지도 않는 노래까
지 흥얼흥얼 뽑기 시작했다.
"어허이, 좋을 시고...... 강산이 아름다우니......."
바로 그 때였다.
휘익―!
북리뇌우는 관도 옆 수림을 향해 무엇인가를 던졌다.
그것은 그가 허리에 차고 있던 가죽주머니 중 하나에서 나온 물체였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날아가는 속도가 워낙 섬전 같은지라 육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
이다.
그 물체를 어림잡아 십여 개정도 내던진 북리뇌우는 소악에게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가자, 뒤돌아보지 말고."
"네."
소악은 얼른 대답하고 엉터리 노래를 이어 불렀다.
"미인이 반겨 술 한 잔 따르면 어허이, 더 좋겠건만......."
따가닥...... 따가닥......!
마차는 마침내 전면으로 보이던 협곡과 십여 장쯤 떨어진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이 곳에서부터는 소악도 노래를 멈추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제 그가 느끼기에도 주위의 공기는 더없이 살벌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섬뜩한 기운이 목덜미를 찌르는 듯하자 자신도 모르게 나직
이 투덜거렸다.
"제길......!"
'소악! 무엇하고 있느냐?'
북리뇌우의 전음성이 그의 고막을 강하게 때려 왔다.
'앗차!'
소악은 흠칫 놀라는 한편, 그제야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가를 깨달았다.
'달려라! 전 속력으로.'
"이럇!"
철썩! 히이이잉―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말 등을 채찍으로 내리쳤고, 그에 따라 마차는 퉁기듯 앞으로 쏘
아져 나갔다.
두두두두―!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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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토욜밤 보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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