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만 하던 서울대 교수들, 함께 달린 뒤 너무 좋대요”
김영수 교수가 서울 뚝섬유원지 한강공원을 달리고 있다. 15년 넘게 피트니스센터 트레드밀을 달리던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때인 2020년 초 실내 체육시설이 폐쇄되자 야외로 나가 달렸고, 서울대 교수 건강달리기회를 만들어 함께 달리며 건강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양종구 기자
김영수 차의과학대 생명과학과 교수(65)는 서울대 의대 교수 시절인 2020년 6월 서울대(SNU) 교수 건강달리기회(스누건달회)를 만들었다. 직접 달려 보니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30분 서울 뚝섬유원지 한강공원에서 만나 함께 달리고 있다. 큰비가 오거나 혹서, 혹한이 아니면 달린다.
“2002년 서울대 의대로 왔는데 건물에 피트니스센터가 있었죠. 그래서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주 1, 2회 건강을 위해 달렸죠. 그렇게 15년 넘게 달렸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020년 초 확산되는 바람에 실내 체육시설이 다 문을 닫았어요. 개인적으로 고민도 있었죠.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달렸는데 신세계를 만난 겁니다. 혼자 달리기 아까웠죠.”
헬스클럽에서 길어야 10km를 달리던 김 교수는 야외로 나오면서 거리를 늘렸다. 실내에서 지루하게 달리다 야외로 나오니 달리는 게 상쾌하고 즐거웠다. 15km, 20km로 거리를 늘렸고 21.0975km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30km 이상 달리는 ‘장거리주’까지 소화한 뒤 42.195km 풀코스도 완주했다. 모두 혼자 이룬 것이다. 그는 “마라톤 칼럼 쓰는 ‘달리는 의사들’ 이동윤 전 원장 글을 다 읽었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 공부하며 달렸다”고 했다.
풀코스 완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마의 30km’ 이후 포기해도 아무도 뭐라 얘기할 사람이 없지만 참고 끝까지 달려 완주했다는 성취감은 안 해본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김 교수는 “풀코스를 완주할 때마다 정신 근육이 하나씩 더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달리면 모든 고민도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올 초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까지 3년도 안 돼 풀코스를 14회 완주했다.
“교수들은 연구에 집중하느라 전반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아요. 제 나이쯤 되면 다 골골하죠. 조금이라도 일찍 달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 달리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2020년 5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고, 한 달 뒤 스누건달회를 만들었습니다.”
스누건달회 회원은 60여 명. 김 교수는 “연구 때문에 시간이 없는 교수들에게 가장 짧은 시간에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운동”이라고 설득했다. 달리기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은 10명 안팎이지만 열성적인 교수들은 거의 매번 참석해 달리고 있다. 특히 남효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67)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남 교수는 “달리니 건강해졌고 지금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기분”이라고 했다.
‘공부만 알던’ 교수들이 달리면서 삶의 태도도 바뀌었다. 김 교수는 “마라톤은 한마디로 정신 수양이다. 내가 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육체의 건강이 내 정신 건강하고 직결된다는 것을 체득했다”고 말했다. 남 교수 등 다른 교수들도 같은 생각이다. 김 교수는 “특히 풀코스를 완주한 뒤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 다소 곤란한 일이 벌어지면 두려운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젠 차근차근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평안함이 생긴다”고 했다.
스누건달회 회원들은 처음엔 3km도 달리기 쉽지 않았다. 훈련으로 5km, 10km, 20km로 늘렸고 이젠 풀코스를 완주한 교수가 10명이 넘는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 나를 포함해 6명의 회원이 풀코스에 도전해 5명이 완주했다”고 했다. 건강 달리기만 하던 교수들에게 “풀코스를 달려야 진정한 마라토너”라고 설득해 이룬 결과다. 이 소식을 접한 뒤 그동안 스누건달회에 관심이 없던 베테랑 마라토너들도 합류하게 됐다. 마스터스 마라토너의 꿈 서브스리(3시간 이내 완주) 완주자도 있다. 올해부터 매년 봄과 가을 회원들과 함께 대회에 출전하며 풀코스 완주 기회를 주고 있다.
김 교수는 이젠 ‘마라톤 전도사’가 됐다. 올 3월 병원을 옮긴 뒤 차의과학대에 마라톤 동호회를 만들고 있고, 스누건달회와 함께 달릴 계획이다. 김 교수는 평소엔 주 2, 3회 피트니스센터에서 고정식 자전거를 1시간 타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80세 넘어서까지 풀코스를 완주하겠다”는 그는 “이 좋은 것을 난 예순둘에 처음 완주했다. 다른 교수들은 더 빨리 입문해 풀코스 완주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