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살인(殺人)은 분명 크나큰 죄악이다.
더구나 그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위인일 것이다.
북리뇌우가 지금 그랬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의 숨통을 차
례로 끊어 놓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운명이 그에게 지옥천룡지체라는 조건에다가 살인에 대한 명분까지 얹어 주어 그를 이
자리로 유도했으므로.
이제 북리뇌우에게는 일말의 가책도, 회의도 없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의부(義父)로 자리매김한 북리무해와 젊은 사부 제룡을 떠올리며
그의 피는 무섭게 들끓었고, 적의 목숨이 거두어질 때마다 그는 기뻐서 몸을 떨곤 했
다.
'나는 악마다! 지옥천룡이라는 이름의.......'
이는 북리뇌우가 심중으로 무수히 읊조린 말이었다. 아울러 그의 입에서는 직접적으로
이런 말도 새어 나왔다.
"남은 자는 이십 명! 그 중 한 명은 고수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그가 이 한 장소에서만 무려 팔십 명의 인간을 죽였다는 의미
였다. 현재도 그는 또 다른 살인을 위해 최대한으로 귀를 열어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리뇌우는 공기의 흐름을 따라 귓전으로 자신이 지칭한 최강적의 심장박동이 희미하
게 잡혀 오는 것을 느꼈다.
그 자도 사태가 이쯤 되자 심장의 박동까지 가능한 한 억제하고 있는 듯했는데, 그런
다고 해서 한껏 예민해져 있는 북리뇌우의 청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단정을 짓기에 이르러 있었다.
"좋아! 이 자는 틀림없이 지휘관일 것이다."
스슥!
북리뇌우는 신형을 뽑아 올렸다.
그것은 땅 속으로부터였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청각을 이용했듯 상대의 귀도 의식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머리만 내놓은 채 지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주위에는 혈의인들의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예리한 톱날에 목
이 잘리운 채 핏물에 잠겨 있었다.
특별히 사인(死因)에 대한 연구는 필요치 않았다. 북리뇌우가 수중에 들고 있는 한 쌍
의 륜이 그 답이었다.
스스스.......
북리뇌우는 야산의 중턱에서 이어지는 협곡을 향해 방향을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지옥척살단의 단주인 혈천마령(血天魔靈).
그도 언제부터인가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자신을 중
심으로 하여 먼 곳으로부터 수하들이 차례로 비명을 울리며 죽어 갔으므로.
따라서 지금은 호흡 소리 때문에 포기했던 혈마의 등에 다시 올라타고 다가올 일전에
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자욱한 흑무 속에 갇힌 채 눈에서 적광(赤光)을 내뿜으며 사방을 경계하는 한편,
이를 부드득 갈았다.
"놀라운 놈! 감히 나를 노리며 다가오다니."
그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최근까지도 천하를 피로 쓸었던 만큼 그는 수하들을
이끌고 북리뇌우를 죽이고자 이 곳에 오면서 조금도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꼴이 뭐란 말인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수하들을 거의 잃고 그 자신조차
위협을 느껴야 하니 말이다.
그의 좌우로는 지휘자인 그를 호위하기 위해서인 듯 수하인 두 명의 혈의인이 혈마를
타고 바짝 붙어 있었다.
스윽!
그들의 앞으로 한 줄기 혈영이 나타났다.
"너는......?"
혈천마령이 미처 뭐라 묻기도 전이었다.
혈영은 그의 앞에 당도하자마자 꼿꼿하게 서는 듯하더니 맥없이 스르르 허물어져 버리
고 말았다.
파아아아―
쓰러진 자의 앞가슴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어느 틈엔지 그의 가슴에는 하나의 륜이
깊숙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자 혈천마령을 비롯한 삼 인은 일시지간 넋을 잃었다. 그들 중 좌측의 혈
의인이 격분하여 중얼거렸다.
"찢어 죽일 놈! 우리를 우롱하고 있구나."
그는 말에서 뛰어 내리더니 애꿎은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퍽!
시체는 그의 발길질에 따라 허공으로 붕 떠올랐고, 더욱 아연한 상황은 그 찰나에 벌
어졌다.
파파팟!
천만 뜻밖에도 시체의 가슴에 박혔던 륜이 튀어나와 발길질을 하던 혈의인이 목줄기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억!"
그는 대경하여 눈을 부릅떴으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츳!
그의 목은 동체에서 분리되어 멀리로 날아가고 말았다. 졸지에 머리통을 잃은 몸뚱이
는 잠시 뒤에야 쓰러졌다.
"여의천강(如意天 )......!"
혈천마령은 놀라 부르짖더니 적면(赤面)을 푸들푸들 떨었다. 급기야 그는 전면을 향해
발작적으로 외쳤다.
"놈, 나오라! 기다리고 있었다."
분노로 인해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리자 체신도 잊고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이 되어 버린
그였다.
북리뇌우의 무위라면 논할 여지도 없었거니와,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이 이상의 망신
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조롱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후후, 서두를 것 없다."
차가우면서도 여유로운 음성 한마디가 전해져 와 혈천마령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아니
, 희뿌연 그림자가 흑무 사이로 언뜻 모습을 내비친 듯도 했다.
그것을 기회로 보고 뛰어드는 자가 있었다.
차창!
혈천마령의 우측을 호위하고 있던 혈의인이었다. 그는 핏빛 장창을 뽑아 들고 백영을
향해 벼락같이 덮쳐 갔다.
"안된다!"
혈천마령이 만류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파파파팍!
공기를 찢는 음향과 함께 장창은 몇 차례인가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기는 했다. 그
러나 백영은 그 새 하늘로 치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 곳에 있지 않았다.
방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스산한 음성만이 전해져 왔다.
"넌 안 된다지 않았느냐?"
동시에 한 줄기 눈부신 은선이 혈의인에게로 뻗어갔다.
"큭!"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한 당혹스런 비명이 사자(死者)가 남긴 최후의 일언이었다.
스르르― 쿵!
멋모르고 장창을 휘둘러 대던 혈의인은 숨이 끊어진 채 낙마(落馬)하여 바닥에 처박히
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의 미간에는 하나의 반짝이는 은환(銀環)이 박혀 있었다.
"우우, 놈! 내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말리라."
혈천마령은 또 한 구가 추가된 수하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신음과도 같은 부르짖음을
토해냈다.
스윽!
북리뇌우가 흐릿하게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 때였다.
"나야말로."
주위를 휩싸고 있던 흑무가 서서히 걷히며 웃고 있는 그의 흰 이를 드러내 보였다.
"후후, 이제야 공평하게 일 대 일이 되었군."
곧이어 그의 신체도 점차 명확한 선을 그려갔다.
혈천마령은 마상에서 적광(赤光)이 번뜩이는 눈으로 그를 무섭게 노려보더니 냉소를
던졌다.
"크흣! 난 네 놈이 불사신인 줄 알았다."
그것은 북리뇌우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읊조린 말이었다.
그는 양 팔을 위시하여 백의가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는 상태로써 정황에 비해 무사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응대는 양상을 달리 하고 있었다.
"불사신일 수도 있지."
북리뇌우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매달았다. 이와 함께 그의 미간에서는 자청색의
광채가 번쩍 일더니 전면을 향해 부챗살 모양으로 넓게 뻗어 나갔다.
그 광경을 본 혈천마령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저것은 지옥혈사선(地獄血死線)이 아닌가? 그렇다면 놈이 완전한 지옥혈룡지체를 이
루었다는 얘긴데.......'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놈이 이십오 세가 되어야 가능한 상황이거
늘.'
북리뇌우가 그를 향해 말했다.
"내 한 가지 약속하지. 지휘자에 대한 예우로 그대에게는 매우 영광스러운 죽음을 선
사할 생각이다."
"뭣이?"
혈천마령은 대로했다.
"가소로운 놈! 네 목숨이나 걱정해라."
휘익!
그는 마침내 마상에서 뛰어내렸다.
스스스.......
혈천마령의 신형은 미끄러지듯 북리뇌우에게로 다가들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어느
덧 섬뜩한 광망을 뿌리는 한 자루의 혈도(血刀)가 들려 있었다.
반면에 북리뇌우는 미동도 없이 상대를 응시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기세는 설사
태산이 덮쳐든다 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듯 오연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살기가 터질 듯 팽팽하게 형성되었다. 무섭도록 이글거리는 적안(赤
眼)과 냉철한 무심안(無心眼)이 서로 뒤얽히며 서로의 죽음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독합니다,
좋은밤 보네세요
즐감
즐독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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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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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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