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총단(總團)에 들다
[1]
멀리로 태산(泰山)의 주봉인 천단봉(天斷峯)의 웅자가 한 눈에 바라다보이는 야산이었
다. 야트막한 산의 중턱에는 의외로 드넓은 공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곳에는 제양에서 후퇴했던 십방무림통사단의 중갑기마단인 천위묵룡단(天偉墨龍團)
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일체의 움직임도 없는 가운데 삼엄한 경계망을 펼치고 있었는데, 중앙부에는
한 대의 마차가 서 있었다.
이르자면 천위묵룡단의 호위를 받고 있는 형국인 그 마차는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크
기도 무척 컸고, 전체가 백색으로 칠해진 채 눈부신 보석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창문에도 영롱한 옥구슬로 이루어진 주렴이 길게 드리워져 있어 마차 안은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천위묵룡단주인 혈편묵제 도위헌.
그는 마차의 문 옆에 우뚝 선 채 긴장을 띤 눈빛으로 제양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는 주렴으로 막혀 있는 마차의 창문을 응시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리한 시도가 아닐까요?"
답하는 음성은 여인의 것이었다.
"지옥척살단에 당해 목숨을 잃을 정도라면 십방무림통사단의 총사(總師)로서 자격이
없어요."
음성은 옥구슬이 구르는 듯 아름답고 청아하긴 했으나 자르듯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도위헌은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그는 단신(單身)입니다. 아무리 무공이 높다 해도 놈들과 싸우며 한 시진을 버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의 음성에서도 다소 못마땅해하는 기미가 느껴졌다. 그러나 여인은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건 적어도 그에게는 한 시진 내에 오십 명 이상의 적을 살상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해요. 설사 그 자신이 중상을 입고 있는 상태라도 마찬가지죠."
"그렇지만......!"
"더 얘기할 것도 없어요. 북리총사의 손에서 길러져 비밀작전을 이을 재목이라면 그쯤
은 기본 조건이랄 수 있어요."
여인의 음성에서는 결단력과 일말의 기대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도위헌은 그녀의 말대
로 정말 입을 다물어 버릴까 하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것 한 가지는 감안하셔야 합니다. 놈들은 이천의 무사를 가진 문파도 겨우 반 시진
만에 초토화시켰소이다."
"그래도 마찬가지예요."
여인의 음성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도위헌은 들리지 않게 쓴 입맛을 다셨다. 그가 이러는 것은 지칭한 대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그는 여인의 지나친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
다.
'애송이! 그토록 거만하게 굴더니.......'
그는 내심 욕설을 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청년의 영상을 지우고자 했다. 그의 계
산상으로는 좋든 싫든 그 청년을 다시 보기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으므로.
여인이 그에게 말했다.
"한 시진이 채워지면 원군을 출발시키도록 해요. 그가 죽었다면 십방무림통사단의 총
사 자격으로 장례를 치러주겠어요."
"알겠습니다."
도위헌은 주렴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의 시선은 다시금 제양 쪽으로 향해졌다
'총부단주(總副團主)의 모험이 결국 그대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생겼구나.'
그의 심중에서는 절로 탄식이 일었다. 이는 역시 죽어 가는 자에 대한 애도 차원에서
가 아니라 명령체계가 가지는 절대성 앞에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인이든 도위헌이든 이후로는 말이 없었고, 그로 인해 주위는 무섭도록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휘리릭!
간간이 군기(軍旗)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만이 괴괴한 정적을 찢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중에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고, 어느 시점에서 예의 여인의 음성은 다시 울려
나왔다.
"시간이 되었어요."
변함 없이 냉랭할 정도로 침착하게 들리는 음성이었다.
"명을 이행하겠소이다."
도위헌의 얼굴에는 자잘한 파랑이 일었으나 곧 원래의 무심을 회복했다. 그는 질서정
연하게 도열해 있는 천위묵룡단을 향해 짤막한 외침을 발했다.
"출발한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천위묵룡단은 일제히 제양 쪽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그런데 바
로 그 때였다.
"아니!"
도위헌의 눈이 경악으로 인해 크게 떠졌다.
지붕도 날아가고 없는 한 대의 마차가 아득한 곳으로부터 그들을 향해 느릿하게 다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도저히 현재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그 속에 누가 타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게 되었을 때, 도위헌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
이 새어 나왔다.
"으음......."
따가닥, 따가닥.......
마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거리를 좁혀 왔고, 도위헌이 먼저 대하게 된 것은 마
부석에 앉아 있는 소악이었다.
"안녕하시오? 또 뵙게 되는구려."
달갑지 않은 듯 다소 건방지게 들리는 그의 어투에도 도위헌은 굳어진 채 침묵을 고수
했다. 아직 놀라움이 채 가시지 않은 터라 입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중갑기마대의 삼백여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대장이 어린 소년에게 경
시를 당하는데도 그들은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편안한 자세로 마차에 비스듬히 앉
아 있는 북리뇌우의 모습을.
그는 어느 새 의복까지 정비하고 있었다. 깨끗한 유삼으로 갈아입은 그의 안색은 물처
럼 담담하기만 했다. 위기를 겪은 흔적이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인(大人)......!'
도위헌의 기세가 비로소 꺾였다. 그는 급히 신색을 가다듬고는 성큼성큼 걸어 마차 앞
으로 다가섰다.
정중히 허리를 굽히려는 그에게 북리뇌우가 말했다.
"비켜라."
나직하나 항거할 수 없는 위엄이 실린 그 음성을 듣자 도위헌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북리뇌우의 마차는 그를 지나쳐 백색 마차의 앞으로 다가갔다. 소악이 힐끗 뒤를 돌아
보며 그에게 한마디 했다.
"지금 형님께서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시오."
"으음!"
도위헌은 고개를 떨굴 뿐 신음 외엔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사이 북리뇌우의 마차는 백색 마차 앞에 멈춰 있었다. 북리뇌우가 무엇인가를 두
마차의 가운데로 내던졌다.
"호의에 대한 선물이오."
"아!"
여인의 나직한 탄성에 이어 장내에는 크게 동요가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리뇌우가 던진 물체란 다름이 아니라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혈천마령의 수급이었다.
그 머리통은 칠공에서 피를 쏟아 내면서도 눈만은 찢어져라 부릅뜨고 있었다. 그 눈에
는 죽음 직전의 상황을 대변하듯 불신과 회의, 경악 등이 복잡하게 뒤섞여 떠올라 있
었다.
하지만 수급의 미간을 보았을 때 중인들을 더욱 놀라야 했다. 거기에는 십방무림통사
단의 총사를 상징하는 신물인 녹옥통사령(綠玉通社令)이 깊숙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일이 이쯤에 이르자 상황은 달라졌다.
"녹옥통사령을 배알합니다."
대장인 도위헌을 위시하여 중갑기마대의 전 무사들이 북리뇌우의 마차를 향해 지체 없
이 오체복지했다.
녹옥통사령의 권위는 무상이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생전의 북리무해가 십방무림
통사단 내에서 거머쥐고 있던 실질적 권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촤르륵......!
맑은 옥구슬이 부딪치는 듯한 음향과 함께 백색 마차의 주렴이 걷히더니 안으로부터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신에 자의궁장(紫衣宮裝)을 걸친 그녀는 매우 우아하고 섬세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
다.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어 용모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으나 몸매로 미루어 보건
대 미인(美人)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백색의 면사 위로 드러나 있는 한 쌍의 눈은 호수처럼 맑게 빛나는 가운데 무궁한 지
혜를 내포한 혜안(慧眼)이었다.
그녀가 마차에서 내려서는 순간 주위에는 금방 기이한 향기가 번졌다. 그것은 무어라
특정 지어 말할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향기였다.
면사여인은 북리뇌우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특유의 차분한 음성으로 말
했다.
"총부단주인 소소향(小素香)이 총사를 영접합니다."
북리뇌우는 잠시 기광이 감도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담담히 응수했다.
"본인은 아직 총사도, 무엇도 아니오. 단지 의부(義父)의 유지를 받들어 십방무림통사
단을 방문하고자 할 뿐이오."
소소향의 혜안이 문득 이채를 발했다.
"그건 너무 주관적인 발언이군요."
그녀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가 냉랭한 투로 이어갔다.
"그대가 북리총사의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 분의 유지를 따라야 합니
다."
북리뇌우는 대뜸 미간을 찌푸렸다.
"본인은 말장난을 싫어하오. 당신이 벌이는 일 중 어디까지가 그 분의 유지에 해당되
는 것인지는 나도 모르니까. 또 알고 싶은 마음도 없소."
"하면?"
"금후로는 어떤 일이고 내 뜻대로 행할 것이오."
"으음!"
소소향은 일시지간 면사 위로 찬 눈빛을 흘렸으나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북리뇌우는 혈천마령의 수급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팟!
녹옥통사령이 뽑혀져 나와 그의 수중으로 회수되었다.
"저 물건은 놔두고 가야겠군. 더는 쓸데가 없을 테니."
그는 장난처럼 중얼거리며 수급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소소향을 향해 무심
한 음성으로 말했다.
"먼저 가겠소."
그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마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가닥..... 따가닥......!
종전대로 느릿한 전진이었다.
소소향은 그저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마차는 태산 방향으로
점차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잠시 후.
도위헌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총부단주, 방금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것이죠?"
소소향이 묻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약간은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놈들 백 명이 전멸을 했다는 것입니다.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여러 가지 종류
의 무기와 암기들이 사용된 듯하다는데 거개가 일격에 즉사했다는......."
그의 말은 중도에서 끊겼다.
"당연한 일 아니에요?"
소소향은 짜증이 어린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신임 총사가 살아서 예까지 왔으니 연상은 얼마든지 가능했었죠. 무림에서 그의 별호
가 무엇이었는지 잊으셨나요?"
"십전무판자(十全武判子)......."
"그래요. 그는 진작부터 실존하는 신화의 주인공이었어요."
도위헌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그 분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우리라구요?"
소소향도 반문하더니 차갑게 덧붙였다.
"당신이 그랬죠. 난 아니었어요. 아시겠어요?"
"죄송하오이다."
민망해 하는 도위헌에게 그녀는 뼈아픈 당부도 잊지 않았다.
"다시는 나이로 그를 평가하지 않기 바라겠어요."
자신의 입장도 은근히 포함시킨 그 말에 혈편묵제 도위헌은 차마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는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상식이 완전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북리뇌우의 마차는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두두두두―!
중갑기마대도, 소소향을 태운 화려한 백색 마차도 그의 마차가 간 방향으로 뒤따라 움
직이기 시작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독합니다,
편한밤보네세요
즐독 합니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시험하려 하지말아 ㅡㅡㅡㅡㅡㅠㅠㅠㅠㅠㅠㅠㅠ
즐독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입니다
잘보고 있어요~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