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와 같이 평등의 이념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항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현실적으로 불평등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법 앞에"라는 문구이다. 모든 국민은 무조건 평등한 게 아니라 법 앞에 평등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법적, 정치적 평등권을 가진다.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똑같이 남의 물건을 훔치면 절도죄가 적용되고(법적 평등), 대통령이든 노슥자이든 선거에서 똑같이 1표만 행사할 수 있다(정치적 평등). 그러나 법과 정치의 범위를 벗어나면 평등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평등을 규정한 헌법 조문의 바로 앞에 있는 제10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조항은 누구나 자유로운 영리 추구와 재산의 소유가 가능하다는 자본주의적 경제 원칙과 관련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법적, 정치적 평등은 인정하되 경제적 평등까지 인정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바로 여기서 계급의 개념이 탄생한다. 계급을 규정하는 기준은 사회적 생산관계 내에서 차지하는 지위,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 사회적 부의 소유와 취득 방식이다. 쉽게 말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남을 부리는 위치에 있는가, 아니면 생산수단이 없고 남의 부림을 받으며 일하는가에 따라 자신이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전근대 사회의 신분이 법적, 정치적 구분인 데 비해 근대 사회의 계급은 경제적 구분이다.
계급은 문명 사회가 탄생한 때부터 존재했으나, 그 의미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자본주의시대다.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법적, 정치적 위장막이 걷히고, 그 배후에 내재하는 경제적 관계가 표면화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대에 "계급적 대립이 단순화되고 전체 사회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양대 적재적 진영으로 점점 더 분열되어가고 있다 - 공산당 선언"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바라보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은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소유가 사적이라는 데 있다. 즉 생산자는 다수이고 착취자는 소수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상황이 오래 갈 리는 없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이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20세기 초 러시아혁명으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이룩한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 다수에 대한 소수의 독재가 있었다면 사회주의에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수립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계급적 갈등이 남아 있는 한 완벽한 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 레닌은 일시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끝나면 궁극적으로 무계급 사회로 이행한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 사회인데, 여기서는 계급과 사유재산이 철폐되며, 나아가 국가 자체도 소멸하게 된다.
모든 목적론이 그렇듯이 공산주의를 목적으로 삼는 혁명 이론도 역시 유토피아적이다. 설령 계급과 국가는 폐지될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금욕적 종교의 계율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 한 소유욕을 완전히 떨쳐버린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래서인지 20세기 초에 등장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한 세기를 버티지 못하고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접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