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불교계는 새벽 지진이 시작된 후 은근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1600여 년을 한반도라는 땅에 가꾸어 온 우리 불교는 세계에 자랑할만한 것을 보여주고 있어 그것으로 흐뭇한데..
그런 불교의 기반을 흔드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불교는 과학 세기라는 대세에 밀려 이웃 종교가 그렇듯이 신도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절은 비어 가고 있다는 비상 얼람을 연일 울린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받는다는 인과 법칙을 배우고, 비디오 게임이 일상화된 이들에게
신이나 불보살에게 돈을 올리거나 절을 열심히 하면 복을 받는다는 종교가 과연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백중이라 하여 49일 동안 7번 제사를 지내는 기복적으로 보이는 종교라면 현대에서 냉대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불교의 인과론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불교는 일체는 마음에서 생긴 것[일체유심조]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실재로 세상에는 나와 다른 신과 같은 불보살이 있어, 그들에게 의지하고 복을 비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기복종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삼천배나 염불을 권하는 이유가 자신의 몸 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증진시켜 보다
나은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이 아닌
우연한 재산 증식, 자녀의 대학 합격이나 회사에서 승진 등
물질적인 복을 주기 때문이라 하면
그런 불교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불교를 밀어내고 있는 과학에서 일체인 존재는 기본 원소들의 결합과 화합으로 생긴 것으로 보고, 그에 반해
불교에서 일체는 마음 조작이라 하여
둘의 주장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둘의 공통점은 인간 능력을 넘어선 초능력자 같은 신이 끼어들 조그만 틈조차 없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의 일단에서 일체는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만나 생긴다는 놀랄만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것은 일체는 마음의 조작[일체유심조]이라는 불교를 지원하는 강력한 무기가 아니냐 말이다.
단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게 최신 현대 과학인 양자역학이니 아이러니처럼 보이지만.. 석가모니께서는 2600여 년 전에 제자들에게 이미 그렇게 가르쳤다. 그 내용이 나오는 <잡. 214경>을 보면..
"두 가지 연이 있어서 앎(識)이 생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안(眼)과 색(色)], [이(耳)와 성(聲)], [비(鼻)와 향(香)], [설(舌)과 미(味)], [신(身)과 촉(觸)], [의(意)와 법(法)]이니라.
보는 자(眼)와 보이는 것(色)을 연하여 본앎(眼識)이 생기는데,
그 셋은 마음을 연해 생긴 것[心緣生]이다.
이라 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주장을 우리가 아직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석가세존의 <214경>을 그때는 물론 우리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경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는 '내가 책을 본다'라고 알듯,
각각의 존재인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인 책이 만나 마음에 '책'이라는 앎[안식]이 생기는 것으로 아는데..
<214경>에서는 놀랍게도
나와 대상이라는 독립적 존재가 아닌
뇌 속에서 보는 자[안처]와 보이는 것[색처]이 만나 앎[안식]이 생긴다고 하면서,
그 셋은 모두 마음[처]을 연해 생긴 것[심연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 내용을 따라 짧게 결론을 말하면,
우리는 외부에 있는 대상을 접해 경험이라는 앎이 생기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는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이라면 완전히 컨트롤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상이 마음에 일어나 있는 거라면, 우리는 마음 수행으로 대상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지 않은가.
되풀이해 말하면,
보는 자인 눈이 마음과는 다른 몸의 감각기관이라면 마음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런 눈[안근]으로 인해 생긴 앎은 마음이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다.
그런데 보는 눈이 감각기관이 아닌 마음에 생긴 것이라면,
마음 수행으로 보는 자[안처]를 완전히 콘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인도의 작은 성 왕자로 태어난 싯달타.
그는 어떻게 위대한 수행자를 초월한 누구도 이루지 못한 부처님이 될 수 있었을까?.
석가모니는 <214경>에서 보듯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각각 독립된 존재가 아닌 마음에 생긴 것임을 깨닫고,
그 마음을 온전히 컨트롤하였기에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지금까지 일체유심조 하면 세상은 저대로 흘러가는 것인데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게 보기도 하고 저렇게 보기도 한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참 뜻은 글자 그대로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신이 창조한 게 아니라 마음 안에서 만든 것이니,
그 마음을 잘 닦으면 조작된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가리키는 포인트는 <잡. 214경> 내용은 이천여 년 전에 수집정리되어 전해져 오고 있었는데..
올바른 해석이 21세기 대한민국 한 구석에서 시작되었으니.. 또 하나의 한강기적이 일어난 게 아닌가.().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