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공식 깨졌다' SVB 사태 도미노 쇼크
전염경로 변화 긴축에 신흥국 아닌 미은행 몰락
안전지대 없다 인플레.시스템위기 동시에 덮쳐
광속파산 시대 휴대폰 뱅크런...패닉 급속 확산
시릴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는 금융위기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기 가능성에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명쾌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인플레이션 충격에 이어 금융 시스템 위기 가능성까지 부각되면서 세계 경제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과거 금융위기는 은행들이 대출이나 여신을 제공한 가계와 기업이 대규모로 부실화되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떄는 개인 부동산대출이 부실화됐고,
1997년 한국 외환위기 떄는 대기업 부도가 잇따르면서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SVB는 예금의 상당 부분을 최우량자산인 미국 국채에 투자했는데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의 충격이 확산 중이다.
부실 자산 없이도 은행이 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에 일종의 '블랙스완'이 출현한 셈이다.
디지털화로 인해 빨라진 '뱅크런' 속도도 시스템 위기를 부추긴다.
예금자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광속으로 예금을 뺴내지자 은행은 이 속도를 견디지 못했다.
디지털화는 효율성을 높이는 '천사'로 다가왔지만 언제든지 '악마'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국가 간 전염 경로도 달라졌다.
과거 미국 긴축에 따른 충격은 신흥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미국 금리 인상-신흥국 자본 이탈-금융시장 불안-신흥국 위기가 전통적 경로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 긴축의 충격이 미국에서 먼저 터졌다.
그렇다고 신흥국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미국 금융 시스템은 전 세계에 수출돼 있다.
은행 피산과 금융 시스템 붕괴가 어느 나라에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미국은 '예금 전액 보호' 등의 파격 대책을 들고나와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있다.
원인은 미국이 제공했고 사태도 미국에서 터졌지만 다른 나라들이 더 위험한 상태다.
세계금융시장은 미국 긴축에 이어 금융 시스템 리스크까지 떠안으며서 극도의 혼란 분위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특이한 것은 두 위험이 '상호 대체적'이라는 점이다.
시스템 리스크가 커지면 미국은 금리를 올릴 수 없다.
이 경우 미국 긴축에 따른 위험은 줄어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3월 금리 동결에 이어 상반기에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줄파산 공포.규제 리스크...'전세계 금융주 시총 600조(사흘간) 증발'
금융시스템 신종 위기에 한.일.유럽 도미노 쇼크
미 국채 투지비중 높은 일은행
7~8%대 속절없는 하락
한 금융주도 3%대 떨어져
크레디트스위스 9% 급락
재무 취약점까지 드러나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에
각국 금융사 수익성 빨간불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전 세계 금융주 시가총액이 사흘 새 태국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600조 원 이상 증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 직접 나서 '미국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며
'예금 전액 보호'를 골자로 한 대책을 쏟아냈지만 자국 금융사의 주가 급락 사태까지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공포가 국경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 금융주로까지 번진 이유는 뭘까.
먼저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커졌다.
여기에 SVB 파산 요인으로 지목된 과도한 장기채 투자 리스크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아시아에서도 똑같이 불거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퍼졌다.
또 향후 세계적으로 금융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금융사들의 수익성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투매 현상이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금융주 폭락은 '제2의 SVB'로 지목받으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중소 지방은행이 주도했다.
이날 퍼스트리퍼블릭뱅크(FRC)는 하루 새 61.83%폭락했으며 웨스턴얼라이언스뱅크프와 팩웨스트뱅크도 각각 47.06% 21%
폭락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의 42개 대형은행을 추종하는 유로스톡스600 은행 업종지수는 5.6% 급락해
지난해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SVD 사태처럼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는 채권에 대한 위험성이 부각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재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웰리엠 아이작 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회장은 인텨뷰에서
'시장이 1980년대 은행 위기와 같은 벼랑에 놓여 있다'며 '의심할 여지 없이 앞으로 더 많은 은행이 파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1990년대 FDIC가 1600개 넘는 파산한 은행을 관리했던 떄를 상기시키며
'이미 시장에서는 추가 은행 파산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에서는 하루 만에 9% 넘게 주가가 빠진 크레디트스위스(CS) 리스크가 부각됐다.
14일에는 블룸버그가 'CS 재무보고서에서 중요한 취약점(Material Weaknesses)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CS는 지난주 연간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추가 설명 요구에 일정을 연기했다.
CS는 지난해 고객들의 대규모 인출 사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손실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CS 리스크가 불거지면 SVB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주 급락세는 미국과 유럽을 넘어 14일 아시아 시장까지 덮쳤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 은행주들도 급락세를 비켜 가지 못한 가운데 특히 일본 은행주들 하락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3대 메가벵크인 미쓰비시UFJ(-8.59%), 미쓰이스미토모(-7.57%), 미즈호(-7.14%) 모두 폭력 장세를 연출했다.
개별 은행주 중 후쿠시마은행, 지바고등은행 등 지방은행들도 전날(-6%대) 하락에 이어 이날도 5~6% 이상 폭락했다.
일본 금융주들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SVB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 떄문이다.
SVB는 자산 포트포릴오에서 미국 장기국채 비중을 과도하게 늘려왔다.
연중의 급격한 긴축으로 미 국채 가치가 급락했고, 예금 인출 요구에 손실을 보면서 자산을 매각해여 했다.
채권을 헐값에 팔면서 대규모 평가손실을 떠안는 과정에서 파산을 맞게 됐다.
일본 은행들도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장기채 비중을 대거 늘려왔다.
지난 10년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총재의 공격적인 통화 완화로 국내 채권 수익률이 꺾이자 일본 은행들은 국내 채권에서 미국 장기국채 등 외채 투자로 눈을 돌렸기 떄문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미 국채를 포함한 외채 보유 증가에 따른 평가 손실 발생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무라키 마사오 SMBC 닛코증권 글로벌 재무전략가는 '금리 상승은 SVB 손실로 이어졌고
이는 비숫한 문제를 가진 다른 은행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현재로선 일본 내 은행들의 미국 채권 보유에 따른 위험은 안전한 수준에서 잘 억제돼 있다'며
'미국 장기채 투자에 비해 국내 증권 투자 규모가 더 크기 떄문에 아직은 은행 전반의 건전성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고 전했다.
한국 역시 주요국 대비해서는 선방한 모습이나 금융주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에 크게 하락했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주들이 포함된 '코스피 200 금융'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3.08% 하락한 589.7로
마감했다.
금융지주사들의 하락한 요인 중 하나는 높은 외국인 투자자들릐 투자 비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SVB 사태 이후 금융 규제 강화 가능성을 우려해 각국 금융주 매도 공세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지주 IR 관계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규제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며 외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국내외 금융주에 대한 투자 관심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매도 공세 속에 국내 금융주가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지만 국내 은행권은 '기초체력'이 튼튼하다며
주가 하락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금융지주 관계자는 '주가 급락 이유를 묻는 투자자들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SVB 파산 이후 투자 심리 위축이라는 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며
'국내 은행들은 금융당국 규제 준수를 바탕으로 높은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어 SVB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채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강인선.한우람.한재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