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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담임 목사, 본지 편집인
누구든 말 한두 마디로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필자는 이단을 규정할 때 말이나 문장 한두 개로 이단을 규정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강조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것도 앞뒤 다 잘라내고 말 한두 마디로 이단으로 규정하면 이단 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보다 더 악한 것은 말을 교묘하게 빼고 더하여 고의적으로 왜곡시키면 이단 된 자보다 이단 되게 한 자의 죄가 더 크다.
그 말 자체만으로 비록 잘못되고 이단성이 있어 보여도 그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보면 이해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또 잘못이라고 하여도 이단 논쟁까지 일으킬 문제가 아닌 경우도 많다.
문제는 비록 한 마디의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한마디라도 할 수 없는 말이 있고, 해서 안 되는 말이 있다. 그가 진정한 효자라면 아무리 보지 않는 곳이라 할지라도 부모에게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그가 진정한 애국자라면 자기 국가에 대하여 도저히 해서 안 될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참 성도라면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성경에서 먼저 이 점을 찾아보자.
첫째는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사가 아이들을 저주한 사건이다. 엘리야가 요단 에서 하늘로 올라간 후에,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가는데, 길에서 아이들이 나와 그를 조롱하여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하였다.
그 때 엘리사가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42명의 아이들을 찢어 죽이고 말았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철없는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좀 놀렸다는 이유로 어떻게 선지자인 엘리사가 그들을 저주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 저주를 받아 42명의 아이들을 죽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노아의 세 아들 중에 함이 받은 저주의 사건이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자고 있을 때,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그의 두 형제에게 그것을 말하였는데, 그 말을 들은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고 그들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이를 듣고,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여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라고 하였고 그 저주가 함과 그 아들 가나안에게 임하였다.
실수라면 아버지 노아의 실수가 먼저다. 또 함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이런 저주까지 받아야 할 정도의 잘못인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같은 관점에서 전광훈 씨가 자기를 성령의 본체라고 하는 점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본론: 전광훈 씨가 바른 목사라면 자신을 성령의 본체라고 절대로 할 수 없다.
정통교회가 보는 성령 즉 보혜사는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으로 곧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에는 자신을 성령 또는 보혜사라고 하는 이단들이 수십 명에 달한다. 물론 이는 교주들이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하여 고안해 낸 사탄적 교리로, 타락한 더러운 인간으로 감히 자신을 보혜사라고 하기도 하고 전 씨처럼 자신을 성령의 본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보혜사라고 하거나 성령이라고 하는 이단들을 좀 살펴보자.
먼저 코로나로 인하여 그 이중성과 거짓이 바닥까지 드러났던 신천지의 이만희 씨부터 스스로 보혜사라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복음선교회> 일명 JMS, 성추행 등등의 사건으로 유명한 정명석도 자신을 보혜사라고 한다.
한기총의 대표회장까지 출마하였던 <새빛등대중앙교회>의 김풍일(김노아)도, <천국복음전도회>의 구인회도, <에덴성회> 이영수도,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도, <은혜로교회> 신옥주도 자신을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신옥주란 교주는 지금 구속되어 있지만, 누군가의 사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보지만, 필자는 당시까지 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 무려 4개월 동안(16주) 매주 찾아와 시위를 하고 예배를 방해하였다.
김풍일(김노아, <새빛등대중앙교회>) 씨는 ‘보혜사는 영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하고, 자신을 보혜사라고 하다가, 그것을 회개하고 정통교회로 돌아오겠다고 하며, 자신의 보혜사론을 회개한다고 교계 신문에 공개적으로 내더니, 결국 한기총에 들어가 대표회장까지 출마하는 촌극 중에 촌극을 연출하였다.
더 가관인 점은 자신의 보혜사론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회개하겠다고 하고도, 자신은 보혜사라고 하지 않았다고 부인한 점을 보면 그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말은 0.1%도 믿을 수 없으며, 그는 회개한 자체를 다시 회개해야 할 것인데, 불가능해 보인다.
진정한 회개란 거짓 위에서는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보혜사가 될 수 없다. 즉 자신을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악령에 사로잡힌 사탄 중에 사탄이요, 이단 중에 이단이다.
전광훈 씨의 성령의 본체론은 무엇인가?
2019년 12월 26일에 전광훈 씨가 자신을 성령의 본체라고 한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유튜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BtFY8qewNQ
“여러분 날 우습게 보면 안 돼. 이춘근 박사가 나를 대단하다고 한다고. 대단하다고. 그 이유가 있어요 왜 그런가?
이춘근 박사뿐이 아니여. 우리교회에 송영선, 송영선 박사도 나오는데, 송영선 박사님도요. 내가 설교하는 것 듣고요, 이래요.
저거는 사람이 아니래요 날 보고. 성령의 본체라. 그래. 성령의 본체. 성령의 본체(아멘) 날 보고 사람이 아니라 그래. 성령의 본체라 그래. 여러분도 그렇게 될지어다.(아멘)
그 왜 그러느냐? 그 이유가 왜 그러냐 성경 때문에 그래요(아멘) 내가 성경이 열려서 그런 거예요. 성경이 열려서 할렐루야”
비판해보자. 위의 전광훈 씨의 성령의 본체론에 대하여 듣자마자 그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목회자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정상적인 목사라면 그럴 것이고,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어야 한다.
전광훈 씨가 정통 목사라면 위와 같은 말은 농담으로도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하나님과 가깝지만, 그 무한성과 유한성의 측면으로 보면 인간은 동물에 가까우며, 하나님과 인간은 영원한 간격을 두고 있다.
거기에다 만물 중에 가장 부패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래서 감히 자신과 하나님을 동급으로 여기려고 하는 그 자세보다 더 교만하고 사탄적인 자세는 없다.
어떤 상황 어떤 이유 어떤 목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저주 받을 자세이며 주장이다.
이를 바울의 자세와 비교해 보면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바울과 전광훈 씨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사도행전 14장에서 보자. 바울이 제1차 선교여행을 하며, 바나바와 함께 루스드라에서 전도를 할 때의 벌어진 일이다. 그곳에 발을 쓰지 못하고, 나면서 걷지 못하여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한 장애인이 있었는데, 바울이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였더니 그가 일어나 걷게 되었다.
이를 본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소리 질러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 신으로, 바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섬기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려 했다(행 14:12).
그러자 바울은 어떻게 하였는가? 바울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들어가서 소리 질러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5)라고 하였다.
바울과 전광훈 씨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늘과 땅처럼, 동과 서처럼, 천국과 지옥처럼 다르다.
정상적인 목사라면 바울과 같아야 한다. 옷을 찢으면서까지 자신은 이방인인 루스드라 사람과 성정이 같은 사람임을 고백하고 드러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목사라고 하는 J 목사의 경우, 자기 교회 권사가 와서 큰절을 하면서 ‘목사님 저에게만 말해주세요.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이시죠’라고 하며 자랑하였던 말이 기억난다.
바울의 자세로 하면 그 권사를 치리라도 해야 하고, 귀싸대기라도 갈겨야 옳다. 몸을 입고 오신 주님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했어야 옳다.
여기 바울이 루스드라 이방인 앞에서 보인 모범을 보자. 바울은 신으로 섬기려고 하는 자들은 집사도 아니고 권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인도 아니다.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모르는 이방인들이다.
저들에게는 영적 거룩, 영적 지식, 영적 의가 하나도 없고 여호와 자체를 모르는 자들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신격화하도록 바울이 그렇게 유도한 것도 아니다. 순전히 영적으로 무지한 그들이 몰라서 한 짓이다.
더욱이 바울은 항상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있는 상황인 점을 볼 때, 저들이 몰라서 그런 것을 앞세우고, 지혜란 이름으로, 그냥 잠시라도 그렇게 두고 헤르메스 신과 제우스 신의 권위로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하고 만나게 하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루스드라 이방인들이 바울을 여호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성령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성령의 본체라고 한 것도 아니다. 사실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이방신인 헤르메스 신과 제우스 신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하였는가? 옷도 없을 터인데 옷까지 찢어가면서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가지는 바른 자세다. 전광훈 씨와는 구별할 수 없도록 다르다.
전광훈 씨는 ‘나보고 사람이 아니래요’라고 하고, 청중들에게 ‘여러분도 그렇게 될지어다’라고 한 점을 보면 그의 본심을 알게 한다.
전 씨의 말을 들어보면 이춘근 박사의 말을 빌려 자신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하고, 송영선 박사의 말을 빌려 자신을 성령의 본체라고 하였다. 물론 전광훈 씨가 스스로 직접 한 말은 물론 아니다.
간접적으로 남의 말을 인용하여 그것을 수긍하였다. 아니 더 발전시켰다.
필자는 이춘근 박사와 송영선 박사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송영선 박사도 미친 성도라고 해야 맞다.
아무리 존경하는 목사라도 인간을 향하여 “성령의 본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전광훈 씨의 자세는 더 문제다.
전 씨는 자신만 성령의 본체가 되기에 좀 미안하고 쑥스럽고, 후에 이단 논쟁이 벌어질 때를 대비하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거기에 있는 성도들까지 성령의 본체가 되라고 축복까지 하였다. 모두 “아멘”을 외쳤으니 다들 전 씨처럼 성령의 본체들이 되고 말았다.
전광훈 씨는 한없이 교만하고, 우쭐거리기 잘하고, 자기 자신을 신격화하는 사람인 것은 여러 면에서 입증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자신이 성령의 본체라고 하고, 거기 교인들까지도 그렇게 되라고 하는 말 속에는 인간이라도 누구나 성령의 본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전 씨가 바른 신학을 했고, 삼위 중에 한 분이신 성령님이 그의 속에 내주한다면 송 박사의 말을 듣고 그렇게 우쭐거릴 것이 아니라 그 송 박사란 자를 치리하고 쫒아냈어야 한다. 바울처럼 옷을 찢지 못해도 자신의 귀라도 씻고 자신이 죄임임을 고백했어야 한다.
그런데 ‘우습게 보지 말라’느니, ‘사람이 아니라’느니, ‘성경이 열렸다’느니 하는 등의 망령된 말을 하는 전광훈 목사의 자세가 그렇게 말한 송 박사란 분보다 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론: 전광훈 씨는 회개를 알고 회개를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내가 성령의 본체다’라는 주장은 우연히 어쩌다가 할 수 있는 실수도 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꿈에도 할 수 없다. 백 번, 천 번, 양보하여 실수라고 하자. 그러면 마땅히 회개해야 한다. 마음을 찢고, 그 더러운 입을 찢고 찢어야 한다. 하기야 하나님도 까불면 죽인다고 하며 하나님까지도 죽일 수 있는 분이란 점에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듯하다. 다음은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전목사 교회 다녀요?
전목사가 남들이 성령의 본체라고 한다고 떠들며 수긍하는 자체가 스스로 성령의 본체라고 하는 것이오
사모함이 남들이 이시대 최고의 선지자라 한다면서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는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입에 재갈 물리라는 야고보서는 성경에서 찟어 없애 버린것이죠
@블루 * 님이 전목사 교인인지 부터 밝혀 보세요
최삼경이는 월경론과
이상한 양태론자로 이단으로 찍힌자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