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좋은 아침] 나의 사물됨
나는 절반쯤은 개다. 나는 절반쯤은 풀꽃이고. 나는 절반쯤은 비 올 때 타는 택시. 나는 절반쯤은 소음을 못 막는 창문이다. 나는 절반쯤은 커튼이며.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 나는 절반쯤은 벽. 나는 절반쯤은 휴지다. 절반쯤 쓴 휴지다.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렸다.
―차도하(1999∼2023)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의 생몰연대를 볼 때면 막막하다. 열린 괄호와 닫힌 괄호 사이, 그 안에 갇혀버린 기분이 든다. 떠난 시인에게 세상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문처럼 느껴졌을까. 그에게 세상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틈 같아서, 종일 까치발로 종종거리다 떠났겠구나. 유고 시집이자 첫 시집인 차도하의 ‘미래의 손’에는 힌트가 가득하다. 그가 세상이라는 괄호 안에서 안녕할 수 없었을 거라는 힌트. ‘처치 곤란한 인간’이란 시에서는 자신을 외계인이라 불러주면 세상을 떠나겠다고 고백한다.
“나는 절반쯤은 개다” 이런 시작은 읽는 사람을 단박에 휩쓸리게 한다. 화자의 외로움에, 세상을 향한 사랑과 절망에, 사람에 대한 외로움에 젖게 한다.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이라니, 묵음의 휘파람처럼 외롭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개가 되고 풀꽃이 되고 비 올 때 타는 택시가 된다.
세상에 잘 적응해버린 어른으로서 그에게 부끄럽고, 진심으로 미안하다. 은빛 호각을 입술에 대고 불듯이, 그를 불러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시집에 실린 시들은 천진하고 화창하고, 치장 없이 슬프다. 고작 스무 해 언저리를 살고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린 휴지의 기분을 느낀 사람. 자신을 세우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다른 이의 절망을 토닥이다 너덜너덜해지고 지쳤을까. 나는 차도하의 ‘절반됨’이 세상을 향한 다가섬이었음을, 간신히 내보인 사랑이었음을 믿는다. 미래의 손을 잡으며, 잡으려고 애쓰며 빌어본다. 그가 평안하기를.
✺미래의 손/ 차도하(1999∼2023)
이 시에는 공원이 등장하지 않고, 시인이 등장하지 않으
며,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시에는 공터가 등장하고, 중학생이 등장하며, 등장할
수 없는 사랑이 등장한다.
중학생은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공원은 금연구
역이기 때문에, 공터는 비어 있는 터이기 때문에 공터. 그
렇다면 중학생의 마음도 공터. 공터인 마음은 사랑으로 가
득 차 있다. 사랑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사랑할 것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중학생은 자신이 사랑할 수 있을
법한 것들을 떠올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는 아빠에게서 훔친 것. 아빠는 사랑할 수 없는 것.
가족이란 사랑할 수 없는 것. 친구도 애인도 사랑할 수 없
는 것. 선생과 제자라면, 신과 신도라면 더더욱 사랑할 수
없고. 사랑을 떠나서. 그 모든 관계가 아닌 관계가 존재할
수 있는지 중학생이 생각하는 동안
담배는 필터까지 타들어 가고. 중학생이 고개를 조금 숙
이고 담배와 연기를 바라보는 동안. 세상의 필터도 조금씩
타들어 가고, 세상의 모든 관계가 지워지고. 비어 있는 곳
빼고 모든 것이 지워져서.
세상엔 공터만이 남았다.
공터에 덩그러니 혼자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울거나.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만이 남아
세상은 한층 조용해졌고, 중학생이 문득 고요를 느끼고,
담배를 버리고 신발로 그것을 짓이기고 하늘을 바라볼 때,
하늘은 저녁에서 밤으로 색깔을 바꾸고,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오고.
원래란 뭐지?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원래대로라면 중학생은 담배
를 피우면 안 되고. 중학생은 담배 냄새가 빠질 때까지 산
책을 좀 하다가 집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담배 냄새
는 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학생이 하는 질문은,
혼을 낼까? 혼을 내지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체벌.
중학생의 마음을 공터로 만들게 한.
그러나 우선은 공터에서 빠져나와 담배 냄새를 빼기 위
해 산책을 하기로 하고, 중학생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
다가
주머니 속에서 어떤 손을 잡았다.
그것은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선생도 신도 아닌
시를 쓰게 될 중학생의, 미래의 손.
하지만 지금 이 시에는 시인이 등장하지 않고
주머니 속에 깊게 손을 찔러 넣은 중학생이 당신을 지나
치고 있을 뿐이다.
✺처치 곤란한 인간/ 차도하(1999∼2023)
당신은 혼자 따뜻한 우엉차를 끓여 마시고
가만히 앉아
차가 몸으로 퍼져 나가는 경로를 느껴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당신이 유일하다곤 생각해본 적 없죠
그러니 당신과 같은 인간이 나타난데도 놀랄 것도 없지만
당신과 나는 놀랄 만큼 똑같습니다
차를 삼키는 시간까지
피가 도는 속도까지
손을 맞잡아볼까요
미세하게 패인 주름들을 하나하나 겹쳐볼까요
같은 입술을 맞물리고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세어볼까요
세상엔 쌍둥이가 있고 쌍둥이가 아니더라도 아주 닮은
사람쯤이야 있을 수 있지만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겐 쌍둥이가 없으며 우린
아주 닮은 게 아니라 아주 같다는 것
나는 어디서 왔을까요?
나를 책임지세요
그런 부탁은 안하겠습니다 나는 다만 바랄 따름입니다
당신이 나를 인정해주기를
내가 외계인 이란 것
지구에 나의 고향이 없다는 것
알 수 있는 사람 당신밖에 없으므로
동공끼리 맞대서 속을 들여다볼까요
우리는 속눈썹의 길이까지 같다는 것
눈동자의 둥근 정도까지
우리의 어둠까지 같다는 것
나를 외계인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럼 떠나겠습니다
당신을요
세상을요
당신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이렇게 입을 뗄 겁니다
내가 당신을 떠날게요
둘 다 떠나고 싶기에 둘 다 떠나지 못하겠죠
누군가는 지구에 남아
외계인을 보았다고
그것이 나와 같다고 증언해야 하기에
우엉차가 담긴 찻잔에 손자국이 남았다가
서서히 사라지네요
✵차도하(1999∼2023) 시인은 경상북도에서 출생 하였다. 2017년 제25회 대산청소년문학상 고등부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문학에 두각을 보였다. 이후 202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재학 중 20세의 나이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공식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와 연관된 출판사의 신춘문예 당선 시집 수록을 거부하고, ‘가시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문단 내 부조리에 저항해 왔다. 대신 자체 메일링 서비스 ‘목소리’를 운영하고 여러 독립 출판물에 글을 싣는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독자들과 교류해왔다. 2021년에는 산문집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을 출간하며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대담하게 전했다. 2023년 10월 22일 2024년 첫 시집 발간을 앞두고 사망했다. 타계한 뒤 『미래의 손』(2024) 유고 시집이 출간되었다. 향년 24세. 사인은 비공개되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동아일보 2026년 07월 18일(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시인)〉》,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