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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많은 걸 갖게 만들고 속박하는 존재라서
어디에 있을까? 김길수 씨 가족의 중고 버스가 전라도 어디쯤,
아니면 어느 오지 마을에 있는지 그들의 행방이 궁금했다. 그는 부산에서
집을 짓고 있다며 근황을 전해왔다. 지리산 목수라 불리는 그는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에 머물며 일하고 있었다. 이제는 여행을 그만둔 것일까.
어린아이들 데리고 털털거리며 달리는 버스살이가 힘겹기도 했겠지 싶었다.
김길수 씨가 전라도 진안의 마이산 근처 흙집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는
그의 정착을 확신했다. 궁금해할 이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여행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짜고짜 묻고 싶었다. 여행도 좋고 다 좋은데 돌아갈 곳도 없이 지리산
자락의 1백여 평 남짓한 집을 굳이 팔아야 했냐고. 김길수 씨는
“
가진 게 너무 많았다”고 고백한다. 이사할 때마다 살림살이를
나눠주고 다녔는데도 그의 눈에는 넘쳐 보였다.
그는 적정 수준 이상의 것을 가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적정 수준이란 말은
상당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행복의 기준이나 가치가 열 사람이면 열 가지 생각이
나오듯 살면서 필요한 물질에 대한 기준 역시 다르니 말이다.
한참 자랄 세 아이 수남(6살), 민정(5살), 정수(2살)가 가져야 할 물건만도
오죽 많을까 싶은데 말이다. 김길수 씨의 기준은 당장 내게 필요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식으로 처리하자는 주의다. 자신이 필요한 것은 얻어 쓰면 된다는 것.
그 이상이면 집착이 되고 혹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아내 주화 씨라고 처음부터
남편의 생각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잘 보관해두면 쓸모가 있을 텐데,
혹은 주기 아깝다 싶은 물건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눠주면 내가 어떤 물건이 필요할 때 꼭 생기더라고요. 결국 무엇이든 되돌아온다는 경험을 하고 나니까 아까움이나 미련이 없어졌어요.”
미련 한 점 남기지 않고 돌아서는 냉정한 연인처럼 그가 집을 팔고 길을 나선 건, ‘적을 두지 않아야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이라는 공간은 많은 것을 담고 채우게 하기에 가볍게 홀연히
떠나기 위해선 그런 결단이 필요했다.
“ 집이 있으니까 자꾸 구속하려 든다 싶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내 삶 자체의 전환이 필요했어요. 주화 씨는 막내가 조금 더 크면 가자고 했지만 꼭 그때여야 한다는 절박감이 맘속에 있었어요.”
갓 돌이 지난 막내 정수까지 3평짜리 덜컹거리는 버스에 태워 길을 나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김길수 씨는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기분을 바로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들 가족의 행보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자유스러운 삶을 동경하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어린아이들 데리고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은 아동 학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꼭 일주일 만에 버스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겐 지붕이 있고 방이 나뉜 공간만이
집은 아니다. 아마도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일 터. 그의 집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한다면….
어른보다 똑똑한 아이들은 자연에서 다양한 경험을
그는 자신도, 아이들도 여행길에 좋은 사람, 좋은 자연을 만나 성장해나가길 꿈꾸었다.
어떤 이에겐 아이들을 방치하는 모습으로 보였을지 모르나 그는 자연이라는 ‘
아주 자연스러운 교육 여건’을 제공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에 집착하고
잘못 키웠네, 어쨌네, 눈물 바람인데 좋지 않은 물과 공기, 소음 속에서 교육이란 게
있을까 싶은 게 그의 생각이다. 자연이 아니면 숙제가 아닌 환경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
여건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도 한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도마뱀을
숨죽여 본 적이 있다는 김길수 씨.
도마뱀의 발걸음 횟수를 세보기도 하고 어디에서 멈춰서 쉬나 관찰해보며 느꼈던
기분들을 자신의 아이들도 기억하고 갖게 되길 바랄 뿐이다. 세 남매는
또래들보다 장난감이 적다. 아니, 너무 많다. 주변에서 만나는 무엇이건 놀잇감으로 삼을 줄 안다.
돌멩이를 들고 와 돌강아지라 이름 붙이고 생명을 주며 키우는 아이들이다. 때론 손재주
좋은 아빠가 직접 만들어준 나무배, 나무새 등이 친구가 된다.
“아이들의 교육적인 면에서도 이로우니까 가능한 여행이죠. 나이가 어려도 다 보고
느끼고 받아들여요. 부모나 아이나 결국 개인의 인생을 살아가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데,
어릴 때 제대로 된 경험을 하지 못하면 마음으로는 거짓인 줄 알면서도 다른 삶을 살기도 하겠죠.”
주화 씨는 아이의 개성을 중요시한다면서 너무나 똑같은 모습으로 키워내는
교육을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주체성이 없는 시대가 어디 있나 싶단다.
“나는 아이들이 대자연으로부터 영양을 얻어 식물성이 되어주면 좋겠어요. 약간의 동물성을 갖고요. 애들은 어른보다 나아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오히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죠. 어느 날 민정이가 ‘꽃은 바람이 불어야
시들지 않아요’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꽃향기가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나눠줘야
가치가 있듯, 사람이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면 뭐하나 싶은 깨달음이 생기더라고요.
이렇게 지혜로운 존재들이기에 나는 무조건 아이들 선택을 두말없이 받아들여요.”
진안에 머물면서 잠시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며칠 만에 가기 싫다고 하더란다. 더 묻지도 않고 그러라고 했다는 김길수 씨. 앞으로 학교에 다니든 아니든 아이들
생각에 맡길 생각인 그는 자신이 본 진실 중 하나는 자식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부모가 제일 힘들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돈 없으면 불편할 뿐 두려움은 아니라고
여행을 할수록 김길수 씨는 좋은 사람을 더 만나고 싶어졌고,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한다.
불편한 거짓말을 하면서 편안하게 살 것인가, 불편하지만 편안한 진실 속에서 살
것인가의 문제, 오만이나 편견에 대항해봐야겠다는 생각….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다는 건 그가 수만 가지 가치를 접하면서 고민하고
갈등하며 자신의 길을 닦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직 교사였던 그가 가족들과
산골로 들어가 목수가 되고, 이젠 ‘집도 없이 떠돌며’ 사는 모습은 보통의
사람들에겐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부정기적으로 일을 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먹이고
버스에 기름을 채우는지. 돈 없이 사는 일이 어렵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의 돈벌이에 대해 궁금한 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그는 산에 들어가 절을 짓고 다른 사람의 집도 놀이하듯 신나게 지어주며 돈을 번다.
이달은 통장에 20만원이 있다는 그는 걱정스레 묻는 이보다 훨씬 여유롭다.
김길수 씨는 노동이란 화두를 던진다.
김길수 씨 가족은 한여름을 진안의 흙집에서 보내고 있었다.
이 집은 그의 동생이 앞으로 살 집으로 김길수 씨가 여름내 지었다. 뒷산에서
나는 낙엽송을 이용한 집은 한낮에도 서늘하다. 보통 사람들의 휴가철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이곳을 떠날 참이다.
“하루 3시간 이상은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매일 아침
기계처럼 일어나 돈 벌러 나가며 사는데, 그 돈이 정말 그렇게까지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보다는 아이들 옆에서 놀아주고 함께 먹고 시간을 보내면서 잘살아가는 게
돈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교육이 되기도 하고요.”
근면 성실하게 남들처럼 사는 걸 진리처럼 여겨온 사람들은 사지 육신 멀쩡한
젊은 사람의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꾸중할지 모를 소리다. 스스로 편하고 놀기를
좋아한다며 웃는 김길수 씨의 얼굴에는 세상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진지함이 묻어 있다.
그라고 경제적 불편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큰 아파트를 유지하기 위해,
남들처럼 좋은 차를 사기 위해 일종의 불필요한 소비, 강요되어지는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많은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남부럽지 않게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늦도록 일하면서 정작 얼굴도 보지 못하고 사는 모습이 김길수 씨에게는
커다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세상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하며 사는 모습을 김길수 씨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마음에 물으면 답이 나온다고 말하는 그의 옆에는 옳은
일이니 자연스럽게 따라갈 뿐이라는 아내 주화 씨가 있다.
집을 넓히다? 35인승 중고 버스에 몸을 싣고
유목민들은 때가 되면 어디가 자신의 집인지 몸으로 알게 된다고 한다.
김길수 씨의 가족은 유목민을 닮아 있다. 빡빡한 스케줄을 세우기보다는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보내고 겨울엔 남쪽의 따뜻한 해안가에서 머무는 식이다
.
형태를 갖춘 집은 없지만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 최적, 최고의 집을 찾아
자연에서 자연으로 이동한다. 집에서 자연을 누리기 위해 꽃꽂이를 할 이유도,
자연 소재로 집을 지을 이유도 없다. 주변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피크닉
나온 사람들처럼 먹고 즐거워한다.
얼마 전에는 35인승 미니 중고 버스를 구입해 구조를 변경하고 내부를 가족들의
생활에 맞게 고쳤다. 수만 킬로를 달린 중고 버스는 이미 낡고 지친 모습이지만
예전의 차보다 공간이 넓고 처형의 그림 솜씨 덕분에 새차처럼 말짱한 모습으로 서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시 여행길에 오를 예정인 가족들.
이 여행을 최소 5년 이상은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실은 버스가
이번에는 김길수 씨 가족을 어디로 데려다 줄까? 그들은 여전히
길 위에 서 있고, 여행은 현재진행형이다. |
첫댓글 행복해 보인다...한번뿐인 인생 고민되네...
용기가 필요하지?
인간극장에서 나오던데..저 사람은 저렇게사는게 행복할거구..나는 내가 사는 방식이 행복할거구..각자 사는 방식의 차이겟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