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고운 친구의 문집을 펴내면서
글쓴이는 1954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건장한 대한민국 남자의 의무인 군대를 만기 제대하였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아가씨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둔 단란한 집안을 거느린 행복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일요일 회사 체육대회에 참가하고자 오토바이를 타고 나선 길에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병상생활을 거쳐 현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모 재활원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담당의사는 점차 기억력이 상실되어가는 걸 예방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살아왔던 지난날에 대한 회상을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친구는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그 분량이 벌써 두꺼운 노트로 3권이 넘었습니다. 글을 통해 극진하게 뒷바라지하던 부인과 두 딸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과 어찌할 수 없는 미안함을 구구절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친구의 글을 읽어 가면서 가족에 대한 그 절절한 마음이 눈시울을 적셔 몇 번이나 중단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현대사회의 문명 기기들은 인간의 생활을 편하게 하지만 때로는 흉기로 변해 치명적인 후유증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많은 민간단체, 또는 연구 기관의 일반적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장애인 수는 통상적으로 전체 인구의 10%인 약 45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선천적 장애인보다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장애인의 비중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 누구도 예외가 아니듯이 이 작은 책자가 몸이 불편한 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힘차게 박수치며 격려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전합니다.
글쓴이와 친구로 인연을 맺은 지가 그럭저럭 12년이 됩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남에게 한도이상 폐를 끼치기 싫어하고, 깔끔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결 고운 모습에 존경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복된 내용이 많기에 이를 정리하고 재편집하여 작은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글을 활자화하고 편집하는 작업에는 오랫동안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ㅇㅇ, 김ㅇㅇ, 김ㅇㅇ 군이 맡아 주었다는 점도 함께 밝혀 둡니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 중에는 자원봉사자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기도 한다.
이는 때가 되면 밀물처럼 몰려 왔다가 곧 발을 끊기에
정(情)을 붙이고자 했는데 무시당했다든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모 재활원과의 인연도 12년 째 된다.
어떤 중년은 3년 만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였고, 이후 이런 저런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에는 불편한 몸으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쓴 노트 3권을 슬며시 전하였다.
제자들이기도 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68쪽 분량의 소책자를 만들었다.
이 중년 남자는 아내와 두 딸을 ‘세 꽃님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절절하게 넘쳐나는
『사랑하는 세 꽃님이를 불러 봅니다』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다.
앞머리에는 내가 쓴 머리말을 겸한 추천의 글도 함께 실었고.
사람들은 봉사활동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시간이 있으면, 돈이 있으면 하면서 차일피일 미룬다.
우리 나이 어느덧 50대 후반이고 보니 체력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봉사 활동할 수 있는 시간도
10년을 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나이 되면 어쩌면 우리가 봉사 받아야 할 입장이 될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세 번째 일요일인 4월 16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모 재활원에서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초록색 표지로 만들어진 소책자 『사랑하는 세 꽃님이를 불러 봅니다』
출판 기념회(?)를 겸한 자리였지.
마침 이번 주가 장애인 주간이란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형태로도 소외된 이웃이 보기보다 많다.
나 자신만 힘들고 고생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처럼 주변을 돌아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2010. 4)
첫댓글 가끔 올려주시는 동화같이 아름다운 글 덕분에 제 머리속에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봅니다,
손을 들어 마주 칠 이가 있어 반갑습니다. ^^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