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줄거리
1. 들어가는 말
인기작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있다. 칠순의 엄마가 아버지와 함께
아들딸 집에 찾아가느라고 서울에 올라왔다가 서울 지하철역에서 아버지는 지하철을 타고
어머니는 그만 못 타는 바람에 엄마가 실종됐다.
온 가족이 엄마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한다.
2. 가족들이 보는 엄마의 실존적 삶
엄마가 실종되면서 비로소 엄마의 존재가 부각된다. 엄마는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잊혀진 존재였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엄마의 존재감이 각자 가족들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살f아나기 시작한다.
. 4부와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딸, 큰아들, 남편, 마지막으로는 엄마 자신의 눈으로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네 가지 소제목이 그 상황을 너무나 명확하게 이야기해 준다.
1부의 큰딸의 기억에 가족 모두가 엄마를 `아무도 모른다.'였다. 자녀들을 길러내느라
온갖 고생을 남 몰래하고
이제 자녀들이 모두 떠나가고 시골 빈집에 홀로 남았지만 엄마가 지금까지 어떤 상황인지
가족 모두가 아무도 모른다. 몸이 아프고 마음도 아파서 괴로워하건만 아무도 모른다..
각자 가정 가지고 살기에 바빠서 자식들은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고 산다.가난한 농촌에서
억척 같이 일해서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죽을 고생 했고 젊어서 밖으로만 떠돌던 아버지 때문에
뇌졸증까지 앓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 고생을 아무도 모르고 잊고 살아왔다..
2부의 큰아들이 기억해낸 엄마는 늘 말한다. '미안하다, 아들아'
그저 큰 아들이 잘 되기만을 소원한다. 그렇게 희생하고도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큰아들만 보면 '미안하다, 아들아' 이게 엄마에 대한 기억이다.
사실 엄마는 큰아들이 검사가 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꿈이 있었는데 엄마의 뒷받침이 부족해서
검사가 못 되었다고 미안해 하지만 생각하면 자신의 책임이었음을 큰아들은 깨닫는다..
또 3부는 남편이 본 엄마이다. 결혼은 했으나 관심을 두지 않는 남편이다.
무심한 남편이다. 훌쩍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모든 것이 떨어지면 그제야
계면쩍게 돌아와서 한마디 던진다. '나 왔네' 그리고 밥상을 받는 남편이다.
남편은 집을 거의 지키지 않아서 엄마가 아버지 대신 집의 기둥 노릇을 한
참 소중한 존재였음을 아버지는 엄마가 실종된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다.
4부의 그러나 이렇게 가족들의 눈에 비친 모습과는 달리 엄마 자신의 시각으로 보니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다.
그에게도 위로와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엄마가 어려서 엄마 오빠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모습과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엄마의 슬픈 모습에서 엄마도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밖으로 돌아다니기만 할 때에 출생 중 사망한
넷째아이를 묻어준 남자 친구가 있었다는 것도 고백한다.
3. 작가의 글쓰기 구상의 모멘텀(계기)
작가는 이렇게 고백을 한다. 이러한 것을 구상하면서 펜을 들었지만 도대체 글이
풀리지가 않았다. `어머니'라고 불러보았지만 생각이 막혀서 한마디도
풀리지 않았다.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생각의 문이 확 열린 것이다. 어머니와 엄마는 다르지 않을까? 어머니, 그에게 부여된 모습이다. 의무를 따라서
당연히 살아야 했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마가 있다.
엄마라는 어휘가 한국에서는 훨씬 포근한 정을 느끼게 한다.
벽을 허물고 마음을 열고 다가갈 때
재발견하는 엄마가 있었다. 위로 받지 못한 채 한평생 살다가 소외된 채
지금 9개월이 되도록 못찾고
실종상태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그러니까 엄마가 살아 계실 때 희생만 하신 엄마께 잘 해드려야지.
그러나 자식들도
각자 가정을 가진 현실 속에서 특별한 노력과 정성과 관심 없이는 쉽지 않다.
오승근의 있을 때 잘 해 노래가 생각난다.
4. 소설의 결말
이소설의 결말은 이렇게 적고 있다.
실종된지 9개월이 되어도 아직 못 찾은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큰딸은 로마 바티칸 성당으로 날아간다.
거기서 엄마가 평소 부탁했던 장미나무 묵주를 사서 들고
성모마리아 상 앞에 서서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냄새를 진하게 느끼게 되고
성모마리아 상을 향하여 " (실종된) 엄마를 부탁해요" 라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5. 종합평가
누구에게나 후회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 일은 나이, 성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늘 늦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가 그것이다. 가까이 있을 때,
생존해 있을 때는 알지 못하던 것이 부모가 돌아가신 후
그분들에 대한 마음으로 주체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효라고 한다.
이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에 대해
자식이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일찍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효도는 쉽지 않다.
우리는 흔히 ‘내리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부모에게 받은 가없는 사랑을 자식에게 쏟아 부은 것으로
위안 삼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 삼더라도 가시지 않은
마음속 부담은 무엇인가? 태어나면서부터 안고 있는 원죄처럼
부모를 가슴에 담은 속내와는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꼭 돌아가신 후에야 다하지 못한 마음을
부여잡고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답은 없는 것일까?
인간의 이러한 마음을 헤집는 작품을 만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을 통해 애써 외면해왔던 마음속 불편함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내 마음에 담긴 부모에 대한 애틋함을 다 하고 있는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가족 구성원 중 큰아들과 큰딸, 아버지의 고백이 담겨 있다.
그들은 제 각기 방식으로 엄마를 가슴에 담아두었고 그렇게 담긴 엄마라는 존재는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이 당연시되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사라진 후, 하나 둘 되살아나는 기억 속에 그들이 놓치고
지나왔던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식들, 남편이 토해놓는 절망적인 후회는 이해가 간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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