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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Re:緣起가 中道? 三諦偈
봄봄 추천 0 조회 105 18.04.30 22:31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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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04.30 22:35

    첫댓글 위대한 선학들께서 모두 [緣起 = 中道]라고 말씀하신다면
    받아들여야....????

    緣起가 苦滅道와 동의어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 않나요?

  • 18.04.30 23:21

    연기는 고성제임이 확실하지요.
    고멸도성제는 연기를 역행시키는 길입니다.
    글므로 연기를 열반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지요.
    마라가 없음 붇다도 없으니

  • 18.05.02 02:59

    '봄봄'님의 .............

    [*正見(中道)에 의하여 즉 中에 의하여 法=緣起을 드러낸다....는 그나마 따라 갈 수는 있습니다.]라는.........
    표현은 ........... 좀 ..... 문제가 많은 표현입니다.

  • 18.05.02 03:04

    첫째, 부처님께서는 <중도(majjhimā paṭipadā)에 의해서 法을 드러내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직 <중에 의해서(majjhena ) 法을 드러내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중도'와 '중'은 다른 표현이라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 경전에

  • 18.05.02 03:08

    @아위자 중도(majjhimā paṭipadā)는 <팔정도로 대표되는 '37조도품'>을 지칭하는 표현이시고요.........
    중에 의해서(majjhena )는 <촉멸, 현재, 비고비락, 식, (육)識, 유신의 멸>을 지칭하는 표현이거든요......

    그 둘을 혼동하시면 ....... 아예 처음부터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고요..........

  • 18.05.02 03:17

    @아위자 둘째, <法=緣起(paṭicca-sam-uppāda)>라는 공식을 부처님께서는 지적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 <法=緣已生(paṭicca-sam-uppanna)>이라는 공식을 말씀하셨습니다.

  • 18.05.02 03:19

    @아위자 쌍윳따니까에서, 緣起(paṭicca-sam-uppāda)와 緣已生(paṭicca-sam-uppanna)은 엄격하게 구분되어 설명되는 용어이고요.......

  • 18.05.02 03:24

    @아위자 <사물들(things)이나 사건, 현상 등등>은 <緣已生(paṭicca-sam-uppanna)의 법들(dhamma)>에 대한 번역어로서 사용될 수는 있으나, <緣起(paṭicca-sam-uppāda)의 '번역어'>로써 그러한 표현들을 사용한다면 .....그 양반은 '정신병자'이고요..........

  • 18.05.02 03:30

    @아위자 같은 이유로..... 소위 연기의 공식이라고도 말해서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다고 한다면 저것도 없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연기의 공식>이 아니고 <緣已生(paṭicca-sam-uppanna)의 법들(dhamma)의 '공식'>입니다. .......... 워낙에... 학자들이 <연기의 공식> 云云 하므로 ........ 일반인들께서는 "그러려니~"하시지만 ..... 그와같이 부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 학자로써 <웃기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요......

  • 18.05.02 03:40

    @아위자 '아위자' 자신도 논문에서 <연기의 공식> 云云 하는 것은 ....... 일일이 <緣起(paṭicca-sam-uppāda)와 緣已生(paṭicca-sam-uppanna)의 '차이점'>에 대하여 지적하기가 귀찮아서이고요....... ㅋㅋㅋㅋㅋㅋ ....... 사실은.... '차이점'을 설명하게되면...... <전혀 다른 용어>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

  • 18.05.02 03:46

    @아위자 소위 '法眼(=集한 법은 滅하는 법이다)'이라는 것은 <緣已生(paṭicca-sam-uppanna)의 법들(dhamma)에 대한 '앎(=안목)'>을 말하는 것인데요........

  • 18.05.02 04:09

    @아위자 일전에 '우뻬까'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학자 분께서 <연기설을 둘러싼 쟁점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카페에 소개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제가 알기로는 본인의 논문을 소개하신 것인데요...... 논문을 쓰신 필자 분은 <연기란 단지 '마음의 작용'을 다룰 뿐>이라는 주장을 하시는데요........ ㅎㅎㅎㅎㅎㅎㅎ
    근거는 .......... 모든 사물들이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라는 식으로 '연기'를 이해하는 것은 '연기에 대한 오해'라는 지적입니다. '아위자'도 그렇게 봅니다.

  • 18.05.02 04:12

    @아위자 '연기'란 그런 것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 18.05.02 04:16

    @아위자 <연기란 단지 '마음의 작용'을 다룰 뿐>이라는 주장은 좀........ 지나친 주장이기도 합니다. '아위자'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

  • 18.05.02 08:56

    @아위자 <緣已生(paṭicca-sam-uppanna)의 법들(dhamma)>이라는 표현이 지칭하는 바는 .........
    정신적인 것들[=名]과 물질적인 것들[=色]을 모두 지칭하는 것인데요....... 곱씹어 지적하면 名[=인식론적인 것들]과 色[=존재론적인 것들]을 모두 함께 지칭한다고 보아야 하는데요........
    <非色인 심의식과 色과의 관계>에서 無色인 名이 생겨나 .......면 ........ 그 '名'은 이미 '色'과 관련되어져서 생겨난 것입니다. ....... 제 추측으로는 ....... 아마 이 때 쯤에서 五慾樂(pañca kāmaguṇa)이라는 것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無色界의 '존재'들>도 어느 정도 수준의 五慾樂(pañca kāmaguṇa)을 즐기기에.........

  • 18.05.02 08:58

    @아위자 <그 즐기는 정도>가 심해지면 色界로 하강하는 것 같구요.....

  • 18.05.02 09:35

    @아위자
    五慾樂(pañca kāmaguṇa)의 주범은 '識[=非色]'인데요...........
    <그 즐기는 정도>가 더더욱 심해지면 <色界 내부의 慾界(kāma-dhātu)에 이르게 되는 것>인데요.......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하셔야 하실 점은 ...... 흔히 '世間(loka, 세상)'이라고 하면 三界를 지칭하는 용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世間(loka, 세상)의 끝에 도달한다>는 말은 <'三界의 끝'이나, '苦의 끝'이나, '윤회의 끝'에 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위자'가 <정도문제일 뿐이지 '無色界 존재들도 五慾樂(pañca kāmaguṇa)을 즐기고 있다'>라고 지적하는 것은...... 그들도 <世間, 苦, 윤회>에서 벗어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지적임.


  • 18.05.02 09:43

    @아위자 五慾樂(pañca kāmaguṇa)의 주범이 '識[=非色]'이라는 지적은...... '無色界의 존재들'도 '識[=非色]'을 지니고 있기에 <世間, 苦, 윤회>에서 벗어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지적을 하는 것입니다.

  • 18.05.02 09:54

    @아위자 혹자는...... '아위자'의 지적이 <사소한 지적이고 당연한 지적>이라고 여기실지 모르지만...... ㅎㅎㅎㅎㅎㅎ .... <'識[=非色]'의 스펙트럼>이 無色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은 <땅하(愛)의 스펙트럼>도 無色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이고요...... <'世間, 苦, 윤회'의 스펙트럼>도 無色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 18.05.02 10:10

    @아위자 악마 빠삐만이 <三界에 골고루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유>도 .... 빠삐만의 境界(visaya)인 五慾樂(pañca kāmaguṇa)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그 五慾樂(pañca kāmaguṇa)의 주범이 識이라는 반복되는 지적을 하는 이유는 ....... <12연기의 유전문>에 거론되는 非色은 <심(citta)도 아니고 의(manas)도 아니고>요...... 識입니다. ....... 唯識(오로지 識)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요..... <三界唯識>이라고 표현해야만 정확한 표현이 되는데요....... 예를 들어 삼계에서, <심(citta)+무명=식>이고 <의(manas)+무명=意識>이기에 그러한 표현을 하시는 것이고요....... 만약 <심(citta)+明=반야>가 되거나 <의(manas)+明=반야>

  • 18.05.02 10:11

    @아위자 가 되면은 <삼계해탈>이라는 것인데요......

  • 작성자 18.05.02 10:14

    @아위자 //중도(majjhimā paṭipadā)는 <팔정도로 대표되는 '37조도품'>을 지칭하는 표현이시고요.........
    중에 의해서(majjhena )는 <촉멸, 현재, 비고비락, 식, (육)識, 유신의 멸>을 지칭하는 표현이거든요......

    그 둘을 혼동하시면 ....... 아예 처음부터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고요.......... //

    위 말씀은 봄봄이 항상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법=연기, 혹은 연기법 연이생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본 카페에서 의견을 드린 적이 있으나
    다시 한번 별도의 글에서 의견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여튼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_

  • 18.05.02 10:14

    @아위자 그러한 논리가 <慧해탈의 논리>입니다.

  • 18.05.03 19:24

    @아위자 먼저 본문을 작성해 주신 봄봄님과 댓글을 작성해주신 아위자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위위 맥락에서 한 가지 질문이 있어서 이곳에서 질문을 드리는점에 양해를 바랍니다.
    명+의/ 심 = 반야 의 공식에서
    명과 반야의 차이가 궁금하구요.
    제가 이해하기에는 반야를 연이생이 아닌 연기로 이해가 되어 이점에 대해서 한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

  • 18.05.06 00:27

    @물마 ‘안지혜명광(眼智慧明光)’이라는 오득과(五得果)는 깨달음의 과정에서 거의 동시에 생겨나는 것으로 니까야는 언급하는데요......... 거기에서 ‘혜(慧)가 반야’고요, ‘명(明)이 삼명(三明)’을 지칭하는 말로서, 명(明)은 무명(無明)의 반대말입니다.
    ‘안→지→혜→명→광(眼智慧明光)’의 순서에서 보듯이 앞에 위치해 있는 것이 개념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고 뒤로 갈수록 개념이 보다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이해되는대요.... 수준적인 측면에서는 뒤에 위치하는 것이 탁월한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 18.05.06 00:32

    @물마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면 .........안(眼)은 <육안(肉眼), 천안(天眼), 법안(法眼), 혜안(慧眼), 불안(佛眼)>이라는 스펙트럼을 갖는데요 ........ 불안(佛眼)은 삼명(三明)자를 지칭하는 안(眼)입니다.

  • 18.05.06 00:40

    @물마 반면에, 慧解脫자는 ...... 慧眼만 지니고 있는 것인데요.....
    <혜해탈자---두 길로 해탈한자(양분해탈자)----삼명자>라는 '慧眼의 스펙트럼'이 있구요......
    삼명자의 천안은 '못 보는 자'가 없는 수준의 천안이고요, 삼명자의 법안은 '제법이 현현'한 수준의 법안이고요....... 삼명자의 혜안은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이 모두 '혜(=반야)인 수준의 반야'입니다. 실로 굉장한 수준의 반야이지요........

  • 18.05.07 10:31

    @아위자 아위자님의 친절하고 세심한 맑고 밝은 안목에서 자비를 봅니다.감사합니다.()

  • 18.05.14 12:05

    고맙습니다 ㅡ()ㅡ

  • 작성자 18.08.27 19:01

    龍樹는 이 중 還滅門의 緣起說만을 논리적 오류가 없는 연기의 표현으로 간주한다.
    용수는 제1 관인연품에서 심지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연기공식조차 비판한다. <*비판 받는 부처님ㅠㅠ>
    .
    yaḥ śūnyatāṃ pratītyasamutpādaṃ madhyamāṃ pratipadaṃ ca
    ekārthāṃ nijagāda praṇamāmi tamapratimabuddham: 廻諍論, 第71頌
    空性과 緣起와 中道가 하나의 의미임을 선언하셨던 분,
    함께 견줄 이 없는 붓다이신 그 분께 예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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