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시대 법흥왕 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새로운 사찰의 건립 소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사찰 건립 후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였으며, 문무왕 10년(670년)에 무설전을 새로 지어 화엄경을 여기서 가르쳤다고 하며, 그 후 경덕왕 10년(751년)에 드디어 김대성이 크게 개수하면서 오늘날 불국사에 상징물로 알려진 탑과 다리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대성이 불국사 창건자로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전생(이전 생애)의 부모님을 기리기 위하여 석불사(석굴암)를, 현생(이번 생애)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속세에서 불국토로 들어가는 입구(입장료가 1인당 4천원, 65세 이상은 무료)

불국사 입구에서 천왕문까지 가는 길목

가는 중간에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엄청나게 큰 잉어들이 노닐고 있었음.

드디어 청운교 앞마당에 도착했으나 소나무에 가려 잘 보이질 않네요.
동쪽에 있는 2단의 석계가 있는데 아래 것을 청운교, 위의 것을 백운교라 한다. 청운교는17단으로, 청운교 위의 백운교는 16단으로 되어 있다.

이 위치에서 가장 사진이 잘 나온다는 플폭님의 충고처럼 사진이 잘 나왔네요.


에밀레종(?) ->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사항의 상세 설명 참조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스님들의 수행도량 입구)

담너머로 초록색 연등이 보이네요.

대웅전 근처를 제외하고는 한적한 편임

현존하는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웅전은 중앙에 위치하여 남향하였고, 그 앞에 석등이 있으며, 다시 그 앞의 동서에 각각 석탑 1기가 서 있다. 동쪽 다보탑(국보 20호)의 기묘하고 정밀한 형태는 유례가 드물고, 서쪽 석가탑(국보 21호)은 예로부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이 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의 아내 아사녀가 남편을 찾아와서 탑이 완성되어 영지(影池)에 그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이라고도 부른다.

대웅전 왼쪽에 있는 석가탑

석가탑은 3층석탑으로 이 속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본이라고 한다.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다보탑

다보탑과 석가탑

청운교와 백운교(아름드리 소나무에 가려 잘 보이질 않네요)

긴 나무(대나무?)를 이용해 물이 졸졸 나오는데 물맛이 좋은 편임
<참고사항 ; 에밀레종에 대하여>

종 목 : 국보 제29호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시 대 : 통일신라
제작기간 : 34년
1. 에밀레종의 재원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실측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구리와 주석을 85:15 비율로 합금한 청동종이다.
2. 에밀레종의 역사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20여년에 걸쳐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불렀다. 전체 제작기간은 34년에 달했다고 한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종이 부셔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젖먹이 아기를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 따서 에밀레종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봉덕사에 걸었던 것을 조선조 1460년(세조 6) 영묘사(靈妙寺)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3. 에밀레종의 전설
전설에 의하면 에밀레종을 만들 때 어린 아기를 넣었다고 한다. 34년간의 제작기간동안 많은 종들이 만들어졌지만 원하는 음을 내지 못하고 깨져버리는 일들이 발생했다.
당시 사람의 뼈에 들어있는‘인(燐, P)’ 성분은 합금을 만들 때 합성을 용이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고 알려 있었다. 사람의 몸에 많은 '인'은 청동의 주조성을 좋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쇠나 청동불상 등에는 이 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에밀레종처럼 복잡하고 정교한 종을 주조하는데 인은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결국 종을 만드는 책임자 종장인 미추홀은 왕명으로 젖먹이 아이를 그 어미로부터 시주받아 쇳물위에 던져 종을 완성시킨다.
그런데 타종을 하는데, 그 음이 마치 어미를 원망하는 듯한 '에밀레- 에밀레-' 소리같이 들렷고 이후로 이 전설과 함께 에밀레종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첫댓글 옛날에 몇번갔다온 기억은 있지만 사진으로 보니 기억이 새롭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봄날들 되시길...
현생의 부모를 기리기위해 불국사를 창건하였듯이, 부모님을 기리기 위해 추모제 행사를 하고 불국사를 방문한 것은 상당히 뜻 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국어선생님에게 들은 에밀레종의 관한 이야기 한토막은, 어느 스님이 종을 만들기위해 시주를 받으려 다니는데 어느 시골의 가난한 집에 들어가니 마침 그아넥네가 젖을 먹이고 있는지라 시주를 부탁했더니 그 아낙네 왈! "스님 우리집에는 지금 쌀 한톨도 없고 있는것은 이 아이 뿐이라오. 이 아이라도 가져가시려면 가져 가시요." 하고 농담을 했더랬습니다.그후 그 스님의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서 약속한 그 아낙의 아기를 가져다 종을 만들면 더 이상 종이 깨지는 일이 없다고 해서 실수한 그 말 때문에 그 아기를 억지로 뺏아 헌물로 드렸다고 하니 헛말이라도 우리가 조심해야 할것을 경고하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