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화관광해설에 수고하시는 분들 잠시 쉬어가시라고 성냥이야기 올립니다.
방금 경주신문에 투고했던 글인데// 역사적 지식이 아직은 얇아 혹시 부분적으로 오류가 있더라도 양해하시고 부담없이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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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광노(引光奴): 성냥의 유래
추석이다! 仲秋節! 들판에는 오곡이 무르익고 과일들도 영그는 때,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때이므로 모두들 새 옷으로 갈아입고 햅쌀밥과 송편을 빚어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고 제사를 지내는 추석명절은 설날, 단오절과 함께 우리민족의 삼대 명절의 하나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명절이나 제삿날 제사상 앞에서 갑자기 당황스러운 적이 많다. 평소에 담배를 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궁이가 아닌 기름보일러 집이고 또 가스레인지 덕분에 집에 성냥이나 라이터가 귀하다 보니 향이나 초에 불을 붙이지 못해 당황스런 경험은 누구나 한번 쯤 겪는 게 흔한 일일 것이다.
성냥! 강원도 사투리로는 ‘다황(多黃)’이라고도 한다. 일본말로는 ‘인촌(燐寸),マッチ’라고 한다. 전깃불이 들어오고 주방이 현대화 되면서 그 가치가 떨어졌지만, 불과 이 삼 십년 전 만해도 소중한 생활필수품이었다. 남자들은 길가다가도 ‘성냥불 좀 빌립시다!’는 말로 담배를 꺼내어 말을 걸곤 하였다. 어린 시절 성냥가지고 장난치다 크고 작은 불을 낸 추억도 흔하였다.
최근에 역사고고학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갑자기 성냥은 언제부터 유래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성냥이라는 낱말은 허준(許浚)선생이 선조임금의 왕명을 받아 내의원(內醫院)에서 편찬한 책인《언해태산집요(1608)》에 나온 옛말 "셕류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 성냥은 ‘나뭇개비나 긴 판지(板紙) 조각 또는 다른 적당한 가연성 물질을 마찰시켜 발화될 수 있는 물질이 묻어 있는 발화도구(發火道具)’라고 한다.
현대의 마찰성냥은 딱성냥과 안전성냥이 주종을 이룬다. 딱성냥의 머리 부분에는 마찰열에 의해 발화되기 쉬운 화학물질이 칠해져 있다. 반면 안전성냥의 머리 부분은 상당히 높은 온도에서 발화되며, 발화가 일어나도록 특수하게 만든 화학성분이 칠해져 있는 표면에 마찰시켜야 한다. 마찰열에 해당하는 온도에서 연소시키기 위해 보통 인 화합물을 발화제로 사용한다. 이 물질은 딱성냥의 머리 부분과 안전성냥의 마찰면에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인촌(燐寸)’이라 했다.
현대의 성냥을 발명하기 전에는 한 가연성물질에서 다른 가연성물질로 불꽃을 옮길 수 있는 황과 같은 가연성물질을 바른 나뭇개비가 사용되었다.
1805년 장 샹셀은 파리에서 염소산칼륨·설탕·고무가 묻어 있는 얇은 나뭇개비들을 황산에 담그면 발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보통 최초의 인 마찰성냥을 만든 사람은 1816년 파리의 프랑수아 드로슨 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성냥이 들어오기 전에는 부싯돌을 사용하다가 소나무를 얇게 깎아서 이 끝에 황을 찍어 말린 것을 화로에 보존한 불씨에 붙여서 발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1880년 개화승인 이동인이 일본에 수신사로 간 김홍집과 함께 귀국할 때 성냥을 들여왔다고 전한다. 1910년 일본사람이 인천·수원·군산·부산 등지에 성냥공장을 세우면서부터 대중화되었기에 ‘인천에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가사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성냥이 도입되기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얇은 소나무 끝에 황을 찍어 말린 것을 화로의 불씨에 붙여서 발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연유는 서양보다 중국에서 성냥이 먼저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고대과학사에서 성냥의 발명은 지금으로부터 14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신라는 중국황제로부터 ‘oooo郡公新羅王’이라는 작위를 받는 식으로 중국과의 외교적 절차를 통해 교류를 하여왔다. 진평왕은 수나라 황제로부터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 선덕여왕은 당나라로부터 ‘주국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봉해지는 등의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이런 중국과의 책봉을 처음 받은 신라왕은 진흥왕 때이다. 진흥왕 25년(564년)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을 했고, 이듬해인 재위 26년(565년)에 북제의 무성황제가 진흥왕에게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이라는 조서를 내린 것으로 삼국사기는 전한다.
북제(北齊, 550년 ~ 577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439년 ~ 589년) 중에 한족화한 선비족 고씨(高氏)에 의해 건국한 왕조이다. 국호는 제(齊)이지만 남조의 남제(南齊, 479년 ~ 502년)와 구별하기 위해 북제라고 불리었다.
당시 화북은 군사력은 서쪽(서위, 북주)이 높고 동쪽(동위, 북제)이 낮고, 경제는 동쪽(북제)이 높고, 서쪽(북주)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북제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돌궐과 결탁해 거란을 제압하고 북주군을 여러번 격퇴하였으나 5대황제 고위(高緯)가 소인배를 신임하여 그들의 참언으로 인해 북제의 군사력을 지탱하던 곡률광, 난릉왕 등의 명장들을 처형하는 등의 실정을 거듭하다가, 577년 북주에게 멸망당했다.
577년 북제가 멸망할 즈음에 양 사방 군대의 포위로 북제의 황궁은 혼란스러웠지만 가장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황궁의 ‘여관(女官)’, 즉 궁녀들이었다고 한다. 전쟁 중에도 밥은 지어야 하고 난방도 해야 하는데 양 사방이 적의 군대에 포위되었으니 점화시킬 것이 없어 고민하던 중 어느 지혜로운 선비로부터 비법을 알아낸 것이 유황을 묻힌 작은 소나무 막대를 고안하여 준비해두었다가 화롯불씨 등에 살짝 가져만 가도 타오르는 성냥을 발명했다고 한다, 이 신기한 것을 처음에는 ‘인광노(引光奴):빛을 나르는 노예’라고 불렀으나, 후에 상품화되자 이름이 ‘화촌(火寸: 1촌 길이의 불막대)’으로 바뀌었다 한다. 일본은 ‘화촌’ 대신 ‘인촌(隣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럽인들은 마르코폴로의 시대에 중국을 방문하여 1270년 경에 항주(抗州)의 시장에서 성냥을 처음 구경하였다고 한다.
추석이다! 차례상을 모시면서 무심코 향불을 붙이는 성냥의 유래를 살펴보았다. 요즈음이야 사용빈도가 적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성냥의 유래 속에서 북제의 마지막 다급했던 황실의 상황 속에서 성냥이라는 위대한 발명을 했던 궁녀들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 기록상으로 진흥왕에게 ‘신라왕’이라는 책봉을 내린 북제황실에서 성냥이 발명되었다니 친근함 마저 든다.
추석이 지나면 가을이 저물 것이고 추운 겨울과 함께 ‘산불조심’의 현수막이 여기 저기 걸리는 철이 다가올 것이다. 작은 불씨라도 너도나도 조심하여 소중하게 가꾼 삼림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는 불행을 예방하고, 특히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남산과 토함산의 문화재 보호및 보존을 위해서도 너도 나도 더욱 불조심을 하자는 차원에서 역사기록 속에 있는 성냥의 발명유래에 대해 알아 보았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성냥을 가장 먼저 사용한 때도 중국과 문화교류 기록을 고려할 때 진흥왕 무렵이 아니었는가 생각해본다. 그 즈음부터 흥륜사, 황룡사를 중심으로 신라불교가 성냥개비 불처럼 활활 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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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역사를 보다 유익하게 잘 해설하시려면//
통일신라시대 교류하던 당나라 역사보다도//
위진남북조시대의 중국사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한반도에 불교에 영향을 더 많이 주고 받은 것 같아서 북제의 성냥이야기를 졸필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수고하세요.....
신문투고글이라 한정된 량에 정리하다보니 요약되어 앞뒤연결이 조금 부족하겁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귀한자료 해설하다 가끔 써볼께요
가을빛이 제법 투명하죠
몹시도 그리운 계절이 도래하면, 詩를 읽고 음악을 듣고
茶를 마시고...
맑은 눈물방울에 맺히는 그리움들을 가을햇살에 늘어말려야 겠지요
늘 건강하시고. 귀한자료 잘 읽었어요
중국불교사에 4번의 불교탄압이 있었는데 이를 '삼무일종의 법난'이라고 합니다. '북위 태무제[太武帝, 408~452]', '북주 무제[武帝, 543~578] ', '당 무종(唐武宗, 814년 - 846년)', '후주 세종[世宗, 921~959] 때에 불교교단에 가해진 박해를 말하는데, 세 황제는 ‘무’자 이고 한 황제는 세종의 ‘종’자를 합쳐 ‘3무1종’의 법난 이라고 합니다.
이중 북주의 무제(재위(543년-578년) 황제가 북제를 577년에 멸망시켰는데, 그 때 북제의 황실에서 성냥이 발명되었답니다.
참 역사 이야기 알수록 재미도 있고/ 호기심도 늘어나고/ 그러기에 경주문화해설사님들의 수고가 소중한 일이겠지요..
김경애님 잘 계시지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기고하신 글 경주신문을 통해서 잘 보고있어요
안부가 궁금해서 시니어선생님 뵈면 안부를 여쭙기도 하지요
경주를 사랑하는 열정으로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