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조족지혈(曺族之血)’ 자서전
선우정 논설위원
입력 2021.05.29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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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도 자서전을 쓴다. 감형 가능성이 없는 흉악범일수록 솔직하다고 한다. 이런 자서전은 베스트셀러도 되고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다. 연쇄살인범 에일린 워노스의 자서전 ‘몬스터’는 영화로 만들어져 주인공 여배우에게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안겼다. 반대로 무죄를 받거나 유죄를 받아도 감형 희망이 있으면 솔직하지 못하다. 거짓과 변명으로 이야기를 꾸며낸다. 오 제이 심프슨의 자서전 ‘IF I DID IT(내가 했다면)’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향은 화이트칼라일수록 심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서전 유형이다. 김경준의 ‘BBK의 배신’, 신정아의 ‘4001’이 그랬다. 세상 앞에서 벌거벗는 기분으로 자신의 사기 행각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면 한국 사회와 권력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의미 있는 서사(敍事)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변명하고 미화하고 거짓까지 보태 종이만 낭비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조만간 자서전 두 권이 이 대열에 합류할 모양이다. ‘한명숙의 진실’과 ‘조국의 시간’이다. 한씨는 “10년간 슬픔과 억울함으로 꾹꾹 눌러 진실을 썼다”고 했다. 뇌물을 받은 사람의 억울함과 진실은 무엇일까. ‘대변에 향수 뿌리기'라는 어느 평론가의 논평이 지나친가. 조국씨는 소셜미디어에 집필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 내려가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꾹 참고 썼다.” 그러자 바로 신조어가 탄생했다. ‘조족지혈(曺族之血)’. 조국 가족의 피라는 뜻이다. 앞으로 조씨 지지자들은 이 말을 하찮다는 뜻의 원래 의미(鳥足之血·새발의 피)와 정반대로 사용해야 할 듯하다.
▶이청준은 소설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자서전을 원하는 사람에 대해 “적나라한 진실을 증언할 용기도 없고 자신의 과거와 상관없는 새로운 내력을 갖고 싶어 자신의 삶을 거짓 증언한 위인들”이라고 했다. 진실을 증언할 용기가 있었다면 조씨는 이미 법정에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때마다 침묵했다. 하루 300번 증언을 거부한 적도 있다. 이러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자서전인가. 이것은 또 어떤 위선인가.
▶자서전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매우 어려운 장르에 속한다. 참회록을 쓰듯 써야 최소한의 진실에 겨우 다가간다고 한다. 조씨가 그렇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조만대장경’으로 불리는 자신의 위선을 반성해도 책 몇 권은 나올 것이다. 윤동주의 시 ‘참회록’ 일부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이런 자세로 쓰면 된다.
※기사가 나간 후 창녕 조씨(昌寧曺氏) 문중의 독자분으로부터 ‘曺族(조족)’ 표현에 대해 항의 메일을 받았다. “글을 읽으면 창녕 조씨 모두를 칭하는 말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지만 ‘曺族’만 보면 창녕 조씨 씨족의 전체로 오해되는 표현으로 확대돼 상당히 언짢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읽고 특정 문중을 나타내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을까 고민했으나, 한글로만 표기할 경우 의미 전달이 어렵고 독자분 관점대로라면 오히려 오해가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다시 그 의미를 부연하는 것으로 문중의 이해를 부탁드린다. 기사의 ‘조족’ 표현은 조국 전 장관이 “펜으로 피를 찍었다”고 한 일부 가족 구성원을 가리키는 말로 특정 성씨에 대한 입장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선우정 논설위원
배정호
2021.05.30 18:46:08
참 표현이 너무 어울린다. 우째 그런 훌륭한 사자성어 비교를.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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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2021.05.30 16:35:30
조족지혈! 캬아 기가 막힌 촌철살인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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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완
2021.05.30 15:13:22
조씨 문중은 조선일보보다 조국 전 장관에게 먼저 항의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님 조국과는 반대로 조씨 문중을 빛내왔고 지금도 빛내고 있는 수 많은 조씨 위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조용히 기다려보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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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2021.05.30 14:42:47
曺族之血로 피를 찍어 책을 썼으면 책이 새빨갛겠네?....... 물론 새빨간 거짓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썼겠지?....... 무슨 이런 세상이 다 있냐?...... 기본양심이란 것도 없는 것들이 죄는 있는대로 저질러 놓고 뭘 잘했다고 뻔뻔스럽게 가증스런 변명의 책까지 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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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2021.05.30 13:23:59
자신들이 지지하는 세력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글로, 기사로 무차별 공격하는 기자와 언론도 흉악하다고 할수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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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두
2021.05.30 13:09:33
지금까지 알려진 비리 부패가 조족지혈이라면, 얼마나 큰 비리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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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
2021.05.30 12:36:31
옛날엔 집안에 이런 이상한 자가 있어면, 멍석말리이라도 해서 갔다버린다던데, 창녕조씨님들 어떻게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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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2021.05.30 10:08:14
저런 미꾸라지 한 마리때문에, 평생 벼슬을 거부하고 후학양성하며 단성소 올린 남명 曹植의 집안으로서는 분통터질 일이겠다. 자칭 학자라는 놈이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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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홍
2021.05.30 09:56:09
명수기와 구기가 억울한 심정도 일견 이해가 갑니다. 나보더 더많은 수십억, 수백억원을 해쳐먹은 OOO을 알고 있는데 왜? 나만 욕먹고 감방가(갈 예정이)나 울화통이 터지겠지요. 더구나 말로는 자기들 처지를 분기탱천 하듯 억울해 하는것 같으면서 뒤로는 고소해 하는 일부 지인들의 이중성을 눈치백단 명수기와 구기가 모를리 있을까요? 이왕 자서전 쓸바에 투욱 털어 놓으시죠. 화병으로 더 골병들기 전에~ 화병은 암, 뇌경?? 뇌출혈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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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미
2021.05.30 08:30:44
혼자 읽기 아까운 사설, 주변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픈 말을 , 품격있게, 날카롭게, 정확하게 표현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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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섭
2021.05.30 08:07:21
창녕조씨 문중분들도 조국 이 자를 싫어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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