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칼럼
삼성포에버 23가을호
2023년 9월24일
테마별로 최고의 명당을 찾아 발로 걸으며 답사한 곳,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상위를 랭크하는 5대 대학병원을 탐방하였다.
삼성퇴임임원 회보 "Samsung Forever 23년 가을호" 표지 사진, 2022년 11월 2일 장성 백양사 쌍계루에서 찍은 사진이 표지 사진으로 올랐다.
삼성포에버 목차, 여기에 풍수기행을 연재한 지 7년 28회 차에 이른다.
1885년 고종이 문호를 개방하고 국내 최초로 서양식 병원 제중원을 설립하였는데 우리나라 병원이 세계적 병원으로 성장하였고 세계 최장수 국가 2위에 들었다. 뉴스위크지가 평가한 상위 250대 병원에 우리나라 병원이 18개나 들어갔다. 미국, 독일에 이어 3위를 랭크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신촌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우리나라 상위 5대 병원을 탐방해보니 그 입지도 최고의 명당에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의료강국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썼다.
삼성 퇴임임원 회보, SAMSUNG Forever
2023 가을, 118호, www.samsungforever.com
최고의 명당에 자리 잡은 대학병원
글·사진 김정인 회원
우리나라가 세계장수 국가 2위에 올랐고 평균 수명이 84세가 넘었다. 장수국가가 된 데는 생활 여건의 개선 등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그중에도 의료기관이 큰 역활을 했다. 우리나라 병원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과 입지적 특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대학병원 탐방에 나섰다. 서울대 병원을 시작으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가톨릭 서울성모병원 등 5대 대학병원을 탐방하였다.
대한의원을 계승한 서울대병원
1884년 발생한 갑신정변 와중에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고 있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서양인 의료 선교사 알렌이 치료하여 생명을 구했다. 이를 계기로 고종의 시의(侍醫)가 된 알렌은 병원 설립안을 제출하여 1885년 재동(현재 헌법재판소)에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을 설립했다. 고종이 제중원을 설립한 후 1907년에는 광제원(廣濟院), 국립 의학교육 기관이었던 의학교(醫學校)와 그 부속병원, 대한국 적십자병원을 통합하여 대한의원을 설립하였다. 대한의원은 당대 동아시아에서 손꼽을 정도의 규모와 시설, 의술을 자랑하는 근대식 병원이었다. 대한의원 설립을 계기로 한국의 의학과 의료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으며, 이곳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의사들은 한국 사회에 서양 근대의학을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인해 대한의원은 1947년 서울대학교병원으로 계승되었다.
서울대가 위치한 곳은 창경궁의 동쪽으로 좌로는 응봉에서 낙산으로 이어지고, 우로는 창덕궁, 종묘로 이어지는 안쪽에 야트막이 솟은 마두봉 언덕이다. 1907년 고종은 최고의 명당을 찾아 대한의원을 이곳에 지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함에도 서울대 병원은 이 터를 100년 이상 지켜왔다. 명당은 세월이 흐르고 주인이 바뀌어도 명당의 기운이 흐르고 있다.
서양 선교사가 세운 세브란스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역사 조선의 고종이 세운 재중원을 시작으로한다. 재중원을 운영하던 조선 정부와 공동 운영하던 언더우드 등 미국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정부의 간섭으로 선교활동에 마찰이 생기자, 제중원 운영권 이관을 요청하여 조선 정부가 받아들이자 자유로운 선교활동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을미사변,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등으로 혼란한 정국 와중에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1899년 미국의 사업가인 루이 헤니 세브란스(1838~1913)가 거액의 지원금을 쾌척한다. 1904년 남대문 밖 복숭아골(현재의 서울역 건너편)에 새로운 병원을 완공하여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름 지었다. 세브란스 병원은 조선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 되었다. 1909년 제중원을 세브란스 의학교로 고쳤고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로 발전하였다. 해방 후 세브란스 의과대학과 연희대학교로 운영하던 중 1957년 양교를 통합하여 연세대학교가 되었다. 이후 서울역 앞 세브런스병원 부지가 좁아 신촌으로 확장 이전하여 오늘날의 연세대학교 캠퍼스와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하였다.
제중원의 정통성을 두고 서울대 병원과 다툼이 있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대 병원과 세브란스 병원은 제중원의 뿌리가 같다. 제중원을 풍수적으로 살펴보면 사대문 안의 북촌마을 입구의 명당지역이다. 터의 이력으로 보면 조선 말기 개화파 홍영식의 집터였고 바로 근처에는 대원군의 사저이자 고종의 잠저인 운현궁이 있는 명당지역이다.
남대문 밖 복숭아골의 세브란스 병원 터는 남산 아래 사대문의 입구이며 경부선. 경인선의 시발지인 서울역 건너편으로 이곳에서 많은 구호 활동과 선교활동을 펼칠 수 있었고, 세브란스 병원을 신촌으로 이전 후에는 시내 중심지라는 이점때문에 주요 임대 수익원이 되었다.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 터는 말안장같이 생긴 안산 아래 연세대의 중심 용맥을 탄 끝자락으로 주변의 산과 도로가 환포하는 최고의 명당지역이다.
장례문화를 바꾼 삼성서울병원
삼성, 현대, 대우 등이 기업의 규모가 커지자, 사회복지와 국민건강을 위하여 병원 설립과 의과대학 설립을 시작하였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을 설립하고 성균관대 경영에 참여하여 성균관대에 의과대학을 열었고,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서울아산병원을 개원하였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수원에 아주대병원을 세웠다.
삼성의 경영이념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였다.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열악하던 시절, 공익사업 차원에서 기업인이 병원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삼성에서 삼성서울병원을, 현대에서 서울아산병원을, 대우에서 아주대병원 등을 세웠다. 병원을 세운 지 30여 년이 되었는데 세계적 병원으로 성장하였다.
삼성서울병원은 1984년에 대모산 아래 일원동 구릉지 부지를 매입하여 1994년에 개원하였다. 삼성병원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전착후관의 명당터에 자리 잡았다. 삼성병원은 산과 건물로 둘러싸인 가운데 높이 솟았다. 그중에서도 암병원이 삼성병원 중심부에 위치한다.
병원 밖으로 나가면 병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 언덕을 만난다. 본관과 암병원을 둘러싸고 있는 병원 북쪽 면의 산책로, 산책로를 걸어 봐도 명당임을 확인할 수 있고, 병원 내에서도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함을 체감한다. 병원 밖에도 요소요소에 쉼터 공간과 녹색공간이 조성되었다. 둥지형의 아늑한 공간, 최고의 명당 터에 병원이 들어섰다.
삼성 암병원은 <뉴스위크>의 평가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세계 6위의 암병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삼성 장례식장은 출입구만 지상에 있고 모든 시설이 지하로 내려갔다. 최고의 명당에 자리 잡았고 협오 시설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었다. 몇십 년 전만 하여도 장례식을 치르는 일은 아주 큰 일 이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장례식을 치렀으나 지금은 모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른다. 장례식 문화를 바꾼 것이 삼성병원이다. 삼성병원을 시작으로 장례식장이 생기면서 새로운 장례문화가 형성되었다.
아산 정주영 회장이 세운 서울아산병원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팔당댐 공사에 참여하면서 댐이 완공되면 서울의 지도가 바뀔 것을 예상하였다. 그리고 하남, 풍납동, 압구정동에 땅을 확보하였다. 그 당시에 이곳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형편없는 땅이었다. 그 후 하남 땅에는 가족 묘지가 들어섰고 풍납동에는 아산병원이 들어섰다. 초기에는 홍수 시 병원이 잠겨서 고생도 하였지만 지금은 한강 변의 요지가 되었다. 1989년 서울중앙병원으로 개원한 후, 2002년 정몽준 이사장은 아산 정주영 회장의 뜻을 기려 정 회장의 고향 이름인 서울아산병원으로 개칭하였다.
<뉴스위크>가 세계병원을 매년 평가하는데 서울아산병원은 2023년 세계 29위에 랭크되고 있다. 세계 100대 병원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신촌 세브란스병원, 가톨릭대 서울 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6개의 우리나라 병원이 들어가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한다. 동쪽에서는 한강 물이 들어오고 남쪽에서는 성내천이 조수 한다. 풍수에서는 물이 모이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시장도 서고 재화의 유통도 일어난다고 하는데 아산병원의 터는 물이 모이는 낮은 곳이다. 1989년 6월에 개원했는데 1년 뒤인 1990년 9월에는 3일 동안 계속 내린 비로 풍납동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아산병원도 물에 잠겨 1천 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이동시켜야 했다.
그 후 서울아산병원은 제방을 보강하고 배수지를 확보하고 서관, 동관, 신관으로 확대되면서 발 빠른 성장을 계속하였다. 시설도 확대되고 최고의 의사진도 모여들고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로 의료 수요도 늘어났다. 서울아산병원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원은 환자들과 직원, 이웃 주민들의 쉼터 공간이 되었고, 지하에는 복지시설과 주차장이 들어섰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50년 전에 이러한 땅을 확보하고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였다.
천주교 재단이 세운 서울성모병원
우리나라 영아사망률이 높아 어린이 구제 사업부터 벌인 가톨릭교회에서는 각 지방에 시약소를 짓고 의료활동을 시작하였다. 1935년 조선교구 100주년 기념병원으로 가톨릭교회의 최초의 정식병원인 성모병원을 지었다.
그리고 1970년대 강남이 개발되면서 1980년 강남의 중심지에 최현대식 병원을 신축하여 강남성모병원을 개원했다. 강남성모병원으로 기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이 들어서고 강남성모병원이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으뜸 병원이 되자 서울성모병원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서울성모병원은 강남이 개발되면서 강남의 중심지 명당에 터전을 잡았다. 성모병원은 기독교계의 세브란스병원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버금가는 천주교계의 성모병원을 만들기로 기획했다.
서울성모병원이 위치한 곳은 한남정맥이 북진하면서 관악산, 우면산을 거쳐 서리풀 공원으로 이어지는 지맥이 누에 다리를 지나면서 성모병원 터를 3면의 산이 둘러싸고 반포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류한다. 산이 모여들고 물이 모이는 곳이니 생기가 응집하고 사람들도 모여드는 풍수적 명당이다. 본관 상층부로 올라가서 보면 뒤로는 서리풀공원, 우면산, 구룡산, 청계산, 관악산이 겹겹이 배산을 이루고 전면으로는 남산, 63빌딩, 롯데타워 등이 조망되고 안산,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 용마ㆍ아차산 등 서울의 산이 겹겹이 환포한다.
서울성모병원이 풍수적 명당에 자리하였으니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 중 으뜸병원으로 올라섰고, 국내 5대 병원, 세계 100대 병원에 진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