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4시간동안 바그너를 연주하고 연기하고 보는 것은
역시 보통일이 아니다
연주하는 부천필은 페뤼송 지휘자의 열렬한 지휘에도 불구하고 아직 바그너 관현악을 유려하게 연주해 낼 캐파는 안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2부에는 바그너 특유의 라이트 모티브가 실종되었던 1부 보다는 극적인 박진감이 느껴져서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았다
바그너를 연기하고 노래한다는 것은 역시 보통일이 아닌 듯
오늘 가장 좋았던 가수는 알베리히와 하겐을 연기한 사무엘 윤,
그는 진정 극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된, 그리고 어떤 위치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발성과 딕션을 가진 대가수였다
그의 등장은 극의 몰입을 높이고 지쳐가는 관객에게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준다
관객은 이런 가수를 보고싶은 것이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배역은 지그프리트와 브륀힐데
그들은 주인공 중의 주인공인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는지.....
지그프리트 김재형은 연기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하겐의 칼에 찔려 죽는다 라는 자막이 무색하게 고개를 조금 숙일 뿐 그의 동작은 악보 보면대에 부착되어 실종되었다 그의 명료하고 탄탄한 목소리가 주는 힘이 있는데 바그너 악극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는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에서 카바티나 아리아 한자락 하고 박수받는 데 익숙한 가수인가 .......
그렇다면 가장 미스 캐스팅이다 바그너의 극 중심의 오페라에서 소리만 빵빵 터트리는 가수는 관객에게 바그너 악극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 모든 가수들 중 가장 악보의존도가 높아서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정도였다 마치 대본리딩하는 배우를 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시종일관 악보로부터 자유로와서 얼굴로, 몸으로, 그리고 무대를 좌우, 위아래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사무엘 윤과 극명한 대비가 되니 악을 대표하는 세력 사무엘 윤이 정의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사랑과 희생의 상징인 브륀힐데 이명주는 연기만 한다 그녀의 표정과 연기는 다른 모든 가수보다 드라마틱해서 돋보였지만 정말 소리로는 바그너 가수로는 부적격이다 <지그프리트>에서 그녀의 고음이 얼마나 발성적으로 듣기좋지 않는 소리로 시종일관 빽빽 질러대는지 점점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캐릭터 연구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늘 무대 위의 브륀힐데는 원한에 찬, 독기어린 브륀힐데여서 바그너가 구현하고자 하는 결국은 사랑이 승리라는 주제의식이 와닿지 않는다
도너와 군터를 연기한 김기훈은 그의 능력에 비해 역할이 작은 느낌이었다
보탄을 했어도 될 법한 톤과 연기가 역시 김기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무대 위에서 빛났고
지그문트의 김승직 테너는 발퀴레를 거의 혼자 끌고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열일한 테너였는데
미성의 목소리로 바그너를 어떻게 표현할 지 걱정스러웠는데 의외로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친 지그문트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함께 연기한 지클린데 김은희 소프라노역시 무난하게 역할을 해내서 2번째 <발퀴레> 의 완성도를 높였다
보탄역의 최인식은 젊은 외모로 보탄을 하다보니 감정이입이 초반에는 잘 안되었는데 탄탄하고 중후한 바리톤 발성으로 무대를 장악하면서 극의 중심축이 되어주었다 특히 자신의 명을 거역한 사랑하는 딸 브륀힐데의 신의 자격을 박탈하고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형벌을 주는 아버지의 고뇌를 노래하는 대목에서 너무나 아름답고 절절한 바리톤 보이스에 잠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진정성이 있었다
자막은 대체로 그의 흐름이 잘 이해되도록 구성되어서 난해한 바그너극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었다
다만 마지막 <신들의 황혼>에서는 자막이 극의 이해를 충실히 돕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아쉽긴 했지만
<신들의 황혼> 원작 자체의 복잡성을 감안하면 역부족이었겠다는 결론이다
콘서트 오페라 형식이고 대편성 교향악단이 무대를 꽉 채우다보니 동선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배우들의 동선, 합창석까지 이용한 배치, 마지막 부분의 붉은 조명 등 연출의 노력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한 것 같다
1부 <라인의 황금>, <발퀴레> 100분
인터미션 30분
2부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총 235분 동안 무대 위의 가수와 교향악단, 그리고 관객석의 관객들이 한국에서 바그너 링 사이클 하이라이트를 함께 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싶다 아울러 10월, 국립 오페라단의 <라인의 황금> 전막 공연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