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원로의원 금성당 도견대종사의 다비식이 해인사 연화대 다비장에서 거행됐다. |
일생을 청정계율을 실천하며 대중교화에 앞장섰던 해인사 동당(東堂) 금성당 도견대종사의 영결식이 7월16일 오전11시 해인총림 해인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해인사 구광루 앞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기록적인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 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스님과 원로회의 의장 밀운스님을 비롯해 원명·도문·월파·지성스님 등 원로의원과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총무원장 자승스님, 중앙종회의장 향적스님, 전국 교구본사 주지 스님, 문도회 제자와 재가신도, 합천군수 등 사부대중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에서 진제 종정예하는 대종사 원명스님이 대독한 법어를 통해 “금성당 대종사께서는 19세에 출가해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정진했으며, 해인총림에서 수십 년을 용맹정진하며 후학들의 지도에 여생을 바치신 대종사였다”며 “이미 여래의 대해탈에 머뭄이니 손바닥 가운데 지극한 보배는 하늘과 땅에 빛남이로다”라고 게송으로 스님의 입적을 애도했다.
명종 5타로 시작된 이날 영결식은 영결법요, 행장소개, 추도입정, 육성법문,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헌화 및 분향, 문도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원로회의 의장 밀운스님은 “스님의 꺾일 줄 몰랐던 구도열정은 한국불교의 자존을 높였고 청규를 생명으로 하는 수행승가의 이름을 빛냈다”면서 “스님의 빈자리가 클수록 슬픔과 애절함을 삭여 종단이 거듭나는 중흥의 채찍으로 삼아 정진해 나가겠다”고 영결사를 통해 다짐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도 “지난 70년간 실로 치열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선·교·율에 두루 막힘없고 이와 사에 걸림 없는 무애의 경지를 가르치며, 근검절약의 면모를 보여주셨다”고 회고하며 “이와 같은 적멸의 경지를 보이심도 후학들이 바른 수행자의 모습을 당부하심일 것”이라고 추도했다.
영결식 직후 도견스님의 법구는 인로왕번을 선두로 수많은 만장이 호위하는 장의행렬과 함께 해인사 연화대 다비장으로 이운돼 다비식이 거행됐다.
도견스님 49재는 7월18일 초재부터 6재까지는 대구 금성사에서, 7재는 8월29일 해인사에서 봉행된다.
한편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켰던 서울 관악산 보현사 보현스님에 따르면, 평소 “나는 해인사를 떠나서는 죽지 않겠다”는 스님의 말씀에 따라 입원했던 경북대병원에서 떠나 지난 12일 오전1시10분경에 해인사 극락전에 도착했다.
10여 명의 상좌와 손상좌 등이 모인 자리에서 입적을 앞두고, 제자들이 “평소 다시 뵙고 싶어 하셨던 수행도반 일타, 성철스님과 속가 부모님을 꼭 만나 뵙고 속히 돌아 오십시요”라고 말씀 드리자 “수행자들은 모름지기 타인의 사표가 돼야한다. 바른 정진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고, 깨끗하고도 평온한 모습으로 입적에 들었다고 눈시울을 적시면서 전했다.
조계종 전 원로의원 금성당 도견대종사의 영결식이 7월16일 해인총림 해인사에서 엄수됐다. |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영결식 후 도견대종사의 법구가 다비장으로 이운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