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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오륙도문학 29호 P. 242~
무죄 (無罪)
默泉김용빈
목이 아프다. 목 안쪽이 아니고 바깥쪽이다. 오른쪽 울대와 경동맥 사이가 트림하기 전 공기 마실 때부터 트림한 후 공기 마실 때까지. 그리고 음식물 삼키고 나서 3~4초 후부터 5~7초 동안 아프다. 심호흡을 하거나, 하품을 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침을 삼킬 때는 괜찮다.
강 노인은 밥 먹을 때만 불편하다 보니 예사로 생각했다. 이러다 좋아지겠지, 이러다 말겠지 하고 참았다. 그러나 몇 달을 고생해도 좋아지지 않자, 목이 아프니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후두는 깨끗하네요. 위내시경은 언제 하셨습니까?”
“작년에 했습니다.”
“그래요? 위내시경을 한 번 더 해 보시지요.”
강 노인은 기분이 좋았다. 위내시경을 하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것은 귓등으로 들렸고, 후두가 깨끗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를 기분 좋게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안 아픈 것 같았고, 약만 먹으면 다 낫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한 달 동안 약을 먹었는데도 매 마찬가지로 목이 아파서 이비인후과를 다시 찾았고, 다음에 올 때는 꼭 위내시경 결과지를 들고 오라는 명령만 듣고 나왔다.
의과대학교수를 지낸 이비인후과 원장은 경험상으로 증세만 듣고도 충분히 식도에 이상이 왔다는 것을 직감하고 처음부터 위내시경을 하라고 말한 것 같은데, 강 노인은 후두가 깨끗하다는 말만 듣고 한 달여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못내 후회가 됐다.
‘식도암이면 어쩌지?’
강 노인은 걱정이 됐다. 의학 상식이 전무한 그는 구조상 복잡한 목에 암이 생겼다면 수술하기도 어렵고, 위험할 것이며, 목을 뚫고 호스로 음식을 삼켜야 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지옥이었다. 위내시경 예약을 하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 보았지만, 수면 내시경은 보통 한두 달 기다려야 했다. 우선 빠른 곳에 예약을 했다. 그러나 한 달이 까마득하다. 그때까지 언제 기다린단 말이냐. 참으로 일각이 여삼추였다.
더딘 중에도 세월은 흘렀다. 예약일이다.
강 노인은 진료시간이 멀었는데도 내과로 달려갔다. 오늘을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불안했던가를 생각하면 집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는 마음이 다급했던 것이다.
내과 원장은 강 노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키보드를 타닥타닥하고 쳤다.
“트림을 자주 하세요?”
“네.”
“그렇다면 복부초음파도 해 봅시다.”
강 노인은 잘 됐다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달 전부터 왼쪽 옆구리가 아파 또 요로결석인가 하고 궁금해서 검사를 하고 싶었다. 그는 요로결석으로 고생을 한 적이 있어서이다.
강 노인은 초음파 먼저 하고 내시경실로 내려갔다. 수면내시경을 하기 전에 조영제 부작용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하는데, 그 종이에 빨간 색연필로 식도라 쓰고 동그라미 친 것이 보였다. 내과 원장도 식도가 걱정되었나 보다.
위내시경 결과는‘식도염을 동반한 위-식도역류병, 상세불명의 위염’이라 했다. 그렇게 염려하던 식도암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강 노인이 웃었다. 아내는 내과 원장보고 약 지을 때 잠자는 약 좀 넣어달라고 했지만, 그는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초음파 결과는 달랐다. 좌측 신장에 8mm 크기의 양성신생물이 있다고 했다. 원장은 오늘 CT까지 찍어보자고 했으나 강 노인은 요관 스텐트를 한 적이 있다 말하고,‘그때 생긴 흠집이겠지.’하면서 거절을 했다.
2년 전이다. 강 노인은 왼쪽 옆구리가 몹시 아파서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검사결과 왼쪽 요관에 결석이 있다며 남자 간호사가 휠체어에 강 노인을 태우고 비뇨기과 외래로 올라갔다.
“어디 갑니까?”
“돌 깨러 갑니다.”
강 노인은 쇄석실에 가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방광경실 앞이다.
“아니 돌을 깬다면서 여기는 왜?”
“어르신은 결석이 요관을 막고 있어서 소변 배출이 안 되고 있습니다. 소변이 종이컵 1잔정도 신장에 차이면 패혈증이 올수 있기 때문에 스텐트를 먼저 삽입하고 돌을 깰 겁니다.”
강 노인은 비뇨기과에 올 때마다 제일 무서운 방이 방광경실이었다. 생각만 해도 그 조그마한 요도구로 기구를 넣는다는 그 자체가 큰 공포였다. 그가 그렇게도 무서워했던 방에 들어온 것이다. 여자 간호사가 팬티를 벗고 산부인과 의자 같은 곳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라 했다. 중간에 커튼이 쳐져 있어 의료진은 안 보였다. 스텐트를 요관으로 더듬더듬 밀어 올리는 장면이 큰 모니터에 보였다. 스텐트 삽입은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돌을 깨고 나면 스텐트를 빼주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그리고 쇄석실에서는 속옷을 다 벗고 가운만 걸친 체 엎드려 돌을 깼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려도 돌 파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소변을 보고 마지막 남은 소변을 내 보내려고 힘을 주면 방광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갔더니 스텐트가 길어 방광을 찌르고 있다며 끝을 구부려준다고 다시 방광경실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 스텐트가 방광을 찌르듯이, 스텐트가 신장도 밀어 올려 흠집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강 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과 원장은 약 타러 갈 때마다 CT는 언제 찍을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또다시 스텐트 이야기를 했다. 내과 원장은 양성신생물이 스텐트를 삽입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콩팥 하단下端에 있다며, CT를 찍어봐야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좋게 말해 혈관근지방종(의증)이지 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강 노인은 비뇨기과 담당 의사에게 스텐트를 빼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었다. 두어 달 넘도록 피 오줌을 누며 고통스럽게 보내다 한 소리였다. 무작정 기다린다고 돌이 빠질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스텐트에 돌이 눌려 더욱 빠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담당 의사는 특별한 조치도 안 해주면서 돌이 요관을 막을 수 있어 빼 줄 수 없다고 했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꼴이었다.
응급실에서 지정해 준 담당 의사는 다른 의사들과는 달랐다. 피검사한 결과를 물었더니, 화를 내면서 내과나 가정의학과에 가서 물으라는 의사였다. 그러려면 뭐하려고 피검사를 했느냐고 따졌다. 강 노인은 그런 담당 의사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다. 옛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담당 의사만 믿고 있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노인은 명의로 소문난 김 박사에게 진료를 받기로 의사를 바꿨다. 김 박사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단번에 스텐트를 빼자고 했다. 스텐트를 빼면 일시적으로 요관이 넓어져 있어서 결석이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텐트를 빼준다니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방광경실에 또 들어갔다. 요도구에 기구를 넣는가 싶었는데, 스텐트의 끝자락을 잡고 인정사정없이 잡아 뺐다. 가늘고 기다란 스텐트가 요관, 방광, 요도구를 순식간에 훑어 내렸다. 얼마나 아프던지 생 오줌이 찔끔찔끔 나왔다. 피 오줌이다. 자꾸만 배설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차타고 집에 오는 내내 이를 악물고 참았다. 집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용기를 대고 소변을 보았다. 쩽그렁!!! 피 오줌과 함께 결석이 빠졌다.
강 노인은 콩팥에 양성신생물이 있다는 말을 들은 지, 꼭 한 달 열흘 만에 요로결석과 스텐트로부터 해방시켜준 김 박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김 박사의 유명세로 예약이 밀려서다. 병원에 초음파 CD를 등록하고, 김 박사에게 초음파 판독지를 보여줬다.
“혹이 작네요. 혹이 작아서 CT로 판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상의학과에서 MRI를 찍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MRI를 찍으면 안 됩니까?”
“보험이 안 되어서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CT를 찍고, 또 진료일을 기다렸다. 김 박사는 유명세만큼 예약자가 많이 밀려있다. 그래서 또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했다. 명 짧은 사람은 진료도 못 받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노인의 머릿속에는 혈관근지방종이란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고, 신장암이라는 단어가 꽉 채우고 있었다. 그것이 탈이었다. 결과를 보는 진료일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심리적으로 큰 고통이었다. 초저녁에는 피곤해서 잠이 드는데 한숨 자고 나면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건강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불안함도 있었다. 마른침이 꿀꺽꿀꺽 삼켜지고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그게 마음대로 안 되었다. 옆에서 곤하게 자던 아내가 잠이 깰 정도였다. 강 노인은 스스로 자기를 달래었다.
‘아직 결과도 안 나왔잖아……. 결과를 듣고 그때 걱정해도 되잖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자기 가슴을 토닥토닥 다독였다.
그러면 또 다른 강 노인이 대답했다.
‘50%의 확률이 있지 않느냐. 방심하고 있다가 그 50%가 맞아떨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이러고 있느냐. 신장암 명의라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미리 병원 예약도 하고, 그렇게 준비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다 신장암이라고 하면 어떻게 대처할 거냐.’
그는 밤새도록 본인을 달래다, 왈개다 온갖 씨름을 다 했다. 그러면서 왜 이런 병이 생겼을까. 술을 마시나, 커피를 마시나, 담배를 피우나, 바람을 피우나, 어찌 보면 참 재미없게 살아온 인생인데, 암이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으냐.
아무튼 70여년을 살아온 강 노인은 그동안 헛나이를 안 먹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치매 초기인지 건망증인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를 자주 잊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검사를 해 보면 당뇨 수치도 조금 높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조금 높았다.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늙어가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아프고 보니 암癌이라는 단어가 처음엔 무섭고 두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암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내나 자식들에게 큰 짐이 될까 봐서 그게 두려웠다. 재산도 물려주지 못한 입장에서 심리적으로나 금전적으로 큰 피해를 주고 떠날까 봐 그게 무서웠다. 만약 암이라 하면 콱 죽어버리면 어떨까. 그러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것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심판받는 날이 돌아왔다. CT 결과 보는 날이다.
강 노인은 오늘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구내염이 다 생겼다. 그것 때문에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고 병원에 왔다.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도 대기실에 사람들이 많다. 예약시간에 진료받기는 틀린 것 같다.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조금 한산한 뒷자리에 앉았다.
“아니, 입안 세균이 그 병을 일으켰다고?”
“그렇다네요, 영감.”
“설마…….”
“입안에 염증이 자꾸 생기드만, 그런 무서운 병이 왔다지 뭐요.”
앞자리에 앉은 노부부가 옆 사람들 들을세라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지만, 강 노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큰 소리로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연초年初에 오른쪽 어금니에 보철을 했다. 그런데 치간이 벌어졌다. 치간에 음식물이 조금만 끼어도 피가 나고 아팠다. 치과 원장은 기다리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1년 반이 넘도록 염증이 가시질 않았고 이빨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전, 강 노인은 TV에서 입안 세균이 각종 암을 유발한다는 방송을 보았다. 그는 겁이 덜컹 났다. 다음날 바로 치과에 달려갔다.
“벌어진 이빨이 원장님께서 돌아온다고 하여 기다렸는데 안 돌아 오네요.”
“그렇지요? 안돌아오지요? 그러면 벌어진 이빨과 그 옆 이빨을 갈아 두 개를 한데 묶어서 보철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 노인은 멀쩡한 이빨을 간다는 게 부담스러웠고 아까웠다. 꼭 그렇게 안 하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지금 몇 달째 망설이고 있다.
그런데 TV에서 들은 대로 입안 세균으로 무서운 병이 생겼다지 않는가. 앞에 노부부의 말이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구내염 때문에 간밤에 잠을 못 이루었는데, 혹시 이것도 구내염이 아니고 구강암이 아닐까. 구강암은 잘못된 저작 습관 등으로 인해 구강조직에 만성적인 자극이 가해져도 생긴다는데, 왼쪽으로만 1년 반 동안 음식을 씹었으니 구강암의 원인이야 차고 넘쳤다.
강 노인은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펄쩍펄쩍 뛰었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하고, 꼭 살아있는 생선이 도마 위에서 날뛰듯 불안하였다. 그는 진정하기위해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었다. 치과 원장 말대로 이빨 두 개를 한데 묶어 보철을 할 걸하고 후회도 했다. 백여만 원 아끼려다 큰 병 얻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밀물은 곧 쓰나미가 되었다. 그 쓰나미는 병원을 집어삼켰다. 병원건물이 흔들흔들했다. 강 노인은 창틀을 붙잡고 매달렸다. 파도가 강 노인의 목까지 차올랐다. 언제 강 노인을 집어 삼킬지 모른다. 불안해 죽겠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영감, 들어갑시다.”
“어?!”
그는 놀란 눈으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가 진료실에 들어가자 한다. 이제 차례가 된 모양이다. 그는 아직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걸음으로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리고 진료실 문틀을 꼭 잡고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진료실까지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내가 옆에서 간신히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강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박사님, 제가 지금 법정에서 선고를 기다리는 피고 같습니다.”
“아이고, 어르신, 여기는 법정이 아닙니다.”
“그래도 박사님, 좋은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김 박사가 모니터를 보다말고,
“어, AML......?”
“감사합니다.”
강 노인은 네이버 검색을 통해 AML은 혈관근지방종이고, RCC는 신장암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가만, 혈관근지방종이 아니군요.”
“그렇다면 R,C,C......?”
강 노인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물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해댔다.
김 박사는 마우스로 스크롤바를 오르내리며 한참동안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르신은 무죄입니다.”
아직 목도 아프고, 옆구리도 아프고, 입도 아픈데 무죄란다.
그러나 기쁘다.
“박사님 감사합니다.”
“아이고,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아무튼 무죄입니다. 하하하”
강 노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구강암도 무죄일 거야.’
註: AML (angiomyolipoma) : 혈관근지방종, RCC (renal cell carcinoma) : 신장암
0.아호: 默泉(묵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