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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包裝 藝術 –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國立古宮博物館에서는 特別展으로 <朝鮮王室의 包裝 藝術>을 기획전시실에서 전시하였다.
(전시기간 21017.06.27~09.03)
예로부터 사람들은 물건을 다양한 재료로 포장하여 보호하거나 장식했으며, 특히 귀중한
물건과 중요한 행사가 많았던 王室에서는 日常用品이나 儀物을 용도에 맞게 포장하여
사용하는 데 각별히 功을 들였다.
조선왕실에서는 그 내용물만큼이나 包裝用品도 최상품을 엄선하여 格式과 用途에 맞게
세심하게 사용하였으며, 왕실에서 포장은 물품이 毁損되지 않게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內容物의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며 정성을 보이고, 왕실의 威嚴과 品格을 갖추는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는 내용물을 빛나게 해주고 아름다운 朝鮮王室의 다양한 포장용품과 그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물건을 소중하게 아끼고 꾸며 格式을 갖추었던 우리 先祖들의 지혜와 美學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게기가 되고 있다.
Ⅰ 朝鮮王室의 包裝
포장은 단순한 外皮가 아니라 내용물의 중요성과 물건을 받는 사람에 대한 禮義를 나타내기
때문에 禮를 重視했던 조선왕실에서는 물품 포장에서도 位階와 格式에 맞는 用品을 사용하여
禮를 갖추었으며, 특히 각종 國家儀禮에 사용되는 儀物의 포장은 ‘封裹’라 하여 儀式의
한 절차로서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裹: 쌀 과)
Ⅱ 왕실 생활에 더한 精誠
조선왕실에서는 각종 생활용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물품을 보호하면서도 사용자의 품격을
돋보이게 하였다.
裝身具, 은수저, 의복, 書冊까지 다양한 물품의 포장에는 주로 보자기와 상자를 사용하였다.
Ⅲ 경사스러운 날에 갖춘 品格
조선왕실에서는 婚禮, 宴饗 등 경사스러운 날을 위한 물품들을 정성스럽게 포장하였다.
(*饗: 잔치할 향)
婚需나 納幣用 물품으로 마련된 각종 의복, 裝身具, 銀食器, 침구 등은 단정하게 朱漆 또는
黑漆한 함에 넣고 비단 보자기로 싸서 전달하였다. (*漆: 옻 칠)
宴饗에서는 笏記∙儀註, 箋文과 致詞, 饌品單子 등 소품과 문서를 붉은 비단에 싼 후 朱漆函이나
黑漆函에 담고 명주보자기로 싸서 상 위에 놓았다. (*笏: 홀 홀 *箋: 기록할 전 *簪: 비녀 잠)
*납폐(納幣): 婚姻할 때, 四柱單子의 교환이 끝난 후 定婚이 이루어진 증거로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예물을 보냄.
*홀기(笏記): 婚禮나 祭禮 때에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
*의주(儀註): 나라 典禮의 절차를 주해(註解)하여 기록한 책.
*전문(箋文): 임금이나 왕후, 태자에게 올리던 글.
*치사(致詞/致辭): 경사가 있을 때에 임금에게 올리던 송덕(頌德)의 글.
*단자(單子): 扶助나 선물 따위의 내용을 적은 종이.
조선왕실 포장의 精髓는 寶印, 冊, 敎命, 國朝寶鑑, 御眞 등 王權의 상징물에서 볼 수 있으며,
이들의 포장은 ‘封裹’라고 하여 관리들이 참여하는 儀禮의 하나로 엄격하게 진행하였다.
王權 象徵物의 포장은 내용물의 보호나 장식뿐만 아니라 王權의 威嚴을 나타내는 과정으로
최상급 재료를 사용하고, 包裝物品과 절차는 儀軌에 기록하였다.
朝鮮王朝와 관련된 설명문으로 낯선 漢字와 用語가 많아 다른 자료에서 확인하여
(*)로 추가설명을 보완하였다.
<조선왕실의 包裝 藝術> 사진을 정리해 놓았으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이 누락되어 늦게
3회로 나누어 올린다.
2018.08.09. 孤 山 朴 春 慶
조선왕실의 包裝 藝術 –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3-1)
(01) 朝鮮王室의 包裝 藝術
Ⅰ 朝鮮王室의 包裝
포장은 단순한 外皮가 아니라 내용물의 중요성과 물건을 받는 사람에 대한 禮義를 나타내기
때문에 禮를 重視했던 조선왕실에서는 물품포장에서도 位階와 格式에 맞는 용품을 사용하여
예를 갖추었으며, 특히 각종 國家儀禮에 사용되는 儀物의 포장은 ‘封裹’라 하여 儀式의
한 절차로서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裹: 쌀 과)
조선왕실에서 包裝用品 제작업무는 주로 工曹 산하의 尙衣院에서 담당하였다.
儀禮 때 王과 王世子가 착용하는 法服은 규정에 따라 보자기로 싸서 尙衣院 冕服閣의 정해진
상자에 보관하였다. (*冕: 면류관 면)
嘉禮, 國葬 등 王室의 의례 때 제작된 寶印과 冊, 敎命 등은 보자기로 싸서 묶고 함에 담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쳐 봉과(封裹)하고 緩衝材와 香으로 내용물을 보호하였으며 왕의 書畵나
御眞, 中國 朝廷에 보내는 方物의 포장에도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교명(敎命): 임금이 훈유(訓諭)하는 명령. 또는 그 명령을 적은 글.
(02) 朝鮮王室의 包裝
(03) 朝鮮王室 包裝 담당 관청 尙衣院
(04) 상방 현판[尙方 懸板]
王과 王妃의 의복 및 궁궐에서 필요한 물품의 제작, 管理 등을 관장하던 尙衣院에 걸었던
현판으로 ‘尙方’은 ‘尙衣院’의 別稱이다.
(05) 면복각 현판[冕服閣 懸板] -朝鮮 後期 (*冕: 면류관 면)
尙衣院의 부속 殿閣으로 王과 王世子의 法服을 보관하던 ‘冕服閣’의 현판이다.
王室의 衣服은 보관할 때도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였으며, 특히 최고의 禮服인
冕服과 絳紗袍는 보자기로 감싸고 상자에 넣어 冕服閣에 따로 보관하였다. (*絳: 진홍 강)
*면복(冕服): 帝王의 大禮服·祭服
*강사포(絳紗袍): 국왕의 朝服으로, ‘受陪臣朝見之服’이라 하여 朔望·朝降·詔降·進表·
朝見 등에 착용한 옷. (*陪: 모실 배)
(06) 상의원면복각 상량기 현판[尙衣院冕服閣 上樑記 懸板] –조선 1720년
肅宗(재위 1674~1720) 때 慶德宮(현재 慶熙宮)의 尙衣院이 협소하여 규모를 늘리고
임금의 의복을 보관할 冕服閣을 별도로 건립하면서 上樑記를 새긴 현판이다. (*樑: 들보 량)
(07) 고려사[高麗史] –조선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고려시대 정치∙사회∙경제 등을 서술한 歷史書로, 고려에서 중국으로 外交文書를 보낼 때 행한
禮式과 중국에서 使臣을 통해 고려로 보낸 禮物 및 그 包裝物品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表文은 노란색 보자기, 箋文은 붉은색 보자기로 감싸고, 각각 갑(匣)에 넣은 다음 다시
붉은색 노란색 보자기로 포장하였다. (*箋: 기록할 전)
*표문(表文): 예전에 사용하던, 외교 문서의 하나.
마음에 품은 생각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
*전문(箋文): 임금이나 왕후, 태자에게 올리던 글.
*高麗史
世宗 31년(1449) 金宗瑞∙鄭麟趾∙李先齊∙鄭昌孫 등의 관료들이 世宗의 명으로 편찬하기
시작하여 文宗 元年(1451)에 완성된 고려시대의 역사∙문화 등의 내용을 紀傳體로 정리한
역사서이다.
책의 구성은 世家 46권, 志 39권, 年表 2권, 列傳 50권, 目錄 2권 등 총 139권으로
이루어졌으며, 고려에 관한 史書 중 編年體의<高麗史節要>와 함께 가장 종합적이고도
기본적인 고려사 연구자료이다.
(08) 성종실록[成宗實錄] -조선 1475년 -國寶 제151-3호-
成宗 6년(1475) 성종이 父親 德宗(追尊王, 懿敬世子)에게 冊寶를 올린 내용의 기사가
실려있다.
기록을 통해 儀式에 앞서 寶錄 및 寶筒 등 御寶 포장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懿: 아름다울 의)
*책보(冊寶): 왕이나 왕비의 尊號를 올릴 때에 함께 올리던 玉冊과 金寶를 아울러 이르는 말.
*보통(寶筒): 시보(諡寶. 임금의 諡號를 새긴 도장)를 담는 상자.
(09)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世祖(재위 1455~1468)의 命으로 편찬된 朝鮮王朝의 法令集이다.
券一 ‘吏典’에 각 官廳의 업무가 기록되어 正三品 관청인 尙衣院의 주요업무를 확인할 수 있다.
券三 ‘禮典’의 ‘事大(큰 나라를 섬기는 절차)’에는 中國에 바치는 禮物을 포장하는 절차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經國大典
世祖 때 착수하여 成宗 16년(1485)에 반포된 統治의 기본이 되는 統一法典으로 조선
建國 初의 法典인 <經濟六典>의 原典, 續典과 그 뒤의 法令을 종합하여 편찬한 법전이다.
<經國大典>은 朝鮮王朝 開創 때부터의 정부체제인 六典體制를 따라 六典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기 14~61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吏典>은 宮中을 비롯하여 중앙과 지방의 職制 및
관리의 任免과 辭令, <戶典>은 財政을 비롯하여 호적∙조세∙祿俸∙통화와 商去來,
<禮典>은 여러 종류의 科擧와 관리의 儀仗, 외교, 儀禮, 공문서, 가족 <兵典>은 軍制와 軍事,
<刑典>은 형벌∙재판∙奴婢∙상속, <工典>은 도로∙교량∙도량형∙산업에 대한 규정을 실었다.
(10) 면복각에서 사용한 흑칠상자[黑漆 櫃] (*櫃: 궤 궤, *궤: 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그릇)
國家儀禮 때 王世子가 입는 의복을 담아두던 흑칠 상자이다.
王世子의 法服은 尙衣院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王의 법복과 함께 冕服閣에 따로
보관하였다.
국왕의 법복을 담아두었던 상자와 구조는 같으나 倭朱紅漆 대신 黑漆을 해 位階의 차이를
두었다.
(11) 상방정례[尙方定例]에 기록된 王의 儀禮用 服飾 포장에 쓰인 보자기와 보관상자
*尙方定例는 英祖 26년(1750) 尙衣院에서 편찬한 宮中衣服에 관한 책으로, <度支定制>가
편성된 뒤 궁중에서 필요한 품목이 누락되지 않도록 상세하게 만든 별도의 제도이다.
총 3권으로, 恒例 1권과 別例 2권으로 편성되었다.
(12) 상방정례[尙方定例] –1752년 –서울대학교 奎章閣 韓國學硏究院 所藏
英祖 28년(1752) 王命으로 尙衣院에서 편찬한 宮中衣服에 관한 책으로 王室의 服飾과
儀物에 관한 規例를 기록하였다.
法服을 비롯하여 각종 進上 物種을 기록하고, 보관할 때 사용하는 포장용품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물품마다 사용하는 보자기와 상자가 정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13) 탁지정례[度支定例] -1749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英祖 25년(1749) 戶曹에서 왕실의 宮∙殿과 中央 各司 등의 財政用途를 규정하기 위해 제작한
책이다.
大殿과 中宮殿 등 各 殿과 世子宮∙嬪宮 등 各 宮 그리고 諸 嬪宮 등 각 房에 進上할 물품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보자기로 싸서 올리라는 기록에서 당시 물품포장의 慣例를
추정할 수 있다.
(14)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 -1878년 –보물 1901-3호-
高宗 13년(1876) 景福宮 火災로 王室의 각종 寶印들이 사라지거나 파손되어 새로 보인을
제작하거나 보수하면서 기록한 儀軌이다.
각 寶印에 대한 설명과 함께 外形, 印面을 채색그림으로 수록하고, 寶印을 포장하는데 필요한
寶筒, 寶盝, 護匣 등의 材質, 규격, 제작방법 등을 기록하였다. (*盝: 다할 록)
Ⅱ 王室生活에 더한 精誠
조선왕실에서는 각종 생활용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물품을 보호하고 사용자의 품격을
돋보이게 하였다.
裝身具, 은수저, 의복, 書冊까지 다양한 물품의 포장에는 주로 보자기와 상자를 사용하였다.
보자기는 직물 한 겹으로만 이루어진 홑보자기, 두 겹으로 이루어진 겹보자기,
두 겹 직물 가운데 솜을 넣은 솜보자기, 솜보자기를 겉에서 누빈 누비보자기, 기름종이를
직물에 부착한 맛보자기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보자기는 각종 무늬가 織造된 비단∙麻·綿·
종이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하고, 보자기에는 다양한 色을 대비시켜 장식 효과를 내기도 했다.
물건을 담는 상자는 내용물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맞춤 제작하거나, 내부에 내용물의
흔들림을 방지하는 고정대를 설치하기도 했으며, 내용물을 상자에 담고 다시 보자기로 싸서
汚染을 방지하고 운반하기 쉽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15) 왕실생활에 더한 精誠
(16) 밀화불수노리개와 포장용구[蜜花佛手佩飾, 裝身具箱子∙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佩: 찰 패 *裌: 겹옷 겹 *袱: 보 복)
英親王妃의 蜜花佛手노리개와 이를 포장하는 보자기와 상자이다.
밀화불수노리개는 두꺼운 솜에 올려놓아 모양을 잡고, 이를 끈이 달린 비단 겹보자기로 싸고
끈으로 돌려 묶어 상자에 넣었다. 보자기의 겉감은 노란색 단, 안감은 암팔선문(暗八仙紋)이
배치된 주홍색 단이며, 한쪽 모서리 끝에 청색 단으로 끈을 달았다.
*蜜花佛手: 밀화로 부처 손같이 만든, 여자의 패물. (*蜜花: 밀랍 같은 누런빛이 나고 젖송이
같은 무늬가 있는 琥珀).
*英親王 一家 服飾 및 裝身具類 -국가민속문화재 제265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대한제국시대 英親王 一家의 服飾 및 裝身具類 333점으로 宮中의 의례복식과 평상복
그리고 이에 따르는 장식품이 일괄적으로 갖추어져 있고, 제작연대는 오래되지 않으나
왕실복식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다.
*英親王(1897~1970)
高宗의 일곱째 아들로 모친은 純獻皇貴妃 嚴氏이다. 본명은 李垠, 1900년 英親王이라는
封號를 받았으며, 日帝에 의해 일본 陸軍士官學校에 입학, 1917년 졸업하였다.
1920년 일본의 王族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 方子, 한국이름 李方子)와 결혼하였으며
1970년 5월 사망하여 高宗陵인 南楊州市 金谷洞의 洪裕陵 경내 英園에 안장되었다.
*國家民俗文化財
衣食住·生業·교통·교역·신앙·오락 등 민간생활과 관련된 풍속과 관습 중 중요한 것으로,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이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될 때 ‘중요민속자료’라는 용어가 사용되다가 문화재보호법이
개정(2011년 2월)되면서 ‘중요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다가 2017년 3월 ‘국가민속문화재’로
이름이 바뀌었다.
(17) 산호노리개와 포장용구[珊瑚佩飾∙裝身具箱子∙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裌: 겹옷 겹 *袱:
英親王妃의 산호노리개와 이를 포장하는 보자기와 상자이다.
노리개는 두꺼운 솜에 올려놓아 모양을 잡고, 끈이 달린 비단 겹보자기로 싼 후 끈으로 돌려
묶어 상자에 넣었다.
보자기는 겉감은 玉色, 안감은 홍색단으로 만든 겹보자기로 끈은 안감과 같은 홍색단을
사용했다. 상자의 각 面은 연꽃과 모란이 織金된 청색단으로 모서리는 자주색 비단으로
발랐다.
*직금(織金): 남빛 바탕에 銀실이나 金실로 봉황과 꽃의 무늬를 섞어 짠 織物.
*英親王妃[李方子]
일본 국왕 메이지[明治]의 조카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守正] 親王의 딸로
1920년 日帝에 의해 大韓帝國 마지막 皇太子 英親王 李垠과 정략적으로 결혼하여
皇太子妃가 되었다.
1963년 의식불명이 된 病席의 英親王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英親王의 遺志를 받들어 精神薄弱兒敎育∙肢體不自由者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기술교육 등
育英事業에 정성을 쏟았다.
1989년 4월 昌德宮 樂善齋에서 持病으로 悲運의 일생을 마치고, 南楊州市 洪裕陵의
英親王墓所에 합장되었다.
(18) 백옥나비떨잠과 포장용구[尼絲裝玉蝶板子∙裝身具箱子∙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蝶: 나비 접 *裌: 겹옷 겹 *袱: 보 복)
英親王妃의 백옥나비떨잠과 이를 포장하는 보자기와 상자이다.
떨잠을 종이판에 홍색 貢緞을 씌운 받침대에 끼우고 솜베개로 받친 후 겉감은 노란색,
안감은 홍색 雲寶紋緞의 長方形 겹보자기로 감싸 상자에 넣었다.
*떨잠: 大禮服을 입고 큰머리를 할 때 머리에 꽂는 장식품.
*공단(貢緞): 감이 두껍고 무늬는 없으나 윤기가 도는 비단. (*緞: 비단 단)
*운보문단(雲寶紋緞): 구름 모양의 무늬가 있는 비단. (*緞: 비단 단)
(19) 백옥떨잠과 포장용구[泥絲裝玉圓板子∙裝身具箱子∙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裌: 겹옷 겹 *袱: 보 복)
英親王妃의 백옥떨잠과 이를 포장하는 보자기와 상자이다.
겨자색, 분홍색 비단을 바른 正四角形 상자 두 개를 붙여 만든 보관함에 겉감은 圓龍紋,
안감은 홍색 卍字紋緞의 겹보자기로 감싸 넣었다.
(20) 니사봉황앞꽂이와 포장용구[泥絲鳳凰앞꽂이∙裝身具箱子∙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英親王妃의 앞꽂이와 이를 포장하는 보자기와 상자이다.
앞꽂이를 종이판에 홍색 공단을 씌운 받침대에 끼우고 솜베개로 받친 후 보자기로 감싸
상자에 넣었다.
(21) 족두리와 포장용구[簇頭里∙裝身具箱子] -20世紀初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英親王妃의 족두리와 이를 포장할 때 사용하는 상자와 부속용품이다.
족두리는 紫赤色 비단방석에 그 밑으로 청색 띠를 깔아 쉽게 꺼낼 수 있게 했다.
(*簇: 가는 대 족)
상자의 윗면에는 圓壽紋과 박쥐를, 옆면에는 文字紋과 모란을 배치하였다.
*圓壽紋: 원 안에 ‘壽’字를 圖案化한 문양
(22) 진주두루주머니와 포장용구[眞珠狹囊∙裝身具箱子∙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囊: 주머니 낭 *裌: 겹옷 겹 *袱: 보 복)
英親王妃의 眞珠로 장식된 주머니와 이를 포장하는 보자기와 상자이다.
주머니는 끈이 달린 홍색 貢緞 겹보자기로 감싸 상자에 넣고, 상자의 各 面은
청색 雲寶紋緞을, 모서리는 자주색 비단을 발랐다.
*운보문단(雲寶紋緞): 구름 모양의 무늬가 있는 비단. (*緞: 비단 단)
(23) 화조문 장신구상자[草花鳥紋 裝身具箱子]-도류불수문 장신구상자[桃榴佛手紋 裝身具箱子]
-도류불수문 장신구상자[桃榴佛手紋 裝身具箱子](왼쪽부터)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榴: 석류나무 류)
=화조문 장신구상자[草花鳥紋 裝身具箱子](왼쪽)
英親王妃의 떨잠을 포장하는 상자이다. 얇은 목재판으로 만들고, 각 면은 새, 봉황, 나비,
각종 꽃 등을 오색실로 수놓은 겨자색 비단으로 발랐으며, 모서리는 갈색
無紋緞(민 무늬 비단)으로 발랐다.
뚜껑에는 花鳥紋의 갈색 비단으로 회장을 둘렀다.
=도류불수문 장신구상자[桃榴佛手紋 裝身具箱子](가운데 뒤)
英親王妃의 비녀를 포장하는 상자이다. 얇은 목재판으로 만들고, 각 면은 자주색
桃榴佛手紋緞으로, 모서리는 자주색 비단으로 발랐으며, 뚜껑에는 面과 같은 무늬의
연두색 비단으로 回裝을 둘렀다. 홍색 공단 솜베개가 들어있다.
*도류불수문(桃榴佛手紋): 복숭아·석류·불수감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무늬.
*회장(回裝): 저고리나 袍 등의 깃·끝동·겨드랑이 등에 다른 빛깔로 색을 맞춘 장식부분.
=도류불수문 장신구상자[桃榴佛手紋 裝身具箱子] (오른쪽)
英親王妃의 떨잠을 포장했던 장신구상자로 바깥 면 전체에 연두색 桃榴佛手紋 비단을
바르고 뚜껑의 가장자리는 자주색 화문비단으로, 각 모서리는 자주색비단으로 선을 대었다.
(24) 영친왕 옥규와 흑칠 옥규갑[英親王 玉圭∙黑漆 玉圭匣](왼쪽)-영친왕비 옥규와 주칠 옥규갑
[英親王妃 玉圭∙朱漆 玉圭匣]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영친왕 옥규와 흑칠 옥규갑[英親王 玉圭∙黑漆 玉圭匣] (왼쪽)
英親王의 靑玉圭를 포장하여 보관했던 싸개와 상자이다. 玉圭는 王∙王世子∙王妃∙世子嬪 등이
大禮服을 입을 때 손에 들었던 儀物로, 玉圭의 아랫부분은 홍색 花紋緞 싸개로 감쌌으며,
사용하지 않을 때는 단추가 달린 홍색단 주머니에 담은 후 長方形의 黑漆匣에 넣어
보관하였다.
=영친왕비 옥규와 주칠 옥규갑[英親王妃 玉圭∙朱漆 玉圭匣]
英親王妃의 白玉圭를 포장하여 보관했던 싸개와 상자이다.
玉圭의 아랫부분은 紅色緞으로 만든 싸개로 감싸고 입구 쪽에 호박단추가 달려 있는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였다.
오동나무로 만든 朱漆匣의 뚜껑은 테두리를 깎아내 몸체에 판 홈에 뚜껑을 밀어 여닫도록
했다.
(25) 패옥과 주칠 패옥갑[佩玉∙匣]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佩: 찰 패)
禮服 위 左右에 늘여 차는 장신구인 佩玉을 보관하는 상자로 전체에
朱漆하고 비단은 黑漆을 덧발랐다.
內面 중앙에 칸을 두어 패옥을 하나씩 넣을 수 있게 했다.
뚜껑은 테두리를 깎아내 몸체에 찬 홈에 뚜껑을 밀어 여닫게 했다.
(26) 쌍가락지, 장도노리개와 포장용구[雙指環, 粧刀佩飾∙裝身具箱子∙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英親王妃의 쌍가락지와 장도노리개 및 이들을 포장하는 보자기와 상자로, 쌍가락지와
장도노리개는 각각 두꺼운 色紙로 감싸 모양을 잡고, 이를 끈 달린 비단보자기로 싸고
끈으로 돌려 묶어 雲寶紋 상자에 넣었다.
(27) 후봉잠과 포장용구[後鳳簪∙裝身具箱子]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簪: 비녀 잠)
英親王妃의 후봉잠(後鳳簪) 2점과 이를 포장하는 상자이다. 비녀 걸이대의 구멍을 비녀 끝에
끼워 넣고 홈 부분에 비녀의 머리를 올리고 紅色 貢緞으로 만든 솜베개로 받친 후 상자에
넣었다.
상자의 各 面은 雲寶紋緞과 桃榴佛手紋緞을 붙였다.
*봉잠(鳳簪): 봉황의 모양을 비녀 머리부분에 새긴 큼직한 비녀.
(28) 용잠, 진주장잠과 포장용구[龍簪∙眞珠長簪∙裝身具箱子∙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裌: 겹옷 겹 *袱: 보 복)
英親王妃의 龍簪 및 眞珠(珍珠) 長簪과 이를 포장하는 보자기와 상자이다.
용잠과 진주 장잠은 종이판에 홍색 공단을 씌운 받침대에 끼우고 솜베개로 받친 후
보자기로 감싸 상자에 넣었다.
(29) 백옥쌍나비노리개와 포장용구[白玉雙蝶佩飾∙裌袱]
-20세기 초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蝶: 나비 접)
英親王妃의 백옥쌍나비노리개와 이를 포장하는 色紙와 보자기이다.
제일 안쪽에 솜을 두어 노리개를 올리고 분홍색 색지와 겨자색 壯紙로 감싸 모양을 잡고
보자기로 감쌌다. 보자기의 겉감은 卍字紋 위에 菊花를 배치한 연한 노란색, 안감은
홍색 卍字紋緞이며 끈은 紫赤色 紋緞을 사용했다.
(30) 王室의 보자기와 箱子
(31) 王室의 보자기의 材質과 用途
(32) 다섯 폭 홋보자기[五幅單袱] (*袱: 보 복)
紫色 麻織物 다섯 폭의 홑보자기이다. 바깥 면 가운데에 ‘무신동춘자경뎐고간이뉴이듁오’,
두 끝부분 바깥에 ‘오복이듁오’라는 흰색 글자가 적혀있어 이 보자기가 戊申年 陰曆 二月
慈慶殿 곳간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한 다섯 폭 보자기 25점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33) 두 폭 겹보자기[二幅 裌袱](왼쪽)-한 폭 솜보자기[一幅 襦袱]
=두 폭 겹보자기[二幅 裌袱] (*裌: 겹옷 겹 *袱: 보 복)
겉감과 안감 모두 두 폭의 겹보자기로 겉감은 靑色 紬, 안감은 紅色 紬를 사용하여 陽色
對備를 이루었다. 겉감 중앙에 紅色 紬로 만든 끈을 달아 돌려 묶어 고정하게 했다.
(*紬: 명주 주)
=한 폭 솜보자기[一幅 襦袱] (*襦: 저고리 유)
겉감과 안감을 각각 한 폭으로 만든 솜보자기로 겉감과 안감은 모두 紅色 貢緞이며,
보자기의 네모서리에 金箋紙가 둘러진 청색 술이 달려있다.
(34) 두 폭 누비 맛보자기[二幅縷緋 油紙袱](왼쪽)-두 폭 누비보자기[二幅縷緋袱]
=두 폭 누비 맛보자기[二幅縷緋 油紙袱] (*縷: 실 루/누 *緋: 비단 비)
겉감은 두 폭, 안감은 두 폭 반의 누비맛보자기로 겉감은 분홍색 주(紬), 안감은 거친
청색 紬이다. (*紬: 명주 주)
가운데 솜을 두고 약 1.3cm 간격으로 누빈 오목누비방식으로 제작했으며, 음식물이
식지 않도록 保溫이 필요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폭 누비보자기[二幅縷緋袱]
겉감은 두 폭, 안감은 세 폭의 누비보자기로 솜 보자기를 겉에서 줄줄이 홈질이나
박음질로 누빈 것을 누비보자기라고 한다.
약 1.2cm 간격으로 누빈 오목누비방식으로 제작하였으며,
‘명유대듕소십칠듁큰면고간’이라는 墨書가 있어 丁酉年 大殿곳간에서 사용한 보자기임을
알 수 있다.
(35) 한 폭 반 솜보자기[一幅半 襦袱](왼쪽)-한 폭 반 겹보자기[一幅半 裌袱]
=한 폭 반 솜 보자기[一幅半 襦袱]
겉감은 한 폭 반, 안감은 두 폭의 솜 보자기이다. 솜 보자기는 우그러지지 않게 형태를
잘 유지해야 되는 冠 종류나 金寶, 각종 銀製容器 등을 싸는데 쓰였다.
=한 폭 반 겹보자기[一幅半 裌袱]
겉감과 안감 모두 한 폭 반의 겹보자기로, 직물 두 겹을 맞대 만든 겹보자기는 가장자리를
말끔하게 처리하여 깨지거나 파손되기 쉬운 물건을 싸서 보호하는데 사용하였다.
(36) 세 폭 맛보자기[三幅油紙袱]
겉감이 세 폭의 長方形 맛보자기로 음식을 담은 그릇을 싸거나 음식을 차려놓은 床을 덮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자기 안감 쪽에 기름종이를 부착하였다.
‘경션당’이라는 墨書가 있어 慶運宮의 純獻皇貴妃(1854~1911, 高宗의 後宮 嚴氏)의
居處였던 慶善堂에서 사용한 보자기임을 알 수 있다.
(37) 王室 보자기의 文樣
(38) 한 폭 반 봉황문 보자기[一幅半 鳳凰紋袱]-원수호로박쥐문 겹보자기[
圓壽葫蘆 蝙蝠紋 裌袱]-만자문단 보자기[卍字紋緞 袱]-원수팔보문 겹보자기
[圓壽八寶紋 裌袱]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 폭 반 봉황문 보자기[一幅半 鳳凰紋袱]
鳳凰은 高尙하고 품위 있는 想像의 새로 王妃에 비유하기도 하며, 太平聖代를 예고하는
祥瑞로운 새로 婚禮에 사용된 引紋보자기의 紋樣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원수호로 박쥐문 겹보자기[圓壽葫蘆 蝙蝠紋 裌袱]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圓壽葫蘆 박쥐문은 長壽를 기원하는 ‘壽’를 원형으로 圖案하고 圓壽紋 주변에 표주박,
박쥐 등을 배치한 문양이다. (*葫: 마늘 호 *蘆: 갈대 로 *蝙: 박쥐 편 *蝠: 박쥐 복)
표주박을 뜻하는 葫蘆는 厄을 막아주거나 僻邪와 마귀를 제압하는 의미를, 박쥐는 행복과
富를 기원하는 현실적 念願을 담은 吉祥的인 의미를 담고 있다. (*僻: 궁벽할 벽)
*僻邪: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것 또는 재앙을 불제(祓除)하는 일
=만자문단 보자기[卍字紋緞 袱]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卍字紋은 ‘卍’字의 四方 끝이 縱橫으로 늘어나 펼쳐지고 계속 늘어나는 무늬로
釋迦牟尼가 탄생할 때 가슴에 있던 무늬로 佛敎에서는 祥瑞로운 像으로 여겨 萬德을
나타내는 吉祥紋으로 여겼다.
=원수팔보문 겹보자기[圓壽八寶紋 裌袱]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圓壽八寶紋은 圓壽紋 주변에 八寶紋이 함께 등장하는 무늬이다.
八寶紋은 구슬, 돈, 경쇠(打樂器의 일종), 方勝, 물소 뿔로 만든 술잔, 두루마리, 파초잎,
錢寶(葉錢) 등의 여덟 가지 吉祥物로 구성된 것으로 吉兆와 祥瑞로움을 뜻한다.
*方勝: 보자기의 네 귀에 다는 金 종이 장식품.
(39) 도류불수문 노리개보자기[一幅牡丹蔓草紋 佩物袱]-화접문 겹보자기[花蝶紋 裌袱]-
한 폭 모란만초문 노리개보자기[一幅 牡丹蔓草紋 佩物袱] (왼쪽부터 시계방향)
=도류불수문 노리개보자기[桃榴佛手紋 佩物袱]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桃榴佛手紋은 복숭아, 石榴, 佛手柑 무늬가 어우러진 문양으로 세가지 과일은 多壽, 多男,
多福의 三多를 상징하기 때문에 王室 女性의 裝身具를 싸는 보자기의 문양으로 愛好되었다.
=화접문 겹보자기[花蝶紋 裌袱] –국가민속문화재 265호-
花蝶紋은 아름다운 사랑과 즐거움의 상징으로 각종 裝飾紋樣에 널리 愛用된 나비가 꽃과
어우러진 문양이다. 꽃에 나비가 날아들거나 함께 등장하는 것은 夫婦間의 琴瑟 또는
남녀 사이의 행복을 뜻하며, 나비가 덩굴식물과 함께 등장할 때에는 子孫의 昌盛과 長壽를
뜻한다. (*琴: 거문고 금 *瑟: 큰 거문고 슬)
=한 폭 모란만초문 노리개보자기[一幅 牡丹蔓草紋 佩物袱] (*蔓: 덩굴 만)
牡丹蔓草紋은 모란은 꽃이 크고 色이 화려하여 富貴花라고 했으며, 繁榮과 幸福을
상징하고 이와 결합된 덩굴풀[蔓草]은 번식∙생장이 끊어지지 않고 잘 이어짐을 상징하여
모란만초문은 번영과 행복이 계속되어 이어짐을 뜻한다.
(40) 네 폭 봉황문 보자기[四幅 鳳凰紋引紋袱]
모시 네 폭의 홑보자기로, 보자기 위에 다양한 무늬들이 그려있어
인문보자기[引紋袱]이라고도 한다.
<國婚定例>와 各種 ‘嘉禮都監儀軌’에 인문보자기가 王室嘉禮 때 사용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婚禮와 같은 慶事스런 행사 때 사용했던 보자기로 보인다.
(41) 왕실 보자기의 形態別 使用方式
끈이 없는 보자기-끈이 중앙에 對角으로 달린 보자기-한 귀에 끈 2개가 함께 달린
보자기-끈이 對角의 두 귀에 달린 보자기(왼쪽부터)
=끈이 없는 보자기
끈이 달리지 않은 사각형의 홑보자기나 겹보자기이다. 함이나 궤 안에 물품을 보관할 때
마주보는 양쪽 귀를 먼저 여미고 나머지 두 귀를 엮어 쌌다.
=끈이 중앙에 對角으로 달린 보자기
중앙에 對角으로 끈이 달린 보자기로 그릇에 담은 음식이 쏟아지는 것을 막고 음식물을
保溫하는데 썼다.
=한 귀에 끈 2개가 함께 달린 보자기
끈 두 개가 한쪽 면에 달린 보자기로 끈의 길이를 하나는 짧게, 하나는 길게 했다.
소형 보는 노리개 등 패물(佩物)을 싸는데 쓰고 대형 보는 函 등 큰 물품을 싸는데 썼다.
=끈이 對角의 두 귀에 달린 보자기
두 귀에 폭이 넓은 끈이 달린 보자기로 끈이 없는 두 귀를 먼저 여미고, 끈을 돌려 묶어
사용하였다.
(42) 王室 生活用品의 保管箱子
(43) 순종어제와 포갑[純宗御製∙包匣] -顯宗 2년(1836)
顯宗 2년(1836)에 편찬한 純祖(재위 1800~1834)의 詩文과 御製를 모은 책과 이를 담는데
사용한 包匣이다.
여러 권의 책을 담기 위해 匣 형태로 제작했으며 이를 꽃 모양으로 장식한 비단으로 감싸고
<純宗御製>라는 標題를 붙였다. 책이 닿는 포갑 내부는 푸른색 비단으로 마감하여
책의 손상을 막고자 했다.
*純宗(純祖)은 正祖의 아들로 11세에 조선 제23대 王으로 즉위하였으나 英祖의 繼妃
貞純王后의 垂簾聽政과 慶州 金氏 金觀柱 등의 僻派가 정치를 주도하였으며, 19세 되던
재위 8년 이후로 王權을 강화하려 하였으나 金祖淳의 勢道政治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王權이 萎縮되었다.
廟號는 당초에 純宗이었으나 哲宗 8년(1857) 純祖로 개정되었으며 瑞草區 內谷洞
仁陵(史蹟 194호)에 安葬되었다.
(44) 국기복색소선, 법복사절복색과 첩갑[國忌服色素膳∙法服四節服色∙帖匣]
-19세기 말 -五倫臺 韓國殉敎者博物館(釜山 소재) 소장
憲宗(재위 1834~1849)의 後宮 慶嬪 金氏(1832~1907)가 한글 宮體로 쓴 두 권의 책과
이를 담는 데 사용한 帖匣이다. 帖 형태로 제작된 두 권의 책을 하나의
첩갑에 넣어 보관하였다.
첩갑은 五色으로 꽃무늬를 넣어 짠 오색비단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만들었다.
(45) 보소당인존과 포갑[寶蘇堂印存∙包匣]
憲宗의 御印을 포함하여 歷代 君王 및 국내외 名士들의 印章을 모아 만든 책과 이를
보관하는데 사용한 포갑이다.
오동나무의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제작하였으며, 전면 좌∙우측 위∙아래 부분에는 구멍이
뚫려있어 포갑을 서로 묶은 다음 책을 고정시켜 보관할 수 있게 했다.
(46) 선원선계와 첩갑[璿源璿系∙帖匣] -大韓帝國 시대
朝鮮王室과 大韓帝國 王室의 族譜인 <璿源璿系>와 이를 담는데 사용한 帖匣이다.
꽃을 수놓듯이 짠 황색 비단으로 겉을 장식하고 내부는 붉은색 명주를 발라 고급스럽게
마감하였다. (*璿: 구슬 선)
(47) 갓집 -조선시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갓을 사용하지 않을 때 넣어 보관하는 함이다. 종이를 여러 겹 褙接하여 만들었으며 밑면은
사각형, 모자 집은 원통형으로 서로 부착되었다. (*褙: 속적삼 배)
밑면에는 경첩 2개가 달려있어 갓집을 열고 닫으며 함 안에 갓을 보관하였다.
*배접(褙接): 종이, 헝겊 또는 얇은 널조각 따위를 여러 겹 포개 붙임.
(48) 흥선대원군 망건과 망건통[興宣大院君 網巾∙筒]-관복함[官服函](뒤)
=흥선대원군 망건과 망건통[興宣大院君 網巾∙筒] -19세기 말 -五倫臺 韓國殉敎者博物館 소장
興宣大院君이 사용하던 망건과 이를 보관하던 목제 망건통이다. 六角기둥 형태로 망건을
말아 넣고 자물쇠를 잠가 보관했는데 양 옆의 고리에 줄이 달려있어 휴대하거나 벽에 걸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관복함[官服函]
官服函은 官服을 보관하는 함으로 管帶函이라고도 한다. 관복함과 갓함을 덧붙여 관복과
관모를 비롯하여 裝身具 一切를 보관하도록 만들었다.
관복함의 전면에는 경첩으로 장식하였으며 양 측면에는 고리가 달려있어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했다.
- 조선왕실의 包裝 藝術 –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3-2)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