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수기] 가분수언니가 찜한 한국아바이
글: 박련희 / 그림: 이 강
저녁 11시가 넘어서야 나와 동거중인 언니가 퇴근하여 돌아왔다. 언니는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나의 방으로 건너와 오늘 파출부로 갔다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어머 날 좀 봐라. 돈을 주인한테 바쳐야지."
언니는 아직 저금통장이 없어서 매일 내가 대신 저금하고 있었다. 그녀는 앞 배에 띠고 있던 빨간 돈주머니(중국에서 빨간 천으로 만들어서 시장의 할머니들이 허리춤에 차는 것)를 허리에서 풀고 그 속에서 오늘 파출비를 꺼내놓았다. 설거지오물에 젖어버린 만원짜리 6장과 5천원짜리 한장 이였다. 언니는 행여나 그 돈이 해질세라 정성들여 펴서 한 줄로 놓고 나한테 말했다.
"에구 내사 이 한국 아바이(할아버지라는 뜻)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소. 매일 요대로 벌면 이제 석달이 되여 집으로 돌아갈 때 쯤 되면 200백만은 모여지겠지. "
그녀는 젖은 돈을 손으로 어루 쓸더니 그 중의 한 장을 꺼내 자기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한번 쓱 문지르고는 "한국 아바이, 내일도 내가 돈을 왕창 벌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너무 우스워서 한참 웃다가 한마디 했다.
"언니 무식하게 한국 아바이가 뭐요. 한글을 만들어낸 세종대왕이지. "
"내사 알길 없지. 세종인지 대종인지 여하튼 이 한국 아바이만 많으면
되지 뭐."
언니는 올해 여쉰 살도 넘는 나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파출부로 일하러 나간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다리가 퉁퉁 붓겨 있었고 발바닥에 열이 난다며 손에 잡히는 대로 뭔가를 들고 발바닥을 열심히 두드리기도 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일해도 앞 배는 늘 젖어 있었고 손은 더구나 보기 흉했다. 하루 종일 뜨거운 물을 틀어서 쌓이고 쌓인 그릇들을 세척하다 보니 면 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끼여도 물에 데여 살이 벗겨지고 지어는 며칠째 약을 발라도 아물지 못하고 고름마저 흐르고 있었다. 손마디가 퉁퉁 부어서 끼고 있던 반지마저 빼지 못하면서도 언니는 자기가 원래 웃 몸이 실하고 아래 몸이 약해서 가분수체질이기에 다리가 아프다며 아예 이 참에 다이어트가 됐으면 좋겠다고 난리다.
잠자리에 들어 2분도 안돼 코를 골며 자다가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파출부 일하러 정신없이 뛰여 가는 언니모습이 안쓰러워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쉬라고 했더니 아주 큰일이 난 것 처럼 안 된다 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그 힘든 파출자리마저 빼앗길가 두려워 함이 역연했고 한 곳에 그냥 가면 하루 파출소개비 5천원이 아끼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일자리가 많으니 좀더 쉬운 일을 찾으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오늘은 식당의 주인이 일을 잘한다고 선물까지 주었다"
언니는 아이크림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서 나에게 자랑했다. 일이 힘든 데도 다른 식당과 같은 일당을 준다고 한번 왔다간 파출들은 다시 오지 않는 곳이지만 언니는 감지덕지해 하며 파출로 나간다.
우연한 기회에 나도 언니를 따라서 함께 파출을 하게 됐다. 나는 홀에서 물컵을 씻고 언니는 주방에서 그릇들을 씻었다. 식당밖에는 손님이자기의 대기번호를 기다리느라 길게 줄 서고 있고 식당 홀에는 꽉 찬 손님들로 붐비였다. 채소와 고기 그리고 과일 음료수들이 여러가지로 진열돼있고 손님들이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수 잇는 뷔페식당 이다보니 나오는 그릇들은 쉴새없이 쌓이고 화장실에 한번만 갔다와도 설거지그릇들이 선더미 처럼 쌓였다. 퇴근시간이 다 되여 갈수록 설거지가 더 많아지고 때로는 십여분 연장해서야 겨우 마무리할수 있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홀 언니들이 같은 고향이라고 씻은 그릇들을 빼주거나 홀에 날라다 주었고 과일을 입에 넣어주거나 시원한 음료수를 컵에 담아다 주기도 했다. 저녁을 챙겨먹을 시간이 모자라면 홀에서 나오는 영양가 있는 소스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아마도 그 인정에 감동돼서인지 언니가 이 식당 일을 포기 하지 못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의 집벽에 걸려있는 달력은 온통 수자놀이로 꽉 찼다. 언니가 매일 파출비를 수입에 적어놓고 그 밑에 적자란에는 앓고 있는 남동생과 치매에 걸린 여든이 넘는 어머니의 옷을 구매하느라 쓴 돈을 기입하느라 수자로 꽉 차있다.
추석날 하루 파출을 뛰면 8만원을 번다면서 일하려 가려는 언니를 억지로 끌고 광화문거리로 구경을 갔었다. 각종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광화문거리 한복판에 정중히 모셔있는 세종대왕의 동상을 보던 언니가 와들짝 놀라면서 하는 소리였다.
"어머 진짜 내가 좋아하는 한국아바이가 여기에 있네"
세종대왕의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주위를 둘러싸고 흐르는 물 에도 손을 잠그어 보면서 나는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데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후에 발견한 언니는 동상주위를 빙빙 돌면서 자기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찜하기를 하고 있었다.
"언니, 뭘하는 거야. 동상에 침이나 바르고 창피하게"
내가 큰소리를 치자 언니는 "애는 소리치지 말고 조용해라. 다른 사람이 알면 안된다니까."
그녀는 내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우리 엄마가 늘 나한테 그랬어. 자기가 찜한 것이 있으면 이렇게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자꾸 찍어놓으면 언젠가는 꼭 자기것이 된다고"
"그렇다고 이 동상을 가져다 중국에 팔아 먹겠소" 내가 한마디 하자 언니는 "너는 공부를 했다는 애가 왜 그리 둔하니? 이 동상이자 내가 좋아하는 <한국아바이>가 아니니"
이 나라의 <한국아바이>를 다 얻은듯 언니는 해맑은 얼굴을 들어 세종대왕의 동상앞에서 갂듯이 두손모아 자기의 소원을 빌었다. 언니의 소원이 무엇인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오, 못말리는 가분수언니의 <한국아바이>사랑이여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294호 2013년 6월 12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