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 명칭, 기원 및 정의
1 절 : 명칭 (1장, 9-11쪽 ; 교본 1장, 1-4쪽)
레지오 마리애는 라틴어 명칭으로 '마리아의 군단'이란 뜻이다.
교본에 의하면 레지오 마리애는 고대 로마군단의 형태로 조직되었으며 그 명칭 또한 거기서 따온 것이다. 레지오 모체인 <자비의 모후회>가 생긴 이래로 대여섯 개의 지단이 생기게 되자 이 신심 단체를 표명하는 대표명칭이 필요하게 되었다. 적절한 명칭을 정하기 위한 첫 모임에서 결정을 짓지 못하자 다함께 9일 기도를 바치기로 하였다. 프랭크 더프는 명칭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간결하면서도 단체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독특한 명칭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가 죽기 1년 전에 있었던 회견에서 "나는 명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어느 날 자정이 넘어 침실로 가면서 내 서재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성모님 초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나의 뇌리에 레지오 마리애라는 이름이 스쳤다"고 회고하였다. 아마도 그는 학창시절부터 로마 군단에 대한 경외심을 지녔기 때문에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강력한 군대로서 레지오 마리애란 명칭을 생각해 낸 것 같다. 그가 9일 기호 후의 모임에서 이 명칭을 제안하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때는 1925년 11월 15일이었다.
그 후 그는 명칭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하였으며 교본 부록에 레지오 마리애가 본받아야 할 로마 군단의 정신과 힘의 비결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또한 미사 성제를 설명하면서 레지오의 명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갈바리아에는 성모와 함께 로마 군단 대표자인 백부장과 그의 부하가 있었다. .... 로마 군인들은 그들의 손으로 희생된 시신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태 27,54)하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인류의 어머니께서 갈바리아에서 처음으로 맞아들인 특이한 자녀들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마리아께서 '레지오라는 이름'에 대하여 언제나 호감을 가지시도록 만들었음이 틀림없다"(8장 3항 48쪽 ; 교본 223-224쪽).
1930년도에는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 단위를 라틴어 명칭으로 통일하기 위해 기초 단체를 쁘레시디움, 그 상급 평의회를 꾸리아, 꼬미씨움, 레지아, 세나뚜스, 꼰칠리움 레지오니스 등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교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레지오란 명칭은 레지오 마리애나 로마 군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이 '레지오'란 말을 당신의 입술에 올리심으로써 거룩하게 하시고 몸소 천사들에게 적용하신 바가 있었다. 곧 당신의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은셨을 때 '내가 아버지께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도 넘는 천사들을 보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마태 26,53)고 하셨다"(24장 6항, 142쪽 ; 겨본 82-83쪽).
그러므로 맨 처음부터 레지오 마리애의 마침 기도문에 성 미카엘과 수호천사들의 도움을 청하는 호도가 수록되었는데 1962년 8월부터 그 기도문을 다음과 같이 고쳐서 사용하고 있다
"성 미카엘과 성 가브리엘,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모의 천상 군단, 모든 천사들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141쪽 및 134쪽 ; 교본 81쪽 및 91쪽 참조)
2절 : 기원 (1장, 9-11쪽 ; 교본 1장, 1-4쪽)
레지오 마리애의 첫 회합은 1921년 성모 성탄 축일 전야인 9월 7일 저녁 8시에 더블린 프란시스 거리에 위치한 빈첸시오 회관이며 개척자 회관인 마이러 하우스에서 개최되었다. 레지오 마리애는 다음과 같은 경위로 출범하게 되었다
어느 주일에 빈첸시오 회원인 매트 머레이가 관리기관 모임에서 구호병원의 부인 병동 방문에 대한 활동 보고를 하였다. 그의 보고는 모든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당시 병원 사도직은 남자 회원들이 맡고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다과 시간 동안 몇몇 여성 회원들이 부인 병동 방문을 여자들이 담당할 것을 제안하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래서 여성 회원들만 별도로 모집하여 그 다음 수요일 저녁에 다시 모이기로 하였다. 그 날 저녁이 성모 성탄 축일 전야라는 사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1921년 9월 7일 수요일 저녁 8시에 15명이 모여 첫 회합을 가졌다. 그들은 영적 지도자 토허 신부와 프랭크 더프 및 13명의 여성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20대의 젊은 층이었다. 그런데 방에 들어섰을 때 프랭크 더프는 흰 보가 깔려 있는 탁자 위에 개척자 회원이며 그의 친구인 죠 가벳이 남겨 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성상이 놓여 있고 양쪽으로는 두 개의 꽃병과 불을 켠 두 개의 촛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면서 기뻐했다. 오늘날 어느 레지오 회합에서나 그와 꼭 같은 차림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누가 그렇게 차렸는지 몰랐으나 후에 수녀원에 입회한 알리스 키오프의 영감으로 꾸며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프랭크 더프는 그처럼 분위기가 잘 잡히 조촐한 제대를 보고 단원들이 성모님을 초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모님이 자기들을 초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그의 뇌리를 스쳤다. 후에 그는 레지오가 초자연적으로 마리아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리아의 정신으로 조촐하게 창설되었다고 말하였다. 레지오의 첫 회합에서 단원들이 맨 처음에 함께 한 행동은 빈첸시오 회합 순서대로 무릎을 꿇고 성령께 대한 호도와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일이었다. 그 다음으로 영적 독서를 한 후에 새로 생겨난 이 모임의 진로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대화하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을 모색하였다. 결의 사항으로 매주 모임(주회)을 갖기로 하고 프랭크 더프 외에는 남성을 입단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물질적 구호 활동을 하는 빈첸시오 회의 고유 활동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영적인 활동만을 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레지오가 모든 사람에게 영신적 선물을 가져다 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했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 토허 신부가 첫 훈화를 했는데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최초의 활동으로서 더블린 구호 병원의 암 병동을 두 사람씩 짝지어서 방문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레지오 마리애 회합의 원형이 되었다. 처음에 이 새로운 단체의 이름을 '자비의 모후회'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자비를 베푸는 성 빈첸시오의 애덕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구호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최초의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초대 단장으로 최연장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조정, 감독하는 관리기관 월례회장인 엘리사벳 커완이 선출되었다.
후에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가 성 루도비꼬 마리아의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을 공부하는 모임 덕분에 창설되었음을 회고했다. 성 루도비꼬 마리아는 레지오 창설에 대한 그이 예언이 실현될 때까지 무려 260년 간이나 기다렸다.
<복된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책에 기록한 그의 예언은 다음과 같다
"성난 짐승 같은 무리들은 이 책을 읽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박해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더 나아질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나의 용기를 북돋아주며, 더욱 큰 성공을 하리라는 희망을 안겨준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가장 위태로운 시기에 세속과 악마와 육신과 맞서 싸울 강력한 군단 즉 예수와 마리아의 용감한 남녀 군사들로 이루어진 대 군단이 나타나리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읽는 자는 알아들을 것이요'(마태 24,15), '이 말을 받아들일만한 사람은 받아들일 것이다'(마태 19, 12)" (참된 신심 114항 ; 새교본 24장 3항, 138-139쪽 ; 교본 77쪽 참조).
3 절 : 정의 (1장 9쪽 ; 교본 1장, 1쪽)
레지오 마리애는 어떠한 단체인가? 교본 본문은 레지오 마리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란 교회가 공인한 평신도 단체로서 모든 은총의 중개자이고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강력한 지휘 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끊임없이 대적하는 교회의 싸움에 복무하기 위하여 형성된 군단이다."레지오 마리애는 창세기 3장 15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이 구절은 여자와 뱀 사이에 , 선과 악 사이에 끊임없는 투쟁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고 또한 군대로서의 레지오 마리애 특성에 부합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교본 본문은 레지오의 정의를 설명하면서 공의회 문헌 사목 헌장을 인용하고 있다
"사실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개인이든 단체이든 간에 선과 악, 빛과 어두움 사이에서 극심한 투쟁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목 헌장 13항).
악마들도 천사들처럼 레지오를 이루고 있음이 성서에서 드러난다. 예수님이 마귀들린 사람에게 이름을 묻자 그는 "내 이름은 레지오다. 왜냐하면 나에게 수효가 많기 때문이다"(마르 5,9)고 대답했다. 이처럼 악마들도 군단을 이루어 막강한 세력으로써 사람들을 멸망에로 유인하고 있지만 결국 수많은 악마들이 예수님에 의해 돼지떼 속으로 ?겨났듯이 오늘날엔 지상 군단인 레지오 단원들에 의해 쫓겨나고 있다.
제 2 장 : 레지오의 목적 (2장, 11-12쪽 ; 교본 제2장, 5쪽)
교본 본문에 의하면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의 개인 성화를 도모하고 교회의 지도하에 마리아와 교회 사업에 기도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데 있다.
레지오의 우선적인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이다.
개인 성화는 레지오의 목적일 뿐만 아니라 으뜸가는 실천방법이다(11장 1항, 67-68쪽 ; 교본 49쪽 참조).
남을 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원 자신의 성화부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 하여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태 16,26).
초자연적인 정신으로 마리아와 교회의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사도직 활동도 기도 못지않게 성화의 수단임을 알아야겠다.
여기서 마리아와 교회의 사업이란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발전시키고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로서 이것이 곧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군대이긴 하지만 그 조직과 무기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영적인 무기를 가지고 충성과 덕행과 용맹으로써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천상모후께 맞갖은 봉사를 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한다.
교본은 레지오의 목적을 공산 진영의 목적과 비교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오직 한 분뿐인 지배자이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유다 1,4) 다른 진영의 목적과 정반대가 된다.....레지오의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과 믿음을 가져다 주는 일인데, 다른 진영이 선언한 목적은 상반된 일을 이루는 것이다"(12장 4항, 78쪽 ; 교본 63쪽).
교본 본문은 또한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어떠한 교회 봉사 활동이든지 본당 신부나 주교 또는 권한 있는 교회 당국자의 승인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제 3 장 : 레지오의 정신 (3장, 12-13쪽 ; 교본 제3장, 6쪽)
교본 본문은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바로 마리아의 정신"이라고 단언하면서 단원으로서 일생 동안 묵상하고 실천해야 할 성모님의 정신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10가지 덕목으로 나열하고 있다. 겸손, 순명, 온유, 기도, 고행, 순결, 인내심, 지혜, 사랑, 믿음. 이러한 덕목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가 지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이란 책에서 따온 것이다(참된 신심 108항 참조).
이 열 가지 덕목들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매우 중요하므로 차례로 간단히 살펴 보기로 하자.
1) 겸손
겸손은 레지오 정신 중에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덕행이다. 겸손은 마리아가 구세주의 모친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였다.
겸손 덕분에 성령이 내려와 구세주를 강생토록 하였다. 겸손이 없는 곳에 성령께서는 내려오시지 않는다. 겸손은 은총의 보고를 여는 열쇠로서 모든 덕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으려고 한다. 새교본에서는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음은 레지오 활동의 뿌리요 수단이다"(6장 2항, 27-31쪽 ; 교본 173-178쪽)라는 제목으로 한 항목을 별도로 두어 다루고 있다.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겸손을 통해 참된 겸손의 본질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즉 겸손이란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는 것, 자기 자신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임을 단원들은 터득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하느님이 공짜로 주시는 은혜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그 은혜를 늘리거나 줄이며, 완전히 거두어 가기도 하신다. 자신이 하느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일도 기꺼이 떠맡으며, 어떠한 처지에 있어도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루가 1,38)라고 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되뇌이며 남의 멸시와 박대를 견디어낸다.
그러므로 겸손없이 훌륭한 레지오 단원이 될 수 없고 성화될 수도 없으며 하느님과 일치할 수도 없고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도 없다.
2) 순명
순명이란 윗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복음적 순명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는 순명으로써 구원의 문을 열었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신 마리아의 대답은 히브리서 저자가 그리스도께 적용한 시편 구절을 연상시킨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나이다"(히브 10,7 ; 시편 40,7).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온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을 주의 여종으로서 온전히 바치셨다고 했고(교회헌장 56), 순명 정신으로 신앙의 나그네 길을 걸으셨다고 했다(교회헌장 58항).
마리아가 나자렛에서 대답한 '예'는 갈바리아 산 위에서 완결되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갈바리아의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는 당신 아들을 지켜보며 주의 탄생 예고 때에 보여 주었던 순명을 다시 보여 주셨다. 이처럼 성모님은 항상 순명 정신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랐다. 순명은 겸손과 결부되어 있다. 겸손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순명이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겸손은 참된 겸손이 아니다. 순명하는 레지오 단원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기 때문에 구세주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교본은 '레지오 단원의 충성'이란 제목으로 단원의 순명 정신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29장, 171-172쪽 ; 교본 136-137쪽 참조).
3) 온유
온유는 애덕의 향기로운 열매이다. 강력한 사도직 활동에는 반드시 천사적인 부드러움이 수반되어야 한다. 온유하지 못한 군인은 파괴시키는 폭풍우와 같다. 부드러움은 레지오 사도직의 특성으로서 모든 성공의 동기가 되는 덕행이다. 교본은 레지오 단원들이 활동할 때 반드시 온유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39장 2항, 281-282쪽 ; 교본 397-398쪽 참조).
4) 기도
레지오는 기도에도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하루라도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레지오는 무기없는 군대와 같고 선을 향한 강력한 힘도 사라지고 말기에, 레지오 단원은 마치 호흡을 하듯이 기도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고 기도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기도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기도에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 찬미, 감사 그리고 용서와 필요한 은혜를 청하는 요소가 들어 있어야 한다. 기도는 레지오의 조직 체계와도 같아서 레지오 활동에도 적용된다. 교본에 '레지오 단원은 활동과 더불어 기도를 해야한다'(33장 12항 ; 교본 28장 14항)는 제목도 있듯이 레지오에서는 기도와 활동 중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기도하는 동정녀 마리아를 본받아야 한다. 성모님의 생애는 기도로 일관되어 있다. 교본은 단원들에게 "하루 동안에 하는 모든 행동과 기도를 마리아와 함께 할 정도로 마리아의 의향과 뜻에 일치시키도록 해야 한다"(39장 1항, 280쪽 ; 교본 423쪽)고 당부하고 있다.
5) 고행
고행은 자기 희생, 보속, 극기와 같은 뜻으로서 교본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이다. 레지오 단원 생활의 목적은 죄악을 이기고 사람들을 구원에로 인도하는 것이기에 예수님과 성모님이 걸어가신 고행의 길,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레지오 단원은 활동을 하면서 종종 고통과 고행의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고통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고통도 하나의 은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은 불쌍한 환자들을 방문해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고 올바른 정신으로 그 고통을 참아내도록 일깨워 주어야 한다(37장 5항, 237쪽 ; 교본 323쪽 참조).
6) 순결
순결의 덕은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따라야 할 보편적인 덕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심적, 정신적, 영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덕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8).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마음 속에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말한다. 누구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악의 뿌리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마음의 순결은 갈고 닦아야 한다.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예로부터 성모님은 '가장 순결한 분'으로 불리어 왔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어떠한 죄악으로부터도 해방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성덕의 출발점은 어떠한 죄에도 물들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마리아와 죄악은 서로 원수가 되어 끝없는 싸움이 계속된다. 마리아는 당신의 발꿈치 아래 뱀의 머리를 짓밟고 어둠의 세력을 쳐부수신다. 일반적으로 불결을 두고 말할 때 원조의 범죄 이후 우리의 본성상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신의 불결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마리아는 유혹 받는 영혼들의 피난처, 죄인들의 피난처이시다. 그래서 레지오 단원은 선서문을 읽을 때 성령께 "당신으 힘으로 원죄없이 태어나신 마리아로 말미암아 저를 티없이 깨끗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순결은 레지오 단원에겐 필수적인 덕이다. 모든 영혼은 마치 축성된 성작과 같아서 감히 불결한 손으로 만질 수 없기에 단원은 활동하기 전에 먼저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할 것이다.
7) 인내심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난관이나 역경을 당할 때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심을 지녀야 한다. 인내심은 끈기를 요구한다. 끈기란 인내심과 항구심을 내포하는 말이다. 예수님도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 24,13 ; 마르 13,13 ; 루가 21,29)라고 하셨다.
레지오 단원은 레지오에서 배운 끈기의 정신을 활동하면서 발휘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의 적대감, 박해와 기만, 신아에 냉담한 태도에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단원은 신망애 삼덕을 거스르는 사람들과 접촉하게 될 때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포기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겠지만 꾸준히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한다(39장 2항 및 4장 5항 참조).
8) 지혜
레지오는 마리아의 천상적 지혜를 자체 안에 갖추고자 열망한다. 여기서의 지혜는 하느님을 아는 것에 맛들임을 뜻한다.
마라아는 지혜의 모델이다. 성찰하며 묵상하고 귀담아 듣는 것은 지혜롭게 사는 조건인데 동정녀 마리아가 보여 준 태도가 바로 그러하였다(루가 2,19 ; 2,51 참조).
일반적으로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묵상하는 것은 현자의 태도이다. 마음 속에 간직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마리아야말로 현자들의 모형이요 그리스도인들의 이상형이다.
마리아는 주님의 모친으로서 '상지의 옥좌'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의 아들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정에서 시련의 순간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늘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실천에 옮긴 분이기 때문이다(마르 3,33 ; 마태 12,48-50 ; 루가 8,21 참조). 육화되신 지혜를 받아들이신 마리아는 '지혜의 딸'(루가 7,35 참조)이시다.
9) 사랑
사랑은 '완전의 끈'(골로 3,14)으로서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이며 레지오 체계의 핵심이기도 하다. 레지오는 무엇보돠도 먼저 하느님께 대한 믿음뿐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지니시는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랑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애덕이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이웃에 대한 항구한 사랑이다. 애덕은 신앙인의 생활 규범으로서 가장 좋은 길이다(1고린 13장 참조).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이 길을 걸어야 한다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 22,37.39 ; 신명 6,5 참조).
인류 구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레지오 사도직은 바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가 사랑을 특징으로 삼고 있기에 단원이 선서를 할 때 성령께 "제 영혼 안에 불과 사랑을 가져 오시어, 세상을 구원코자 하시는 마리아의 사랑과 뜻에 일치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교본은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1고린 13,13)라는 제목으로 레지오 단언의 사라에 요구되는 사항들을 지적하고 있다(41장 ; 교본 40장 참조).
10) 믿음
레지오 단원은 무엇보다도 먼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덕을 지녀야 한다. 믿음이야말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이기 때문이다(1요한 5,4 ; 교본 14쪽 참조). 교본은 레지오의 정신에 속하는 10가지 덕목 중에 특별히 믿음과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의 믿음, 곧 그분에게서만 볼 수 있는. 그 비할 수 없는 최고의 신덕을 레지오는 갈망하고 있다. 마리아의 이런 사랑과 믿음에 감도되어 레지오는 어떤 일이든지 감당하려고 한다"(3장 12-13 ; 교본 6쪽).
레지오는 마리아께 대한 신심 때문에 믿음을 잘 지켜 나간다. 왜냐하면 마리아느 믿음의불기둥이며 모든 오류를 쳐부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레지오의 마침 기도문이 말해 주듯이 레지오 활동의 밑바탕이 되는 믿음을 달라고 꾸준히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지오의 상훈도 믿음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에게 영성생활의 토대를 굳건히 해 주는 신덕이 없다면 행종 단원을 오랫동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성모님은 최고의 신덕을 지니고 계셨다.
"믿음이란 '그분의 판단을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음을'(로마 11,33) 겸손되이 인정하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 주는 진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구세주의 어머니> 14항) 일진대 이는 바로 성모님의 태도였다. 마리아는 주의 탄생 예고의 순간에 천사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여 주님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완전히 자신을 맡기셨다. 그래서 엘리사벳이 마리아께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 1,45)고 칭송하였다.
이처럼 복음서에 등장하는 첫 번째 복은 바로 믿음의 복이다.
마리아의 믿음은 '믿음의 아버지'(로마 4,12)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할 수 있다. 아브라함처럼 마리아는 조건없는 믿음으로 하느님께 응답하셨다(루가 1,38 참조) 구약이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시작되었듯이 신약은 마리아의 믿음으로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신역의 첫 번째 신자였다.
제 4 장 : 레지오의 봉사 (4장, 13-17쪽 ; 교본 제4장, 7-13쪽)
교본 4장은 레지오 단원의 봉사 정신에 관한 내용이기에 단원의 영성에 해당된다. 레지오에서 봉사 활동은 필수적이다.
레지오 단원은 봉사를 통해서도 완덕을 지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말보다도 봉사 정신과 사랑의 생활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프랭크 더프는 레지오의 봉사에 있어서 바오로 사도의 철저한 신앙 및 사랑의 생활과 봉사 정시늘 본받도록 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1.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에페 6,11)을 하여야 한다.(13쪽 ; 교본 7)
좋은 일에는 흔히 악마적이 장애가 들기 쉽다 하여 호사다마라고 부른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가 전 세계로 확장, 발전함에 있어서 자주 악마적인 장애가 끼어 들었음을 체험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체험에서 얻은 개념의 '악마의 공격'이었다.이 세상이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 원인은 인간 탓도 크지만 인간이 잘못되도록 뒤에서 조종하고 유혹하는 악의 세력 탓이 더 크다. 우리가 대항해서 싸워야 할 원수는 인간이 아니라 악의 세력들인데(에페 6,12 참조) 그들은 군대를 이루고 있다(마르 5,9 참조). 악의 군대와 싸워 이기기 위한 영적인 지상 군대가 바로 마리아의 군대 즉 레지오 마리애이다.그런데 세속적 지상 군대 중에 훌륭하고 본받을 만한 군대가 로마 군단이다. 거룩한 마리아의 이름이 들어 있는 레지오 마리애를 세속적 로마 군대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단원들은 적어도 그 군대가 지니 여러 가지 미덕을 본받아야 할 것이고 특히 봉사 정신에 있어서는 그 군대를 능가해야 할 것이다.교본 본문은 "레지오 마리애가 그 이름을 따온 로마 군단은 충성, 용맹, 규율, 인내 그리고 성공 등으로 해서 여러 세기 동안 명성을 떨쳐 왔었다"고 하면서" 사실상 그러한 로마 군대의 미덕들은 레지오 봉사의 최소 한도를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다. 교본 부록에서는 로마 군단에 있어서 무적의 힘의 비결은 각 병사들의 놀랄 만한 정신력에 있었는데 그 정신을 요약해 보면 "권위에 대한 복종심, 변치 않는 의무감, 장애에 부딪쳤을 때의 인내심, 난관을 이겨내는 지구력, 사소한 의무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충성심이라고 할 수 있다. 레지오 마리애도 이와 같은 웅건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다만 사랑과 봉사의 비결을 가장 잘 가르쳐 주시는 성모님과 접촉함으로써 이러한 정신을 초자연화시키고 부드럽게하고 감미롭게 만들어야 한다"(부록 4,339쪽 ; 교본 440-441쪽)고 말하고 있다.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은 악의 세력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이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 6장에서 그 당시 로마군인들의 완전 무장한 모습을 영적으로 완전 무장한 신앙인에게 적용하면서 악의 군대를 무찌를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손에는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4-17). 이처럼 레지오 단원들도 보사 정신에 있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여햐 한다.
교본은 또한 제4대 교황인 성 글레멘스가 고리토인에게 보낸 서간에서 "로마 군대은 교회가 본받을 많한 하나의 표본"이라고 말하였다고 하면서 그 내용을 본문 마지막에 별도로 발췌하였는데 그 중에 로마 군대에 관련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로마 군단에서 그 지휘자들 밑에 복무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의 규율, 준비 태세 그리고 작전 명령 수행에서의 복종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 모두가 사령관이나 호민관, 백부장이나 오십부장 또는 하사관에 들지는 않는다.그러나 각자는 자기가 속하는 계급에서 황제와 상관의 명령을 수행한다.
2. 성스럽고 거룩한 생활로써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며, 세속을 본뜨지 말아야"(로마 12,1-2) 한다. (14쪽 ; 교본 8쪽)
이 본문은 로마서 12장 1-2절을 요약한 것으로서 성서 구절을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니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이 성서 구절은 바오로 사도의 권고와 훈화에 속한다.
신자들은 믿음으로 의로워졌으니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서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산 제물이 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하느님께 산 제물을 바치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드릴 진정한 예배 역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것 즉 삶 전체를 하느님께로 향하고 바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답게 세속을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새 생활을 꾸준히 영위하는 것이다.신앙은 이론이기보다는 실천이요 생활이다.
그러기에 신앙은 일상생활에서 꽃 피고 열매 맺는다. 개인 성화와 함께 이웃 봉사에 앞장서야 할 레지오 단원은 일상 생활과 봉사 활동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보여 주신 철저한 희생과 헌신을 반영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거룩한 생활이 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산 제물이 될 것이다. 교본 본문이 역설 하듯이 레지오 단원은 "각자의 봉사 활동에 그런 온전한 자기 희생 정신을 반영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3. "노고와 고통"(2고린 11,27)을 피해서는 안 된다(14-15쪽 ; 교본 8-9쪽)
교본은 레지오 단원의 선교 활동과 신심 행위에 있어서 바오로 사도가 경험한 '노고와 고통'을 본받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 고린토 후서 11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참된 사도
임을 증거하기 위해 직접 겪은 노고와 고통을 들려주고 있다.
그는 수없는 매와 몽둥이와 돌에 맞아 여러 번 죽을 뻔했으며
여러 번 파선을 당해 바다에서 표류했으며 선교 여행 중에 온갖 종류의 위험을 겪었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리며 수없는 밤을 뜬 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추위에 떨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그는 여러 교회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 고통당하였다(2고린 11,23-28 참조).
그는 또한 거짓 사도들을 향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랑하고 응수하였다. 그의 자랑이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스스로 약해지고 비웃음과 모욕, 배신과 박해, 빈곤과 고통을 참아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복음을 위해 참고 견디어 온 노고와 고통이 바오로 사도르 참된 사도로 증거하고 있다.
레지오 단원도 바오로 사도처럼 참된 사도가 되어야 한다.
참된 사도는 노고와 고통은 물론 죽음과 순교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교본 본문에서 말하는 "최근의 여러 사태"엔느 중국이 공산화되어 수많은 레지오 단원이 감옥에 갇히고 그들 중의 많은 수가 살해 당하고 순교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 "많은 레지오 단원들은 그러한 영광의 문을 당당히 통과하여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현대에 있어서 극단적인 사례이다.
현대에는 피 흘리는 순교는 거의 없어졌다. 그 대신 정신적인 박해와 온갖 나쁜 사조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냉담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세속주의, 물질 및 과학 만능주의, 쾌락주의, 이기주의가 신앙심과 양심을 마비시켜 영적 무감각에 빠뜨리고 있다. 그래서 노고와 고통 즉 십자가를 배척한다.
레지오 단원은 선교 활동을 할 때 그러한 나쁜 사조로 인해 종종 참기 어려운 모욕, 비웃음 등의 정신적인 박해를 당함으로써 하던 활동을 팽개치고 싶은 충동도 받는다. 그럴 때 일수록 인내와 용맹의 정신을 발휘하여 '노고와 고통'을 피하지 말고 달게 참아 받고 끝까지 버티어 나가야 할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 같이 사랑의 생활을"(에페 5,2)해야만 한다(15쪽 ; 교본 9-10쪽)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시고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하셨다(필립 2,6-8 참조). 예수님은 사랑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사랑만이 영원한 것이다. 레지오 단원 역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의 생활과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이웃을 구원에로 이끌어야 한다.선교 활동을 통한 대인 관계에 있어서 성공의 비결은 사랑과 이해심을 지닌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접촉이다.
그런데 꾸준하고 원만한 대인 관계를 맺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인 관계에는 시련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해 타산이나 조건없는 사랑만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려면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려야 할 것이고 희생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이 디셨듯이"(에페 5,2)
모든 활동의 밑바탕에는 자기를 전적으로 바치려느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어느 지점에 한계선을 긋고 여기까지만 희생을 바치겠다고 한다면 알맹이 없는 봉사가 될 것이고 보잘 것 없는 결과만 얻게 될 것이다.
5.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려야만"(2디모 4,7)한다(15-17 쪽 ; 교본 10-13쪽)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복음을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친"(2디모 4,2) 바오로 사도는 로마 감옥에서 자신의 동반자요 조력자인 디테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이 편지를 썼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 나느 휼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2디모 4,5-8)고 했다.
이 내용은 그 당시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여 우승한 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다른 편지에서도 복음을 전파하는데 실격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달리기 경기에 비유하여 신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을 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월계관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므로 신자들은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1고린 9.24 참조)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야 달려가야 한다"(필립 3,13-14 참조)
레지오 단원들 역시 선교 활동과 레지오의 전반적인 복무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 지속성을 지니고 꾸준하게 달릴 길을 다 달려야 한다. 여기에는 끈기와 활기가 요구되며 변덕스러움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변덕은 가장 훌륭한 규율까지도 깨뜨려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달릴 길을 다 달리려면 항구하고 굳센 의지가 필요하다. 선교 활동에 있어서 아무리 힘들고 가망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희망이 없다는 낙인을 찍어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마치 한없이 귀중한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해도 좋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달릴 길을 다 달리려면 끈질긴 기다림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농부는 결코 씨를 뿌리자마자 수확을 거두려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레지오 단원들이 활동 과정에서 기다리지 않고 결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중도에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소치이다. 레지오는 단원들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 끈질긴 노력, 약해지지 않는 사랑, 꾸준한 수련을 요구한다.
교본 본문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의 "성모 마리아의 신앙에 참여한다"(참된 신심 214항)는 내용과 레지오의 마침 기도 내용에 살을 붙여 설명하면서 세심한 관심과 똑같이 지치지 않는 인내와 똑같이 꿋꿋한 용기와 황금같은 끈기를 지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그렇게 할 때 비로소 레지오 단원들은 달릴 길을 끝까지 다 달리는 것이 될 것이고 한 사람뿐 아니라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월계관을 받아 쓰게 될 것이다.
제 5 장 : 레지오 신심의 개요 (17-24쪽 ; 교본 제5장, 14-23쪽)
레지오의 신심은 레지오 기도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하느님과 마리아에 집약되어 있다. 레지오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중요시하면서 단원 자신의 성화와 이웃에 대한 봉사 활동이라는 두 가지 목적 사업에 하느님과 성모님이 늘 함께해 주신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레지오 신심은 하느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성모 신심에 바탕을 두고 이쓴데 이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가 지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과 드 꼰칠리오가 지은<마리아께 대한 지식>에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교본은 5장에서 레지오와 관계되는 마리아의 특전에 중점을 두면서 단원들이 마리아를 잘 알아야 함은 물론 그분을 이 세상에 모시어 레지오 조직을 통해 널리 알리기를 바라고 있다.
@ 교본에서 레지오의 신심개요는 다음 7항으로 나누어져 있다
1. 하느님과 마리아,
2. 모든 은총의 중개자인신 마리아,
3. 원죄없으신 마리아,
4.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5. 레지오의 성모 신심은 레지오 사도직의 뿌리,
6. 마리아를 알기만 하면!,
7. 마리아를 세상에 모시는 일
1. 하느님과 마리아(18-19쪽 ; 교본 15-16쪽)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는 <참된 신심> 1장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필요성'에서 하느님과 마리아에 대한 기본적인 진리를 서술하고 있다 마리아는 지존하신 하느님의 손으로 창조된 단수한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함에도 하느님은 마리아를 통해서 구원사업을 시작하고 완성하기를 원하셨다. 천주 성부는 당신의 독생 성자를 다만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에 내려 보내 주셨고 천주 성자는 인류 구원을 위해 강생하셨으나 어디까지나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다. 천주 성령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 태중에 잉태케 하셨으나 먼저 대천사를 보내어 마리아의 승낙을 받으셨던 것이다(참된 신심 14-16).
새교본 39장 1항(교본 39장 7항)은 "마리아와 함께 가지 않으면 영혼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제목으로 하느님과 마리아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며하고 있는데 해당되는 주제만 나열해 보면
1) 태초부터 마리아는 하느님의 마음 속에 계셨다.
2) 마리아는 예언을 통하여 생생하고 확실하게 계시되었다.
3) 주의 탄생 예고는 마리아의 막중한 지위를 나타낸다.
4) 성부께서는 구원 사업이 마리아에게 매이도록 하셨다.
교본 본문은 마리아의 지위와 위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마리아는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유일하게 드높은 자리를 차지하셨다. 하느님은 마리아를 통해 영광 받으시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마리아께 드리는 것은 조그도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되어 하느님께로 간다(루가 1,45-47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교회헌장 8장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엣서의 천주의모친 복되신 동정 마리아"란 제모그로 성모님에 대해 가르칙 있느네 이 역시 <참된 시심>의 영향을 받고 있고 교본 내용과 부합한다. 하느님은 세상 구원을 완수하시려고 "때가 찼을 때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으며"(갈라 4,4) 성령을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셨다(교회헌장 52항 참조)
마리아는 "성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다음으로 가장 높고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시고"(54항)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66항 69항 참조) 분이시다
"성모가 공경르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고아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66항).
하느님과 마리아에 대한 교본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하느님은 태초부터 당신 성자를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보내어 인류를 구원하기로 계획하셨고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마리아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셨으므로 성모 신심을 가지는 것이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2. 모든 은총의 중개자인신 마리아(19-20쪽 ; 교본 16-17쪽)
가톨릭 전통은 흔히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마리아를 은총의 통로, 수로, 보화라고 부른다. 마리아가 당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중재에 의한 방법이다. 모든 은총은 마리아의 중재로 인해 전달되는 것이다.
1921년 6월에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벨지움의 메르시에 추기경의 요청에 응해 벨지움 국가를 위해 모든 은총의 중개자인신 마리아 축일 미사와 성무일도를 윤허하고 5월31일에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그 이후 이 축일 전례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4년 교회헌장 60항에서 복되신 동정녀의 중재의 뜻과 힘을 자세히 밝혔다. 그러나 '모든 은총의 중개자 마리아'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교회에서 공식교의로 선포하지는 않았다.
1971년에는 경신성이 "은총이 어머니요 중재자이신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라는 호칭의 미사 경문을 인준하였다. 이 미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리에 충실하며 복되신 동정녀으 모성적 역할과 중재의 임무를 함께 기념한다. 그 후 일부 수정을 가하고 감사송도 보태어 5월 8일에 축일을 지내고 있다(주 교회의 전례위원회 편찬, 성모 미사 경본, 1988년, 135쪽 참조).
프랭크 더프는 이 축일 이 제정된 바로 그 해에 마리아가 모든 은총의 중개자라고 가르침을 토대로 삼아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성상을 모시고 레지오 마리애가 창설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프랭크 더프가 "모든 은총의 중개자인신 마리아"를 교본과 레지오 기도문에서 소개했을 때 몇몇 신학자들은 그것이 확실한 교리가 아니라고 반대했으나 그는 교황 문서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마리아는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계획 아래 모든 은총의 중개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공의회에 언급된 바 있는 마리아의 은총의 중개자 역할에 대해 교회의 모든 신학자들이 스스럼없이 가르치고 있다고 함으로써 과거의 자기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교본 본문은 마리아의 모든 은총의 중개자 특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당신께 바치고자 하는 공경을 마리아를 통하여 받으시기를 즐겨 하신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당신의 무한한 자비와 전능의 샘에서 나오는 갖가지 은총을 우리 인간에게 전달하는데, 마리아를 그 통로로 삼으셨다. 이는 사람이 된 천주 성자를 마리아라는 통로를 거쳐서 우리에게 주심으로부터 비롯된다"
"성모님은 성령의 거룩한 짝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얻어주신 모든 은총의 수로이기 때문에 성모님의 적극적인 개입에 힘입지 않고는 우리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성모님은 모든 것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힘써 얻어 주신다. 레지오는 이러한 마리아의 임무에 대한 믿음이 사무쳐 있기에 그것을 특별한 신심으로 삼고 있다.모든 레지오 단원들이 매일 바치는 까데나의 마지막 부분 기도문 즉 모든 은총의 중개자 마리아 축일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기도합시다. 우리를 성부께 중재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모친이신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도 되게 하시고, 주님 앞에 우리의 어머니도 되게 하시고, 주님 앞에 우리의 중개자로 세우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께 간구하는 모든 은혜를 마리아를 통하여 얻어 누리게 하소서. 아멘"(22장 2항, 133쪽 ; 교본 90-1쪽).
교본은 또한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인 성 베르나르디노가 은총의 중개자 마리아에 대해 강론한 레지오 선서문에도 인용되고 있다. "성령의 모든 은혜와 성덕과 은총은 마리아께서 관리하시게 된다. 곧 마리아께서 원하시는 이에게, 마리아께서 뜻하시는 때에, 마리아께서 바라시는 만큼, 마리아께서 즐기시는 방법으로 관리하시는 것이다"(107쪽 ; 교본 295쪽 ; 90쪽, 교본 71쪽 참조 ; 참된 신심 141항 참조).
프랭크 더프의 성모 신심에 영향을 준 「참된 신심」에서도 마리아가 모든 은총의 중개자임을 자상히 설명하고 있다(23-28항 및 44항 참조).
3. 원죄 없으신 마리아(20-21쪽 ; 교본 17-18쪽)
레지오 신심에 있어서 성모님의 두 번째 특전은 12월 8일에 대축일을 지내는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이다. 레지오의 성모상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성상이다. 세계 최초의 레지오 회합에서 단원들은 이 성모상을 모신 작은 제대에 둘러않아 기도하고 의논하였다.
그 성모상은 천주교의 극빈 신자들이 주일에 개신교 조반 센터에서 무료 급식을 받는 조건으로 개신교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군 퇴역 군인이며 개척자회원인 조셉 가베트가 1914년에 설립한 천주교 조반 센터에 처음으로 모셔졌다. 그리고 프랭크 더프를 비롯한 조반 센터 봉사자들의 모임을 '무염시태회'라고 불렀다.
1916년 아일랜드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부활절 반란이 생기자 가베트가 영국군에 재입대하면서 그 성모상을 프랭크 더프에게 넘겨주었다. 프랭트 더프는 그 성모상을 빈첸시오 회관에 보관해 두었는데 공교롭게도 1921년 레지오 최초의 회합에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성상은 기적의 메달에 새겨진 모습이다. 성모님이 1930년 11월에 프랑스 파리 성 빈첸시오의 애덕자매회 예비 수녀인 가타리나 라부레에게 나타나시어 발현 모습 그대로를 메달로 만들도록 지시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메달은 일명 '기적의 메달'이라고도 한다. 기적의 메달에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화살기도가 새겨져 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매달리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레지오 단원은 까떼나에 실려 있는 이 화살기도를 매일 의무적으로 바치도록 되어 있다.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이란 회칙에서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며 신앙 교의로 선포하였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잉태의 첫 순간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각별한 은총과 특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힘입어 원죄에 전혀 물들지 않도록 보호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하느님이 계시해 주신 이 교의를 항구히 굳게 믿어야 한다"(DS 2803).그 4년 후인 1858년 2월 11일에는 성모님이 프랑스 루르드에서 소녀 벨라뎃다에게 발현하셨는데 3월 25일의 발현 때에 성모님은 당신 이름을 라틴어로 "나는 원죄 없는 잉태"라고 알려 줌으로써 믿을 교의로 선포된 내용을 성모님 자신의 입으로 확인해 주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교회 헌장 59항)는 짤막한 표현으로 믿을 교의를 재확인하였다.
성서에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다음 세 군데서 간접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1) 원 복음 혹은 첫 복음이라고 불리는 창세기 3장 15절이다.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또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 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짓밟히리라." 인류의 첫 조상을 타락시키고 원죄를 짓게한 유혹자인 뱀의 머리를 바술 여자의 후손을 낳으신 분은 바로 원죄 없으신 마리아이다.
2) 가브리엘 천사와 엘리사벳이 마리아께 드린 인사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십니다"(루가 1,28)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루가 1,42).
3) 묵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자이다.
거기서 용은 창세기에서 하와를 유혹한 뱀으로서 여자를 해치려고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여자는 하느 님의 은총으로 끊임없는 보호를 받는다.
교본 본문은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특전을 언급하면서 레지오 단원과 사탄과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레지오는 전능하신 하느님이 사탄에게 하셨던 말씀(창세기 3,15)이 죄와의 싸움에서 확고한 신념과 힘의 원천이 된다고 믿는다. 레지오는 온전히 여자의 후손 즉 마리아의 자녀가 되기를 전심으로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21-22쪽 ; 교본 18-19쪽)
레지오 성모 신심의 세 번째 특징은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머니의 육체적인 모성이 아니라 영적인 모성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은총의 세계에서 마리아의 자녀들인 것이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는 마리아의 모성에 대해 "자연적이며 육체적인 출생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하듯이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출생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하다. 참다운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신다.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는 사람이다"(참된 신심 30항)고 단언했다.
성서에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결정적으로 표현된 곳은 요한복음 19장 26-27절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 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구세주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어머니라는 말 대신에 '여인이여'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제자가 마리아의 아들임을 엄숙하게 선언하셨다.
복음서의 저자는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인류의 첫 어머니인 하와에게 사용한 '여인'이라는 칭호를 마리아에게 사용함으로써(창세 3,15 참조) 마리아가 새로운 하와, 새로운 여인으로서 영적 어머니임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리고 복음서의 저자가 구태여 제자 요한이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사랑하는 제자'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이 마리아를 모든 제자의 어머니로 내어 주셨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사랑하는 제자들이기에 마리아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며, 우리는 모두 마리아의 자녀들이다.
마리아는 십자가상 예수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로 받아들였을 때 주의 탄생 에고 때에 가브리엘 천사에게 대답한 그대로의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들의 유언에 의하여 마리아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아들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겪은 해산의 고통보다 더 심한 십자가의 고통을 골고타 언덕에서 마음으로 함께 겪으심으로써 새 생명의 탄생에 참여하셨고 새 생명의 어머니, 제자들인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새 공동체의 출발을 위한 성령 강림을 다락방에서 기다리면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영적인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셨다(사도 1,12-14 참조)
현대에 와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문헌은 '교회 헌장' 8장이다. 이 문헌은 마리아가 그리스도 신비체 지체들의 어머니(53항), 산 사람의 어머니(56항),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으며(61항), 은총의 계획 속에 마리아의 모성은 영구히 끊임없이 계속되므로(62항) 참된 신앙으로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자녀다운 사랑을 드리며 그분의 덕행을 본받을 것(67항)을 요구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모 성년(1987년-1988년)에 반포한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45항에서 마리아의 모성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자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마리아의 중요성은 십자가상에서 남겨 주신 구세주의 유언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어머니께 대한 자녀다운 의탁을 통하여 분명히 표현되었다. 자녀답게 마리아께 자신을 의탁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사도 요한처럼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시며' 자신의 내적 생활을 이루는 모든 것 안으로, 즉 자신의 인간적, 그리스도적 자아 안에 그분을 모셔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회칙에서 강조한 내용 즉 마리아를 어머니로 참되게 모시는 일은 이미 1921년부터 레지오 마리애가 실천하여 왔던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 신심을 통해 개인 성화를 도모하며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레지오 단원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는 과분하게도 여느 어머니보다 월등히 훌륭하신 예수님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실 수 있는 은총을 받았으니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모님의 참 자녀답게 맞갖은 행동을 해야하며 마치 어린이처럼 성모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5. 레지오의 성모 신심은 레지오 사도직의 뿌리(22-23쪽 ; 교본 20-21쪽)
레지오 단원이 천주의 성모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심을 드러내는 일은 주회나 활동 의무처럼 레지오의 가장 소중한 의무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성모 신심은 레지오 사도직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뿌리가 없으면 살아 있지 못한다. 뿌리가 있어야 땅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하며 크게 자랄 수 있고, 거센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레지오 단원들도 각자의 뿌리가 작든 크든 성모 마리아 안으로 뻗어 내리고 성모님을 통해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그런데 성모 신심은 그냥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레지오 마리애 주회 때 영적 독서나 훈화 그리고 교본 공부 등을 통해서 성모 신심을 키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 신심을 통해서 창설된 신심 단체이다. 1917년에 개척자회 평의회원들과 더불어 프랭크 더프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가 지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을 연구하는 회합을 가졌다. '참된 신심' 회합에서 연구한 결과가 레지오 교본에 수록된 성모 신심의 모태가 되었다.
여기에 대해 프랭크 더프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레지오 마리애가 태어나기 전 약 4년 동안이나 레지오의 모체가 되는 회합이 지속되었다. 그 회합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 회합의 목적은 오직 레지오 마리애를 만들기 위하여 존재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 모임은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다가 레지오가 생기자 없어지고 말았다. 그 모임을 구성하고 있던 회원 중 많은 이가 레지오에 가입하였다. 참된 신심 회합이 개최됨으로써 결국 레지오가 가동된 것이다. 참된 신심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는 순간에, 즉 그리스도교의 체제 안에 성모 마리아의 참된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순간에 모든 일이 레지오 마리애를 창설하는 방향으로 집중된 것이다"(프랭크 더프 지음, 김영일 옮김, 마리아를 통한 승리 1, 427-428쪽).
프랭크 더프는 계속하여 전 세계 레지오가 사도직 수행에 있어서 성모 신심과 성모님께 대한 지식이 보편화 되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갓 태어난 레지오가 성모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은 일반 신자들보다 훨씬 많았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레지오는 그 지식을 모두에게 알리는 일을 착수하기로 하였다. 레지오는 사목 사도직 활동을 펴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로서는 평신도들이 그러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때였다. 그들이 활동을 하게 된 동기는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모셔다 드리도록 성모님을 도와 드리는 데 있었다. 그 후로 레지오는 성모님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레지오 전체가 그랬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성모님에 대한 지식을 갖춘 단원이 소수에 불과하다면 레지오가 발전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프랭크 더프 지음, 서광선 옮김, 성모님을 통한 승리 3, 도서출판 사도, 101-102쪽).
레지오 창설자의 그러한 노파심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성모 신심을 실천함에 있어서 단원들의 일치를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교본 본문의 뜻을 파악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든 단원은 성모 신심의 실천에 완전히 일치하여 참여해야만 한다. 이러한 일치의 정신은 단원들이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심의 일치 문제는 극히 미묘한 데가 있다. 왜냐하면 각 단원은 이 문제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때로는 아주 깨뜨려 버리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각 단원이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레지오 단원 전체가 한덩이가 되어 레지오 봉사의 일치성을 잘 드러낸다면 레지오는 마리아께 대한 드높은 신심으로 인해 다른 여러 단체 중에 빼어날 뿐 아니라 마음과 목표와 행동의 놀라운 일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치는 하느님 앞에 매우 고귀한 것이므로 하느님은 이 일치를 이루는 자에게는 누구도 겨룰 수 없는 힘을 주셨다. 그러므로 개인의 경우에도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이 은총의 특별한 수로가 된다면 하물며 '성모님과 일치하여 한마음으로 꾸준히 기도하는'(사도행정 1,14) 레지오, 성모님의 정신에 참여하고 은총을 분배하는 일과 관련된 하느님의 계획에 전적으로 가담하는 레지오에 가져다 주는 은총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 되겠는가!"
6. 마리아를 알기만 하면!(23-24쪽 : 교본 21-22쪽)
"구세주의 어머니는 구원 계획 안에 명백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기"(구세주의 모친 1항) 때문에 성모님을 알고 공경해야 예수님을 옳게 이해하고 섬길 수 있다(교회 헌장 66항 참조).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는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인류 구원은 마리아를 통하여 시작되었고 또 마리아를 통하여 완성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성모님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그러나 종말에 마리아도 성령에 의해 명백히 드러날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마리아가 알려지게 됨으로써 예수께서도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또 모든 사람들은 그를 섬기고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참된 시심 49항)고 말했다.
프랭크 더프 역시 몽포르 성인의 주장처럼 레지오 단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예수님이 성모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단원들은 성모님을 잘 알아 그분의 지위와 역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를 강조하고 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과거에도 우리 인간들에게 주셨고 지금도 계속 주고 계시는 분이시다. 만일 성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주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군단 안에서 몸에 밴 태도로 단원들은 성모님을 떳떳이 내세우고 성모님을 떳떳이 설명해야 한다. 성모님을 두고 올바르게 깨우쳐 주어야 할 대상이 개신교 신자들만이 아니다.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도 성모님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훌륭한 천주교 신사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조차 '우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데도 왜 하필이면 성모님을 거침으로써 시간낭비를 해야하는가?'라고 반마리아적 질문을 한다. 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성모님의 중요한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프랭크 더프 지음, 김영일 옮김, 마리아를 통한 승리 1, 329-330쪽 참조).
교본 본문에서는 "마리아를 알기만 하면!"이란 주제로 페이버 신부의 글만을 발췌, 인용하고 있다.
페이버 신부는 영국의 오라토리오회 소속 사제로서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가 지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을 번역하였으며, 1862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 쓴 그 책의 서문에서 "마리아를 알리만 한다면!"이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다. 프랭크 더프는 성모 마리아가 매우 불충분하게 알려져 있고 사라을 받지 못함으로써 영혼들에게 슬픈 결과를 빚고 있다는 페이퍼 신부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레지오 단원들뿐만 아니라 숱한 종교적 냉담자들에게 둘러싸여 사목과 선교에 애를 먹고 있는 사제들에게도 도움이 될 내용이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을 그대로 발췌하여 교본에 싣고 있다. 교본 본문은 페이버 신부가 반복하여 "마리아를 알기만 한다면"이라고 말한 부분은 전혀 발췌, 인용하지 않았기에 필자가 번역, 보충해 본다. "마리아께 대한 신심은 미약하고 옅고 초라하다. 한마디로 믿음이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예수께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이단자들이 회개하지 않고 성교회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성인이 될 수도 있는 영혼들이 시들고 점점 줄어든다. 성사는 필요한 만큼 또 알맞게 받지 못하고 있으며 영혼들에게는 열성적인 복음 전파가 안 되고 있다. 예수님이 잘 드러나지 않으시는 것은 마리아가 뒷전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수천의 영혼들이 멸망하는 것도 마리아를 그들로부터 멀리 떼어 놓았기 때문이다.
… 누구든지 성모 신심을 지니도록 스스로 힘쓰기만 해 보라. 그러면 그 신심이 가져다주는 은총과 변화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신심이 사람들의 구원과 그리스도 왕국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효력을 나타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오, 마리아를 알기만 한다면, 예수님은 더 이상 냉대받지 않으실 것을! 오, 마리아를 알기만 한다면,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빛날 것이며 영성체하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를! 오, 마리아를 알기만 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해지고, 얼마나 더 거룩해질 것이며, 얼마나 더 성모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 구세주 예수님을 닮은 생활을 하게 되는지를!".
7. 마리아를 세상에 모시는 일(24쪽 ; 교본 22-23쪽)
교본 본문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께서 이 세상을 차지하게 하시는 데 쓰이는 확실한 수단이다.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인류 구원과 그리스도 왕국 건설을 위한 확실한 수단으로서 커다란 효력과 놀라운 결과를 나타낸다면 마리아를 세상에 모셔다 주는 일은 레지오의 최대 목표가 되어야 한다(6장 1항, 25쪽 참조 ; 교본 170쪽 참조).
사도 요한처럼 '사랑하는 제자'에 속하는 우리들은 성모님을 우리 집에 모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 세상에 모셔서 모든 이의 구원에 힘써야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신들의 어머니로 여겼고 성모님 역시 그들을 자녀로 여겨 함께 지냈다(사도 1,12-14 참조). 성모님은 십자가상에서 아드님의 유언을 듣고 난 후부터 줄곧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 우리 구원을 위해 힘쓰신다. 그분은 지상에서뿐 아니라 천상에서도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여러 가지 당신 전구로써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얻어 주신다. 당신 모성애로써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 위험과 고통중에 있는 것을 돌보시어 행복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 (교회 헌장 62항).
그런데 성모 마리아를 이 세상에 모셔다 주려면 많은 봉사자들이 협력하여 일할 수 있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를 조직하여 활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란 "수적으로 무진장한 평신도, 어디에나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적극적인 평신도들의 단체를 말한다. 또한 그것은 온 힘을 기울여 마리아를 사랑하고, 아울러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마리아께 대한 사랑을 심어 주도록 활동하는 단체이며,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행동 능력을 활용하는 평신도 단체", 즉 레지오 마리애를 뜻한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안는 이미 300여 년 전에 그러한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나올 것을 예언하였다.
"다가오는 시대에 세속과 악마와 육신과 맞서 싸울 예수와 마리아의 용감무쌍한 군단이 일어날 것이다"(참된 신심 114항).
이 성인은 마리아의 군사들이 악마와의 싸움에서 마리아를 통하여 승리할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를 말하고 있다. 마리아는 악마들에게는 질서정연한 군대처럼 두려운 분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마리아께 악의 세력을 쳐 이기는 능력을 주셨고, 악마들은 겸손하고 비천한 여종 마리아에 의해 패배당하고 처벌되는 것을 분하게 여기고 큰 수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은총은 주님의 용감무쌍한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며 신념을 더욱 굳게 할 것이다. 하느님 앞에 마리아의 군사들은 성덕에 있어 출중하며 불타는 열성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뛰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협조를 얻어 발뒤꿈치와 같은 겸손과 마리아와의 일치에서 뱀의 머리를 눌러 부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업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참된 신심 50-54항 참조).
현대는 하느님과 인간 영혼에 도전적이고 이기적인 어두운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 마리아를 모시는 일을 레지오 마리애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의 성패 여부는 레지오의 영적 지도자나 교회 당국자가 이 단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영적 군대를 누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레지오가 훌륭한 기관도 될 수 있고 보잘것없는 기관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 교본 본문은 확신을 가지고 단언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그 조직 체계가 다음과 같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관임을 확신하고 있다. 즉 레지오는 온 세계를 손 안에 넣고자 하는 일에 교회 당국자가 작동시켜 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기관이며, 또한 영혼들에 대한 성모님의 모성적 사업 및 뱀의 머리를 바수는 사명 수행의 대항자로서 활용하시고자 마련한 기관이 된다고 확고히 믿는다."
당시 광주 교구장 서리였던 고 하롤드 헨리 신부(광주 대교구장, 제주 교구장 역임)는 1953년도에 목포에서 3개의 쁘레시디움을 설립하여 성모님을 모시고 선교에 앞장선 결과 오늘날엔 전국적으로 2만6천 개가 넘는 쁘레시디움과 50여 만 명의 단원들이 기도와 활동으로 막대한 힘을 발휘하면서 성모님을 세상에 모시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제 6 장 : 마리아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 (25-41쪽 ; 교본 제27장, 170-192쪽)
레지오는 마리아의 이름을 지닌 군대로서 창설 때부터 마리아와 굳게 결합하면 할수록 크게 성공하고 오래 지탱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마리아와 함께 악의 세력을 물리치면서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차지하시는 데 쓰이는 가장 확실한 도구와 수단은 바로 마리아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께 대한 신심과 함께 해야 할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교본은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다섯항으로 나누고 있다.
1. 마리아께 대한 레지오 신심을 드높여야 할 의무
2. 마리아의 겸손을 본받아야 할 의무
3.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으로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
4. 전력을 다해 마리아께 봉사해야 할 의무 5.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의 <참된 신심>을 실천해야 할 의무
이 장은 특히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가 지는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1. 마리아께 대한 레지오 신심을 드높여야 할 의무(25-27쪽 ; 교본 170-173쪽)
그리스도교는 성모 신심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종교이므로 단순히 성모 공경을 권장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레지오 창설자는 말하였다. 레지오 마리애의 목표는 마리아를 이 세상에 모셔오는 일이다. 마리아께 대한 신심은 사람들의 구원과 그리스도 왕국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서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므로 단원들은 성모 신심을 드높여야 한다. 마리아를 모시지 않는 레지오 단원은 레지오의 목표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 단원은 무장해제된 군인과 같아서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한다.
교본 본문은 단원의 성모 신심을 본질적인 의무로 여겨야 한다면서 "레지오 단원은 성모께 대한 레지오 신심을 진지라게 묵상하고 열성적으로 실천함으로써 그 신심을 드높여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은 오직 성모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 일치는 마리아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봉헌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성모님과의 굳건한 일치가 있는 곳에서 놀랄 만한 자기 성화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과의 일치를 위해 봉헌을 해야 한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성모 마리아가 더욱 알려지고 더욱 사랑받고 더욱 공경받을 것을 하느님이 바라신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마리아께 내적 봉헌을 실천함으로써 성취된다. 또한 그들은 마리아가 예수께로 나아가는 가장 안전하고 쉽고 가깝고 완전한 길임을 앎으로써 완전히 예수님의 것이 되기 위해 자신들을 마리아께 봉헌할 것이다"(참된 신심 55항)고 했다.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께 봉헌한 후 "나의 모후, 나의 어머니시여, 나는 오로지 당신의 것이오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참된 신심 233항)라는 봉헌문을 자주 되뇌이면서 그 봉헌을 갱신함으로써 마리아의 영향력이 항상 영혼 안에 미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의식은 마침내 "몸이 공기를 호흡하듯이 나의 영혼은 마리아를 숨쉰다"(참된 신심 217항)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미사, 영성체(참된 신심 266-273항 참조), 성체 조배, 로사리오 기도(참된 신심 250-251·254항 참조), 십자가의 길 등 모든 신심 행위를 할 때마다 레지오 단원은 성모과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단원들은 성모님께 대한 생각을 영신 생활의 모든 기도와 활동에서 불러일으키고 오로지 성모께만 의탁한다. 자신의 힘을 잊고 성모께만 의탁한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의 믿음, 겸손 등 완덕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레지오 단원이야말로 참으로 성모님과 일치한 단원이고 성모 신심을 드높이는 단원이다. 이와 같은 단원들 덕분에 레지오는 마리아의 참된 군단이 되어 온 세상에 마리아를 모셔다 드릴 것이다.
2. 마리아의 겸손을 본받아야 할 의무(27-31쪽 ; 교본 173-178쪽)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성모님의 겸손 덕분에 구세주의 강생이 가능했고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는 것이 레지오 활동의 뿌리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겸손이라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고 솔직히 승인하는 것. 즉 자신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임을 아는 사람이다.
프랭크 더프는 겸손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였다. 초자연적인 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인간의 힘은 무용지물임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그에겐 마리아가 겸손의 본보기였다. 그는 어느 친구에게 "나는 주님과 성모님께만 의지했고 나 자신에게는 의지하지 않았어요. 나는 내 위치를 깨달았어요. 잠시라도 나 자신의 영예를 추구한다면 난 곧 타격을 입고 말 것이예요"라고 얘기했다(로버트 브래드쇼 지음, 안상인 옮김, 프랭크 더프의 생애, 327-328쪽 참조).
모든 덕의 가치는 겸손으로부터 파생된다. 겸손이 있을 때만 하느님은 당신의 은혜를 베푸신다. 주님의 강생도 마리아의 겸손에 의존하였다. 마리아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 38)고 겸손되이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성자는 마리아께 잉태되고 인류구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성모의 천주찬가에서도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은 것은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는' 주님께 대한 '여종의 비천함'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루가 1, 48-51 참조).
레지오 단원들은 특히 사도직 활동에서 겸손을 보여야 한다. 겸손은 레지오 사도직의 수단이요 레지오 활동의 태동하는 요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겸손 없이는 효과있는 레지오 활동을 할 수 없다. 단원들 자신이 하느님께 종속되어 있으며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면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일도 기꺼이 떠맡으며 남의 멸시와 박대도 견디어 낼 것이다.
레지오의 주된 활동인 개인 접촉 활동을 효과있게 하려면 단원들이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교본은 가정방문 활동을 예로 들면서 단원들은 어디까지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방문하고 있으며 종이 주인을 방문하고 있다는 생각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사람들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방문자를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296-297쪽 참조 ; 교본 375-376쪽 참조). 요컨대 마리아와의 일치가 레지오 활동의 뿌리라면 그 뿌리가 의지하는 흙은 겸손이다.
교본 본문은 다음과 같이 레지오 단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 "영혼들을 위한 레지오의 싸움은 단원 하나하나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각자는 마음 속에 있는 교만과 이기심을 단호하게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과의 싸움을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 안에 도사린 악의 뿌리에 대한 싸움 즉 행동의 동기를 순화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참된 신심 78항 참조)은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이는 일생을 건 싸움이다....레지오 단원의 단단한 받침대는 마리아이다. 단원들이 겸손에 뿌리받고 계신 마리아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정신을 실천한다면 훌륭한 겸손의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성 루도비꼬 마리아는 이러한 방법을 '잘 알려지지 않은 은총의 비결로서 자기 자신을 비우면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져서 작은 노력으로 빠르고도 쉽게 완덕을 쌓게 된다'(참된 신심 82항)고 하였다." 이 성인은 완덕에 도달하는 방법으로서 하느님 앞에서의 자아 인식과 자아 포기를 통한 초자연적 죽음을 제시했다(참된 신심 79-81항 참조).
레지오 단원 생활에서 내실을 맺는 법칙은 자아에 대한 초자연적 죽음이다. 마리아께로 향하고 있는 레지오 단원은 마땅히 이기적인 자아를 죽일 수밖에 없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겸손한 동정녀의 발뒤꿈치는 다음과 같이 '자아'라는 여러 형태의 뱀의 머리를 짓부순다 : 1)교만, 2)이기심, 3)자만심, 4)자부심, 5)자애심, 6)자기 만족, 7)출세욕, 8)자기의지
3.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으로 사도직을 수행햐야 할 의무(31-34쪽 ; 교본 178-182쪽)
이 항목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프랭크 더프의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는 논설문 내용과 동일하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어머니이기에 마리아 신심은 반드시 그리스도 신비체에 대한 봉사를 요구한다. 성모님의 생애는 구세주의 어머니요 인류의 어머니로서 구원사업을 위한 사도직의 생애였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비체에 대한 사도직 활동과 성모 신심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레지오 주회에서 사도직 활동 배당과 활동 보고를 하는 것도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이 사도직 활동과 성모 신심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레지오 주회에서 사도직 활동 배당과 활동 보고를 하는 것도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의 사도직 활동 의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참으로 사도들의 모후이시다.
프랭크 더프는 1950년 4월 1일자 편지에서 성모님과 사도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 :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분쇄하려면 먼저 뱀을 쫓아가야 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일을 사람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하지 않으신다. 마리아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도직 활동을 통해 일을 성취하신다. 성모님은 그런 사람들을 영적 모성애의 도구로 삼으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문헌인 교회 헌장 제8장에서 "교회는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낳으신 마리아를 바라본다......과연 마리아는 그 생애를 통하여 교회의 사도직 사명으로 사람들을 재생시키는 데에 협력하는 모든 이가 지녀야 할 모성애의 모범이 되셨다"(교회 헌장 65항)고 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도 1965년 1월 6일자로 레지오 마리애에 보낸 서한에서 "레지오 마리애가 갖가지 훌륭한 활동을 함으로써 구원 사업의 협력자인 성모님으로부터 사도직이 얼마나 많은 격려와 감화를 받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부록 1, 332-333쪽)고 하였다.
이제 성모님과 사도직에 대한 교본 본문을 요약해 보자 :
교본의 다른 곳(9장 3항, 56-57쪽 참조 ; 교본 31장 3항, 237쪽 참조)에서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대로 드는 점만 골라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면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사도 요한처럼 마리아를 차지하려면(요한 19, 27 참조) 마리아의 모든 면을 받아들여야 한다. 성모께 대한 참된 신심이 있다면 마리아의 인격과 사명의 모든 면에 참여하고 그 모든 면을 재현하도록 힘써야 한다.
마리아는 주의 탄생 예고 때부터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인류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이 역할이 나자렛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온 세계, 전 인류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성모님의 모성적 역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도직은 성모님의 이러한 모성적 역할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모님은 마치 '나는 원죄없는 잉태'라고 하신 것처럼 '나는 사도직'이라고 선언하실 수 있다.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은 마리아와 일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마리아와 일치하려면 그분의 모성적 역할에 참여해야 한다. 영혼들에 대한 어머니의 구실은 성모님의 가장 중요한 임무요 그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성모 신심은 영혼들에 대한 봉사와 사도직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어머니 역할이 없는 마리아의 사도직 활동이 없는 레지오 단원은 같은 뜻을 나타낸다.
레지오는 마리아와 사도직이라는 두 가지 원리가 아니라 마리아라는 단일 원리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왜냐하면 마리아라는 원리가 사도직과 전체 그릿도교 신자 생활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 단원이 사도로서 헌신하려면 입으로 봉사할 것이 아니라 사도직 활동으로 봉사해야 한다. 일단 사도직 활동을 착수하면 마리아는 그것을 당신의 모성적 임무 속에 융합시키신다.
그런데 마리아는 사도직 활동을 위한 훌륭한 협력자들을 원하시고 그들을 기다리신다. 마리아는 그들 모두를 기꺼이 당신의 모성적 임무에 활용하실 것이다.
4. 전력을 다해 마리아께 봉사해야 할 의무(34-37쪽 ; 교본 182-187쪽)
이 항목은 교본 4장 '레지오의 봉사'와 관련이 있다. 교본 4장에 의하면 레지오의 봉사는 복종의 정신으로 아낌없이, 영웅적으로, 꾸준하고 항구하게 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하여 거룩한 생활로써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봉사에 한계선을 긋지 말고 노고와 고통을 피하지도 말며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믿음과 사랑으로써 끈기있게 봉사해야 한다(13-17쪽 참조 ; 교본 7-13쪽 참조)
이러한 봉사는 성모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레지오 단원은 마리아께 의자하고 의탁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고 자신을 순화하며 완덕을 닦고 자연 본성을 초자연화하고 미약한 인간적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마리아께 대한 의존은 참으로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성모께의 의존을 구실 삼아 성모께 대한 봉사를 게을리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전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께 전력 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일주일에 2시간 이상의 사도직 활동을 게을리하고 봉사 활동을 기도로써 대신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그리하여 갈수록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단원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참된 성모 신심은 기도뿐 아니라 전력봉사를 요구한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에 있어서 자신이 세운 계획과 목표가 성공한 것은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며서 최선을 다한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결단을 내리면 아무리 어려운 장애물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그가 죽기까지 결혼하지 않은 것은 성모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면서 하느님과 이웃에게 전력 봉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성모님께 전력 봉사해야 할 레지오 단원의 의무에 대해 교본 본문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알아보자 :
가끔 보면 단원들이 레지오와 관련된 일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나는 내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나는 복되신 동정녀께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당신의 방식대로 좋은 성과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고 변명한다. 이러한 변명은 자신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일종의 덕으로 돌리려는 것으로서 단원의 노력이 성모님 앞에서 별로 큰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위험이 있다.
레지오 단원들이 알아두어야 할 활동태도 원칙은 단원들이 단지 마리아의 행동의 연장만이 아니라 성모님과 공동노력을 하는 협력자라는 점이다. 이러한 협력 관계에서 한 쪽에 없는 것은 다른 쪽이 보충한다. 단원 쪽에서 협조 정신을 존중한다면 마리아 편에서는 결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단원들은 세심한 방법과 인내심으로 다듬어진 모든 능력과 지능을 그 협동 사업에 쏟아야 한다. 마리아 편에서는 단원이 바치지 않은 것을 보충하시지는 않는다. 단원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노력, 방법, 인내심과 생각을 성모님이 면제시켜 주신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마리아의 도우심에 끝없는 신뢰를 가지면서도 레지오 단원의 노력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최고조에 달해야 한다.
또한 일의 쉽고 어려움에 따라 노력의 정도를 가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영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에서 타산적인 영혼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단원들은 직접적인 성과나 일의 쉽고 어려움을 상관하지 않고 마리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리아의 전폭적인 협력을 얻어낼 수가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기적가지도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단원이 기도를 통해 마리아께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구실을 내세워 자신의 불충분한 노력과 허술한 방법을 정당한 것처럼 변명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성모님은 아낌없이 자신을 바치는 이에게 풍부히 주고자 하신다. 성모님은 성자의 말씀을 빌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0) 봉사하라고 단원들에게 간절히 호소하신다.
5.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의 '참된 신심'을 실천해야 할 의무
(37-41쪽 ; 교본 187-192쪽)
프랭크 더프의 성모 신심의 출발점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이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는 <영원한 지혜에 대한 사랑>이란 저서에서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분, 즉 영원한 지혜를 얻기 위한 4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영원한 지혜를 얻으려면, 첫째로 열렬히 소망해야 하고, 둘째로 끈기있게 기도해야 하며, 셋째로 전반적인 극기를 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이 있어야 한다. 이 4가지 방법 중에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방법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이다. 왜냐하면 성모 마리아 외에 그 누구도 은총을 가득히 받거나 영원한 지혜를 잉태하고 출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그는 1712년 가을 프랑스 로셸에서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이란 불후의 저서를 남겼다. 저술 동기와 목적은 "참된 신심가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함"이었다(참된 신심 110-111항 참조).
이 성인의 <참된 신심> 내용에 대한 프랭크 더프의 요약, 평가는 인용할 가치가 있다 : 몽포르 성인은 성모님의 성스러운 개념을 생생하고 오해의 여지없이 보여 준 거울이다. 주의 탄생 예고로써 성모님의 구세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열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들을 보살펴 그리스도처럼 완전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을 공경하고 마리아께 자신을 드려야 한다.
<참된 신심>은 성모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최소한의 공경이다. 참된 신심의 실천은 영성 생활의 모든 활동에서 성모님께 대해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부분에 대한 체계적인 인정이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의 참된 신심은 한마디로 세례 때의 서약에 대한 갱신으로써 마리아를 통해 예수께 자신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는 것이다.(참된 신심 120항 참조). 누구든지 완덕에 이르려면 세례 때 마귀를 끊어 버리고 하느님만 믿는다고 한 서약을 생활화해야 한다.
복되신 동정녀는 주님의 여종으로서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였기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크나큰 도구가 되었다(참된 신심 16항 참조).
우리가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공경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예수께로 가는 가장 쉽게 안전하고 확실하고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참된 신심 55항 참조). 그러므로 예수께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려면 반드시 마리아를 통해서 봉헌해야 한다.
몽포르의 성인이 주장한 것처럼 마리아께 대한 봉헌은 마리아와 정식 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 계약은 그리스도와 더욱 완전히 결합되기 위하여 봉헌문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 전체를 남기자 않고 아낌없이 성모님께 바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영혼과 육신, 모든 외적 및 내적 재산, 모든 선공의 가치까지 성모님께 바치는 것이다. 이것이 첫 단계이다. 이 봉헌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성모 축일이나 레지오 단원 봉쇄 피정 때 하는 것이 더 뜻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일상 생활과 사도직 활동에서 이 봉헌을 의지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몽포르의 성인은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의탁의 표시로서 몸에 쇠사슬을 감는 것도 좋다고 했다. 사슬은 노예를 상징하지만 마리아께 대한 봉헌의 경우 거룩한 사랑의 노예, 자발적인 봉사, 완전한 신뢰와 의탁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봉헌 자체보다는 봉헌의 생활화이다.
프랭크 더프는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는 교본에서 참된 신심에 대한 교리적 배경을 밝히고 레지오 단원들이 이 신심을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는 또한 레지오 조직 체계를 통해 성모께 대한 참된 신심을 그리스도 신비체 지체들에 대한 봉사와 활동에 연결시켰다. 그의 노력은 전 세계 레지오 단원들이 의식적으로 몽포르의 성인이 가르쳐 준 참된 신심을 실천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 신심의 실천을 통해 수천 명의 레지오 단원들이 중국, 베트남, 자이레 등지에서 순교자로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의 참된 신심에 대한 교본 본문 내용을 요약해 보자 :
레지오 단원이 성모께 대한 신심을 실천하는 데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가 가르쳐 준 독특한 내용을 잘 이해하고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그 성인은 '참된 신심' 또는 '마리아의 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성모께 대한 참된 신심을 가르쳐 주었고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및 <마리아의 비밀>이라는 두 책에서 그것을 더욱 알차게 설명한 바 있다(부록 5 ; 교본 부록 2 참조).
이 성인이 가르쳐 준 참된 신심에서는 마리아와 정식 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계약은 자기 전체 곧 영신적이거나 현세적이거나를 막론하고 자기의 모든 생각과 소유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낌없이 성모께 바치는 것이다. 자기의 것이 없는 노예와도 같이 자신을 온전히 성모께 드리고 전적으로 성모께 매달리고 모든 것을 성모님 손에 내맡기는 것이다.
참된 신심은 공식적인 봉헌식으로 시작되지만 주로 봉헌 후의 생활에서 그것이 실현된다. 참된 신심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꾸준한 상태여야 한다. 성모님이 우리의 삶 전체를 차지하시지 않고 단지 일생의 일부분만 차지하신다면 그 봉헌식은 한낱 스쳐가는 기도의 가치를 지닐 뿐이다. 그러나 봉헌 행위를 했다고 해서 우리의 일상 기도나 활동의 양식을 바꿀 필요는 없다. 종래 해 오던 삶의 방식은 그대로 계속할 것이며 각자의 평상적인 의향이나 특별지향 기도를 그대로 계속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제부터는 그 모든 것을 차지하신다는 것을 가끔 의식적을 생각하고 자신이 성모께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상 생활에서 드러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참된 신심은 어떤 열정이나 감정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성과 결심과 믿음이 참된 신심의 기초를 이룬다. 이 기초 위에 신심이 자리를 잡으면 단단하게 뿌리박을 것이다.
참된 신심을 실천하는 데서 얻는 은총이나 효과는 참으로 크다. 이 신심을 실천하는 이들은 바른 인도와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며 최자연적 안목, 단호한 용기,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 신심의 실천가는 유연성과 슬기를 지니게 되며 아울러 겸손의 덕이 자신 안에 뿌리를 내린다.
만일 성모님께 영신적인 보화를 다 바친다면 우리가 의무적으로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이해하기 어럽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버리고 봉헌 행위를 과감히 해야 한다. 성모님은 영신적 보화의 관리자이시며 성모께 드린 것은 모두 안전하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아끼지 않고 선뜻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써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기적이 일어났듯이(요한 6, 1-14 참조) 예수님과 성모님은 자기 소유물을 아낌없이 봉헌하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신다. 아까운 것을 남김없이 바쳤을 경우 희생의 아픔을 겪을 것으로 여기겠지만 오히려 넘치게 되돌려 받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가 주위에도 확산된다. 성모님은 우리가 아낌없이 드린 선물을 숱한 군중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하실 것이다.
제 7 장 : 레지오 단원과 성삼위 (41-45쪽 ; 교본 제29장, 216-221쪽)
영성 생활의 목적은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화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인류 구원 계획에 따라 특히 성삼위와 마리아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성삼위의 각 위격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교본 본문에서도 "마리아 안에 성령이 작용하심으로써 영원한 성자가 사람이 되셨다. 그리하여 인류가 성삼위와 결합되었으며 마리아는 성삼위의 각 위와 서로 다른 독자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레지오 단원들은 마리아의 이러한 삼중적 지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하느님의 섭리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특별히 선택된 은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전혀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듣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세주 강생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해 반포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제 삼천년기"에서도 성삼위의 각 위격과 마리아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43항, 48항, 54항 참조).
그러면 레지오 단원과 성삼위에 있어서 '마리아와 성삼위의 관계', '마리아와 성령', '성삼위와 레지오 단원'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마리아와 성삼위의 관계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성자를 잉태하고 낳으심으로써 성삼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는 마리아와 성삼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성부는 성자를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보내셨고 성자는 인류 구원을 위해 마리아를 통해 강생하셨으며 성령은 마리아의 동의를 얻은 후에 성자를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케 하셨다고 했다(참된 신심 16항 및 140항 참조).
교본 본문에서도 "마리아는 이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삼위일체 신비를 계시받았다. 그 계시가 이루어진 것은 새 시대가 열린 주의 탄생 예고 순간이었다. 성삼위는 몸소 대천사를 통하여 마리아에게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루가 1, 36\5)고 계시하셨다. 이 계시에서 성삼위의 각 위격이 뚜렷이 밝혀졌다"고 했다.
1) 마리아와 성부의 관계
천주 성부는 마리아를 통해 성자를 세상에 보내셨기에 성부의 구원계획을 도외시하고는 마리아를 언급할 수 없다. 구원 계획은 성부한테서 나왔고 그분께 그리스도와 성령의 모든 활동이 집중되어 있다.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창조주 성부께 속하는 피조물이며 성부의 은총으로 간택된 존재이다.
성부께 대한 마리아의 칭호는 일반적으로 '딸'로 표현된다. 구원 사업에 있어서 성부의 고유한 활동은 자녀들을 낳아 외아들의 생명에 참여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 12-13 참조). 성부는 세상 마칠 때까지 마리아를 통해 당신 자녀를 낳길 원하신다(참된 신심 29항 참조). 마리아는 원죄없이 잉태되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이미 구원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의 딸'이 된 것이다.
성부와의 관계에서 마리아는 구세주를 기다라며 준비해 온 이스라엘 백성의 정점으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시온의 딸'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전에서 겨우 찾은 아드님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마리아는 하느님이 아버지이심을 가슴에 새기고 묵상했을 것이다(루가 2, 49-51 참조).
교본 본문은 성부께 대한 마리아의 관계가 '딸'로 정의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 다음 "이 칭호만으로는 성부께 대한 마리아의 관계가 성부와 성모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성부께 대한 마리아의 관계는 모든 영혼에 대한 생명의 흐름에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주의 기도를 가톨릭 교회의 정신으로 정성 들여 바친다면 이 기도의 두 가지 목적 즉, 영원하신 성부께 영광을 드리는 목적과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2) 마리아와 성자의 관계
마리아와 성자의 관계는 모자관계이다. 마리아는 성자의 어머니요 천주의 모친이다. 성자께서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이 되셨기 때문이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에 의하면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아담으로서 당신의 지상 낙원이었던 동정녀 마리아의 태내에 들어와 은총의 기적을 행하시고 어머니께 순종하며 사심으로써 성부께 영광을 드렸다고 한다(참된 신심 18항 참조).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에서도 마리아와 성자를 모자관계로 규정지어 설명하고 있다(53.56.61항 참조).
교본 본문에서는 마리아와 성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천주 성자께 대한 마리아의 관계는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어머니로서의 관계이다. 그런데 마리아의 모성은 친밀성, 영원성, 그리고 보통 인간의 관계를 무한히 초월하는 특성을 지닌다. 예수님과 마리아의 경우에는 영혼의 일치가 으뜸이고 육신적 일치는 그 다음이다. 그래서 성자가 태어나심으로써 육신이 갈라진 뒤에도 두 분의 일치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며 더욱 알 수 없을 정도의 강도로 맺어졌다. 그 결과 교회는 마리아를 다음과 같이 선언할 수가 있게 되었다.
곧 마리아를 제2위 성자의 '협력자' - 구원 사업에서의 공동 구원자요 은총의 중개자 - 라고 부를 뿐 아니라 실제로 '성자와 닮은 분'이라고 한다."
3) 마리아와 성령의 관계
성령의 보살핌을 받기 위한 하나의 조건은 마리아와 성령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성령과 마리아는 상호 일치의 관계에 있다. 마리아 신학자 로랑뗑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는 마리아를 성령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레지오 마리애는 이러한 일치성에 대한 성인의 가르침을 확고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레지오는 성령의 교리에 대해 좀 더 깊은 지식을 얻고자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다"(27장, 151쪽 ; 교본 102쪽)고 하였다.
교본 본문은 마리아와 성령의 일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성령은 마리아가 당신의 다음 가는 존엄성을 가지도록 할 만큼 마리아와 하나가 되셨다. 성령은 마리아를 들어올려서 당신과 하나로 결합시켰고 당신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셨으므로 성령은 바로 마리아의 영혼처럼 되셨다."
일반적으로 성령과의 관계에 있어서 마리아의 칭호를 '성령의 배필', '성령의 궁전', '성령의 표상'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몽포르의 성인은 마리아의 칭호로서 성령의 배필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그런데 성령과 마리아의 관계에 있어서 배필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의 배필이라는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마리아를 성령의 궁전, 성령의 지성소라고 하였다(교회 헌장 53항 참조). 교부들이 마리아께 즐겨 사용했던 성전, 감실, 지성소 등의 칭호는 어디까지나 성령께서 마리아 안에 독특하고 탁월하게 내재하고 계심을 말해 주는 것이다.
마리아는 또한 성령의 표상으로 불린다. 성서에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 14 : 마태 1, 23 참조)고 하였고, 사도 요한도 구세주의 모친을 '큰 표징'(묵시 12, 1)으로 소개하고 있다. 마리아는 영육으로 하나된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예수의 살아 있는 표상인 동시에 성령의 볼 수 있는 표상이다. 성령의 보이지 않는 역사로써 마리아를 통해 성자가 강생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표상이라는 마리아의 칭호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프랭크 더프는 다음과 같이 비유를 들고 있다. "제2위 성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듯이 제3위 성령은 마리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계신다"
2. 마리아와 성령
레지오 마리애는 성령 신심과 결합된 성모 신심 단체이다. 성자 예수와 마리아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듯이 성자를 잉태케 하신 성령과 마리아 역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레지오의 그림과 단기, 레지오의 시작 기도와 선서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레지오 안에서 성령과 마리아 신심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본은 레지오 단원들에게 성령 신심과 성모 신심이 서로 결합된 신심을 가질 것을 역설하면서 "마리아를 통하여 성령을 간구하는 단원들은 성령의 은혜를 충분히 받을 것"(15장, 92쪽 ; 교본 73쪽)이라고 하였다.
성령께서 마리아께 하신 역할은 성자의 강생에 있어서 동정 잉태행위이고 마리아를 성령의 궁전으로 성화시킨 행위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마리아 안에서 이룬 중심 사건은 주의 탄생 예고와 성령 강림이다.
성자의 강생에 있어서 성령과 마리아는 공동 협력자였다. 사도신경에서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셨다"고 했듯이 마리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협력의 모형이 되셨다.
마리아는 은총의 중개자이기에 성령의 위대한 역사는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진다. "성령의 활동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게 하는 분이 마리아"라고 말한 프랭크 더프 교본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마리아는 단순히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데 쓰이는 연장이나 수로에 그치지는 않는다. 마리아가 행동하실 때는 성령도 행동하신다. 마리아의 전달하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성령의 전달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마리아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의식하면서 성령께 협력하는 분이다."
출생과 모성의 관점에서 볼 때 성령의 고유한 역할은 생산력의 원리이다. 성령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기 위해 마리아의 출산력을 활용하셨다. 몽포르의 성인에 의하면 성부는 성자를 낳고 성자는 성부로부터 낳음을 받았으나 성령은 삼위 자체 안에서 아무런 출산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성령은 마리아 안에서 생산 능력을 발휘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낳게 하셨던 것이다.(참된 신심 20항 참조).
3. 성삼위와 레지오 단원
레지오 단원들이 매일 기도하면서 긋는 십자성호와 영광송은 성삼위께 대한 신앙 표현이다 .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단원들이 일상 생활에서 조배와 기도를 통해 성삼의 각 위격과 가까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단원들이 성삼위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며 각 위격과 맺고 있는 마리아의 독자적인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면서 성삼위와 긴밀한 친교를 맺고 있는 마리아를 통해 레지오 단원들도 성자와 성령과의 친교로 성장되어 성부께 도달하게 된다고 하였다(상게서 286-289쪽 참조).
레지오 단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주의 기도를 바칠 때에도 성령의 역사하심과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서 성부께 바쳐야 한다.(선교 교령 7항 참조).
"마리아 공경"은 제2부 '마리아 공경의 쇄신'에서 마리아 신심의 삼위일체론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 행위는 그 내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인 삼위일체론적이며 그리스도론적인 면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그리스도교 예배는 그 자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드리는 예배이다. 전례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교 예배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드리는' 예비이다(마리아 공경 25항).
레지오 단원들은 삼위일체론적인 성격을 띤 마리아 신심을 지녀야 한다. 교본 본문에서도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가 마리아 신심에 있엇 삼위일체론적인 면을 역설한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45쪽 참조 ; 참된 신심 140항 참조).
제 8 장 : 레지오 단원과 성체 (45-51쪽 ; 교본 제30장, 222-228쪽)
성체성사는 예수께서 볼 수 없는 당신의 현존을 볼 수 있는 빵과 포도주를 통해 드러내시어 은총을 주시는 성사이다. 성체성사는 칠성사 중에 가장 큰 성사이며 "전례와 신자 생활의 중심"(전례 헌장 10항)이고 "선교활동 전체의 원천이요 정점"(사제 교령 5항)이다.
프랭크 더프는 성체성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매일 미사 참례하고 영성체함으로써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였다. 그에게 성체는 사도직 활동과 신앙 생활의 추진력이 되었다. 그는 레지오 단원들에게 미사참례와 영성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특히 쁘레또리움 단원과 아듀또리움 단원은 의무적으로 매일 미사 참례와 영성체를 하도록 단헌으로 정하였다. 새교본의 '레지오 단원과 성체'는 현교본과는 달리 다음의 네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
1) 미사 성제, 2) 말씀의 전례, 3) 마리아와 일치한 성찬의 전례, 4) 단원들의 보화인 성체
1. 미사 성제(45-47쪽 ; 교본 222-223쪽)
레지오의 목적이 단원의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라면 그것은 성체를 이루는 미사 성제없이 실현될 수 없다(전례 헌장 10항 참조). 미사 성제는 사제를 통해 십자가의 제사를 재현하는 것이다. 교본 본문은 미사 성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미사를 통하여 십자가상 제사는 인류 안에서 계속된다. 미사는 단지 그 과거사를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갈바리아에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바치셨던 지극히 숭고한 희생 행위를 실제로 우리 가운데에 재현시키는 자리이다. 십자가상 제사와 미사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 둘은 하나이며 동일한 제사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간과 장소는 전능의 손길로 초월된다. 제관과 제물은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이며 다만 제헌의 환경이 다를 뿐이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단원 성화의 은총은 갈바리아에서 예수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로부터 흘러내린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이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받으려면 미사을 위해서 단원들에게 매일 미사 참례와 영성체를 간곡히 당부한다. 교본 본문은 또한 미사 전례의 구성 요소인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긴밀히 결합되어 있어 오직 하나의 흠숭 행위를 이루는 것"(전례헌장 56항)이라고 하면서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2. 말씀의 전례(47쪽)
미사 전례는 개회식,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폐회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구분한다.
말씀전례는 제1독서, 화답송, 제2독서, 복음 환호송, 복음 봉독, 강론, 신앙고백, 보편 지향 기도로 구성되지만 그 중심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교회는 부활절을 중심으로 1년 주기의 전례력을 만들어 예수님의 전 생애를 기념하고자 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주일미사를 위한 3년 주기의 독서를 배정하였다.
교본 본문은 말씀의 전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미사는 무엇보도도 믿음의 의식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기고 영양분을 섭취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미사 경본의 일반 지침에 있는 말을 상기하고자 한다 : "성서가 교회에서 봉독될 때 하느님 자신의 회중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봉독하는 것은 전례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며 전례 참례자들은 공경심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9항). 전례에서 강론도 매우 중요하다. 평일 미사에서는 강론이 권장 사항이지만 주일과 대축일 미사에서는 필수 요소이다. 강론 때 설교자는 회중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성서 본문을 설명한다.
"마리아는 신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신 '깨어있는 동정녀'이다. 마리아의 신아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통로요 길이다"(마리아 공경 17항).
3. 마리아와 일치한 성찬의 전례(47-49쪽 ; 교본 223-225쪽)
레지오 단원들은 항상 성모님과 일치하여 행동해야 하는데 이것은 성찬의 전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교본에 의하면 마리아는 신자들을 성체께로 인도하는 '성체의 모후'로서 성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8장 4항, 50쪽 ; 9장 1항, 53쪽 ; 40장 4항, 317쪽 참조). 루가 복음 사가는 베들레헴이 '빵집'을 뜻하고 아기 예수가 누여진 곳이 구유 즉 짐승의 먹이통임을 드러냄으로써 성체의 상징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데(루가 2,7.12.16 참조 ; 50쪽 참조) 그리스도가 생명의 빵이면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잉태한 생명의 빵집이다.
마리아는 미사 성체에서 제관이요 제물인 그리스도의 모친이기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제직도 마리아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미사 성찬의 전례에서 성모님의 이름을 부른다.
성모님은 구세주의 생애 전체에 깊이 관여하셨고 인류를 대표하는 '여인'(요한 2, 4 ; 19, 26 참조)으로서 십자가상의 제사에도 동참하셨다. 교본 본문에 의하면 마리아는 십자가 제단 곁에 계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사 제대 곁에도 계신다. 그러므로 미사를 올바로 바치기 위해서는 성모께 대한 사랑의 마음이 당연히 곁들여야 한다.
교본은 성찬의 전례와 관련하여 마리아를 십자가상 제사에서 아드님과 함께 '봉헌하는 동정녀'로 소개하는 '마리아 공경'을 발췌하고 있다 : "구원사업에 있어 어머니와 아들의 일치는 갈바리아 산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느님께 흠없는 절물로 바치셨고(히브 9, 14)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서서(요한 19, 25 참조)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다.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고"(교회 헌장 58항) 당신 자신까지도 영원하신 성부께 봉헌하셨다.
거룩하신 구세주께서는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대대로 영속시키고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이를 당신 신부인 교회에 맡기셨다. 교회는 특히 매주일 신자들을 모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파스카를 거행한다. 교회는 이 파스카를 하늘의 성인들과 특히 복되신 동정녀와의 통공안에 거행하면서 그들의 불타는 사랑과 굳건한 신앙을 본받고 있다"(마리아 공경 20항 ; 50-51쪽).
교본 본문에서는 갈바리아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성모님과 함께 있던 로마 군단의 백인대장과 그 부하들이 회개한 것(마태 27,54 참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회개는 성모님의 기도로 이루어졌으며 레지오(군단)에 속한 그들은 성모님이 갈바리아에서 처음으로 맞아들인 특이한 자녀들이었다.
교본 본문은 이어서 미사가 단원들 자신의 제사이기 때문에 레지오 단원들이 마리아의 의향과 일치하여 갈바리아의 숭고한 희생의 계승인 미사에 매일 참례하고 영성체 할 것을 역설한다. 교본 본문 말미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마리아 신심과 성찬 전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발췌하고 있다 : "그리스도교 백성들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참 사람으로 나신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성찬의 전례 -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전례 -에서 마리아의 모성을 특별히 이해하고 체험한다.
그리스도교 백성들의 신앙심을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신심과 성찬 전례간의 깊은 관계를 항상 올바로 이해해 왔다. 이것은 서방과 동방의 전례에서, 수도 단체들의 전통에서, 젊은이들의 영성 운동을 포함하는 현대의 다양한 영성 운동에서, 그리고 마리아 순례지의 사목 등에서 역력히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마리아는 신자들을 성체성사로 이끄신다"(구세주의 모친 44항).
레지오 단원들이 마리아와 일치하여 성찬의 전례에 참여한다면 교본 본문의 말대로 미사 후 "제대를 떠날 때에도 마리아는 당신의 단원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로 하여금 당신이 맡고 계시는 은총의 관리 직무에 한 몫을 들게 하실 것이다."
4. 단원들의 보화인 성체(49-51쪽 ; 교본 225-228쪽)
성체는 단원들의 보화이기에 레지오 단원들은 반드시 성체 신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단원들은 성체가 지닌 의미와 특성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성체가 지닌 의미와 특성은 주로 십자가상의 제사와 새 계약의 기념, 그리스도의 현존, 사랑과 일치의 성사, 잔치와 친교의 성사, 영적 생명의 양식, 선교의 원천 등이다. 교본 본문은 이들 중에 특히 그리스도의 현존, 친교와 일치의 성사, 영적 생명의 양식에 역점을 두고 있다.
성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현존을 드러낸다. 성서의 개념상 몸과 피는 생명 즉 인간 자신을 뜻한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빵과 포도주를 드시고 '이는 내 몸, 이는 내 피'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실제로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셨다. 이것은 실체변화라고 한다. 실체변화란 빵과 포도주의 외형은 그대로이면서도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 사제가 미사 때 빵과 포도주를 성령의 힘으로 축성하고 안수함으로써 예수님이 성체와 성혈로서 현존하시는 것이다. 교본 본문은 성체를 통한 예수님의 현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은 나자렛 가정이나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처럼 몸소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다. 성체는 단순히 예수님의 상징도 아니요 당신 권능의 연장도 아니요 실체적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성체는 형제적 친교를 나누는 거룩한 잔치이다. 잔치에서 음식과 음료를 나눔으로써 동참한 사람들간에 친교의 유대를 맺게 된다. 제2차 바티카 공의회에서 "성체성사는 형제적 친교의 만찬이요 천상 잔치의 예행"(사목 헌장 38항)이라고 하였으며 교본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던 목적은 영혼들에게 당신과 하나가 되도록 그들과 몸소 사귀는 일이다. 그러한 사귐의 수단은 주로 성체성사로써 이루어진다"고 했다.
성체는 또한 일치의 성사이다. 성체는 그리스도와 신자들간의 일치, 신자들 상호간의 일치 즉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치를 드러낸다. 바오로 사도는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덩어리의 빵을 나우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 17)고 함으로써 성체를 통한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치를 강조한다. 교본 역시 성체가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치를 드러내는 성사임을 잊지 않고 있다 : 예수님이 아기로서 구유에 누워 계셨던 것은 "당신이 하늘의 방이 되어 사람들을 당신과 하나 되게 하고 또한 신비체를 통하여 각 자체들이 서로 일치하도록 하기 위해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을 말한다"(50쪽 ; 교본 226-227쪽) ; "특히 성체성사는 신비체와 그 머리 사이의 일치를 더욱 강화하는 목적을 지닌다"(9장 1항, 53쪽 ; 교본 231쪽).
성체는 음식으로서 영적 생명의 양식이다. 교본 본문은 영적 생명의 양식에 대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은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 51-52)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마리아는 신비체의 어머니로서 그 지체들의 영적 생명을 성체로써 양육하시길 바라신다. 교본 본문은 성모님의 이러한 원의를 레지오 단원들이 채워드릴 것을 강조한다 : "마리아께서 영혼들을 돌보시는 일을 협조해 드리려고 하는 이들이라면, 성체에 대한 굶주림 현상을 없애기 위해서 성모님의 모성적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성모님과 일치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성체성사에 대한 교리와 그 사랑을 일깨우기 위해서 또한 성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와 냉담을 없애기 위해서 단원들은 모든 수단을 다햐여 활동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모시게 되는 성체는 크나큰 은혜를 가져다 준다. 성체는 하나하나의 영혼을 통하여 그리스도 신비체 전체를 양육한다."
제 9 장 :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의 신비체 (51-58쪽 ; 교본 제31장, 229-239쪽)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신자들은 그 지체로서 서로 결합되어 하나의 신비로운 몸을 이룬다'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는 레지오 마리애 창설의 밑바탕이 되고 레지오 봉사의 기초가 되는 교리이다. 프랭크 더프는 이미 1913년 10월에 빈첸시오회에 가입함으로써 이 교리를 터득했었다.
새 교본의 '레지와 단원과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다음의 세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 1.레지오 봉사의 기초인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 2.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신비체, 3.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
1. 레지오 봉사의 기초인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51-53쪽 ; 교본 229-232쪽)
세계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서 시작기도와 영적 독서 후 장차 수행할 사업으로 성 빈첸시오의 애덕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더블린 구호병원을 둘씩 짝지어 방문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단원들은 활동에서 취해야 할 정신 자세를 논의하였다. 영적 지도자 토허신부는 첫 훈화로서 마태오 복음 25장을 봉독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를 설명해 주었다. 훈화의 핵심은 단원들이 방문하는 사람들 하나 하나에게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본 본문의 말처럼 "레지오 단원들이 맨 처음에 가진 회합에서는 그들이 바야흐로 착수하고자 하는 봉사 활동의 초자연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레지오 단원이 그 대상자들에게 접촉할 때에는 상냥하고 친절해야 하지만 그 동기가 평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봉사하는 모든 사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뵙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단원들이 다른 사람에게 - 가장 약하고 미천한 사람들에까지 - 해 주는 것은 우리 주님께 해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또한 교본 본문은 맨 처음의 회합에서 강조한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의 초자연적 동기가 레지오의 봉사 활동뿐 아니라 레지오의 규율과 내적인 조화, 그리고 단원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기본 원리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 원리가 상훈에도 포함되어 매월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읽도록 한다고 했다.
프랭크 더프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과 설교의 중심 주제로서 무려 163회에 걸쳐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오로 사도가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동기도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를 체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러 가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음성을 들었다.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이다(사도 9, 3-5 참조). 사울이 박해한 그리스도교인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은 고린토 전서와 로마서에 있고 옥중서간인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신자들은 지체로서 서로 결합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한몸을 이루면서(로마 12, 5 ; 1고린 12, 27 참조) 각자가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이며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는 계속하여 현존하신다.
교본 본문은 교회와 결부된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에페 1, 22-23). 그리스도는 신비체의 머리 곧 중요하고도 없어서는 안될 완전한 핵심부이다. 이 핵심부로부터 그 몸의 모든 부분은 힘과 생명을 분배받는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로 그리스도와 결합한다..... 그러므로 그 지체들과 머리의 사이, 그리고 각 지체들 사이에는 서로 사랑하고 봉사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가 생긴다."
2.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신비체(54-56쪽 ; 교본 232-235쪽)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레지오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있어서 머리 다음의 첫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마리아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마리아 없이 구세주의 강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있어서 목, 심장, 그리고 어머니의 구실을 한다. 예로부터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있어서 머리와 몸통을 연결해 주는 목 구실을 한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목 구실만으로는 신비체의 지체들에게 초자연적 생명의 은총을 전달해 주는 마리아의 활동적인 면이 부각되지 못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서 심장 역할을 한다. 심장이 피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머리도 그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목에 비유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표현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어머니'이다. 신비체의 어머니는 지체들에게 생명을 줄 뿐 아니라 모성애로써 계속 보살피고 양육하기 때문이다.
교본은 마리아가 신비체에서 머리의 어머니임과 동시에 지체들의 어머니라는 지위에 있는 까닭에 가장 훌륭한 일치의 보장자라고 하면서 마리아의 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마리아의 존재 목적은 전체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태어나게 하는 데 있다. '전체 그리스도'란 모든 지체들이 완전히 서로 잘 어울려(에페 4, 15016) 머리인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신비체를 가르킨다. 마리아는 이 신비체의 생명이요 얼이신 성령의 협조와 힘에 의지하여 이 신비체를 성장시키는 임무를 완수하신다.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는 것"(에페 4, 13)은 마리아의 품에서 마리아의 품에서 마리아의 모성적 보살핌에 의한 것이다(9장 1항, 53쪽).
마리아는 신비체의 각 지체에게 당신 아드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준다. 따라서 마리아 없이 신비체는 완전한 구실을 하지 못한다(참된 신심 32항 ; 교회 헌장 53항 참조)
레지오 단원은 마리아와 더불어 신비체에 봉사해야 한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구원 사업을 세상에 확장할 협조자를 찾고 계신다. 레지와 단원은 신비체의 지체들을 모성애로써 보살피시는 마리아의 도구가 되고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교본 본문은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있어서 레지오 단원의 역할과 본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 신비체의 다른 지체들에 대한 봉사를 할 경우에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을 모시고 가서 그들을 도와 주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모님이 당신을 도와줄 단원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면서도 마리아의 지위와 특전을 축소시키거나 성서를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어머니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신비체 교리는 유익한 가르침을 준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게 순종하셨다(루가 2, 51 참조)는 점과 그리스도가 당신 어머니께 보이신 모범을 그리스도 신비체의 각 지체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상시시켜 주어야 한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어머니께 바쳤던 그 숭고한 사랑과 순종은 신비체에서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종을 특별히 본받는 것은 레지오 단원의 본분이요 의무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레지오 단원들이 지닌 특별 임무는 다른 지체들을 인도하고 위로하고 깨우치는 일이다. 그러한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모습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의 지위와 특권, 일치, 권위, 발전, 수난, 기적, 승리, 은총을 베푸는 일, 죄의 사함 등을 납득할 수 있으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살아 계시고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사명을 계속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3. 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56-58쪽 ; 교본 236-239쪽)
레지와 단원들은 초창기부터 불우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봉사하기 위해 방문 활동을 실시하였다. 첫 회합에서 결정된 방문 대상은 구호 병원의 환자들이었다. 단원들은 각 병동마다 두 사람씩 배정되었다. 그러나 암병동 배정에 있어서는 놀랍게도 서로 자기네가 맡겠다고 지원하였다. 오늘날엔 레지오가 궂은 일에 단련되어 있어서 그러한 방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리고 암병동은 극빈자들이 경제 사정으로 미리 손을 쓰지 못해 하나같이 중환자들이었기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단원들은 공포를 극복하면서 기꺼이 힘든 봉사 활동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프랭크 더프에게 신앙의 시금석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진리에 대한 터득이었다. 그에게 모든 불우한 사람은 모습을 바꾸신 그리스도였다. 그는 레지오 단원들이 모든 사람 안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뵙고 아울러 모든 임무를 성모 마리아와 일치하면서 주님께 봉사하는 것이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이라고 하였다.
프랭크 더프는 고통받4고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특권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레지오 사업으로서 신비체 안에서 고통받는 윤락녀들과 집없는 부랑 남자들, 그리고 미혼모들을 위한 숙박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업은 다음과 같은 계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1920년대에는 대규모의 매춘이 성해하고 있어서 큰 문제였다. 프랭크 더프는 뱀을 짓밟고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도움을 확신하면서 매춘 문제에 도전하였다. 그는 1922년 7월에 윤락녀들이 회개하여 새 삶을 찾을 수 있도록 2박3일간의 주말 봉쇄 피정을 마련하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24명이 참석한 피정은 대성공이었다. 피정이 끝날 무렵 더불린 시청으로부터, 회개한 윤락녀들이 새로이 거처할 건물을 제공받았다. 그 건물을 '성 마리아 숙박소'라고 불렀다. 그 후에 여려 차례에 걸쳐 실시된 피정도 성공하여 그 기숙사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그 당시 집없이 거리에서 방황하는 부랑 남자들을 위한 숙박소 말녀이 시급하였는데 이번에도 시청에서 프랭크 더프에게 건물을 제공하였다. 그 건물은 '샛별 숙박소'라는 이름으로 1927년 3월에 문을 열었다. 3년 후인 1930년에는 샛별 숙박소 가까이에 미혼모와 집없는 극빈 여성들을 위한 건물도 마련되었는데 그것을 '천상의 모후 숙박소'라고 불렀다.
레지오 단원들은 봉사 활동으로써 고통받는 사람들과 잦은 접촉을 하게 되므로 고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알아두어야 한다. 그러기에 레지오 단원들은 고통의 의미를 잘 깨달아 고통받는 신비체의 지체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고통은 은총이 되고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에 대해 설명한 교본 본문을 요약해 보자 : 고통은 인생의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이야말로 인생을 완성시키는 구실을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성서의 여러 곳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필립 1, 29 ; 2디모 2, 11-12 참조)
십자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순간을 표상한다.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고귀한 성혈은 신비체를 통해 미세한 부분에까지 전달됨으로써 영혼들을 그리스도와 닮게 해 준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면만 빼내어 고를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처럼 환회와 영광뿐 아니라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비통의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와 나란히 걷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명에 아무 구실을 할 수 없다. 고통은 단순히 죄에 대한 벌이 아니며 치유와 힘을 주고 그리스도를 닮게 해 준다. 고통의 의미를 터득하면 그 고통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제10장 : 레지오 사도직 (59-67쪽 ; 교본 제6장, 24-36쪽)
새 교본 10장은 레지오 마리애의 사도직을 다루고 있는데 다음 7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 1.레지오 사도직의 존엄성, 2.평신도 사도직의 필수성, 3.레지오와 평신도 사도직, 4.사제와 레지오, 5.본당에서의 레지오, 6.강렬한 이상과 행동은 레지오의 열매, 7.도제 제도에 의한 단원 양성
1. 레지오 사도직의 존엄성(59쪽 ; 교본 24-25쪽)
레지오 마리애가 창설된 당시엔 평시도 사도직 단체가 별로 없었고 평신도가 교회 일에 적극 앞장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대였다. 레지오 창설 도시인 더블린의 교구청에서조차 레지오를 공인해 주기는커녕 창설자를 반교권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궁지로 몰아넣었다.
다행히 청설된지 10년 가까이 되자 레지오가 로마에도 알려져 로마 교구 총대리 마르케띠 추기경이 창설자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과 당시 교황 비오 11세가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적극 장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프랭크 더프는 그 두 분을 꼭 뵙고 싶어했다. 마침내 1931년 그가 교황을 알현했을 때 레지오 마리애가 전 세계로 확장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교황의 말씀을 듣고 레지오가 구제받은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한없이 감사를 드렸다.
비오 11세는 가톨릭 운동의 교황이라고 불렸다. 가톨릭 운동이란 '평신도들이 여러 가지 운동과 회의 형태로 단체를 만들어 교계와 긴밀한 관계를 보존하면서 참된 사도적 목적을 추구하는 조직적 사도직' (평신도 사도직 교령 20항 참조)을 일컫는데 이는 교황 비오 10세(1903-1914 재위)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비오 11세(1922-1939 재위)는 가톨릭 운동을 '성직 사도직에 대한 평신도들의 참여' (사도적 교서 23권 287쪽)라고 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선 '성직 사도직에 대한 평신도들의 협력'이라고 하면서 다음의 제 가지 요소를 갖춘 조직체는 모두 가톨릭 운동에 속한다고 하였다 " 1)조직체의 직접 목적이 교회의 사도적 목적이어야 하고, 2)기획, 관리 및 운영에 있어서 스스로의 경험을 제공하고 책임지고 실천해야 하며, 3)평신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활동하고, 4)주교를 최고 지도자로 모시고 활동하는 것이다(평신도 사도직 교령 20항).
이렇게 볼 때 레지오 마리애 역시 가톨릭 운동에 속하며 매주 회합을 통해 기도, 공부, 활동을 하는 사도직 단체이기에 기존단체 이상으로 사도직의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기존 가톨릭 운동은 새로운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레지오를 경원시하고 활동을 방해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레지오로 인해 뭉쳐진 힘이 둘로 갈라질 것을 염려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특히 유럽 지역에서 레지오가 발전하지 못하였다.
새교본 본문은 현교본에 있는 비오 11세의 사도적 교서 내용을 전부 삭제하고 그 대신에 평신도 사도직 교령과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삽입하였다. 교본 본문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레지오가 단원들에게 요구하는 사도직의 존엄성과 그 사도직이 교회에 대해 가지는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권위있는 선언보다 더 강력한 말씀은 없을 것이다 :
"평신도는 사도직 수행의 권리와 의무를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일치에서 받는다. 평신도는 성세성사로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되고 견진성사로 성령의 힘을 받아 강해졌으며 주님으로부터 사도직 수행의 사명을 받았다. 평신도가 거룩한 백성으로서 왕다운 사제직에 참여하도록 축성된 것은 모든 활동으로 영적 제물을 봉헌하며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이다. 성사로써, 특히 가장 거룩한 성체성사로써 전체 사도직의 영혼과 같은 사랑이 부여되고 자라는 것이다"(평신도 교령 3항) ; 교황 비오 12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신자들은, 더 정확히 말해서 평신도들은 교회생활의 일선에 서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인간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리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 교회란 모든 사람의 으뜸인 교황의 지도 아래 그리고 교황과 일치하는 주교들의 지도 아래 있는 지상의 신자 공동체이다. 이들이 바로 교회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9항).
2. 평신도 사도직의 필수성(59-60쪽 ; 교본 25-26족)
평신도 사도직의 필수성에 대해 논의하려면 먼저 평신도란 누구이며 사도직이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평신도란 단어는 하느님의 백성의 개념에서 유래하며 교회 역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불린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기에 평신도 없는 교회란 있을 수 없다.
평신도 사도직에 대해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잘 밝혀 주고 있다. 평신도란 누구인가? 평신도란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 백성 중에 들고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도들을 말한다"(교회 헌장 31항). 즉 평신도는 성직자나 수도자와 구분되지만 사제직, 예언직, 왕직 공동체인 교회의 공동 책임성 있는 구성원이다.
평신도의 교유한 특징은 세속적인 성격에 있다. 그들은 세속의 온갖 직무와 일,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 조건들 속에서 복음 정신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세계 성화에 힘쓰고 실생활의 증거로써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직이란 무엇인가? 사도직이란 사도들의 사명을 나름대로 수행하는 모든 그리스도교인의 직무인데 그 어원은 희랍어의 '사명'이란 뜻에서 나왔다. 평신도 사도직 교령에서는 사도직을 '교회 창립 목적인 그리스도 왕국 확장, 인류 구원, 세계 성화를 위한 신비체의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하였다(2항 참조 ; 새교본 13장, 83쪽 참조). 사도직에는 성직 사도직과 평신도 사도직이 있다. 성직 사도직은 신품성사에 의해, 평신도 사도직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에 의해 참여한다.
공의회 문헌은 평신도 사도직의 필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평신도 사도직은 그리스도 신자로 불리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것이므로 교회 안에서 절대로 없어질 수 없는 필수적인 것이다. 현대는 초대교회 못지 않은 평신도들의 열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의 정세는 보다 활발하고 보다 광범한 평신도 활동을 요청한다. 날로 격증하는 인구, 과학과 기술의 발달, 보다 긴밀해지는 인간 관계 등은 평신도 사도직의 무대를 무한히 확대하였고 그 활동 분야의 대부분은 평신도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평신도 사도직 교령 1항) ; "평신도 사도직은 교회의 구원 사명 자체의 한 부분이며 주께서 친히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이 사도직에 부르시는 것이다"(교회 헌장 33항).
평신도의 사명은 교회와 세속 안에서, 영적 질서와 현세 질서 안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 교령은 교회의 여러 단체들, 가정, 청소년들, 사회 환경, 국가 및 국제 영역 등 사도직의 여러 분야를 다루면서 사도직 수행의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9-22항 참조). 사도직의 여러 분야에서 평신도는 개인적인 방법으로나 혹은 단체에 가입하여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는데 가능하면 조직적 사도직에 가입하기를 권장하고 있다(18-19항 참조). 그런데 레지오 마리애는 공의회가 개최된 40년 전에 이미 조직적 사도직 단체로서 활약하였던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은 성직 사도직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성직 사도직에 협력하고 목자인 성직자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목자 역시 평신도들에게 사도직 수행을 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마련해 주고 평신도들을 양성시켜야 한다(교회 헌장 32-33항 참조).
교본 본문은 평신도 사도직의 필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 "가톨릭 공동체는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이 많을수록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 사도직의 근본 이상은 교회의 구원 사업에 대하여 강렬한 관심을 갖는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관심은 참여 의식이 없이는 거의 생겨날 수가 없다. 따라서 사도직 단체는 사도를 만들어 내는 주형이 된다. 사제만이 이 주형을 효과있게 다룰 수 있으며 그 다루는 솜씨에서 사목자로서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러한 사도직의 특성을 꾸준히 가꾸어 놓지 않은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성교회에 대한 관심이 모자라고 모든 책임감이 부족하게 된다. … 추기경 뉴만은 '어느 시대나 평신도가 가톨릭 정신의 척도가 되었다'는 사실이 하나의 원리라고 말하였다."
3. 레지오와 평신도 사도직(61쪽 ; 교본 26-29쪽)
모든 평신도는 사도직 활동에 불림을 받았고 사도직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도직 활동을 꺼려하는 이들이 많다. 교본 본문의 말대로 사도직은 그 자체로서는 냉정하고추상적이어서 매력이 없고 사도직이 요구하는 높은 사명에 호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평신도들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교회의 싸움에서 담당해야 할 구실을 포기해 버리고마는 결과를 빚고 있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사도직을 수행하기는 매력이 없고 힘들겠지만 일단 조직적인 사도직에 가입하면 안전장치가 될 수 있고 보람도 느끼게 된다. 흔히 세례받은 후 신심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혼자서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다 보니 오래지 않아 믿음이 식게된다. 사목 헌장에서도 이 점을 잘 밝혀 주고 있다 : "인간은 원죄로 말미암아 자신 안에서 이미 분열되었다. 이 때문에 개인 생활이나 집단 생활이나 인간 생활 전체가 선과 악, 빛과 어둠 사이의 극적인 싸움으로 나타난다. 더구나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악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음을 발견한다"(13항). 예수께서도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고 하셨기에 평신도들은 교회의 구원 사업 특히 선교 사업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평신도들은 공동체적으로 예언직, 사제직, 왕직의 사명을 수행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이 개인 성화로써 자신의 냉담을 막을 뿐만 아니라 사제직과 왕직을 수행하고 나아가 냉담자들을 회두시키고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예언직 수행과 선교 활동에 앞장서게 하는 사도직 단체가 바로 레지오 마리애이다. 레지오는 평신도들로 구성된 조직적 사도직 단체이므로 레지오에 가입하면 자동적으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교본에 의하면 레지오의 위대한 기능은 평신도 사도직의 소명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레지오가 가꾸고자 하는 것은 각자의 사도직 소명에 대한 개인적 자각이다. 따라서 각 단원은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자세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각자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은 필연적으로 사도직 정신과 그리스도의 사업을 수행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리하여 레지오는 수도 단체를 가름하는 평신도 단체로서, 일반 평신도 생활 안에서 완덕을 닦으려는 그리스도교적 이상을 불어넣어 현대 세계에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고자 한다(60쪽 ; 교본 26쪽 참조).
레지오는 탁월한 사도직 단체로서 구원의 안전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교본 본문은 이 점에 대해 아프리카와 중국의 교황 사절을 역임한 안또니오 리베리 추기경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 "레지오 마리애는 매력적인 형태의 사도직으로서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모든 이를 글어들이려 하다. 레지오는 교황 비오 11세가 규정한 방법 즉 하느님의 동정 성모께 의지하는 방법으로 활동한다. 단원의 질적인 면을 중요시하며 그것을 단원 확보의 바탕으로 삼기도 하고 단원을 불리는 열쇠로 활용하기도 한다. 많은 기도와 자기 희생, 확고한 조직 체계, 그리고 사제와의 온전한 협력을 통하여 안전보장을 받고 있는 사도직이다. 이러한 레지오야말로 현대의 기적이다."
또한 바오로 6세 교황도 "성교회 안에서 위대한 수도회들이 설립된 이래로 가장 중요한 발전상은 레지오 마리애의 설립이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사제직을 교회에 물려주셨다. 평신도들은 미사와 전례에 참여하고 성사를 능동적으로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레지오 사도직은 은총의 주된 수로가 미사와 성사들이라는 사실을 근본 바탕으로 삼고 있다.
끝으로 교본 본문은 레지오 단원의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에 바탕을 둔 왕직 수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레지오의 사도직은 병들고 굶주리는 많은 이들에게 하느님이 정해 주신 자양분을 가져다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갖가지 방법을 다 쓰고 있다."
4. 사제와 레지오(62-64쪽 ; 교본 28-30쪽)
레지오 마리애는 사제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레지오는 사제직의 보조자"(교본 40장 4항, 438쪽)이고 사목자들을 돕기 위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레지오의 역할은 사제들의 선교와 사목 활동에 최선을 다해 협조, 봉사하고 사제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 주는 것이다.
레지오에는 반드시 사제인 영적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며 본당에서는 본당 신부가 영적 지도자이다. 그런데 협조자 없이 본당 신부 혼자서 사목을 원활하게 할 수 없으며 그것은 주님의 뜻도, 교회의 가르침도 아니다. 교본 본문의 내용대로 일손을 돕고자 주위에 모여든 신자들에 둘러싸인 사제의 모습은 거룩하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일이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회개시키고자 준비하는 과정에서 협조자인 사도단을 거느리고 몸소 가르쳤으며 사도직 정신을 심어 주셨다. 사도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익혀 선교 사업을 도와 줄 사람들을 모음으로써 저 멀리 로마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본 본문은 교황 비오 11세도 "로마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것은 가톨릭 운동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그 전파가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만일 사도들이 그들 주위에 있는 남녀노소의 숱한 사람들을 불러모으지 않았더라면 열두 사도가 해 왔던 일은 저 광대한 세계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고 했다.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는 "사제는 구성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 "이 세상에서 사제는 희생적인 사제, 교회의 조직자, 종교적 지식의 원천, 지도적 교사, 선교사와 예언자로서의 그리스도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친히 구성원들을 조직하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명을 완수하셨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분이 세운 종교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상에서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구성원이란 협조와 적극성, 결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평신도 활동이 허용되는 한도까지 최대한 협력하여 사제의 영역을 넓히는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사제에게 구성원들이 없다면 그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외톨이로 고립되어 아무 힘도 쓰지 못할 것이다"(F. Duff Mary Shall reign, pp.16-17 ; 마리아 잡지, 푸른 군대 한국 본부, 16호 22쪽 참조).
이처럼 본당 신부의 사목 활동을 돕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필요한데 레지오 단원들이 바로 그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레지오 단원들은 사제와 결속되어 사제의 수족이 되고 사제의 동반자 구실을 하고 있다. 레지오 단원들은 사제의 일을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는 방관자가아니라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중재 역할을 하신 성모님처럼 각박하고 어려운 현실에 처한 사람들과 사제 사이에 서서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봉사한다. 그러므로 사제는 자신의 보조자요 구성원인 레지오 단원들을 잘 활용하여 자신의 활동 영역을 무한히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교본은 다음과 같이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을 새로이 본문에 삽입하였다 : "목자의 임무는 하나 하나의 신자를 돌보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참된 그리스도교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그 고유의 책임이다. 그런데 공동체 정신은 지방 교회뿐 아니라 온 교회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면 올바르게 발전했다고 볼 수 없다. 지방 공동체는 소속된 신자들을 돌볼 뿐 아니라 선교정신에 불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길을 준비해야 하며 특히 성세 지원자들과 신입 신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단계적으로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이해와 실천에로 이끌어야 한다(6항).
교본 본문 말미에는 사제와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구성원간의 관계를 설명한 것을 인용하고 있다 : "사제와 신자들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아야 한다. …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해 신비체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제도 마찬가지이다. 사제도 지체들을 스스로 양성해야 한다. 만일 사제가 그 자신이 양성하여 결합한 산 지체들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의 사업은 보잘것없이 될 것이다"
5. 본당에서의 레지오(64쪽 ; 교본 32-34쪽)
현행 교본에서의 제목은 '레지오는 본당의 보배'인데 새 교본은 '본당에서의 레지오'이다. 새교본은 기존 교본 본문 전체를 바꾸었다. 새 교본 본문은 먼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27항을 인용한 다음 본당에서 참된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레지오를 설립하여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새 교본 본문은 현행 교본 내용을 바탕으로 축소, 보완한 것으로서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현대의 상황에서 평신도들은 본당에서 교회적 친교를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으므로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특별히 신앙 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한 냉담자들과 비신자들을 향한 선교 열정을 다시 일깨우기 위하여 평신도들은 많은 일을 해야 한다"(평신도 그리스도인 27항). 참된 공동체 정신을 앙양하기 위해서는 레지오 설립만큼 좋은 것이 없음이 밝혀졌다. 레지오를 통해 평신도들은 본당에서 사제와 결합되어 활동을 잘할 수 있고 사목적 책임을 분담하게 된다. 본당 단체들의 다양한 활동은 정기적인 주회를 통하여 관리될 때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본당 내 여러 활동 단체의 회원들이 레지오에 가입하여 영신적인 단체의 대열에 함께 서게 될 때 비로소 그들은 본당이 성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레지오의 조직적인 방법을 통하여 본당 내의 모든 이들을 접촉함으로써 이러한 공동체 건설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본당에서의 레지오 사도직 수행 방법에 대해서는 교본 37장 '활동의 예와 방법'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각 본당에 레지오가 없는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본당 사목자가 사목과 선교 면에서 레지오가 본당의 보배임을 인정하는 증거이다. 일찍이 교황 비오 10세는 현대 사회를 구원함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각 본당에 참다운 사도적 정신을 지닌 평신도들이라고 하면서 모든 사제들이 본당에서 평신도들로 하여금 좋은 모범으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고(62쪽 참조 ; 교본 29쪽 참조), 교본 본문에서 교황 비오 11세도 "평신도 사도직이야말로 사제들은 사목의 결정적 부분으로 여겨야 하고 신자들은 크리스찬 생활의 의무로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라"(루가 10,2)고 하셨는데 오늘날엔 숱한 레지오 단원들이 바로 본당의 추수할 일꾼들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고 본당이 '레지오 교회'라고 불릴 수는 없다. 레지오는 본당의 여러 신심 활동 단체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지오는 여러 활동 단체 중에 중심 기관이 될 수 있다. 레지오의 지단(쁘레시움)이 설립되면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있고 지단 안에 본당의 여러 사업과 봉사자들이 결합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본당의 일반 단체에도 유익이 된다. 왜냐하면 본당의 자질구레한 활동, 정규 단체 이외의 활동들이 레지오와 연관을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각 분야의 봉사자들은 서로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격려가 되고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근래에 본당 안에 레지오 지단 숫자가 많아 일일이 지도하기가 힘들다고 영적 지도자인 본당 신부가 쁘레시움 주회에 아예 참석하지도 않고 훈화와 강복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사목자가 주회에 참석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매달 1회 꾸리아 등의 평의회에는 꼭 참석함으로써 본당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사제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나 당면 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되어 사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본당 신부는 자신의 관심도와 지도 여하에 따라 레지오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레지오 간부들도 본당 신부가 레지오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노력하면서 본당의 사목 방침을 적극적으로 따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6. 강렬한 이상과 행동은 레지도의 열매(64-66쪽 ; 교본 34-36쪽)
교본은 강렬한 이상과 행동이 레지오의 열매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이란 각자의 지식과 경험의 범위 내에서 여겨지는 최고의 가치나 목표라고 하겠다. 이상이 없다면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훌륭한 이상뿐만 아니라 저질적인 이상도 있을 수 있다. 고상한 이상을 가진 사람은 성인도 될 수 있지만 저속한 이상을 가진 사람은 저질 인간이 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 성화를 통해 마리아와 교회 사업을 적극 협력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높은 이상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열매를 맺고자 한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은 결실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은 삶의 귀감이 되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옮겨서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 교본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진리의 수호자인 가톨릭 교회가 단지 조심스럽고 틀에 박힌 행동만을 보인다면 진리를 아주 불리한 처지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 만일 젊은이들이 선량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활동적 이상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순전히 세속적이고 비종교적이기까지 한 조직에 의지하려는 습성에 한번 젖으면 무서운 해악을 끼칠 것이다. 레지오는 그 기획을 진취적으로 만들고 성교회로 하여금 이상주의와 행동의 두 낱말을 시녀로 삼도록 도와 줄 수 있다."
역사가 렉키의 말에 의하면 세계는 그 이상에 지배된다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높은 이상을 창출하는 사람들은 모든 인류를 드높인다. 물론 이 경우에 그 이상은 실천 가능한 것이며 하나의 뚜렷한 목표점을 이룰 만한 것이어야 한다. 레지오가 지니는 이상은 이 두 가지 요건을 다 갖춘다고 할 수 있다.
레지오의 한 중요한 특징은 종교적인 높은 이상으로 인해 레지오 단원들과 그 자녀들 중에 많은 이가 사제, 수도 성소를 받고 있고 레지오 사업이 은총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 세계에서는 좀처럼 레지오 단원이 되려 하지 않고 활동하기를 싫어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하찮은 활동을 하도록 부름을 받는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큰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고 응하는 사람은 이상을 성취하려는 노력 때문에 레지오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사제수가 부족한 현대 교회에서 레지오의 강렬한 이상이 열매를 맺으려면 사제가 레지오를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레지오 활동의 첫째 원칙은 사제를 사람들에게 모셔다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겠지만 사제의 영향력이 어디에나 미치도록 하고 사제가 하는 일을 이해시키도록 하는 것이 레지오 사도직의 기본 원칙이다(61쪽 ; 교본 27쪽 참조).
프랭크 더프에 의하면 레지오는 사제들을 돕기 위한 이상적인 도구이다. 사제가 자신의 역할과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있어서 레지오를 활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볼 때 사제보다 레지오 단원들이 더 쉽게 민중 속에 파고 들어갈 수 있다. 그리하여 레지오는 사제와 민중의 중간에 서서 봉사하게 된다.
쁘레시디움은 사제의 도구이므로 사제가 레지오를 잘 활용한다면 사목자로서의 진가가 드러난다. 교본 본문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쁘레시디움은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데 있어서 평신도들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사제를 도와 주는 강력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의 모임에서 사제가 단원들을 지도하고 격려하고 영성을 높이는 데 사용한 시간은 한 시간 반이다. 이 짧은 시간의 소모로써 그 사제는 어디에나 갈 수 있게 되고, 모든 것을 듣게 되고, 모든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게 되고, 그의 모든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게 된다. 참으로 많은 쁘레시디움을 열성적으로 지도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큰 일은 없다고 생각된다."
7. 도제 제도에 의한 단원 양성(66-67쪽 ; 교본 30-32쪽)
레지오 마리애는 이상적인 단원 양성과 평신 사도 양성 방법으로서 도제 제도를 도입, 실시하고 있다. 도제란 직업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능을 습득하기 위하여 스승 밑에서 노무에 종사하는 직공인데 흔히 제자, 수련공을 뜻한다. 도제 제도란 중세기에 수공업적 기능의 후계자를 양성하던 방법으로서 오랫동안 스승 밑에서 수업한 후 숙련공으로 독립하여 영업을 하게 되며 그 역시 제자를 두어서 기능을 전수하는 제도를 말하나. 교본 본문에 의하면 '사범이 실제적 모범을 통해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 주면서 문제점들을 지적해 주면 제자는 스스로 그 일을 시도해 보고 실행 과정에서 고쳐 나가는 이상적인 훈련 방식이며 레지오가 단원 양성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도제 제도는 예수님이 몸소 사용하신 제자 양성 방법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을 줄곧 따라 다니도록 하면서 당신의 일을 배우도록 하셨다.
레지오_마리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