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6. 토요일
때 이르게 찾아온 여름 햇살이 바다를 더욱 푸르게 물들인다.
5시간 넘게 걸었던 숲은 초록의 향연을 한층 더 짙게 펼쳐 놓았다.
3주 만에 다시 찾은 남파랑길은 변함없는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경상남도 고성의 남파랑길 32코스는 부포사거리에서 출발해 문수암과 수태산을 지나 임포항까지 이어지는 14km의 길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5km 남짓한 도로를 걸어 문수암에 도착한다.
이제부터는 숲이 만들어 준 그늘 아래 편안한 임도 길이 시작된다.
수태산 정상 아래 7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숲이 우거져 걷기에 더없이 좋다.
오른쪽 발아래로는 산 능선들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굽이굽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다.
그 아래 작은 농촌 마을들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푸르게 펼쳐진 녹음은 마음을 가볍게 만들고, 숲 사이를 지나오는 바람은 걸음마다 힘을 더해 준다.
은은한 솔향이 길 위에 번지고, 산자락은 조용히 길을 따라 이어진다.
수태산 7부 능선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어느새 오른쪽에 있던 바다가 왼쪽 어깨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다.
몇 개의 섬들이 바다 위에 연꽃처럼 떠 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초록빛 길을 천천히 걷는다.
길 위의 즐거움은 풍경만이 아니다.
잠시 쉬어 가며 동료들이 정성껏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이건 색다른 맛이네." "몸에 좋은 향이 느껴진다." 서로의 음식에 감탄하며 웃음꽃이 핀다.
3주 만에 다시 만난 산행 친구들은 그동안의 안부를 나누고, 다음에는 무엇을 준비해 올지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52, 59, 60년생 산행 선배님들의 젊은 시절 경험담을 들으며 감탄하기도 한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분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열정이 살아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다시 숲길을 걷는다.
푸른 숲은 여전히 나를 감싸주고, 잔잔한 바람은 나를 평온하게 이끌어 준다.
나는 그저 그 바람과 숲속으로 천천히 스며들면 된다.
가끔 나타나는 노란색과 남색의 남파랑길 표지는 반가운 친구 같다.
남파랑 리본은 "조금만 더 가자"고 응원해 주는 비타민이자 활력소다.
이 아름다운 산길과 바닷길을 걷다 보면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롭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바쁘게 살아온 시간 속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우리 국토를 천천히 걸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버스로 여섯 시간을 내려가고 또 여섯 시간을 올라오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걸어야 하느냐"라고.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 길을 걷는 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얼마나 삶의 활력소가 되는지. 그리고 지금 걷지 않으면 평생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임도길을 따라 내려오면 학동마을 전주 최씨 집성촌의 돌담길이 나타난다.
600년 세월을 견뎌 온 돌담은 조용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선조들의 정성과 삶의 흔적이 돌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듯하다.
돌담 아래로는 기다렸다는 듯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밭이 펼쳐진다.
회원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초여름 보리밭의 노란빛과 알록달록한 등산복의 색깔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금단마을을 지나 임포항으로 향한다.
안내판이 보이고, 드디어 오늘의 종착점에 도착한다.
임포횟집에서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을 마주하니 고성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 순간이 오늘 길이 내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5시간의 여정이 끝난다.
문득 생각한다.
언제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강원도 고성이 아닌 경상남도 고성의 산길과 마을길, 그리고 바닷길을 내 발로 다시 걸을 수 있는 날이 또 올까.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이 더욱 소중하다.
남파랑길은 늘 앞으로 이어지지만, 같은 길을 같은 마음으로 다시 걷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초록빛 숲과 바다, 그리고 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웃음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 푸른산 최윤범이었습니다.--
첫댓글
함께
걸어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32코스처럼
33코스 남파랑길도 즐겁게 같이 걸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