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많이 피곤했던 어제였지만 여행 첫날이라 체력이 그득한 난 혼자 일어나버렸다. 아침 6시.
다 씻고, Y도 깨우고, 여동생 방도 깨우고 재촉해서 아침을 먹으러 조식 레스토랑으로 갔다.
아주 작은 공간에 간단한 아침 메뉴가 준비되어있었는데 현지식 메뉴도 맛이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복병의 반찬이 하나 있었으니 양배추 볶음이었다. 내가 그것을 먹는 순간 최선을 다해 삼키고 말했다.
"이건 말이지, 열흘 양치 안한 사람의 입냄새가 나. 아무도 먹지마." 그러곤 잊으려 노력했다. 하..하..
타이페이 일정은 제법 빡빡하기에 양껏 먹어두어야하는데 양배추의 냄새를 잊기위해 좀 더 먹은 듯도 하다. 하..
오늘 밤 비행기로 방콕으로 들어가는 일정인 우린 타이페이에서 고궁박물원, 쓰린 야시장, 중정기념당 세군데를 둘러보기로 했다.
프론트에 배낭을 맡겨두고 고궁박물원으로 출발~
전철 3개를 갈아타고 버스도 갈아타고 가야하는데, 처음 타본 대만 전철은 마치 모노레일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다.
신기해라며 우린 사진도 찍고 즐거웠는데 우리들 손에 들린 어제 못 다먹은 과자봉지와 스텐 개인컵을 본 대만 아줌마 한분이 전철에서 음식물을 먹는다며 막 화를 내셨다. ㅠ.ㅜ 우리 먹으려고 한거 아닌데요....
D가 설명해 드리긴 했지만 이미 풀이 죽은 우리. 조금 상처 받았지만 뭐 나라마다 전철 예절은 다르니까 이해하기로 했다. (예전 도쿄에서 친구가 전화를 받으려 아예 전철에서 내리는 것을 봤을때 보단 덜 충격적이었다.)
쓰린 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러가는데 길거리 국수집을 본 D는 너무 먹고 싶다며 식당앞에서서 떠날 줄을 몰랐다. D는 중국유학 경험도 있고 대만도 세번째 방문이라는데 중국음식 참 좋아한다. Y도 역시 중국 유학파이다. 하지만 Y는 중국 음식의 냄새조차 괴로워한다. D를 달래서 나중에 제대로 된 국수집가서 같이 먹기로 약속하고 버스를 탔다.(지금은 배가 너무 부르자나~, 여긴 먼지도 많다고~, 저기 공사중이잖아~등등. 아기 같은 D)
쓰린역 앞 길거리 상가
한참 가는 버스. 화창한 날씨와 푸른 산, 창으로 들어오는 산뜻한 바람, 붉은색의 꽃들.
겨울의 끝에 선 서울과 여긴 너무도 달랐다.
몇시간 만에 난 타임머신을 타고 초여름으로 달려 온 것 같았다.
고궁박물원.
중국의 명품은 이 박물관에 대부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개석과 국민당들은 보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었고, 당시 공산당들은 이에 관심이 없었던 결과인 듯하다. (2007년에 중국 사천성에 갔을때 문화혁명으로 파괴된 조각들을 보고 마음도 아팠지만 심지어 무섭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어찌되었든 박물관에서 명품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로 뜨거운 햇살아래의 계단을 열심히 올랐다.
해외의 국립박물관들은 대학원생까지도 학생증이 있으면 입장료를 할인해준다. 그간엔 매번 잊고가서 아까웠는데 이번엔 제대로 단단히 챙겼다. 선생님 신분으로 학교에 남아있던 Y를 제외한 우린 모두 학생증이 유효하다. 난 사실 수료상태이긴하지만 어쨋든 졸업은 안하지 않았으니 학생이라고 당당히 내보였다.
셋 모두 ok. 학생입장권의 두배인 일반인 입장료. 돈을 번 듯한 뿌듯함으로 기분좋게 전시실로 가려는 순간. 아...카메라를 맡기란다. 사진촬영은 전면 금지란다. 좌절...작품사진 필요하다구요..ㅠ.ㅜ
눈물을 머금고 로비만 간단히 찍고 전시실 입장.
로비의 창. 너무 예뻤다.
전시실 입구.
동선을 가장 윗층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보기로 정했는데...내겐 실수 였다.
명품 도자기실이 3층에 있었는데 너무 아름답고 볼게 많아 3층에서부터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2층에서는 조금 쉬어가며 보다가 아...내눈에 뮤지엄샾이 눈에 띄고 말았다.
역시 책코너에서 내 발은 붙어버렸다. 대만의 책 가격은 무척 비싼 편이었지만 질은 매우 좋았다.
몇권의 책을 두고 주저 앉아 10분을 고민 또 고민했다.
넉넉하지 못한 경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책들을 가방에 넣은채로 8박 9일을 버텨야하는게 문제 였다.
배낭이라 책이 온전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고....두어권으로 추려보았지만...그걸로 EMS를 부치기도 그렇고... 하지만 이 책을 다른데서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이 내 머리속에서 쌈박질을 하고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며, 다음번에 꼭 대만와서 사가야지! 했다.
그 시간동안 체력이 보충되어 1층 조각실에서는 훨씬 볼만했다. 각자 관람하기로 했던 우리는 결국 너무 아름다운 작품 앞에서 다시 모였다.
약 2m정도의 관음보살좌상이었는데 송대작품이었다. 차분한 실루엣의 흐름과 안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일관되었으며 작품자체의 양감과 볼륨감은 과하지 않은 정도로 충분한 수작이었다.
그 외에도 몇개의 아름다운 상이 있었지만 이 박물관 소장작의 규모에 비해선 전시량은 아주 소량인 느낌이었다.
소장작품을 모두 내어보일 순 없지만, 또 전시량이 많다고 관광객이 모두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나로선 너무 아쉬웠다.
돌아나와 특별전을 하는 건물로 갔는데 몽골박물관 대여전시중이었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입장료도 비싸고 학생할인도 안해주는 것이었다. 거기서도 고민 또 고민. 나야 전공이라 보고 싶지만 다른 일행은 피곤하기도 하고 다른 일정도 있고 해서 내가 포기하는게 정석이었다. 3년안에 몽골로 직접 떠날 계획을 마음에 담고 돌아섰다.
다시 쓰린역으로 나와 쓰린 야시장까지 걸었다. 아직은 오후라 시장은 거의 열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까 D와 한 약속도 있고 모두 배가 고픈 터라 꽤 전통(?)있어 보이는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우육면. Y만 고기가 올려진 밥을 주문하고 과감히 국수에 도전했다.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와 기름진 국물.
새로운 음식먹기를 즐기는 난 조금은 힘들었지만 애써 적응하며 먹었다.
하지만 너무 짜서 반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Y의 접시를 기웃거리다가 죽순볶음을 무심코 집어 먹은 난, 기겁하고 말았다.
아침의 양배추와 같은 냄새. D의 말에 의하면 죽순통조림이 있는데 그것의 냄새라고 했다.
으~~ 아마 못잊을 것 같다.
밥을 먹고 D와 여동생은 샌들을 사러가고 Y와 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세계맥주기행과 여행의 또다른 취미로 세계커피기행도 하는데, 그걸 실천하러 가장 전문적으로 보이는 커피숖에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와 아이스 커피를 시켰는데...아이스 커피엔 시키지도 않은 크림과 시럽이 들어가 있더라는...ㅠ.ㅜ
모든 나라가 커피를 직접 생산하진 않지만 각 나라마다 선호하는 커피맛은 분명 다르다.
내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체로 쓴맛을 선호하는 편이고, 일본은 신맛이 좀 더 강한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고, 베트남은 고소하고 약간 달콤한 느낌이 있고, 라오스는 쓴맛과 신맛이 공존, 이탈리아는 강한 쓴맛 등등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물론 커피를 파는 가게에 따라도 맛이 매우 다르지만...^^;
이곳의 커피는 가게를 잘 못 선택한 탓인지 그냥 그럭저럭이었다. 어딘가 중간인 느낌.
커피를 마시고 나오니 야시장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카드지갑을 하나 사고 싶은 생각에 골목골목을 누벼 보았지만 예쁜 건 비싸고, 싼건 이쁘지 않고...마땅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타이페이 정보 찾다가 꽂힌 망고빙수를 먹으러 갔다. '원조'라고 써 있는 곳으로 들어가 망고빙수를 시켰는데...헉...여름메뉴라 없단다. ㅠ.ㅜ
블루베리 빙수와 복숭아빙수를 시켰는데 복숭아 빙수는 통조림이었다. ㅠ.ㅜ
연유가 잔뜩 들어가 매우 달긴 했는데 열심 먹었다.^^;
마지막 코스인 중정기념당.
MRT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가기 참 쉬웠다.
국립극장과 콘서트홀, 장개석기념관이 함께 있는 곳이었는데 밤이라 색색의 조명을 밝혀 더 운치 있는 모습이었다.
많이 흔들렸습니다.수전증이..
예뻤지만 너무 넓었다.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장개석 기념관의 계단을 올라 한참을 바람을 맞았다.
장개석의 동상도 차도 너무 늦은 시간이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우리의 그림자와, 꽃, 바람, 그들의 데이트 등을 즐겼다.
오늘 저녁 비행기 만큼은 일찍 체크인 해서 넷이 나란히 가야겠디에 바쁘게 호텔로 돌아가 짐을 지고 버스를 탔다. 웬걸. 우리의 버스는 완전 완행이었다.
온갖 정류장에 다 서는 걸 보고 무언가 잘 못된게 아닌가 했었는데...점입가경으로 이 아저씨 고속도로에 오르니 설곳이 없어 그랬는지 시속 70키로도 안 밟는게 아닌가...모든 차량이 우릴 앞서 가고 있었다.
자리가 가장 앞자리라 속력까지 다 보였다.
보딩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버스는 느리고 우린 점점 불안해졌다.
중국어를 할 줄모르는 여동생과 난 D와 Y를 채근해 기사에게 말해보라고 했지만 중국사람들 잘 못 얘기하면 오히려 어깃장을 부릴지도 모른다며 기다리면 될꺼라는 이 속편한 녀석들...
난...속이 탔다.
설상가상으로 Y와 D마저도 속이 탈 시간 무렵 이 버스는 공항으로 가지 않고 타오위안시내로 들어 가는 거였다. 어쩐지 공항버스치고는 너무 많은 사람이 탔다 싶었지만 타오위안 시내 곳곳에 사람을 내려 줄줄은 꿈에도 몰랐다. Y가 얘기를 하려는 순간 이 기사님 전화기를 든다...통화를 공항까지 했다. ㅠ.ㅜ
심지어 우리를 도착층에 내려주고 내뺀 아저씨....
우린. 무조건. 달려야. 했다.
겨우 보딩타임을 맞췄지만 정말 너무 힘들었다.
에바항공은 엉덩이가 좌석에서 떨어져 붕~ 뜰정도로 비행기가 흔들려 비명을 지르기도 했는데 사과도 제대로 없었다. 갑자기 여행중 내 실수로 부딪힌 대만아저씨, 아무리 사과해도 끝까지 노려보던 모습과 올때 기내에서 내 옆에 앉았던 아줌마, 전철에서 우리를 몰아붙인 아줌마, 버스기사 아저씨까지 좀 실망스런 느낌의 대만인 이었다.
우리의 모습도 이렇진 않을런지 반성하며 한국 가면 여행객을 만나면 친절해야 겠단 다짐을 했다.
이제 익숙해진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을땐 새벽 2시가 다 되었었는데 미리 예약해 놓은 택시기사님의 친절을 받자마자 우린 다시 여행의 흥분에 푹~ 휩싸였다.
방콕 숙소 에라완 하우스.
에라완 하우스는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분위기 있고 깔끔했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도 그냥자긴 아쉬워 Y와 난 새벽까지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첫댓글 92년에 가 본 대만의 기억은 우중충함 그 자체였는데...님의 앵글속에 잡힌 장면들은 사뭇 다른 느낌이네요...잘 보고 갑니다
제게 대만은 예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선 좀 상처받아서...한번 더 꼭 가서 좋은 기억만 남겨오려고 생각중입니다. ^^
옛날 아시아 4마리용중의 하나로서 경제발전을 거듭했던 대만이 키노님의 눈엔 그렇게 보였군요. 하기사 대만의 정치,역사 참 어려운 나라죠.
네. 제가 아직 지식이 모자라 전공관련 밖에 생각 못했습니다. ^^;. 명품 차와 고미술품이 있는 나라, 야구 잘하는 나라 이렇게 짧습니다.^^;. 다음에 중국어 전공한 친구들이랑 다시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그땐 공부 많이 하겠습니다~ ^^
어~ 저도 92년도에 잠시 대만에 있었는데 ......그 당시 대만과 단교문제로 정말 우울한 시간을 보냈었는데....ㅠ.ㅠ 그래도
다시가고픈 대만입니다. 좋은친구들이 그곳 대만에 있기에....
좋으시겠어요~ 아..제겐 아직 다른나라 다이렉트 친구가 없어서..너무 부럽습니다~ ^^
여행후기 잘읽었습니다 꼭제가가본것처럼 생각이드네요 대만도 정치. 역사 우리나라만큼 어려운나라지요 다음엔 꼭 대만여행한번해보고싶네요
대만은 4박5일 정도면 나라 전체를 볼 수 있다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다음에 꼭 한번 다녀오세요^^
대만! 공항에 내리면 습한 느낌과 곰팡이 내음..일년중 200일은 비가 오지 않을까 생각되네요..타이베이에 흐르는 강물의 오염도는 정말 심하구요.. 생활 수준이 우리나라랑 비슷 하던데 환경 만큼은 아니라는 느낌! 허나 그들의 박물관에선.. 왠지 작아지는 느낌! 아뭏튼 대만은 이제.. 가고싶지 않네요^%^
이제 우리나라 강물도 비슷해 질 듯 한데요? ^^; 그래도 전 박물관 한번더랑 아직 못가본 어딘가는 꼭 다녀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