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을 그린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 아흔이 넘은 노작가가 우리나라에 왔다. 은평구에서 주는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받으러... <화산도>는 1976년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모두 12권으로 완성되었다. 그야말로 4.3을 다룬 최고의 장편서사였다. 4.3을 문학으로 다루었기에 그는 역대 군사정권, 보수정권으로부터 통제를 받았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그뒤 다시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살아서 다시 올 수 있을지 몰랐던 이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상을 받고 기념심포지엄에도 참가하고 그러던 그가 마지막날 동국대에서 학생들과 만나면서 그야말로 증손자뻘 학생들 앞에서 “나흘 일정동안 가장 기쁜 시간”이라고 울먹였다는 구절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정말 노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일본사회와 한국정부로부터 온갖 모욕과 탄압, 그리고 통제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왔던 노시인이 고국의 젊은 학생들 앞에서 자유롭게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한 감회가 어떠했을까? 마지막 공항으로 가는 길의 발언에서도 비슷한 심정을 찾을 수 있다. “운다는 건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야”
사족: 은평구에서 이런 문학상을 제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즘 은평구의 문화 방면의 활동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미있는 박물관, 기념관 등도 여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구 단위에서 이런 무게있는 상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텐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2210.html
첫댓글 4.3사건은 정부가 세워지기 전, 미군정 시기였습니다. 아직 <화산도>는 보지 못했고 영화 <지슬>은 보았습니다.
국방경비대를 창설하고 첫 총뿌리를 제주도의 양민에 대해 겨눴지요. 제주도민 가운데 10%가 넘는 3만 명 이상이 살상당햇다는 얘기입니다. 학살 주역들은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모두 승승장구합니다. 9연대장 송요찬은 국무총리, 부연대장 서종철은 국방장관, 김뮨근은 호남비료 사장 등. 그리고 그 전통을 이어받은 국군의 똥별들은 지금도 국군의 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끊임없이 남북갈등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번에 4,3때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참변을 당하신 분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였습니다. 별거 안하고 함께 기념관 돌아보고 몇군데 관련있는곳을 돌아보며 두런 두런 이야기 한것이 전부였는데 이분이 마지막에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해본적이 없어서 그냥 이야기 하는것만을로도 엄청난 마음의 씻김을 받으셨다구~
제주도민중에 이런분이 많겠죠? 주위에 제주도 출신이 계시면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 보세요.
그분 말씀이 4.3항쟁으로 부르고 싶다고 하셨어요. 정명- 중요한 일입니다.
김석범선생께서 생존해 계셨군요.
실천문학에서 펴낸 삼십년전 초판본이 다행히서가에 남아 있네요.
년전에 서북청년단이 국내에 결성되어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김석범 선생의 화산도가 다시 기억 났습니다.
선생의 강녕을 기원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김석범 선생은 타협없이 살아오신 분입니다. 온갖 고난에도 꿋꿋하게 버틴 분인데... 그래도 상당히 달라진 한국사회, 그리고 어린 학생들 앞에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요? 문학우님도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안승영님은 30년전 초판본... 아직도 당시 책들을 많이 보관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