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立無援 외로울 고/ 설 립/ 없을 무/ 도울 원
뜻
외로이 떨어져 있거나, 홀로 갇혀 있어서 외부로 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
孤立(고립) : 홀로 외로이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고
無援(무원) :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출전
후한(後漢)때 반초(班超, 33~102)는 학자 반표(班彪)의 아들이며 '한서'(漢書)를 펴낸 반고(班固)의 동생이다. 반초는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고 수도 낙양(洛陽)에서 궁중 도서관 사서(寫書)를 하였다. 이때는 흉노족이 침범하여 약탈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반초는 흉노를 토벌하는 원정군에 자원하였다. 73년 원정군 수장인 두고(竇固)를 따라 가서 흉노(匈奴)토벌 별장(別將)으로 큰 공을 세우고 이후 31년간 서역에 머물며 그 지역을 안정시켰다.
그가 사마(司馬)신분으로 선선국에 사자로 갔을 때는 흉노족의 사신들이 당도하여 위태롭게 됐으나 밤에 화공(火攻)으로 기습하여 섬멸하였다. 이때 망설이는 부하들에게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다."(不入虎穴 不得虎子)라는 말로 설득하였다.
반초가 서역에 있는 동안 황제가 죽자 언기(焉耆, 카라샤르)족이 그 틈을 타서 도호부 진목을 공격하여 멸하니 반초는 고립되어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게 되었다.(遂攻沒都護陳睦. 超孤立無援) 이에 구자(龜玆, 쿠차)ㆍ고묵 (姑 墨) 등이 수차례 병력을 동원하여 소륵(疏勒, 카슈가르)을 공격하였다. 반초는 군사가 적었으나 오직 충성으로 성을 지켜 여러 해 견디어 냈다.
이후 반초는 흉노를 토벌하여 군사마(軍司馬)에서 장병장사(將兵長史)를 거쳐 서역도호(西域都護)가 되었다. 나중에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71세에 낙양으로 돌아왔으나 다음 달 병사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반초전(班超傳)에 나온다. 여기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이라는 말이 나왔다. 홀로 고립되어 동정이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유의어
고립무의(孤立無依), 고성낙일(孤城落日), 무원고립(無援孤立), 사고무인(四顧無人), 고고무친(四顧無親)
용례
산간 오지마을에 놀러갔다 갑자기 폭설이 내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첫댓글 좋은글 새겨 봅니다...
뵈옵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또 뵈옵기를 바랍니다.
이 고사에서 그 유명한 班固의 가족사를 배워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보람된 하루가 되시기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