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강가에서
김왕노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를 듣고 싶어
바빌론 강가에서 노래를 들으면 차창으로 스쳐가듯 네 모습이 스쳐가기도 해
내가 행복했던 시간은 너와 바빌론 강가에서를 듣던 시간
네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내 영혼을 따라온 것 같은 기시감으로
황량한 날에 무대 같이 펼친 내 쓸쓸함 위에서 네가 불러준 바빌론
바빌론 강가에서, 내 게으른 잠을 깨우는 한 밤의 빗소리 같기도 해
우리가 사랑의 도구로 빌려 썼던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
언제나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리움의 리듬이 살아나고
사랑했던 여인이 너라는 생각, 못다 한 사랑의 여인이나 한 때
행복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 속으로 사라진 여인
다시 바빌론 강가에서란 노래를 틀면 노래와 함께 나타날 알라딘 요술램프의 지니 같은 여인이기를
내 갈증을 풀어주는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를, 네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어
사과를 훔치면 도둑이지만, 왕국을 훔치면 왕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사랑을 훔쳐 도둑이 되더라도 왕국을 버려 왕좌에서 버려지더라도
내가 너를 사랑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실수가 내 인생을 망쳐도
바빌론강가에서를 부르는 너를 위해 북처럼 내 젊은 날을 흔들어대고 두들기면
네가 부르는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 속에 강물이 반짝이고 새싹이 돋고 새가 울고
기차가 떠나가고 가로수가 바람에 물결치고 보리밭 위로 종달새가 날고
수평선에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못 견디도록 네 가슴이 사무쳐오고 곁에 있어도
더욱 네가 그립다는 말이 실감나고 사랑의 언어가 익어 방언이 터지고
사랑의 명상이 시작되고 사람의 감정이 복 바쳐 오르고 고오, 고오하며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에 따라 밟는 내 행복한 스텝, 발롱발롱 외치는 사람들
살다보니 자꾸 쓸쓸해지니까. 줄 줄 새어나가는 푸르른 시간이니까.
쓸쓸한 밤에는 쓸쓸함을 못 견딘 누가 흐느끼고
그리움이 탁 켜지고 불면이니까. 너와 함께 시온을 꿈꾸며
주님 앞으로 가는 축복이 푸른 비처럼 내릴까 기다려지니까.
내 불면의 밤을 채운 쓸쓸함을 비우고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로 채우고 싶은 갈등과 가난한 내 꿈
우리는 삶의 노예, 삶의 포로, 우리의 시온은 멀고, 멀어
시간이 강물로 흘러가는 곳에 앉아 그래도 시온을 그리워하며 울어야 하는 것
시온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두고 온 곳이
행복한 시온이란 것을 알아 시온을 향해 수천수만 개의 부메랑 같은 그리움을 날리는 것
나도 너도 바빌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그리워하는 포로와 같아 우리의 꿈은 발랄하고
리드미컬하나 결국 속 빈 강정 같아, 겉치레에 매달린 허영에 찬 날들이라 심지가 굳지 않아
곧 무너질 성전 같은 우리라 어쩌면 오늘 부르지 못하면 영원히 부르지 못할 바빌론 강가에서
라는 너의 노래이자 나의 노래, 네가 선창하고 내가 따라 불러도 좋은 노래, 바빌론 강가에서
라는 노래, 시편 137 장을 재구성한 노래가 아니라 우리 사랑의 여정을 재구성한 노래라고
애교 있게 우기며 불러도 좋은 바빌론 강가에서 라는 노래
우리가 사는 곳이 바빌론 같은 이방의 땅, 사탄의 땅 같더라도 우리에게는
멀어도 찬양하는 주님이 있어
함께 강가에 앉아 울며 그리워해야 할 시온이 있어
바빌론 강가에서 라고 부르는 네 노래가 우리 참회의 노래고
떠나온 시온의 추억을 떠올리는 노래이니
사실 내 마음엔 언제나 네가 바빌론 강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너라는 계절뿐이야.
너라는 계절에는 봄, 여름, 가울, 겨울이 없어.
너라는 계절엔 언제나 네 노래가 피어나 수평선이 보이는 언덕의 파초이파리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너라는 계절에 흐르는 바빌론 강가에서 라는 노래.
어느 날은 네가 틀어주고, 어느 날은 네가 불러주는 노래
내가 따라 부를 때마다 일찍 죽어간 우리 사랑의 무덤에도 풀꽃이 피고 풀벌레가 울어
가슴 벅찬 네가 불러주는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를 듣는 것
내 화양연화의 시간, 네가 불러주는 바빌론 강가에서 라는 노래로
뼈에 사무치는 이 행복감, 바빌론 강가에서 시온을 그리워하며 울었듯
서로 그리워하며 우는 이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