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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드러나다
8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공현(公顯)은 ‘공적으로 드러남’을 뜻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신 구세주께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러 온 동방 박사들을 통해 스스로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다.(마태 2,1-12) ‘동방 박사들의 경배’ 이야기는 네 복음서 중 유일하게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사 60,1-6), 곧 “너의 빛을 보고 …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라는 예언이 아기 예수님의 강생으로 실현됐다고 선포한다.
별의 인도로 동방 박사 세 사람 방문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이 사건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동방 박사들은 이민족을 대표한다. 이민족들이 유다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것은 단지 유다인뿐 아니라 모든 백성의 왕이 되실 분을 찾아 이스라엘로 왔음을 보여준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께 왔다. 이 별은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별, 곧 다윗의 별이다(민수 24,17 참조). 이 다윗의 별이 가리키는 메시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했다는 것은 “구약에 담겨 있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때만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자 온 세상의 구원자로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28항)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에 ‘동방 박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μαγοι’(마고이)는 본래 ‘점성가’ ‘현자’라는 뜻이다. 또 사도행전 13,6.8에서는 ‘마술사’ ‘협잡꾼’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바친 동방 박사들을 전통적으로 세 명으로 묘사한다. 초대 교회 오리게네스(185?~254?) 교부가 “예물이 셋이니 동방 박사도 3명”이라고 주장한 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3’은 성경의 의미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수로 시작과 마침을 가리키는 완전 수이다.
교회 전승에 따라 동방 박사의 신분이 ‘왕’들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테르툴리아노(160~223) 교부에서 비롯됐다. 그는 “만왕이 다 그 앞에 엎드리고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시편 72,11)는 시편 말씀과 연관 지어 동방 박사를 왕들이라고 주장했다.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과 몰약
동방 박사들은 교회 전통에 따라 인생의 세 단계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제일 먼저 유럽을 상징하는 나이 든 가스발이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은 채 아기 예수에게 황금을 바치고 있다. 그 뒤에는 장년인 아시아의 왕 멜키오르와 아프리카의 청년 발타사르가 유향과 몰약을 들고 경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흑인 청년과 황인 장년, 백인 노인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는 것은 왕 중 왕이신 예수에게 이 세상 모든 대륙의 전 인류가 영원무궁토록 경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 몰약은 ‘왕권’과 ‘그리스도의 신성’,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각각 상징하는 예물이다. 현대 신학의 거장인 칼 라너 신부는 동방 박사의 예물이 구세주 아기 예수의 신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드리는 합당한 우리의 희생,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을,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을, 몰약은 ‘우리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예물 봉헌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구세주 출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다. 주님 공현은 유다인뿐 아니라 이민족에게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 보여준다. 주님 공현 대축일 말씀 전례 독서에서 알 수 있듯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구세주의 강생으로 유다인들에게 약속된 복음 선포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간 가운데 드러난 주님의 신성에 초점
초대 교회에서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로마 제국의 태양신 축제일에 지냈다. 그런데 이 축제일이 서방에서는 12월 25일이었고, 동방에서는 1월 6일이었다. 이에 서방 교회에서는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 예수 성탄 대축일과 함께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혼란을 막기 위해 주님 성탄 대축일을 12월 25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1월 6일로 나눠 지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특별한 전례 예식이 없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 성탄 시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님 성탄 전례는 참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인간으로 강생하셨음을, 주님 공현은 구세주께서 온 민족에게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셨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주님 성탄 대축일은 하느님께서 취하신 인성(人性)에, 주님 공현 대축일은 인간 가운데 드러난 주님의 신성(神性)에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두 대축일은 서로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빛을 밝혀준다.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 끝나
주님 공현 대축일은 원래 1월 6일이다. 선교지인 한국 교회는 사목 편의에 따라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그리고 성탄 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로 끝난다. 다만 한국 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7일이거나 8일인 때에는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에 주님 세례 축일로 기념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런 경우다.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특집] 주님 공현 대축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세상 모든 것 비추는 구원의 빛… 우리는 기뻐하며 따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드리고 예물을 바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별의 인도를 받은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 방문으로 구세주의 빛이 온 세상에 비쳤다.
교회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시고 인류에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을 동방 박사들의 방문 사건으로 되새기고 경축한다. 본래 축일은 1월 6일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모든 신자가 이날을 경축하도록 1월 1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지낸다.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와 동방 박사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살펴본다.
구세주의 빛 발견한 동방 박사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11)
고대사회에서는 하늘에 새로운 별이 떠오르면 별이 나타난 지역에 중요한 인물이 탄생한다고 여겼다. 신약성경 원문을 보면, 박사라는 단어가 마술사와 점성술사를 뜻하는 ‘마고스’(magos)로 나와 있다. 보통 성경에서 점성술사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마태오복음서에 이들은 천문학적 지식과 탁월한 지혜를 가진 이방 세계의 현자들로 나타난다.
복음서에는 이들의 출신이나 인원수가 기록돼 있지 않다. 박사들이 왔다는 ‘동방’은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동쪽인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로 추정된다.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는 아기 예수에게 황금·유향·몰약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에 따라 박사들의 수를 셋으로 봤다. 과거에 동방 박사는 삼왕(三王)이라고도 표현됐다.
구약의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이사 60,3)라는 말씀과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시편 72,10) 등의 예언을 예수의 탄생과 관련지어 해석했기 때문이다. 교회 전승 안에서 이들의 이름은 멜키오르, 발타사르, 가스파르로 알려졌고, 중세 때부터 성인으로 공경됐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며 다윗의 자손”(마태 1,1)으로 소개된다. 예수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을 드러낸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의 탄생으로 구원의 빛이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 민족들까지 비춘다는 것을 강조하며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을 보여준다. 대부분 성화에서 동방 박사들은 인종과 연령이 다르게 표현돼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온 인류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부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원 드러내는 예물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것은 모든 민족을 대표해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황금·유향·몰약을 예물로 가져왔다. 각 예물은 아기 예수가 누구이며 어떤 운명을 지녔는지를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황금은 가장 값비싸고 귀한 보물이다.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황금을 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고귀함과 하늘과 땅의 왕이신 예수의 왕권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유향은 예수의 신성, 즉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뜻한다. 유향은 과거 거룩한 성전에서 제사를 올릴 때 태우던 향료였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단과 그리스도의 말씀이 담긴 성경,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향해 분향한다. 유향은 인간이 하느님께 바치는 가장 경건한 봉헌물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고 구세주를 찬미하는 행위다.
몰약은 구세주의 사명을 상징하는 예물이다. 상처에 바르는 기름인 몰약은 죽은 자의 몸에도 발랐고, 장례 예식 때도 사용했다. 몰약 예물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수난받고 죽게 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세 가지 예물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우리 각자가 매일 그리스도께 이 예물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교황은 우리가 세상과 이웃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매 순간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 삶의 금을 바치는 행위라고 봤다. 향유는 기도를 상징하며, 우리의 기도는 주님 앞에 솟아오르는 향이기에 날마다 기도로써 주님께 삶의 향기를 봉헌해야 한다고 했다. 몰약은 육을 이겨내는 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인간적인 모든 욕심을 포기할 때 주님께 몰약을 바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빛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의 삶
동방 박사들의 여정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반영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역시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구세주의 별을 보고 예물을 들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며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리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삼종기도에서 “동방 박사들은 별의 상서로운 인도를 받아 힘든 여행을 거치고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신성이 숨겨져 있고 승리자처럼 보이지도 않는 아기를 보고도 경배했다”며 “이는 작음 안에 나타나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동방 박사들은 하느님의 논리 앞에서 몸을 낮추고, 있는 그대로의 작고 가난한 모습의 주님을 받아들였고, 자신이 가진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며 “그들의 부요함은 스스로를 구원이 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겸손에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동방 박사들이 별을 바라보며 길을 떠났고,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별을 보고 걷고, 그 걸음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며 “이것이 주님 공현 대축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동방 박사들은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갓난아기와의 만남을 위해 험한 여정을 거쳐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고 예물을 바쳤다. 토마스 엘리엇의 ‘동방 박사들의 여행’이라는 시 속 “당신께서 이 아이를 통해 주시려는 구원의 모습을 우리가 보게 해 주십시오”라는 구절처럼 그들은 갓난아기의 연약하고 무력한 모습 속에서도 구원을 보려 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로 이끄는 별을 따라 겸손되이 경배의 여정을 시작했듯이 우리도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기쁘게 맞아들이고, 구세주를 따르는 신앙의 길을 걸어 나아가야 함을 기억하게 한다.
전례와 미사의 영성 (38) 영성체 전 ‘주님의 기도’
어떤 신자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 미사 때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혼자 ‘아멘’이라고 해서 엄청 창피했어요.” 그런데 왜 미사 때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나서는 ‘아멘’이라 하지 않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미사 때 왜 주님의 기도를 바치나요?
사실 주님의 기도는 초대 교회 때부터 전례나 개인 기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세례 받은 모든 신자는 일상 안에서 기도를 실천하기 위해 날마다 세 번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배경 안에서 주님의 기도가 미사 전례 안에 차츰 도입되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주님의 기도 안에 들어 있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이 표현과 관련해서 교회의 교부들은 무엇보다 성체와 연결시켜 이 양식의 의미를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차츰 주님의 기도는 영성체를 위한 가장 좋은 준비 기도로 여겨지게 되었고, 4세기경 동·서방 전례에 모두 도입됩니다. 그래서 가령 테르툴리아누스 성인(Tertullianus, 155~240)은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간청을 영성적으로 알아들읍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명이고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신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구절과 연관해서입니다. ‘죄의 용서’는 무엇보다 합당한 영성체를 위한 훌륭한 간구로 여겨졌습니다. ‘죄의 용서’를 청함으로써 거룩한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모습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령 아우구스티누스 성인(Augustinus, 354~430)은 신자들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비록 우리가 목욕을 하고 몸을 깨끗이 하였다 하더라도 우리의 얼굴은 일상사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에 얼굴을 씻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기 전에 ‘깨끗한 얼굴’ 로 이 거룩한 식탁에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깨끗이 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목욕은 고해성사와 연관되어 우리 죄를 씻는 것이며, 얼굴을 씻는 것은 주님의 기도 안에 있는 ‘용서를 청하는 부분’과 연관되어 일상의 잘못을 씻고 비로소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사 중에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로서 영성체를 준비하고, ‘죄의 용서’를 청함으로써 거룩한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한 기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사 때 바치는 주님의 기도 다음에 ‘아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나오는 사제의 기도가 주님의 기도 내용과 신학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사제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시길, 그리고 모든 시련에서의 보호와 복된 희망 안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아버지 하느님께 청합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정성되이 준비하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향해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구원을 향한 신앙의 여정을 기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전례상징’] 대림과 성탄, 재의 수요일의 상징
새해에는 ‘새로움’이라는 설레임과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긴장이 깃듭니다. 지난해에는 ‘응답하라 전례’를 통해서 전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우려 했고, 새해에는 ‘슬기로운 전례상징’이라는 주제로 전례에서 사용되는 상징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메시지, 곧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데 기여하려고 합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곧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로마 8,28) 알고 있습니다. 특히 전례에서 사용되는 상징은 주님으로부터 기인하거나 역사적, 문화적 산물을 교회가 받아들인 것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을 성화로 이끄는 지름길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전례 상징에 대한 이해는 인간적인 감각을 불태우고 초월적인 존재를 알아보게 하는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불인 성령(루카 12,49-50 참조)을 받아들이고, 성서와 전례에 대한 지적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이번에는 우주적 시간인 일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펼치신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기념하는 전례 주년에서 사용되는 몇몇 상징들, 특히 대림과 성탄, 그리고 재의 수요일의 상징을 통해 교회가 전하려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알아보겠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환
대림환은 월계수나 전나무 또는 비슷한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화환이며, 보통 자색에서 흰색으로 전환되는 네 개의 초로 장식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회개와 속죄, 단식과 기도로 준비하다가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기쁨을 드러내는 대림 4주간의 과정을 잘 드러냅니다. 대림환의 준비는 대림환의 초를 켜놓고 매일 기도를 봉헌해야 의미가 살아납니다.
기다림의 영성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하는 대림 시기는 두 가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들에게 처음 오셨음을 기념하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념을 통하여 시간이 끝날 때 두 번째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때입니다(‘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39항 참조).
주님의 구원사업을 드러내는 성탄 트리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창세 2,8-9) 뱀의 유혹에 빠진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죄를 지어 죽음과 삶의 고통이라는 벌을 받습니다.
이러한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예수님은 십자 나무에 자신의 생명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어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였습니다. 곧 십자 나무는 생명 나무였던 것입니다. 성탄 트리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면서도 동시에 생명을 주는 십자 나무를 드러내고, 빨간 방울은 선악과, 하얀 방울은 지금도 우리가 영하는 성체를 의미합니다.
성탄 트리의 꼭대기를 장식하는 큰 별은 ‘세상의 빛’(요한 8,12)으로 오신 예수님은 ‘별’(마태 2,2)을 통하여 동방 박사들을 인도하셨음을 말합니다. 이제는 그 ‘별’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께로 인도하여 당신을 닮아 ‘세상의 빛’이 되어달라고 요구하십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신”(필리 2,7) 하느님의 아들을 드러내는 구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이외에 가장 처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린 목자들에게 천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 곧 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는데, 그분은 아기의 잠자리가 아닌 동물의 먹이를 놓는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였습니다. 이는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사람들에게 먹히는 존재가 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상징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와 같은 구유 경배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강생의 신비에 대한 사목적이고 교육적인 차원에서 1223년 이탈리아 중부 작은 마을 그레치오에서 행한 구유 경배에서 유래했습니다. 한동안 교부들의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이사 1,3)에 대한 해석 때문에 구유에 소와 나귀는 꼭 있어야 한다는 통념이 있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루카 복음 강해’에서 “소는 정결한 동물이고 나귀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네 주님의 구유를 알지 못했지만, 부정한 이방인들은 알았습니다”라고 해석하였고, 아우구스티노 역시 그의 설교집에서 “유다인들에게서 나온 소와 이방인들에게서 나온 나귀가 모두 같은 구유에 나와 말씀의 먹이를 발견했습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가축들의 먹이를 놓는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 낮은 곳에 임하신 겸손과 모든 것을 내어주는 봉사를 드러내고, 말씀과 성체를 통해 우리를 양육하시는 당신의 한없는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재를 얹어주며 사제가 말하는 예식문으로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에서 유래했습니다. 재는 불에 타고 남는 가루 모양의 물질로, 불이 그 임무를 완수한 후에 남은 것입니다. 따라서 재는 하찮고 무가치한 것, 허무를 나타냅니다.
이 같은 무(無)에 대한 생각은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신의 은총이 없을 때 겪는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죽음에 얽힌 생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의 은총이 없다는 것은 곧 하느님이 보내주신 불인 성령이 꺼졌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재와 같이 무(無)임을 그리스도인 모두가 깨닫고 “사순 시기에 정성껏 재계를 지켜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닮게” 되기를 교회는 재를 축복하면서 기도합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1요한 1,1)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느님이 펼치시는 구원의 신비로 한 걸음씩 들어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믿나
참사람이며 참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신 어머니
1월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이다. 생명이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오게 하신 마리아를 공경하고, 성모님을 통해 이 땅에 평화가 실현되길 전구하는 축일이다.
신약 성경은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잉태한 분, 곧 마리아의 참아드님이 되신 분은 다름 아닌 성부의 영원한 아드님이시며,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의 하느님 중 제2위격이시다라고 선포한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어머니”(마르 3,31; 루카 2,48; 요한 2,1)로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했다.
가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분이 주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께서 누구보다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셨고(루카 1,38 참조),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모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로 증언하고 있다. 구약 성경은 하와의 후손이며 다윗의 자손으로 하느님께 성실한 소박하고 순진한 동정녀가 ‘임마누엘’이라 불리게 될 메시아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시온의 딸로 메시아의 어머니로 초대된 분이 바로 성모 마리아이시다. 신약 성경은 성모 마리아를 믿음으로 복되신 분이며, 주님과 함께 계시는 주님의 어머니시며, 세세 대대로 찬양받으실 분으로 증언하고 있다.
성모님은 동정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인해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불림을 받고서 순종으로 응답했으며, 평생 하느님의 뜻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인류와 교회의 표상이 됐다. 또 성모님은 곤란한 처지에 놓인 이웃을 위해 아들에게 도움을 청해 주님의 첫 신원을 드러내는 기적을 행하게 하신 분이시다. 아울러 성모님은 사람들을 당신 외아들에게로 인도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의 죽음을 지키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당신을 중심으로 주님의 제자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시면서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를 선포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엘리사벳의 입을 빌려 성모님께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십니다”(루카 1,42)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에 교회는 431년 제3차 세계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s-테오토코스)이시다”라고 선포했다.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잃지 않으시고 인성을 취하셨다. 또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의 유일한 위격 안에 두 본성이 온전히 결합돼 일치하고 있다.
공의회는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당신의 신성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을 부여받은 거룩한 육체를 마리아에게서 얻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격에서 육체와 결합하였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셨다고 일컬어진다”고 선언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66항)
그러면서 공의회는 “그리스도는 단일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선포했다. 이에 교회는 마리아께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 바로 하느님이신 그 아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라고 고백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495ㆍ509항 참조) 따라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는 주님께 대한 교회의 신앙 고백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거룩한 칭호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부여된 최초의 교의적 칭호인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 천주의 모친)는 성모 신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또 마리아께 대한 신학과 고유한 전례 축일들이 생겨나는 촉매가 됐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일치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과 함께 참사람이요, 참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천주의 모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고 선포해 ‘천주의 성모’ 칭호에 대한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교회가 새해 첫날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동방 교회 관습을 따라 전례력 안에 정착했다. 마리아 공경은 하느님의 강생 신비에 뿌리를 두고 있다. 6세기부터 이 축일은 주님 성탄과 연계해 12월 26일을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로 지냈다. 로마 교회에서도 이 축일 도입해 성탄 8일 축제가 끝나는 날인 1월 1일에 ‘성모 마리아 성탄’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다. 이후 이 축일은 2월 2일, 3월 25일 등으로 옮겨 지내다 1931년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을 맞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10월 11일로 지냈다. 그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으로 다시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복원됐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구원의 문을 여는 성모님께 새해 첫날을 봉헌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날은 주님 성탄의 팔일 축제로서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이다. 또한, 새해 축복과 평화 기원, 주님의 할례 등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지내오던 축일 내용을 그 이면에 포함하고 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7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했다. 이날은 갓 태어나신 평화의 왕을 경배하고,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루카 2,14 참조)을 다시 한 번 들으며, 평화의 모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청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제정 의미를 밝혔다.(「마리아 공경」 5항 참조)
전례와 미사의 영성 (37) 미사 지향
우리는 보통 미사 때 지향을 두고 기도합니다. 미사에 참례하면서 각자 마음속으로 지닌 지향도 있겠지만, 보통 미사 전에 해설자나 또는 미사를 주례하시는 신부님께서 오늘 미사는 누구누구를 위해 지향을 두고 봉헌된다고 말씀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이렇게 ‘미사가 누구를 위하여’ 바쳐지는 것을 ‘미사 지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제가 그 지향을 기억하며 미사를 드린다는 것은 그 미사가 오로지 그분들만을 위한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미사 지향을 넣은 분들이 그 미사를 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하여 구원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미사 경본 총지침, 79항) 봉헌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미사 때 지향이 있는 것은 사제가 그 지향을 미사 안에서 특별히 기억하며 신자들과 함께 기도함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미사 지향을 우리는 보통 ‘생미사’와 ‘연미사’로 나누곤 합니다. 생(生)미사는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 드리는 미사로,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가정 또는 공동체에 하느님의 은총과 필요한 도우심이 주어지길 청하거나, 지난 시간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해 감사를 드리면서 바치는 미사입니다. 반면에 연(煉)미사는 우리가 참례하는 미사의 공로를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분들의 영혼을 위해 나누려는 뜻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미사입니다. 연미사는 보통 ‘연옥(煉獄, purgatory)에 있는 이를 위해 드리는 미사’를 줄여서 표현하는 것이며, 오늘날에는 ‘위령(慰靈)미사’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사 지향과 관련해서 보통 본당에서는 미사 전에 해설자가 알려 주거나, 또는 미사 경본 총지침 50항의 “교우들에게 인사가 끝나면, 사제나 부제나 평신도 봉사자는 그날 미사에 대해서 아주 짤막한 말로 설명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포괄적으로 적용하여 미사 시작 때 주례 사제가 말하곤 합니다(하지만 이 지침의 본래 의미는 전례력에 따른 그날 미사의 전례적, 성서적 주제와 의미를 간략히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미사 지향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그 지향으로 미사가 봉헌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사 때 지향을 두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제의 영적이고 내적인 행위이기에 반드시 신자들 앞에서 공표해야 효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지향을 공표하지 않아도 사제가 미사 때 그 지향을 두고 미사를 봉헌하였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미사 지향 알림은 이러한 사제와 더불어 신앙 공동체에 속한 신자들에게 그 지향으로 함께 기도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깨닫고 하느님 안에서 더욱 서로가 일치되기 위한 하나의 초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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