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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명식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
설악산 대청봉 등산을 시작한 것이 1967년, 필자가 중3 때이다. 양양군 오색리에서 대청봉까지 약 5km의 등산로는 끝없는 오르막이다. 평균 경사도가 31.2. 다리는 마비되고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게다가 토끼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다. 인적도 드물어 공포감이 엄습했다. 귀때기청봉에서 대청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기저기 녹슨 지뢰와 해골들이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지난해 설악산 관광객은 370만 명이 넘었다. 이 중 대청봉에 오르는 등산객은 탐방로 1개소 당 20만 명이다. 지금 오색에서 대청봉까지의 등산로는 평균 노폭이 4.7m, 표토의 침식 깊이가 37cm나 된다. 가히 신작로이다. 표토유실로 나무뿌리가 드러난 곳이 73%이고, 암석 노출이 85%라는 것은 벌써 10년 전 조사결과이다.
사람이 발로 땅을 딛는 힘(답압)은 이토록 놀랍다. 특히 경사 30도가 넘는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등반객의 답압은 빠르게 설악산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근 주민의 안전위협요소로 대두되었다. 또한 등반객의 밀집현상은 멸종위기종인 산양을 비롯한 야생동물의 서식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설악산의 이런 현상은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심각하다. 그렇다고 설악산 입산을 전면금지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환경부는 ‘국립공원 내 삭도 시범사업계획’을 발표했고, 강원도와 양양군은 양양오색에서 대청봉으로 향하는 ‘오색 삭도(케이블카) 설치’를 신청했다. 이미 두 차례나 부결된 후, 올해 3차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환경부의 ‘국립공원 내 삭도설치 사업’은 온전히 환경보전 목적의 발로라고 믿는다. 특히 ‘표토보존 5개년 계획’을 수립한 것은 환경선진국을 지향하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표방한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환경부의 정책이라면, 오색삭도를 마땅히 승인해야 한다. 향후 몇 백 년이 지나야 복원될 표토가 더 이상 유실되지 않게 하고, 급증하는 답압의 폐해를 막으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색삭도가 정답이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R. 데카르트는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사유하고 “자연은 인간을 싫어한다”고 갈파했다.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접근을 완전 봉쇄하는 것이고, 차선책은 이격화이다. 인간의 접근을 이격시키는 방법이 바로 케이블카(삭도)인 것이다.
환경선진국에서는 국립공원과 유네스코 문화·자연유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자연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보호대상과 인간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보전책이기 때문이다.
호주 케언즈, 말레이시아 랑카위, 남아공 테이블마운틴, 일본 시레도코 등의 케이블카나 데크에서 보면, 하부 지상의 아름다운 환경이 온전히 보전되고, 희귀 동식물이 안전하게 서식하며 개체를 늘려가는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몇몇 환경단체는 오색삭도 반대에 분주하다. 그들의 고정 레퍼토리인 시대착오적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난무한다. 환경단체라면 오히려 삭도 설치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함에도, 무엇을 목적으로 반대하는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환경부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하며, 필자는 ‘주자 10회(朱子十悔)’에 ‘불외자연 훼후회(不畏自然 毁後悔)’를 추가하고 싶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 없으면 훼손된 후에 통탄하게 되니까.
不畏自然 毁後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