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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예비학교 2주 차 첫 번째 우리 강의인 예배 제하에 대한 강의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5가지 요소를 지난주에 배웠는데 예배자 찬양 말씀, 재물 그리고 성령의 역사 이게 예배의 5가지 요소라고 배웠고 이 5가지 요소를 오감으로 연결시켰어요. 그래서 시각 미각, 청각, 후각 촉각으로 연결되어서 우리가 지난주 말씀을 조금 이해했었습니다. 오늘은 예배 요소의 첫 번째 중에 예배자 특별히 시각에 대한 부분을 잠깐 살피려고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시선이 그 하나님을 향해지는 게 예배죠. 세상을 왕에 있던 우리의 시선들이 정리가 되고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해지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 또한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의 진정한 예배자를 찾는 거죠.
그러니까 예배는 예배를 찾으신 하나님의 시선과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시선이 만나는 장소가 곧 예배인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들고 또 우리도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갈망하는 만남의 장소가 곧 예배가 되는 겁니다.
내가 예배자인가 일꾼인가 우리가 한 번쯤은 이렇게 돌아봐야 되는데 특별히 예배자는 교회 신앙생활하다 보면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게 우선인지 아니면 사역을 하는 게 우선인 건지를 잘 분별이 안 되고 특별히 예배 안에 섬기는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찬양단이나 또 예배를 기도하시는 장로님들이나 이 섬기는 사람들이 예배자로 서 있느냐 아니면 이제 일꾼으로 서 있느냐가 예배를 많이 좌우하게 됩니다. 예배자와 일꾼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예배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예배자이고 일꾼은 자기의 성취와 만족을 위해서 이 예배하는 거죠.
이렇게 되어 있으면 쉽게 내가 예배자인지 아니면 내가 일꾼인지를 분별할 것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우리가 키보드를 치더라도 내가 예배자로서 키보드를 치는 것과 또 그렇지 않은 건 큰 차이가 있어요. 따지고 보면 이제 설교하는 제가 가장 은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또 기도하는 장로님들이 가장 은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또 찬양을 인도하거나 반주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은혜의 주인공이 되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반주하다가 하나님의 위로도 만나고 또 반주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 이런 역사들이 예배 안에서 일어나야 우리가 일꾼으로서 예배하는 게 아니라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겁니다.
특별히 우리 성경 속에 보면 내가 일꾼인지 예배 자지를 잘 구별할 수 있도록 이제 그런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첫 번째로는 이제 예배자로서 삶을 산 사람이 아브라함, 그다음 제 모세 다윗 바울 이렇게 네 사람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알다시피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재단을 쌓았어요. 그러니까 모든 삶의 장소가 예배가 되도록 했던 사람이고 특별히 특별히 누구도 드릴 수 없는 이 예배 제사를 이제 다짐했던 작정했던 사람이죠. 그러니까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제사에 대해서 기꺼이 순종했던 사람이 아브라함인 거예요.
두 번째 인물은 모세인데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해서 본 사람이에요. 그리고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했던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다윗은 다윗도 동일하게 장막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던 사람인데 성전을 짓기를 바랬지만 짓지는 못하고 이 성전을 짓는 준비를 하고 이제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배자는 바울이에요. 바울은 어떤 공식적인 예배 장소에 많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러니까 삶이 삶의 예배자였던 거죠. 왜냐하면 감옥이나 이런 곳에 있던 시간들이 꽤 많이 길었기 때문에 우리처럼 의식이라는 이 공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런 기회는 훨씬 더 적었던 사람이죠. 그래서 삶의 자리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바울이다. 그래서 이 네 사람은 성경에 있어서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예배한 사람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처음에는 예배자였지만 일꾼으로 전락한 사람들이에요. 첫 번째가 삼손, 두 번째가 엘리, 세 번째는 솔로몬 여러분 가만히 보면 오늘 예배자가 시각 눈과 관련된 거라고 했죠. 예배에 실패한 이 세 사람의 특징이 다 눈과 시각과 관련돼 있어요. 그것으로 인해서 예배의 실패자가 됐다는 거예요.
삼손 삼손은 처음에는 나신 1인 일이었는데 언약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데 삼선이 어떻게 돼요?
눈이 뽑히죠 눈이 뽑혀요. 그래서 시각을 잃어버려요. 두 분 사람 엘리도 마찬가지예요. 엘리도 나이가 들어서 동일하게 영적인 시각도 잃고 육체적인 시각도 잃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엘리의 포인트는 잘못 보면 그냥 육체적인 시각을 시력을 잃었다의 포인트를 둔 것처럼 보이지만, 엘리의 삶을 보면 엘리는 영적인 눈도 상실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시각, 영적인 운의 상실이 예배자로서의 실패를 가져왔던 거죠.
세 번째로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1천 번제를 드릴 만큼 정말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예배의 열심이었던 사람이에요. 근데 이 사람이 일꾼으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바로 수많은 이방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일꾼으로 전락하게 됐어요. 그래서 성전을 지어놓고 성전을 오염시킨 장본인이 이 솔로몬이.
그런데 여성의 아름다움은 되게 시각적인 면인 거잖아요. 그래서 결국 솔로몬도 이 온전한 시각을 상실한 것으로 인해서 예배자에서 일꾼으로 전락을 했다.
다음에 올바른 예배자가 가져야 될 이 눈이 있습니다. 올바른 예배를 가져야 될 다섯 가지의 종류의 눈인데 나는 과연 이런 눈을 시각을 가졌는지를 한번 잠깐 잠깐 스스로 살폈으면 첫 번째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 그러니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올바른 예배자를 드린다는 거고 두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눈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올바른 예배자가 된다는 거예요.
세 번째로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돼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지를 알아야 알아야 내가 올바른 예배자를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겁니다.
네 번째로는 사단이 누구인지를 알고 구별하는 눈이에요. 사단 사단 그러니까 영적인 방해자인 사탄의 실제를 보는 눈이 없으면 예배자로 온전히 예배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예배는 반드시 사탄의 방해가 있기 때문인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어떤 감각이나 이런 지식이 없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예배에는 엄청난 영적인 방해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단순히 사람의 방해가 아닌 사단의 방해, 장비의 방해가 아닌 사단의 방해 이런 이런 방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볼 수 있어야 우리가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싸워 이김으로 온전한 예배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자는 반드시 사탄이 누구인지를 알고 분별하는 눈이 있어야 돼요. 그러면 우리 자신도 얼마든지 사탄이 될 수 있겠죠.
그러니까 내 안에 사단의 역사하고 있는 지도 분간이 돼야 돼요. 보통 우리가 좀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자기에게 후한 점수를 줘서 내가 사탄의 편에 섰다는 사실을 잘 몰라요. 특별히 저처럼 목회자들이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아요.
왜요?
아니 항상 예배를 인도하고 기도를 하고 누가 와도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이잖아요.
아니요.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 믿음의 사람들도 순간순간 사탄의 종노릇을 했어요.
다윗도 마찬가지죠. 사단의 종 노릇을 했잖아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올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탄을 보는 눈이 있어야 된다.
다섯 번째 우리가 가져야 될 시각이 사단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면 교재에는 기록해놨죠.
사단을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단어로 설명해 놨어요. 거짓의 아비 살인자, 참소자, 도둑 미혹하는 자 분리시키는 자 루시퍼 광명의 천사 용 이런 많은 용어들로 이제 용어 사단에 대한 용어가 이제 성경 안에 있어요. 그만큼 사탄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일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려면 이 사탄을 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있어야 될 시각은 세상을 보는 눈이죠. 우리가 이걸 제가 세계관이라고 그랬죠.
아마 내년쯤 정도 돼서 저 세계관 학교를 짧게 제가 앞으로 이제 예배 학교도 원래는 기초적인 걸 하고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걸 하지만 좀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내용을 갖춰서 깊은 걸 다루고 세계관 학교도 기초적인 걸 다루고 그다음 기수가 됐을 때 좀 더 이제 많은 내용들을 이렇게 언급하려고 해요.
세상을 보는 눈은 내가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시각을 가져야 우리가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인간적인 눈으로 예배를 보고 사람을 보면 예배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교회도 성도도 사람도 봐야 우리가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우리 이 말씀들을 한번 좀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이게 첫 번째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과 관련된 말씀인데 이거 한 5개 정도 읽으면 우리가 가져야 될 눈이 어떤 포인트인지에 대한 좀 이해가 돼요.
역대야 6장 40절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
7장 15절 시작 이곳에 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라.
시편 25편 15편 시작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시편 119편 18절 시작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에 귀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편 122편 1절 시작 네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고
제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예배자가 있어야 된다. 이렇게 말씀드릴 때 우리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이 만나는 곳이 예배라는 거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찾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시선의 만남이 예배 안에 있어야 되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사모함이 예배 가운데 있고 하나님은 예배를 찾고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보시려고 하나님이 오시고, 그래서 그 만남이 있는 곳이 예배의 공간이라 그런 의미입니다.
다음을 한번 좀 보겠습니다. 우리 세 번째로 보면 이게 약간 조금 제가 잘못 써놨던 것 같긴 해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되느냐 이게 이 부분이에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눈. 그러면 우리는 인격적인 면과 상징적인 면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좀 알아야 돼요. 인격적인 면에서는 교재는 없어요. 그냥 여러분 인격적인 면에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 한번 따라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예수의 제자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그리스도의 신부 예수의 친구 이게 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를 이렇게 보는 사람이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이해되시죠? 그죠?
이게 우리예요. 이게 여러분과 저의 신분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을 아는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한 번 더 보겠습니다. 같이 한번 읽을게요. 제 PPT는 안 보이는데 보게 해 주세요. 상징적인 면에서 따라 합니다. 소금과 빛,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향기, 예수의 흔적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성전 이게 또 우리예요. 그러니까 온전한 예배자는 나를 인격적인 면에서나 상징적인 면에서 이렇게 나를 볼 수 있어야 나를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이런 시선이 없어요. 우리에게 없어서 우리가 온전한 예배자가 되기 어렵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자신을 보고 해석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여러분 나를 평가 절하하면서 내가 부모님의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 나를 평가 절하하면 그게 곧 부모를 욕하는 거예요. 나는 쓸모도 없고 나는 형편도 없고 부모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부모는 어떤 마음이니까 내가 쓸모도 없고 형편도 없는 자식을 낳았구나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이런 이런 시각으로 부모하고 인격적으로 관계할 수 없어요. 그렇듯이 나를 보는 시각이 왜곡이 되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나를 보는 시각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그런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예배자의 눈이 열릴 때 오는 축복들이 있어요. 요 세 가지하고 오늘 양육 교육을 마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것에 따라서 삶이 달라져요. 보는 것이 바뀌어야 바뀌어야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아요. 그러니까 시각이 왜곡돼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니까 닮을 수 없게 되는 거예요.
예배자는 시각의 변화가 있어야 돼요. 시선의 변화가 있어야 돼요. 바라보는 것에 변화가 있어야 돼요. 똑같은 예수 믿기 이전에 눈으로 내가 예배나 내 삶이나 나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없고, 이 사람은 아직 눈이 열리지 않는 사람 눈이 띄어지지 않는 사람인 거죠. 영적인 눈이 띄어져야 되는데 띄어지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그렇게 보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눈이 열리게 되면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을 보게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람들 영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 눈이 띄어진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을 봐요. 그러니까 다른 꿈을 보고 다른 비전을 봐요.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꿈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면 아직 우리는 눈이 띄어지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 눈이 띄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없어요.
여러분 비전이 세상적인 사람이 세속적인 비전이 꿈인 사람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당연히 없죠. 우리 눈이 열려서 우리가 꿈과 비전이 다른 그러니까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비전을 가져야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눈이 열렸을 때 우리가 누리게 되는 축복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도로서 여러분의 눈이 뜨어지셨나요?
하나님의 비전과 꿈이 보이시나요?
여러분 보여야 돼요. 이게 하나님의 꿈이 꿈과 비전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냥 잠깐 제가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한다고 했으니까 좀 하면 제가 우리 교회에 남은 사역이 한 13년 14년 정도 되더라고요. 3년 4년 총 한 29년 정도 하니까 진짜 긴 시간이긴 하죠. 그 사이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어떻든 29년이란 긴 시간을 마치게 되는데 제가 어느 날 이 생각을 했어요. 제가 매일 하루에 두 번 할 때도 있고 세 번 할 때도 있고 이렇게 교회를 이렇게 청소하고 이렇게 지내잖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유난히 우리 교회에 우리 교회에 건축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그리고 또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일단 저희 딸도 주거 환경 학과인데 어떻든 이제 실내 인테리어와 관계된 공공 디자인 관련된 어떻든 일들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고 성호 형제도 민규도 그렇고 찬영이도 그렇고 지금 대학 간 친구들도 그렇고 여러 형제들이 다 건축과 관련된 일이 있는 거예요.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마음에 한번 이 친구를 한번 모아보자. 모아서 언젠가 대화를 나누자.
이 일이 실제로 될 수 있을지 그만큼 우리가 교회가 부응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한 10년 15년 긴 시간을 좀 앞에 두고 건축과 관련된 TF팀을 만들어서 우리가 한번 꿈을 꿔보면 어떨까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긴 시간이라서 이게 쉽게 될 일도 아니고 그래도 교인이 한 500명 넘어야 천 명 가까이 돼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렇게 했다가도 교인이 안 늘어나면 못하는 건 거잖아요. 교인 없이 교회를 지을 수는 없으니까 지금의 숫자로는 이 공간으로 충분하죠.
그런 마음을 한번 가져봤어요. 제가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전혀 저는 교회를 짓는다는 생각 자체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 근데 곰곰이 하나님이 왜 우리 교회에 감사하게도 이 친구들이 다 우리 교회를 다녀요. 보통 이렇게 되면 막 스타 도시를 떠나고 이렇게 교회를 떠나는데 건축과 관련된 친구들이 다 우리 교회의 흔적까지는 다 남아 있어요. 그것도 신기하고 해서 하나님이 보게 하신 건지 잘 모르지만 그런 마음을 한 번쯤 가져봤어요. 그리고 아마 기도하다 보면 알게 되겠죠. 이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품게 하신 비전인지 보이게 되고 아마 그렇게 저나 여러분에게 다 보여지는 날이 있으면 아마 그런 멋진 역사도 여기에 있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한번 가져봤어요.
여러분 성도는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은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소유하고 소유해야 돼요. 그러니까 내 꿈을 위해서 청춘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가기 위해서 우리 교회 가운데 주신 비전 이 꿈을 가지고 우리가 헌신하고 수고해야 됩니다. 이런 눈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거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영적 눈이 열리면 전쟁에서 이길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적 눈을 가지면 영적인 전쟁에서 쉽게 이긴다는 그런 의미인 거예요. 이런 거죠. 육신을 가지고 영의 세계를 육신의 눈을 영의 세계를 보면 분석이 안 돼요. 영의 눈을 가지고 영의 세계를 보면 분석이 돼요. 그래서 전쟁에서 쉽게 이긴다는 거죠. 우리가 영적인 눈이 띄어져서 예배만 잘 드릴 뿐만 아니라 우리 영적인 눈이 띄어지면 영의 세계에 대한 분별력이 생겨요.
요즘 이제 제가 이분들이 크리찬으로 알고 있어요. 남편과 아내가 다 연예인인데 이분들이 크리스천이에요. 근데 이제 아마 주술가를 불러서 자기 가정은 자기 원래 사업은 이런 걸 이렇게 물어보는 그런 이렇게 유튜브를 찍어서 이렇게 올렸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면서 생각이 하나 있었어요. 물론 이제 거기에 나온 것들은 제가 보기에는 MBTI로 분석한 확률이 되게 높아요.
제가 MBTI 고급 강사 자격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잘 하지는 않지만 딱 이렇게 보면 그래도 저도 어느 정도 분석은 돼서 얼마든지 주술가가 아니라도 그런 분석은 충분히 할 수는 있는데 그냥 그런 걸 딱 빼고 보면 야 우리보다 우리보다 더 영적인가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드는 거예요.
많은 성도들에게 물론 그런 말 하면 안 되는데 그냥 진짜 단순하게 생각해서 나는 성도들에게 저런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러면서 내가 영적인 눈을 가져야 성도들을 향한 권면도 달라지겠다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인 우리가 영적인 눈을 가져야 영의 눈이 떠져야 자녀들을 향한 권면도 달라지는 거죠.
여러분 이런 말이야 아멘 하면 더 기분이 좋을 텐데 아무도 아멘을 안 하셔서 여러분 저도 소심하고 시험 잘 들어요.
농담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눈이 띄어진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달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주신 보게 하신 꿈과 비전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우리 교회를 향한 꿈과 비전을 품고 들 축복해 주세요. 여러분이 가지지 못한 눈을 가지고 본 거잖아요.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만약에 제 자녀들이 그런 마음으로 우리 교회를 보면 저는 날아갈 것 같아요. 내가 못 본 걸 우리 자녀가 본 거잖아요. 그러면 더욱 놀라운 눈을 자녀가 가졌다는 의미인 거잖아요.
자녀들이 교회를 위해 좀 더 수고하고 애쓴다고 해서 여러분이 그렇게 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 아이의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우리 교회를 보게 하셨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