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이라 나쁘게 볼 것이 아니라, 이겨내려는 마음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한 파킨슨병은 치유보단, 죽음에 가깝게 그려진다.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것일까.
한쪽 손에서 양손으로, 전신으로 지금은 약에 의존하며 생활하는 박복숙(62·여) 씨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
약에 의존할수록 부작용이 더욱 심해지는 파킨슨병이지만,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그의 매일은 행복하다.
모든일에 당당히 도전하면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그의 삶에 대한 당당함은 지난 10여년동안 파킨슨병을 이겨오는 원동력이었다.늘 웃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영약을 선물하고 있는 그를 만나, 절망의 늪에서 희망의 꽃을 피운 삶을 들어보았다. 병마에 지쳐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그만의 ‘행복론’을 소개한다.
#유복한 가정
그는 전라남도 화순이 고향이며 10남매 중 9째로 태어나 귀여움을 많이 받으며 성장한다.
당시 어려운 사회 환경에서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10남매 모두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셨다.
내성적이고 참을성 많은 소녀였던 그의 어릴적 꿈은 기자였다고 한다.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정치, 경제, 사회 등 수준 높은 대화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왔기 때문이다.
바이올린과 기타 등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
집안의 높은 지적수준이 그의 어린시절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가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니까 나가서 배울 필요가 없었어요. 모든 면에서 행복하고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가장 큰 복(福)이라고 봅니다”
행복한 가정의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천상여자’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던 그는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에 다니던 지금의 남편과 만나 연예결혼에 성공한다.
“정말 평범한 삶이었어요.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아름답게 흘러갔어요. 남편과 만나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죠”
#갑작스런 파킨슨병 모든 걸 뒤흔들다
평범했던 그의 삶은 50대 갑작스레 찾아온 파킨슨병으로 혼돈에 빠지게 된다.
아산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그는 어느날 동료에게 “내가 원치 않는데 손가락이 움직인다”고 털어놓았다.
뇌의 현상이니 의사와 상담해 보라는 권유에, 검사를 받은 결과 당시로선 병명도 생소한 파킨슨병으로 판명됐다.
청천병력이었다. 어떤 병인지 몰라 의사에게 물으니 “(여기서)휠체어 타고 있는 환자 보면 놀라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간호사가 건네준 책자에 소개된 파킨슨 병의 하나하나를 알아가면서 병에 대한 두려움, 엄마 없이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자식들 걱정에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병은 자랑해야 낫는대서 동료에게 말했던건데 거짓말 같은 현실에 황당했어요. 알고나서 많이 힘들었죠. 혼자 물끄러미 있으면 상념에서 벗어나기 어렵더군요. 지금도 그는 전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올 대 뒤돌아 서 있는다.
병마에 의한 슬픔과 비관하는 마음이 커져 우울증을 겪으면서 위험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진 않았다. 병에 대해 어느정도 알아가면서 대처법도 터득했고, ‘좋은 날이 곧 올 거에요’라는 가족들의 희망 선물이 그의 삶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의 ‘감사하기’ 연습이 시작된다.
난치병을 비관하면 ‘극한 선택’으로 이어지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지론에서다.
감사하는 연습은 특히 그에게 ‘참사랑’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아파보니 풀 한 포기에도, 돌 뿌리에도, 자신의 둘러 싼 모든 것에 생명이 깃들어 우리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저에겐 그래요. 삶은 여러가지 변수가 있는 거니까, 매일 눈뜨고 밥 먹으면서 감사하는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요. 건강할 땐 몰랐지만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껏 살아왔다는 걸 아프고 나서야 깨달은 겁니다”
#병마를 이기는 힘 ‘가족’
그가 병마에 연연하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갖게 된 핵심은 가족의 사랑과 보호였다.
가족들은 한결같이 ‘엄마는 의지 강하고 자신감이 있으니 이겨낼 수 있어요’라는 긍정 에너지를 선물해준다.
가족의 힘이 먼저고, 다음은 본인의 의지라는 것이 그의 오랜 투병생활의 결론이다.
그에겐 장애등급으로 지하철을 무료로 타는 것도, 장애인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감사의 대상이다.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국가에 대한 감사표시다.
“힘들어도 원망한 적은 없어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게 해줬는데, 주어진 현실에 늘 감사하라는 계기를 주신거라 생각하니 마음 편하죠” 그는 병을 얻기 전보다 오히려 사람들과의 만남을 늘리고, 활동 범위를 넓혔다.
남양주시장애인복지관에서 몸이 굳지 않도록 스트레칭 운동을 하거나, 강변을 걷는 등 매일 꾸준한 운동을 하고 있다.
14년 전 ‘엄마 병이 혼자는 아닐 거에요’라는 아이들 조언에 파킨슨 병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를 개설·운영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정보를 상호 교환하고, 난치병으로 받는 아픔을 나누면서 카페는 현재 회원만 8천여명에 달한다.
약품 정보는 물론, 병을 이기는 보양식과 자연요법, 족용이나 발목 두드리기 등 회원간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환우들이 밖에선 말 못할 가슴앓이를 넋두리처럼 얘기하고 울고 웃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치유(Healing)이 이뤄지고 있다. 결국 병을 이기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는 셈이다.
“아무리 좋은 약도 사람보다 더 효과적이진 않다고 봐요. 아픔도 슬픔도 서루 나누다 보면 상충돼 즐거움으로 바뀌거든요”
# 활동의 폭은 더욱 넓고 깊게
그는 병마와 싸워 지칠 때마다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내였다.
병을 얻고 구연동화 자격증, 웃음치료사, 레크레이션 강사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어느정도 성취를 이룬 것도 이 때문이다.
병을 얻기 전 가족만을 위한 삶이었다면, 이제는 사회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로 각오한 것이다.
투병 초기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하모니카는 최근들어 복지관에서 재능기부를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1년 전부턴 도예도 시작했다.
흙을 만지면서 건강이 좋아졌고, 집중하면서 잡념도 사라지게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수년전엔 웃음치료사로 1년정도 양로원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병원 봉사를 하면서 암 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소중함을 수도 없이 느꼈다는 그다.
“이런 병이 올거란 생각도 안했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려 했는데 아프니까 ‘내가 이렇게 살면 장애가 더 오겠다’는 생각에 삶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당연히 가족들도 ‘사랑해요’라는 짧지만 커다란 선물을 안긴다.
순간적으로 독설이 나오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얘기하라는 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다.
그는 끝으로 “두려움도 고통도 감사와 사랑 앞에선 힘을 잃는 것이 진리에요. 얼굴의 주름도,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도 우리 삶의 소중한 선물이에요. 늘 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라며 깊은 감동을 남겼다
첫댓글 박복숙!
그는 "파킨슨병 이겨내기카페" 무궁화님입니다
아직 투병중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건 건강하시길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