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2013. 01. 13
장고는 벙어리였다
온 몸을 둘러봐도 둥근 벽
힘껏 두드려도 도무지 달아오르지 못하는
불임의 설움
한 사내 장고를 끌어안고 두드리자
입이 생겨났다
머리에서 몸통에서
몸을 묶어놓은 힘줄에서도
마구 입이 생겨났다
참고 참았던 소리가
천개의 입에서 석간수처럼 솟아나왔다
어루만지다 두드리다
휘몰아치는 사내의 손
굳었던 몸 녹아내리면서
장고는 떨리다 흐느끼다 불꽃으로 달아올라
생애 처음 내보는 온갖 소리 뿜어냈다
새 소리를 잉태한 장고는
몸을 풀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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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1월13일) 서울 홍대 앞 '판씨어터' 소극장에서는 경기도립 국악관현악단에서 장고를 치는 이석종 님의
장고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이 석종님은 이병욱 선생님의 사위이면서 어울림과도 자주 공연을 통해 탁월한 장고 연주를 들려주고 있지요.
이 날 연주에서 저는 장고의 새로운 면모를 보았습니다.
얼핏 단조롭기 그지없을 듯한 장고, 벙어리같은 장고에서 어찌 그리 오묘하고 다채로운 소리가 쏟아져
나오던지요. 장고는 무채색의 악기였지만 파열하는 소리는 총천연색이었습니다.
홀로 때로는 거문과와 가야금과 어우러져 장고는 온갖 소리를 뿜어냈습니다.
장고를 두드리는 연주자가 행복해 보였고, 연주자의 손끝에서 원없이 소리를 뿜어내는 장고가
더욱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둘은 전생에서서 역할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장고가 연주자의 세번째 팔 같을 수가 있을지요?
한층 원숙해진 이석종 님의 연주가 관객의 혼을 빼놓았습니다.
곧 어울림 연주에서도 이석종님의 이 환상적인 장고 연주를 어울사랑 가족 여러분과 함께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어울사랑 운영위원장 임병걸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