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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작가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8-
초판 ; 1968
1982년 노벨문학상
가르시아 작품 중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허구의 콜롬비아 마을 마콘도와 이 마을을 세운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을 100년 동안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줄거리를 요약하기 어렵다. 부엔디아 일족의 여러 구성원들이 겪는 운명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어떤 직선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자주 중첩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는 집안 대대로 살던 고향을 버리고 많은 고생 끝에 '마콘도'라는 땅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 사이에는 큰아들 호세 아르카디오가 있었는데, 그는 몸집이 크고 여색을 좋아했다. 그들이 마콘도에 도착하여 편안한 생활을 할 무렵 차남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태어났다. 그는 자라면서 앞날을 예측하는 알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예리한 눈은 형과 반대로 날카로웠고 성격 또한 내성적이었다.
이들이 살던 곳에는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던 집시들이 가끔씩 찾아오곤 했는데, 이 중에서 늙은 멜키아데스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비법을 많이 알고 있었고, 지혜 또한 뛰어났다. 나중에 아우렐리아노에 의해 알게 되지만 이 집안의 백년에 걸친 역사를 예견한 사람이었다.
한편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가 청년이 되었을 때, 이 집안에서는 여동생 아마란타가 태어났다. 그리고 고아인 처녀 레베카를 데려다 키운다. 호세 아르카디오는 필라르 테르네와 아들 아르카디오를 낳고 집시를 따라 마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레베카와 결혼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연금술에 대하여 실험과 연구에 몰두하며 성실하게 금세공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사랑을 해보지 못하다가 어느 날 딸과 같은 레메디오스의 청순하고 순진한 모습에 반하여 그녀가 9세가 되었을 때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죽고 만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이 고통을 잊기 위해 다시 작업장에 틀어박혀 물고기를 금세공하는 일에 열중한다. 선원이 되어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던 호세 아르카디오가 온몸이 문신 투성이가 된 채 쓸쓸하게 돌아온다. 그는 호적상의 누이동생인 레베카와 결혼했기 때문에 우르슬라는 그들은 집에 들여놓지 않는다.
이 무렵 우르슬라의 남편 부엔디아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그가 죽자 온 마을에는 노란 꽃들이 밤새도록 눈처럼 내려서 쌓였다. 아루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정부의 반란을 주도하는 자유파를 지지하여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자유파의 대령으로서 20년 동안에 32번의 반란을 일으키고, 14번의 암살과 73번의 매복 공격, 한번의 총살형을 모면한다. 그리고 그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모두 17명의 여자에게서 17명의 아이를 낳게 되나 원인을 알 수 없이 모두 죽고 만다.
아르카디오와 산타 소피아 사이에는 미녀 레메디오스가 태어났다. 그녀는 형식과 격식을 싫어하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로 그녀를 한 번보고 결혼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죽게 되었을 때, 하늘로 승천한다. 그들에게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라는 쌍둥이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는 둘이 똑같았지만 크면서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몸집이 비대해지고 대식가이면서 돈 낭비가 심한 인물로 변한다. 그는 페르난다라는 축제의 여왕과 결혼하여 호세 아르카디오를 낳고 레메디오스와 아마란타 우르슬라를 낳았다. 형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바나나 농장의 노동조건 개선을 외치며 파업을 주도하다 농장에서 3천 명을 학살하여 바다에 버려지는 사람들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멜키아데스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나이가 들어 어느 날 나무 아래서 임종을 맞이한다. 호세 아르카디오는 우르슬라와 페르난다에 의해서 성직자로 길러지나 그는 로마의 빈민가에서 살다가 돌아와 아이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둘째 딸 레메디오스는 메메라는 이름을 함께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는 신학교를 마치고 집에 있다가 바나나 농장의 인부인 마우리시오스와 사랑을 하게 되는데 이를 알게 된 부모가 집에 감금하고 만다. 마우리시오스는 지붕을 통해서 메메의 방으로 가다가 죽음을 당한다. 메메는 페르난다에 의해서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그녀는 여기에서 아우렐리아노를 낳는다. 아우렐리아노는 자기의 출생을 전혀 모른 채 길러진다.
우르슬라는 이제 쇠약해져 있었다. 그녀의 나이가 무려 백열다섯에 백스물네 살까지 추정되었다. 그녀는 그 동안 부엔디아 집안의 흥망성쇠를 몸소 겪은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를 마친 후 조용히 숨을 거둔다. 아마란타 우르슬라는 벨기에로 유학을 갔다가 가스통이란 사람과 함께 돌아온다. 그녀는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우렐리아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이모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결혼하게 되어 아우렐리아노라는 부엔디아의 마지막 자손을 낳게 된다. 아우렐리아노는 모든 곳이 정상이었으나 돼지 꼬리를 달고 태어났다. 이 아이는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개미들에 의하여 죽게 된다. 사생아인 아우렐아노는 양피지로 된 멜키아데스가 예언한 책을 읽고 해독하려고 하는데, 불륜의 상대방이 죽고 돼지 꼬리를 가진 애기의 시체를 개미들이 운반하는 것을 보고 집안의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 그리고 그는 부엔디아 집안의 역사를 알게 되고 자기가 누구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신기루 마을이 바람에 날려 인간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가장 핵심적인 사회정치적 예는 군대가 수천 명의 노동자를 학살해 그들의 시체를 화물열차에 실어 바다에 던져버리는 장면일 것이다. 소설은 비공식적인 대체 역사이지만 독창적인 이야기 기법은그 배경에 관능과 사랑, 친근감, 그리고 다양한 상실을 펼쳐 놓는다.
처음 볼 때는 가족사처럼 보이지만 좀 더 꼼꼼히 관찰하면 상징적인 마을 마콘도의 이야기가 점점 라틴 아메리카츼 역사로 드러난다. 필요할 때마다 원칙을 바꾸는 두 정치적 당파의 갈등 때문에 피에 물든 첫 번째 혁명 전쟁이 일어난 역사. 미국인들이 쳐들어와 바나나를 재배하기 위해 땅을 점령한 뒤 원주민을 흡사 노예처럼 부리고, 철군 후에 폐허만 남겨 놓은 역사가 드러난다.
그러나 마콘도의 이야기는 특히 각 개인이 권력투쟁과 착취의 와중에 시달리다 죽어버린 역사를 폭로한다. 또한 삶에서 마술적인 것과 보다 높은 질서에 대한 믿음이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되돌려준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를 통해 이야기 한다.
*마술적 사실주의에서는 독재, 빈곤, 식민정책 등 남아메리카 일상의 혹독한 현실이 이러한 일상에서 마술적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과 결합되는 것이 묘사된다. 마콘도라는 마을은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마술적 요소들은 종종 그 기원을 토착 원주민의 신화에 두고 있다. 따라서 마술적 사실주의의 판타지적인기미가 보이는 사건들이 굴절되긴 했어도 근본적으로 사실주의적인 글쓰기의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대단히 독특한 이야기 효과가 생겨나서 독자에세 사실주어적일 뿐만 아니라 판타지적이기도 하다.
콜롬비아 정글에 있는 허구의 장소 마콘다는 오늘날에도 젊은 문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장소를 본보기기 삼아 20세기 후반에 생겨난 라틴 아메리카 문학 운동을 ‘맥콘도’라 부른다.
(작가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가르시아는(1927-2004)는 는 콜롬비아의 소설가,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운동가이다.
콜롬비아 마그달레나 주의 작은 도시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나 그의 부모가 바랑키야로 이주하게 되자, 어린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조부모에 맡겼다.
그의 문학 세계는 어린 시절 조부모에게 받은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바랑키야에서 부모와 함께 살면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12세에 중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여 18세까지 공부했다. 그 후 수도 보고타의 카르타헤나 대학교에서 법률과 언론학을 공부했다.
학업을 마친 후 기자가 되어 유럽 특파원으로 일했고, 그 후 멕시코에서 창작 활동을 했다. 쿠바 혁명 이후에는 쿠바에 거주하면서 쿠바 통신사의 외국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이탈리아 로마,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쿠바 아바나 특파원을 지내면서 작품을 썼다.
생애의 대부분을 멕시코 멕시코시티와 유럽에서 보냈다. 그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그의 작품은 문학적 성취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많은 문학 평론가들은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일컬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르호 카르펜티에르, 카를로스 푸엔테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훌리오 코르타사르와 함께 20세기 남미의 위대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또한 그를 콜롬비아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라고 일컫게 한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Macondo)라는 가공의 땅을 무대로 하여 부엔디아 일족의 역사를 그린 작품이며,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 영향을 주었다. 1981년에는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가 라틴아메리카에서만 200만부 이상 팔렸으며, 1982년 라틴아메리카 현대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마르케스가 결정적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서였다고 한다. 그 소설을 읽고 마르케스는 이런 일들도 현실 속에서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데, 그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라면 자신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작가 수업을 시작한다. 당시 그가 좋아했던 작가들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스탕달, 발자크와 같은 리얼리즘 작가들이었다. 마르케스의 청년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카탈란의 현자'로 묘사되기도 했던 학자 라몬 비녜스였다. 이 문학적 스승이 주재하는 소모임에서 그는 현대적인 작가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존 스타인 벡, 테어도어 드라이저, 윌리엄 포크너와 같은 영미작가들이었다. 이중에서도 마르케스가 가장 매료된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였다. 파리의 낯선 이방인과 쿠바 혁명 라틴아메리카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그러했지만 마르케스 역시 유럽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다.(좋게 말하면 많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자신의 문화적 원류 중 한 뿌리를 유럽에서 찾는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들의 동경이 때로 도를 지나치기도 한다.) 1954년 마르케스는 <관객(엘 에스펙타도르)>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가는데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통과제의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가 유럽에 가서 계몽사상을 받아들이고 돌아와 라틴 아메리카 해방에 매진한 이래 라틴 아메리카 지식인들에겐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르케스의 파리 생활은 그리 즐거운 경험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배고프고 비참한 시절이었다. 콜롬비아 모국의 독재 정부에 의해 신문사는 폐간되고, 마르케스 자신도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파리의 지하철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며 구걸을 하기도 했다. 이무렵 쓰기 시작한 소설이 바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않는 연금 소식을 기다리는 이 소설 속의 부엔디아 대령의 심정은 그 자신의 것과 같았다. 그의 조국 콜롬비아에서의 들여오길 고대하고 있던 민주화 소식을 기다리던 자신의 심정을 말이다.(물론 이 시기까지 마르케스가 적극적으로 좌파로서의 활동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1957년 콜롬비아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13살 무렵에 청혼했다고 하는 여인. 메르세데스와 결혼한다. 이 당시에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수크레에서 알게 된 한 여인을 카르타헤나에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여인은 약사의 딸로 수차에 걸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메르세데스 바르차였다. 후에 이 여인은 그의 아내가 되어 평생을 그와 함께 한다. 그때 그와 그의 친구들은 이 여인에게 '성(聖)스러운 악어'란 별명을 지어 주며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나일강 뱀의 은밀한 미를 소유한 소녀"로 표현된다. 또한 그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아라카타카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집을 팔기 위해 아라카타카로 여행을 한다. 이 여행에서 그는 유년 시절에 보았던 멋지고 황홀한 세계였던 아라카타카와는 달리 이제는 황폐하고 가난에 찌들린 세계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후에 마르케스가 에덴 동산과 같은 마콘도가 폐허화되는 과정을 그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동기가 된다. 그리고 1958년엔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쿠바혁명은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이때부터 그는 좌파 이념에 동조하는 작가로서 좌파 이념을 자신의 확고한 세계관으로 받아들인다. 그후 70년대부터 비롯된 혁명의 퇴조기에 많은 라틴 작가와 시인들이 우익으로 전향했음에도 그는 현재까지 자신의 이런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안겨준 영광과 고독 그는 1960년 쿠바 혁명정부가 세운 관영통신사의 뉴욕 주재원 자격으로 미국에 머물며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무대가 되었던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일대를 방문한다. 그는 이 곳에서 "멕시코인은 숙박할 수 없음"이라고 쓰여진 공고문이 버젓이 붙어있는 호텔들을 본다. 그에게 있어 미국은 결코 라틴 아메리카와 함께 아메리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었다. 1962년부터 1966년 사이의 기간은 그에게 있어 오랜 침묵의 시간이었다. 그와 가족은 1965년 아카풀코로 바캉스를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마치 섬광에 눈이라도 먼 것처럼 강렬한 영감을 받았고, 그 즉시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마피아의 집'이라고도 불리웠던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하루에 6갑의 담배를 피며 집필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그는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말한다. "너무 완전히 생각이 나서 거기에서 타자수에게 첫 장의 단어 하나 하나를 구술했었으면 했습니다". 그의 아내인 메르세데스에 의하면, 그는 이러한 욕망을 억제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글을 쓰기 위해 틀어 박혔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6개월 정도면 이 소설을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소설을 끝내고 보니 18개월이란 세월이 흘러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간동안 메르세데스는 생계를 책임졌다. 그가 아끼던 자동차까지 팔았지만 그래도 돈이 모자라 마르케스에게 말하지 않은 채 빚을 지고 있던 상태였다. 이 소설은 발표 즉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마르케스를 일약 전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1967년 6월에 발표된 이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이미 출판되기 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여러 문학잡지들이 이미 이 소설의 일부를 게재했고,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마르케스가 읽어보라고 넘겨준 이 소설의 제1장 부문만을 읽고도 아무런 주저없이 극찬한다. <백년동안의 고독>은 비평적인 면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에서 그의 소설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고 상을 주었다. 그는 1972년 중남미 지역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베네수엘라의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수상하는데, 이때 받은 상금을 '사회주의 운동MAS'이라는 좌익 단체에 기증한다. 그러나 이런 문학적 성공은 그에게 많은 부담을 주게 되고 그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깊은 침묵 속에 <순박한 에렌디라와 포악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와 베네수엘라에서 쓴 기사를 모아 <행복한 무명 시절>이란 책을 출판한다.(<순박한 에렌디라와 포악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는 국내에서는 까치출판사에서 <에렌디라>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마르케스의 많은 작품들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자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책 중 하나이다. 쿠바 출신 삽화가의 그림 역시 아주 멋있다.) 그는 이곳에서 오래 전부터 쓰고자 했던 <족장의 가을>을 집필한다. 이 소설은 구19세기부터 존재해 왔던 중남미의 여러 독재자들의 이미지를 종합하여 독재자의 원형을 그린 작품이었다. <족장의 가을>은 여러 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 이 작품은 독재자의 신화뿐만 아니라, 언어 형식적 측면에서도 1970년대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절필 선언과 라틴 아메리카를 위한 투쟁 <족장의 가을>을 출판한 이듬해인 1976년 마르케스는 멕시코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칠레에 독재자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고 있는 이상 더이상 소설을 출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칠레의 사회주의 정부. 아옌데 정권을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군사쿠데타로 전복하고 쿠데타 기간 동안 3만여 명의 시민을 학살했다.(스페인 내전 당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스페인에서 독재자 프랑코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는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일화와 비슷하다.) 그는 이미 1973년에 피노체트 쿠데타 당시에 "칠레 민중은 미제국주의의 하수인인 당신들과 같은 범죄자 집단이 통치하게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쓴 전문을 칠레 군부에게 보낸바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후 수년간 그는 정치적 활동에만 전념한다.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람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아베아스Habeas재단의 창설 (1979년)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정치적 이유로 구속된 수감자와 고문에 대해 고발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실종된 사람들들을 위해 수많은 활동을 벌인다. 물론 그가 출판 거부를 한 이후에도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접어들어 미국에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고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반동이 극에 달하는 시점이 된다. 엘 살바도르에서는 로메로 주교가 엘 살바도르 군부의 암살부대에 의해 살해당하고(이 부분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와 <로메로>를 보시도록) 우리나라에서는 5.18이 벌어진다.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소설을 출판하지 않겠다고 한 마르케스 1981년 4월에 스스로 이 약속을 깨고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출판한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
가르시아 마르케스 - 작가론총서 17/ 송병선 엮어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납치일기 1.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1999년 백년의 고독 1.2 - 세계문학전집 34.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사랑과 다른 악마들/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한뜻 / 1995년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익사체/가브리엘 마르케스 외 지음, 김훈 옮김 / 푸른숲 / 1999년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울산대학교출판부 / 1996년 이방의 순례자들/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한나래 / 1995년 칠레의 모든 기록/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크레파스 / 2000년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 서성철, 김창민 편/ 까치/ 2001 -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까치 출판사에서 출판한 여러 좋은 책들 중 물을 많이 내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국내의 라틴 아메리카 학회 소속 학자들이 각자 논문을 만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시인, 작가들에 대해 글을 상재하고 있다. 이번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글은 그 중에서 김세훈 선생의 글을 그 근간으로 삼고 있다. 클럽 이구아수 - 라틴 아메리카와의 교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이다. 이중에서 클럽 이구아수는 라틴 문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바람구두가 좋아하는 작가들 소개도 많이 되어 있는 유익한 사이트이다. 추천한다.(한글) 모던 월드 - 마르케스에 대해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사이트 중 하나이다. 그의 작품들에 태한 비평부터 시작해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까지..그외에도 다른 작가들에 대한 내용도 비교적 많이 있는 편이므로 종종 찾아가보시길(영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그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아티클이 있다.(영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마르케스에 대한 간단한 아티클이 있다. 링크들도 제공하지만 대개의 링크가 끊겨 있다.(영문) | "칠레인들은 내가 이러한 결정을 했을 때는 정치적으로 매우 유용했으며 그 결과도 그러했지만 이를 계속하여 유지한다는 것은 이제 정치적으로 볼 때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의견이 나보다 그들의 상황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이고 나는 칠레인들보다 더 칠레적이 될 수는 없읍니다. 여하튼 나는 피노체트는 오랜 기간동안 권좌에 있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며, 내 책이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중략… 비평가들은 내가 중남미 마술적 사실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나는 내가 현실감각을 갖고 있는 유일한 시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내 사실주의는 피노체트가 몰락하지 않았고 그리고 지금 몰락하지도 않으며 언제 몰락할지는 모른다고 말하기 때문에 내 책을 출판합니다. 그 당시 이와 같은 약속을 했던 것은 정치적으로 유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출판이 더 정치적으로 유용합니다. 중남미 좌익은 사실주의의 미덕이 결여되어 있읍니다. 피노체트는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변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아직 살아있는 존재이지만 그는 아닙니다." 마르케스의 환상적 리얼리즘과 현실 마르케스는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가 보고타에서 출판되기 전날 보고타 주재 멕시코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한다. 이것은 당시 콜롬비아의 투르바이 정권이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면서, 사상적 이유로 그를 체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간다. 그는 이런 정치적 수난을 겪지만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는 1983년 니카라과의 카스티요 콴트라는 정치가의 집을 주제로 다루는 실제 이야기를 허구화시킨 시나리오 『유괴』를 출판하며, 이 작품의 인세를 산디니스타 정권에 기증하기도 한다. 1986년에는 『칠레에 잠입한 미겔 리틴의 모험』이란 현장 취재를 책으로 출판한다. 이 작품은 칠레의 망명 영화감독인 미겔 리틴이 체포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피노체트 군사 정권 하의 칠레에 잠입하여 독재 치하의 칠레 현실에 관한 영화를 비밀리에 촬영하며 생긴 일들을 정리한 것이었다. 물론 마르케스는 유명한 작가이고, 상업적으로도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작가이다. 그는 멕시코 시티의 교외에 부유한 별장을 가지고 있으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인터뷰료를 요구하기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서 더할나위없이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미국 문화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이런 모순적인 행위에 대해 혹은 그가 쿠바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열렬한 옹호자라는 점 때문에 비판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역시 많은 돈을 박해받는 자를 위해 쾌척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 자신이 스스로 박해받는 자의 대열에 스스럼없이 함께 했다. 그가 미국이란 나라 자체는 비판하면서도 미국문화를 옹호하며 20세기 최고의 작가가 미국에서 나올 것이라고 공언하는 이유에는 그 자신이 유럽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경험한 체험에서 근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란 사회적 위기의 시점에 이르러 그 빛을 더욱더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20세기의 위대한 작가 혹은 21세기의 위대한 작가가 미국에서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는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을 열렬히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문학이 도그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작가이다. 그에게 있어 "모든 작가들의 가장 혁명적인 임무는 글을 잘 쓰는 데에 있고", 이상적인 소설이란 " 그 소설 속에 담긴 정치, 사회적 내용이 아니라 현실 속으로 독자들을 침투,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을 통해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데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좋은 소설이란 형식이란 틀에 갇힌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현실을 환기시키고 현실에 참여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효과적이라면 굳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고착된 형식에 안주해야 할 이유가 그에겐 없었다. 그에게 있어 문학이란 라틴 아메리카의 가혹한 현실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