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단상
손 원
푹푹 찌는 여름에 에어컨만큼 효자는 없는 듯하다. 더위를 시키기 위해 선풍기나 부채가 필요 없다. 나무 그늘, 계곡, 해변을 찾지 않아도 된다. 수많은 피서지와 피서 용품이 있지만 에어컨이 으뜸이다. 그것도 안방 피서를 할 수 있으니 여름철 효자 임에 틀림없다. 여태 살아오면서 에어컨으로 호사를 누린 기간은 짧다. 밤낮으로 누리기는 3년째다. 세 돌박이 손자 덕분이다. 그전에도 집에 에어컨이 있었지만, 장식에 그쳤다. 초여름 더위부터 참고 지내다 보니 더위에 익숙해져 삼복더위에도 견딜 만했다. 그때는 여름철 내내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았다.
구입한 지 10년 지난 에어컨을 가동 해 보니 컴프레셔가 고장이었다. 가동 회수로 치면 새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고장이 났다. 장기간 방치하다 보니 실외기가 부식 되었던 것이다. 수리 비용도 만만치 않아 신형으로 바꿨다. 덜 사용하는 바람에 전기료는 아꼈지만, 에어컨을 버렸으니 억울하기도 했다. 그럴 바에 실컷 사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새 에어컨을 구입한 후로는 마음껏 튼다. 어린 손자를 키우니 밤낮으로 틀어 적정온도를 유지한다. 엊저녁에는 새벽공기가 서늘하다 싶어 에어컨을 껐더니 잠시 후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 에어컨 틀어 주세요."라며 잠을 깼다. 때로는 에어컨을 꺼도 될 듯하여 거면 얘기는 땀을 흘려 칭얼대기에 다시 가동하기도 한다.
보릿고개를 지낸 기성세대는 절약이 몸에 배었다. 몸소 아끼려 하고, 아끼려는 젊은이의 태도를 아름답게 여긴다. 사무실에서도 자주 에어컨 온도를 올리거나 스위치를 내려 젊은이들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무더위에 에어컨 절약에 동의하지 않고 쾌적함을 원했다. 종일 사무실에만 있으니, 냉방병을 걱정할 정도였다. 요즘 온종일 집에만 있는 날이 많다. 올해는 전기료도 많이 인상되었다. 전기료 폭탄도 우려된다. 기사에 전기료 아끼는 법이 소개되어 눈이 번쩍 띄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생활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 에어컨을 한번 튼 뒤에는 껐다 켰다 하지 않는 게 전기료를 아끼는 길이라는 건 많이 알고 있지만,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 건지 설명한 기사다.
"거실 면적 10평인 아파트에서 설정 온도를 26도로 맞춘 뒤 실시간 측정기로 전력 사용량을 지켜봤습니다. 에어컨을 켜자, 전력 사용량이 빠르게 3,352와트까지 치솟더니 이후 점점 줄어들어 설정 온도에 도달한 뒤에는 5와트까지 뚝 떨어집니다. 설정 온도에 도달하기 위해 에어컨의 냉매 압축기가 빠르게 돌면서 전력을 많이 썼다가 온도가 떨어지면 회전 속도를 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2011년 이후 출시된 인버터형 에어컨은 한번 켠 뒤 계속 유지하는 게 전기료를 아낄 수 있습니다.
ㅇㅇ전자서비스 기술팀 : 가장 강하고 낮은 온도로 작동시켜서 실내 온도를 빠르게 떨어뜨린 후에 설정 온도를 조절해서 계속 켜두는 게 제일 좋습니다. 환기할 때는 에어컨을 끄는 게 가장 좋은데, 부득이하게 냉방이 필요할 때는 에어컨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창문을 활용해서 환기하는 게 좋습니다. 평균 전력량을 쓰는 4인 가구가 하루 7시간 이상 에어컨을 켤 때, 스탠드형은 한 달 전기료를 6~7만 원 정도 추가로 내야 하고 벽걸이는 3만 원, 시스템은 7만 원 후반에서 10만 원 정도 더 내야 하는 걸로 추산됩니다. 굽거나 튀기는 요리를 할 때는 에어컨을 꺼야 하고 필터는 2주에 한 번 꺼내서 청소해야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
밤이 되면 거실 에어컨을 끄고 대신 침실 벽걸이 에어컨을 켠다. 거실문을 활짝 열어 다소 시원해진 밤공기를 만끽한다. 창밖은 층층이 매달린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여전히 덥다. 실외기 소음도 심해 거실은 수면에 장애가 되어 침실로 자리를 옮긴다. 열대야가 지속되어 밤새 에어컨을 돌린다. 낮에는 거실, 밤에는 침실로 해서 하루 종일 에어컨을 돌린다. 에어컨 없던 시절, 에어컨을 아끼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종일 에어컨을 틀고 사는 지금, 지구 온난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차라리 에어컨이 없다면 어떨까? 기후에 잘 적응하여 지구 온난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인간의 환경 적응은 놀랍기 때문이다. 서서히 달궈지는 온탕 속의 개구리는 삶겨 죽을 때까지 뜨거움을 크게 못 느낀다고 한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지만 심각성을 덜 느끼고 에어컨 사용으로 더위를 모면하고 있다. 에어컨 냉매와 전력 생산에 따른 온실가스가 지구를 두텁게 덮어 온실효과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 열기로 지구는 점점 데워지고 있다. 하지만 삼복더위에 에어컨 사용은 필수다. 지나친 에어컨 사용은 기상이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제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장기적으로 지혜롭게 지구 온난화를 방지해 나가야 한다. 잠깐 살고 갈 지구를 잘 보존하여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 공감은 가지만 에어컨 없이는 여름날 자신이 없다. (2023.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