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오재원. "어린이 팬들이니까요."
두산 베어스 오재원(34)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어린이 팬을 위해서라면 응원팀이 상관 없다는 얘기였다.
두산의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 오재원이 보여준 작은 행동이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
사연은 이 달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의 정규시즌 막바지 순위 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한 유튜브 사이트에 '관중석에 있는 어린이 팬과 캐치볼을 하는 선수'라는 제목과 함께 한 편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속 선수는 오재원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오재원은 외야에서 편한 차림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외야 관중석에는 선수들을 보기 위해 일찍 입장한 어린이 팬들이 10명 이상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손에 글러브를 낀 아이들도 있었다.
이를 본 오재원은 외야에 있는 아이들 쪽으로 공을 살살 던졌다. 뜻하지 않게 공을 받은 아이들은 신이 난 듯 오재원과 공을 주고 받았다. 그 중 한 어린이는 두산의 라이벌팀인 LG 트윈스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 어린이를 두산 꼬마 팬들이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오재원은 혹여나 난간 근처에서 공을 잡다 다칠까, 어린이 팬한테 좀 더 뒤로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게 몇 차례 어린이 팬과 캐치볼을 한 오재원은 공을 마지막으로 던져준 뒤 시크하게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김태형 두산 감독과 주장 오재원(왼쪽)이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이제 두산은 올 시즌 가장 중요한 일전만을 남겨놓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한 대망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22일 오후 6시 30분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다.
최근 잠실구장에서 팀 훈련 중 만난 오재원은 캐치볼을 한 상황에 대해 "어린이 팬들이니까요"라는 짧은 말만 남겼다. 그의 말처럼, 오재원은 평소 특히 어린이 팬들에게 팬 서비스를 잘 해주기로 익히 알려져 있다.
사실 오재원은 올 시즌 가장 힘든 한 해를 보냈다. 2007년 두산에 입단한 그는 13시즌 만에 처음으로 1할대 타율(0.164·98경기)을 기록했다. 그래도 오재원은 묵묵히 팀에서 '더그아웃 리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는 큰 경기 경험도 풍부하다. 올해가 그의 8번째 한국시리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총 30경기에 출장해 타율 0.253, 1홈런 7타점 10득점 5도루를 기록했다.
당장 올해 성적만 놓고 보면 일단 최주환(31)이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2루수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오재원은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로 평가받는다. 시즌이 끝난 뒤 오재원은 특유의 파이팅과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누구보다 한국시리즈를 열심히 준비했다. 최근 2년간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던 두산 그리고 오재원. 과연 이번에는 마음껏 웃을 수 있을까.
지난해 한국시리즈 6차전 도중 포효하는 오재원. 올해 오재원은 한국시리즈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