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 (寧海)5일장
崔 秉 昌
바다를 쫓아 해풍을 맞는
시장 통 주유소 사거리
동해바다의 온갖 생선들이
여기저기 성시를 이루고
좁고 긴 숨을 따라
경운기 서너대가 장날을 가득 메웠네
괜히도 바쁜 척
해장국집 골목에서 짐을 내려
눈치를 옮겨가는 짐꾼들은
바리바리 난전들의 소리소문으로
저마다 해가 중천인데
길 건너 세탁소 아저씨와
금은방 아저씨는 서로가
바늘귀를 맞춰가며
흔들리는 세월의 의자에 걸터앉아
줄줄이 늘어진 전선줄을 따라
잘 보이지도 않는
먼 그림들을 읽고 있었네
이발소집 옆으로
허름한 자전거 한 대는
영덕가는 버스를 기다리는지
짐칸의 보따리를 연신 배웅을 하며
갈길 바쁜 노정을 재촉하는 듯
늦가을이 볼그르르 익어만 가는데
날마다 몸속으로 자라난다는
목노집 주막에는
칸 칸 마다 자리가 따로 없어
빛 바랜 행복을 닮아 가다
지상으로 아득히 추락하는
다시 없는 간절한 상봉과 이별이라고
제풀에 겨운 시간은
면면이 제몫이 되어버렸네
그렇게 시장이 남루해지고
비좁다 못해 희미해지는 기억들은
그래도 잊지 못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깊은 주름으로 떨어지는
해풍의 조각들을 지켜내고 있었으니
비릿한 파장의 먼 훗날
멀리로 사라지는 경운기소리처럼
가난한자의 가난한 몸짓은
그 해풍 그 소리에 영원히 물들면서
순간을 지나치는 빛으로
까맣게 잊혀버릴 그 언제까지라도
남은 잔해를 간간이 추스르고 있을 것이네.
<1999. 11.>
<시작노트>
경북 영양군 창수면 계곡을 따라
만행 중에 머무른 영해는 위로는 후포 항을
아래로는 영덕 항을 두고있는 작은 시골마을
인데, 여기에서 5일장을 맞은 가을맞이 시장
골목은 다가올 겨우살이준비가 한창이었으니,
앞으로 이런 시장풍경이나 시장인심은 만나보
거나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