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파파팟!
북리뇌우는 신형을 급회전시켰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삼 장 방원이 일시에 자청색의
두터운 강막으로 뒤덮였다.
놀라운 광경은 그 다음 순간에 벌어졌다.
강막은 점차 나녀들을 향해 좁혀 들었는데, 그녀들은 춤을 추다가 거기에 닿게 되면
의례 폭사를 면치 못했다.
콰쾅! 콰르르릉―!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나녀들의 몸뚱이는 산산조각이 나면서 한 줄기 녹색 기류가 되
어 형체도 없이 사라져 갔다.
이렇게 되자 살아남은 나녀들의 춤사위는 오히려 더욱 거세어져 미친 듯한 아우성으로
돌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막 밖에서의 일일뿐이었다.
그녀들의 기세는 어떤 식으로도 강막의 내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더욱이 접근
조차 못하니 북리뇌우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강막은 반경이 더욱 축소되어 내부의 적(?)을 완전히 제거했다. 그리고
이제는 꼭 북리뇌우가 운신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북리뇌우는 낮게 읊조렸다.
"누구의 사술이 뛰어난지 지금부터 시험해 보리라."
그는 좌수(左手)를 번쩍 치켜들었다.
스으으―!
그의 중지가 삽시에 핏빛으로 물들더니 섬뜩하도록 짙은 혈염을 피워 올렸다.
똑!
그의 손가락 밑으로 핏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그 핏방울은 혈염의 정화인 듯 유
난히도 붉었다.
핏방울은 물이 수증기로 화하는 것처럼 약간의 시간을 두고 붉은 기류로 변해 위로 서
서히 치솟아올랐다.
이 때에 북리뇌우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 상태로 그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
했다.
"지옥의 악령이여, 그대의 피로써 부르나니......."
그가 흘려내는 음성에서는 사이한 기운이 물씬 전해졌다. 마치 지옥의 유계(幽界)에서
울려 나오는 듯.
그가 시전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사파에서도 최고이자 악마의 섭혼대법이라 불리우는
악령혈정환(惡靈血精幻)이었다.
예전에 북리뇌우는 무창 수궁보(水宮堡)의 금지옥엽인 화자연을 상대로 이 극단의 대
법을 펼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상황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 상대방이 그를 모욕하며 악
마가 되기를 종용했으므로.
어쨌든 그 때와 마찬가지로 혈기류는 북리뇌우의 주문에 따라 점차 인간의 형상으로
화해 갔다. 이번에는 대상이 회포괴인이니 그 자와 같은 모습으로였다.
그렇게 생성된 혈환인(血幻人)은 전체적으로 핏빛 기운을 띠고 있어 단지 보는 것만으
로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이와 동시에 북리뇌우의 눈에서도 혈광(血光)이 폭사되었다.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그의 혈안(血眼)은 기괴한 광채를 번뜩이는 혈환인의 눈과 정확
하게 시선이 맞추어졌다.
북리뇌우의 머리카락이 핏빛으로 물들며 뻣뻣하게 곤두선 것은 그 다음 순간의 일이었
다.
"악령의 이름으로 고하노라. 이제부터 나는 너의 주인이니, 이를 거스르면 너는 천 갈
래 만 갈래로 찢겨져 죽는다."
귀기(鬼氣)가 어린 음성이 다시금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 음성은 무한한 공포를
지닌 가운데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마력을 담고 있는 듯했다.
스스스스.......
그를 감싸고 있는 강막도 언제부터인가 혈염으로 점점 짙게 뒤덮혀 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주문이나 다름없는 북리뇌우의 음성은 그치지 않고 계속 울려 나왔다.
"악령이 너를 부르노니, 이리로 오라."
그 말에 혈환인은 어떤 강한 힘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스르르 강막을 뚫고 북리뇌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내밀어라."
북리뇌우는 명령해 놓고 그대로 따르는 혈환인의 목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자 혈환
인은 마치 인간이 고통을 표현하듯 핏빛 안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이 때를 기해 강막 밖에서 배회하던 나녀들이 갑자기 발광을 하더니 무작정 강막으로
부딪쳐 왔다.
콰쾅! 쾅―!
사위는 잇달아 울리는 폭음과 나녀들의 난동으로 인해 삽시에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
이고 말았다.
북리뇌우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예의 혈안으로 혈환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주인의 명을 거역하는 자, 악령의 저주가 있을진저!"
어느 새 짙은 혈염은 그의 몸에도 두루 번져 있어 그의 모습은 시뻘건 불길 속에 들어
가 있는 듯했다.
그는 잡고 있던 혈환인의 목을 사정없이 비틀었다.
"이 놈!"
한 줄기 분노에 찬 외침이 일었다.
그 음성의 주인은 북리뇌우가 아니라 강막 밖 어느 곳엔가 몸을 감추고 있던 회포괴인
이었다. 그 음성에서는 애써 고통을 참는 듯한 기척이 역력히 느껴졌다.
"오호호호호......!"
"꺄아악―!"
나녀들의 몸부림도 도를 더해 갔다.
콰콰쾅! 콰르르르―
수백 명의 나녀들이 떼지어 강막에 부딪쳐 자폭을 하자 그 충격 탓에 안에 있던 북리
뇌우의 신형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로 인한 여파는 더욱 엄청난 것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사면의 석벽이 무너질 듯 진
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북리뇌우는 여전히 혈광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혈환인을 응시하며 냉혹하게 내
뱉고 있었다.
"아직 멀었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지."
그는 기소를 흘리며 양 손에 힘을 가해 이번에는 혈환인의 목을 뒤로 꺾으려 했다. 그
런데 바로 그 때였다.
츠읏!
방금 전까지도 붉은 광채가 일렁이던 혈환인의 눈에서 느닷없이 회포괴인의 것과 똑같
은 녹색 광망이 폭사되었다.
"웃!"
북리뇌우는 흠칫 놀랐다. 혈환인의 목은 녹광을 눈에서 뿜어내고부터는 더 이상 꺾이
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입에서는 예의 쇠를 긁는 듯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크크, 안되었다만 그리 쉽게 당할 본좌가 아니다."
"으음!"
북리뇌우의 눈에서 발출되는 혈광과 혈환인의 눈에서 폭사되는 녹광이 서로 뒤얽히며
허공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파파파팟!
그런 가운데 북리뇌우가 말했다.
"그대야말로 안되었다. 악령혈정환의 무서움은 한 번 걸려든 이상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데 있지."
그는 눈을 통해 더욱 가공스러운 혈광을 뿜어내는 한편, 혈환인의 눈에서 잠시도 시선
을 떼지 않았다.
"우우, 지독한 애송이 놈......!"
혈환인은 급기야 안면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렸다. 눈에서 폭사되던 녹광도 점차 약해져
갔다.
투두둑......!
목도 뼈마디 어긋나는 소리를 내며 뒤로 꺾였다. 그 같은 음향은 강막 밖에서도 들려
왔다.
우두두둑!
"크윽!"
회포괴인의 것인 듯한 처참한 비명 소리도 이어졌다. 그는 비로소 북리뇌우의 앞에 모
습을 나타냈다.
"주...... 죽일 놈......!"
괴인의 몰골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혈환인과 마찬가지로 목이 뒤로 반쯤 꺾여
있었으며, 입으로는 시뻘건 핏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북리뇌우의 행동은 거기서 멈추어지지 않았다.
"아직 멀었다. 본인이 당한 것에 비하면."
그는 혈환인의 가슴에 일 장을 내쳤다.
퍽!
거리가 가까운 탓에 울리는 음향은 둔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슴을 움켜쥐며 입에서 피분수를 뿜어낸 것은 다름 아닌 회포괴
인이었다.
"그...... 그만! 죽여라, 어서!"
괴인은 고통에 겨워 처절히 부르짖기에 이르렀다. 그를 향해 북리뇌우는 싸늘하게 미
소지었다.
위잉―!
이번에는 곧장 괴인의 가슴으로 일 장이 날아갔다.
"너는 누구냐?"
펑!
"으윽!"
폭음과 비명 뒤로 회포괴인은 뻣뻣하게 굳어진 채 한차례 전신을 무섭게 떨었다.
"으으, 말할 수 없다. 어서 죽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는 고통으로 인해 안면을 구기면서도 고개만은 분명하게 좌우로 젓고 있었다. 그 완
강한 기세로 보건대 그의 입을 열게 할 방도는 도무지 없을 것 같았다.
북리뇌우를 차디찬 눈빛으로 괴인을 응시했다.
"좋아, 그렇게도 원하니 죽여 주지."
츠츳!
그의 우수에서 자청색의 강환(剛環)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그 강환은 막강한 열기를 내뿜으며 괴인의 가슴을 향해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갔다.
츠츠츠츠.......
회포괴인의 가슴에서는 대번에 핏빛 수증기가 피어 올랐고, 그 때문인지 그는 고통스
러운 듯 몸을 꿈틀거렸다.
"으으으......!"
참담한 비명을 흘려내는 그의 가슴 부위에서는 혈기류에 이어 검은 연기가 뭉클뭉클
치솟았다.
마침내 회포괴인의 신형이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죽음의 문턱을 향해 치
닫고 있었던 것이다.
"안되오!"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한 줄기 묵영(墨影)이 북리뇌우와 괴인의 사이에 나타났다.
"별로 좋지 않은 시기에 출현하셨군."
북리뇌우는 못마땅한 듯 중얼거리며 손을 거두었다.
예의 묵영은 수천쌍제(守天雙帝) 중 일 인이었다. 그는 역시 검은 기류에 휩싸인 채
진면목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으음!"
그는 낮게 신음을 발하며 괴인을 내려다보았다.
회포괴인은 혼절해 있는 상태였는데 가슴 부위에서는 아직도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
어 오르고 있었다.
북리뇌우는 담담하나 한기가 배인 눈빛으로 수천쌍제 중 일 인, 즉 묵영을 바라보았다
"이젠 귀하와 대결할 차례인가?"
묵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에서 가공할 묵광(墨光)을 발산하며 북리
뇌우를 노려볼 뿐이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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