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은 우리를 흥분시킨다. 투우사의 깃발도 붉은 색이 아닌가.
또한 활발하고 신속한 속성이 있어서, 붉은 색을 보고 있노라면 느긋하게 앉아있기 어렵다.
그래서 손님들이 오래 앉아 있지 않기를 바라는 패스트푸드점 같은 데에 많이 사용되는 색이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용수철같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 중의 하나이다.
자연계에 있는 대표적인 붉은색은 타오르는 불꽃이다.
뜨거운 사랑과 폭발하는 분노는 불의 두 가지 속성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혼례에서는 연지 곤지 붉은색을 붙인다.
이는, 귀신이 싫어하는 색이 붉은색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바로 사랑의 상징이요, 정열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정열... 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뛰게하는 멋진 말인가!
게다가 붉은색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 중에서 파장이 제일 긴 색이기 때문에
빛의 산란이 잘 일어나지 않아 멀리서도 잘 보인다고하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우리 대표팀은 언제부터 붉은색 유니폼을 입었을까.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할 때 붉은 상의에 흰바지, 붉은 스타킹을 착용하면서부터 였다고 하는데,
붉은색은 일단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우리의 임금님께서 입으셨던 `곤룡포`가 붉은색이었던 것과 관련하여
`최고` `우두머리` 등의 이미지와도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정설은 없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악마`인가?로 말들도 많은 것 같은데,
이는 `단어 그 자체`에 대한 과민반응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박종환 사단은
홈팀 멕시코는 물론, 호주 우루과이를 차례로 격파하고 세계 4강의 신화를 남겼다.
무서운 투지로 이변을 일으킨 우리 대표선수들을 그 곳 언론들이 'Red Furies'라고 불렀는데,
몇 년 전에, 월드컵 축구경기를 한국에서 개최하게된 기쁨에서 자원 응원단이 조직되면서
그 이름을 '붉은 악마'라고 번역해서 사용하였고, 영어로 'Red Devils'라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붉은 악마`라는 말에는 우리 대표팀이 또 한번의 신화를 이루어주기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사실 'Fury'는 격렬, 격분 등의 뜻이 있는 단어이지만, 사람을 이 말로 부를 때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자매의 `복수의 여신` 'the Furies'를 연상시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복수의 여신을 지칭한 Furies라는 단어는 나쁜 이미지의 표현이었는가?
Furies는 정의와 복수의 여신들을 말하며, 고대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의 인격신이다.
그들은 세 명으로 이루어졌는데, 알렉토 Alecto(쉬지 않는 여자), 메가라 Megara(질투하는 여자),
티시포네 Tisiphone(살인을 복수하는 여자)이다. 그녀들은 넓은 의미에서 기성 질서 안의 정의를 상징한다.
이들은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자 모두를 추궁하는 여신들인데, 특히 혈족의 유대를 깨뜨리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다.
고대에는 인간에게 무서운 죄를 진 자를 벌할 힘과 권리가 없다고 생각되었으므로,
이러한 죄인을 추궁하고 정당한 벌을 주는 역할은 여신에게 맡겨졌던 것이다.
단순히 `악마`라는 말에 거부감만 느낄게 아니라, 그 말의 시작이 되었던 Furies의 이미지를 상기하는 게 중요한데,
그 단어는 절대로, 평화를 해치는 - 그야말로 나타나서는 안될 악(惡)의 화신을 상징하는 개념이 결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중한 죄를 범하고도 처벌받지 않고있는 악한 무리들을 집요하게 추궁하여
결국엔 벌을 받지않고는 못배기게 만드는... 그리하여 정의를 세우고
약자의 한을 대신하여 복수해주는 선(善)의 이미지로서의 단어였음을 꼭 알아야 하겠다.
한편, Devils는 Furies만큼 깊은 이미지를 풍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악마`나 `마왕`으로만 알고있는 그 단어가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경마광을 a devil for horse racing 이라 한다. 즉 미치도록 열중하는 사람...
또한 보통 무보수로 조수노릇을 하는 것을 serve a person as a devil 라고 한다.
우리 태극전사를 위해 열심히 응원하고 성원을 보내는 응원단의 이미지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런가하면, 단단히 혼쭐이 났다는 표현을 I had the devil of a time. 이라 한다 하고,
That's the devil. 하면 `그것이 어려운 점이다.`라는 뜻이라고 하니...
상대팀이 우리 `붉은 악마`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은 `태극전사`들에게 단단히 혼쭐이 나고
또 그래서 승승가도에 가장 어려운 존재로 여기게 된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 아니겠나 말이다. ^-^
그런데... 사실은 뭐, `악마`라는 표현에 대해 종교단체까지 나서서 너무 그리 민감할 필요는 없다.
`붉은 악마`는 근본적으로 각 프로축구 구단의 서포터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PC통신 축구동아리 집단이며,
만일 언론과 기업의 집중조명을 받지 않았다면 주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모여 만든 회원수 3만∼4만 정도의
조금 큰 동아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정도 회원수를 거느린 동아리는 통신공간 안에 수없이 많다.
"왜 응원단의 이름을 붉은 악마라고 부르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들 중 한 명은
"귀여운 이름이라고 생각되어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라고 가볍게 대답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사실 `괴이하다`는 뜻의 `엽기(獵奇)`라는 말도 그리 좋은 이미지로 사용되던 단어는 아니었으나
`엽기적인 그녀`를 나쁜 이미지로 보는 사람보다는 웬지 귀엽고 깜찍하고 발랄하고 무언가 평범하지않고 튀는...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단어로 꾸미는 것보다 더 친근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붉은 악마` - 웬지 그 말을 들으면 끈질기고 악착같은 젊은 투지가 느껴진다.
만만치 않은 강인한 승부근성이 온몸을 사로잡지 않는가? 그러면 됐다!
우리는 그들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단순한 구경꾼의 입장이기를 거부하고 참여적인 응원을 펼치고 있다.
붉은 악마가 추구하는 방식은 '축구를 축구답게 즐기는' 가장 원초적인 응원이다.
즉, 선수들과의 교감을 통해 선수들은 경기력을 극대화 시키고, 관람하는 팬들도 선수들의 흥분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그들의 표현대로 우리 대표팀의 `열두번째 선수`인 것이다.
`붉은 악마`는 공식 응원 티셔츠를 지정한 적이 없다.
붉은 색 옷이면 누구나 함께 응원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