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서울 SK의 팬도 아니고, 원주 DB의 팬도 아닙니다.
4월 1일 씁쓸하게 홈에서 시즌을 마무리한 안양 KGC의 팬입니다.ㅎ
그래서 서울 SK의 승리도, 원주 DB의 승리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
근데, 휴가라서..(휴가를 냈던 이유는 안양 KGC의 챔결 진출에 대한 팬심어린 믿음 때문에..)
원주까지 보러가는건 오버인 것 같고, 잠실은 가까우니, 학생체육관에서 있었던 3,4,6차전은 직관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좀 소소하게, 챔결을 보면서 했던 생각들을 좀 나눠보고자 합니다.ㅎ
(판정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결정적인 장면도 있었지만, 항상 결국 우승은 더 간절했던 팀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결승까지 왔나?
서울 SK는 전주 KCC와 함께 시즌 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팀이었습니다.
기대에 부응하기라도하듯 개막 후 무려 7연승을 내달렸고, 1라운드 단독 1위로 올라섰었죠.
팀의 중심 선수인 김선형이 시즌 두번째 경기인 모비스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했지만,
다양한 포워드를 바탕으로 빠른 농구를 살리겠다는 문경은 감독의 계획은 꽤나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죠. 12월 12일 홈에서 있었던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엄청난 역전패를 당한 후
역전패의 휴유증 때문인지 우승후보답지 않은 승패를 반복하며 선두권에서 잠시 밀려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김선형의 복귀와 함께 다시 한번 상승세를 탄 서울 SK는 3월 6경기를 모두 잡으며,
결국 정규리그 2위 4강 직행의 카드를 잡아냅니다. 6연승 기간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 전주 KCC와의 2위 결정전이었죠.ㅎ
반대로 원주 DB는 이번 시즌 하위권으로 분류되던 팀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팀의 중심이었던 허웅이 군에 입대했고, 김주성은 한살 더 먹었으며, 윤호영의 복귀는 불분명했죠.
믿음직했던 외국인 선수 듀오(맥키네스-벤슨)도 해체되어 이상범 감독 스스로도 리빌딩을 천명한 시즌이었습니다.
개막 후 5연승을 거뒀을 때, 대부분의 팬들 및 소위 전문가들도 원주 DB의 선전을 한때 돌풍으로 취급했었죠.
3라운드가 넘어가고 시즌 중반이 지나가도 내려올줄 모르는 원주 DB의 성적을 보면서도 여전히 우승은 어렵다,
디온테 버튼은 슬슬 분석될 것이다, 이런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범 감독의 원주 DB는 결국 시즌 끝까지 순위표 맨꼭대기를 지켜냈습니다.
두경민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의 성장, 상상 이상이었던 버튼의 맹활약, 생각보다 건강한 시즌을 보낸 윤호영과 김주성,
우승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원주 DB가 우승한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원칙을 지킨 이상범 감독의 팀운영이었다고 봅니다.
경기중 집중 못하는 선수는 누구라도 벤치로 불러들였고, 태업 논란이 있었던 두경민은 과감하게 로스터에서 제외시키기도 했었죠.
챔피언 결정전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졌나?
두팀 모두 워낙 상승세의 팀이었고, 좋은 분위기와 좋은 경기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챔피언 결정전 맞대결은 정말 기대가 컸지만,
원주 DB가 워낙 4강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휴식일을 길게 가지고 간데다,
서울 SK는 헤인즈의 이탈이라는 불안요소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원주 DB의 우승 가능성이 높지 않나 생각했었습니다.
원주에서 있었던 1,2차전은 이런 예상을 따라가는 듯 보였습니다.
두 경기 평균 38.5득점을 터뜨린 버튼의 활약은 서울 SK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불 붙은 버튼은 막을 수가 없었고, 4강 전주 KCC와의 경기에서 평균 23.8득점을 했던 메이스는 벤슨에게 막혀 아무것도 못했죠.
장소를 잠실 학생 체육관으로 옮긴 3차전은 서울 SK에겐 정말 벼랑 끝 승부였습니다. 그리고 문경은 감독은 과감한 변화를 주죠.
화이트, 변기훈, 안영준, 김민수, 최부경을 선발로 출전시킵니다. 앞선 두 경기에선 김선형, 메이스가 스타팅 라인업에 있었죠.
팀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김선형을 선발에서 제외하고 경기 후반 필요한 상황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용 방법을 바꿨고,
벤슨에게 계속 밀리고 있는 메이스의 활용도를 외곽 쪽으로 바꾸고 벤슨의 보드 장악력은 장신 포워드들로 커버했습니다.
수비 쪽에서도 변화를 줬는데, 특히 버튼에 대한 수비,
1,2차전 모두 38득점 이상을 기록했던 버튼은 3차전 25점을 기록했고, 3~6차전 4경기 평균 20득점 초반에 머물게 됩니다.
4강부터 유지해온 압도적인 지배자의 모습을 서울 SK가 어떻게든 축소해갔죠.
기본적인 수비는 3-2 지역 방어로 버튼의 개인 공격을 견재하면서 돌파 후 마무리를 못하고 킥아웃 패스를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버튼의 돌파로부터 발생한 외곽 찬스는 장신 포워드들의 활동량으로 커버하며 DB의 외곽 슈터들이 단번에 슛을 못던지게 만들었죠.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최원혁 카드, 본인이 직접 버튼을 막아보겠다고 나섰다던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일단 버튼이 공을 잡지 못하도록 최대한 밀착하고 발로 쫓아다니면서 괴롭혔는데,
DB 입장에서 안타까운 점은 신장의 우위가 있음에도 DB의 다른 선수들이 버튼에게 볼투입을 계속 못해줬죠.
버튼이 공을 잡기 위해선 아예 베이스라인 부터 공을 몰고오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올라오면 한 걸음도 쉽게 보내지 않으려는 최원혁의 혼신을 다한 수비와 3-2 지역 방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튼 스스로도 잘 풀리지 않는 경기 때문에 본인에게 짜증이 났겠지만, 본인을 도와주지 못하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짜증이 나는듯 했습니다.
여기서 또 다시 아쉬운 점이 이상범 감독이 시즌 내내 철저하게 지켜온 본인의 철학과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분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4차전부터 서울 SK의 수비에 버튼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범 감독은 버튼을 빼지 않았죠. 시즌 중이었다면 분명히 벤치로 버튼을 불러들였을 상황인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게 6차전 3쿼터 5분을 남긴 상황이 되어서야 나옵니다.
3쿼터 5분 15초가 남아있던 상황에서 벤치로 나온 버튼은 3쿼터 49초가 남았을 때 코트로 다시 돌아옵니다.
버튼이 벤치에 나가있는 동안 10점이었던 점수차는 3점차가 되었고, 돌아온 버튼이 마지막 원샷을 성공시켜 3쿼터는 동점으로 마무리가 되죠.
이상범 감독은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고, 꼴찌 후보 원주 DB를 정규리그 우승까지 이끄는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고 믿음으로 지켜보는 모습은 다른 강팀들과 다른 매우 감동적인 모습이었죠.
그랬기에, 이해는 가지만, 이상범 감독의 버튼 고집은 너무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농구는 원주 DB의 농구가 아니었죠.
챔피언 결정전 이상범 감독의 모습은 과거 에밋고, 애런고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물론 부상으로 이탈한 선수들이 많았기에 기존 로테이션 농구를 하기 어려웠겠지만,
뚜렷한 반전 카드도 없었고, 그렇다고 기존의 원주 DB의 농구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챔피언 결정전을 마무리한건 분명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즌 MVP 두경민, 김선형 선수의 '5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말처럼,
아직은 냉정함보단 급한 마음이 많고, 이기려는 의지는 강하지만 요령이 없었던 모습들,
쫓아가는 순간 MVP다운 외곽포를 쏟아냈지만, 결국은 승리로 이끌지 못했던 모습들,
어쩌면 아직 더 성장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여전히 젊고 기회는 있으니까요.
재밌는 시즌이 재밌게 끝이 났습니다.
시즌 내내 내려갈 팀이라며, 챔결은 못간다고 농구 기자가 삭발까지 약속했던, 원주 DB의 끝을 알 수 없었던 반전과,
5년전 챔결에서 스윕을 당하며, 벼르고 벼러왔던 서울 SK의 18년만의 우승,
아쉽게 돌아서야했던 원주 DB 팬들에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이번 시즌 보여준 이상범 감독의 리더쉽이라면 분명 다시 또 반전의 순간은 오리라 봅니다.
그리고 16년의 긴 프로생활을 마무리한 김주성 선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서울 SK의 처음과 끝이라던 애런 헤인즈의 이탈 속에서, 드디어 문애런을 깨고 스텝업을 이룬 문경은 감독,
게으른 팀, 우승 못하는 팀이라는 서러움 속에 우승을 기다려온 서울 SK 팬 여러분 진심으로 우승을 축하드립니다.ㅎㅎ
다음엔...안양 KGC가 우승했으면 좋겠네요.ㅎㅎ 특히나, 홈에서, 제발..ㅎㅎ
첫댓글 정리를 잘 해주셔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물론 저도 안양팬이라 작년만큼은 아녔지만
양팀의 시원시원한 공격력과 모든경기 박빙으로 흘러가면서 정말 재밌는 챔프전 이었던것 같습니다.
DB는 시즌내내 큰 부상없이 선수들이 잘 견뎌 주었는데 플옵부터 부상자가 나오면서
가뜩이나 얇은 뎁스에 부담을 줘 결국 우승을 놓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서민수, 김주성의 동반부진과 유성호를 끝까지 쓰지 않은게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양팀 선수, 팬분들 모두 수고하셨고 버튼과 화이트는 내년에도 보고싶네요.
정확한 분석과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아울러 79다마님께서 응원하시는 KGC에게도 다음시즌 더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삼공사의 경우 오세근을 계속 잡을 수 있다면, 또한 김승기감독이 신인선수들을 조금더 게임 투입해서 키워준다면 항상 우승에 근접한 팀이 아닐까 합니다. 양희종, 오세근의 코어에 전성현, 문성곤 같은 신인이 좀더 성장해준다면 국내선수로서는 밀리지 않은 구성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