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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4U 콜세어 전투기
"F4U는 빠르고 중무장에 방어력도 높아 격추하기 힘든 훌륭한 비행기였다. F4U가 가장 좋은 전투기였다고 생각한다."
- 미군의 전투기중 어느것이 가장 강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일본 제국군 측의 답변
분류
단발단좌 전투기
전장
10.2m
전폭
12.5m
전고
4.5m
익면적
29.17㎡
엔진
프랫&휘트니 R-2800-18W 공랭식 복열 18기통 성형엔진 "더블 와스프", 기본 2100마력, 최대 2800마력
자체중량
4,158 kg (9167 lb)
전비중량
5,626 kg (12405 lb)
최대속도
746 km/h (403 knots)
항속거리
1,617km
작전 한계고도
12,649 m (41,500 ft)
상승력
해수면 4770 ft/min, 최대 4830 ft/min
무장
주익에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6정 문당 400발의 탄약 또는 20mm M2 or M3 기관포 문당 231발의 탄약, 5인치 항공기용 고속로켓 8개, 500~2000lb 폭탄 최대 3발
Vought F4U Corsair,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활약을 한 미국의 단발 프로펠러 함재기로써 콜세어(Corsair)라고 한다. 속도, 화력, 기동성등이 고루 우수한 기종으로서 특히 고속성능이 뛰어났던 콜세어는 주로 미 해군 항공대와 미 해병 항공대에서 운용했으며 파일럿들에게는 주로 호그(Hog = 수퇘지)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콜세어는 독특한 형상과 특성을 가진 기종으로서 이로 인한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인하여 'U-버드', '올드 벤트 윙', '굽은 날개의 소위 제거자', '오키나와의 천사', '마리아나의 연인', '죽음의 휘파람' 등의 다양한 별명으로 불렸다.
1942년부터 1952년까지 모두 16개 모델, 1만 2,500대 이상이 생산된 콜세어는 1957년까지 미 해군 항공대와 미 해병 항공대의 주요 야간전투기 및 전폭기로 활동하였다.
개발을 맡은 '보우트(Vought)'사(社)는 1938년에 V-166A와 V-166B라는 두개의 원형기를 미해군에 제시하였는데 V-166A은 와일드캣이나 버팔로에도 쓰인 기존의 R-1830엔진을 장비한 기종이었고 V-166B는 신형 R-2800엔진을 장비한 기종이었다. 해군은 비교 검토후 V-166B를 채택하였고 이후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어 1940년 5월에 시제기인 XF4U-1의 첫비행을 하게 된다.
2.1. 주익
2.1.1. 설계
콜세어의 최대 특징은 전체적으로는 저익기에 가깝지만 익근은 중익기의 형상을 띄며 하각으로 시작해 상각으로 끝나는 독특한 형상의 역갈매기형 주익(inverted gull wing)이다.
이런 주익은 랜딩기어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채택된 디자인으로, 그 근본적인 원인은 콜세어의 거대한 프로펠러에 있었다. 함재기이면서 중량이 10,000 파운드를 넘긴 콜세어는 강도를 높일 필요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착함시 집중되는 하중을 부담해야 하는 랜딩기어가 특히 그러했다. 문제는 랜딩기어가 튼튼하기 위해서는 짧고 굵게 만들 필요성이 있음에도 콜세어의 프로펠러의 직경이 13피트 4인치에 달해서 일반적인 형상의 주익에다 랜딩기어를 짧게 했다가는 프로펠러가 바닥을 긁을 판이었고, 랜딩기어를 연장하자니 요구강도 충족을 위해 너무 크고 무거워져 성능의 이점을 상실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결국 상기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항력을 줄이기 위해 랜딩기어를 날개의 꺾이는 부분에 설치해서 길이를 줄일 수 있는 역갈매기 형상이 채택되었다.
역갈매기 형상의 주익은 중익기와 저익기의 장점을 조합할 수 있으며 간섭항력이 적고 필렛이 필요없다는 장점이 있으나, 항공역학적으로는 깨끗하지 못한 형상이다. 이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이 발현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시제기인 XF4U-1에서는 빠른 속도를 확보하면서도 공력적으로도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서, 이후 개발은 이 XF4U-1을 토대로 진행되었다.
2.1.2. 보조익
보조익은 골조와 표면 모두 목재로 제작되었고 표면에는 방수를 위한 직물커버가 씌워졌다. 목재합판으로 이루어진 표면은 뻣뻣하면서도 매끄러운 특성을 가져 종래의 목재 골조에 천을 씌운 구조에 비해 항공역학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피격실험에서도 전금속제 보조익과 비교시 바람직하지 않은 돌기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이점을 드러내어 금속보다 우선하여 채택되었다.
완성된 보조익은 스틱포스가 낮고 효과가 우수한 특성을 나타내었으며 특히 고속에서의 성능이 뛰어났는데 이는 재래식 보조익과는 달리 고속에서의 성능저하가 없었기 때문이다. XF4U-1시절부터 참가한 오리지날 테스트 파일럿중 하나였던 Boone T. Guyton에 의하면 고속에서의 전투기동시엔 초당 180도가 넘는 횡전이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왼쪽 보조익의 뒷전 중앙에 트림탭을 설치하여 비행중 보조익의 트림이 가능하도록 했다.
2.1.3. 플랩
플랩은 NACA 슬롯티드 플랩이 채택되었는데 문제는 이를 역갈매기익에 어떻게 설치하느냐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날개와 달리 굽어진 부분에 플랩을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결국 플랩을 내측, 중앙, 외측 3개의 섹션으로 분할하고 각 섹션 사이에 전개시의 갭을 매우기 위한 패널이 설치되어 성능의 저하가 없도록 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외측섹션이 천으로 씌워진 것을 제외하면 전금속으로 제작되었으며 동작방식은 유압식이었다. 여기에 속도에 따라 플랩의 전개각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오토매틱 블로우-업 시스템과 과부하시 플랩을 보호하는 오토매틱 릴리프 시스템을 적용하여 운용이 쉽도록 하였으며 메뉴얼 조작시에는 0도부터 50도까지 10도씩 5단계로 조절이 가능했다.
조작이 용이하고 효과가 뛰어난 플랩으로 인하여 콜세어는 플랩전개시 실속속도가 낮고 선회반경이 좁은 기종이 될 수 있었으며 보통 20도 이하의 전개각이 전투플랩으로, 50도의 풀플랩이 단거리 이/착륙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콜세어의 플랩은 후에 노획한 제로센과의 선회비교에 전투플랩을 전개한 F4U-1D가 150노트까지 제로센의 선회에 따라붙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그 우수성을 증명하게 된다.
2.1.4. 랜딩 기어
상기한 대로 콜세어는 랜딩기어는 그 강도가 대단하여 다이브 브레이크로도 사용이 가능했는데 이는 기어 자체를 다이브 브레이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메인 기어에 기대는 형식으로 전면에 다이브 브레이크 페어링을 위치시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메인기어가 튼튼해도 테일기어등의 다른 전개면들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랜딩기어로 사용할 경우는 370km/h 정도의 속도제한이 있었으며 다이브 브레이크로로 사용할 경우에는 메인기어만 전개하도록 레버를 조작해주어야 했다.
다이브 브레이크로 사용할 경우의 속도 제한은 730km/h 정도였다.
2.2. 동체
동체는 R-2800을 탑재하면서 최대한 낮은 항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타이트한 설계가 적용되었다. 골조와 표면 모두 전금속으로 제작되었으며 당시 주류이던 볼트용접 대신 스팟용접을 사용하는등의 신기술을 동원하여 최대한 낮은 표면항력을 확보했다.
덕분에 항력면에서 불리한 R-2800 엔진을 채택한 기종임에도 영양력 항력계수(Zero-Lift Drag Coefficient)가 0.177에 불과하여 같은 엔진을 채택한 동세대 기종들에 비교하여 동일 고도, 동일 출력에서 가장 빠른 기종이 될 수 있었다.
콜세어의 장갑은 엔진부터 조종석까지 이어지는 동체 상부를 커버하는 장갑판과 파일럿의 후두부 상방을 커버하는 캐노피의 방탄판으로 인하여 공중전 도중 후상방에서의 편차사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되으며 시트의 등받이, 깔개등도 방탄판을 사용하여 전/후방의 공격에서 파일럿을 보호했다.
초기 생산형에서는 콕핏 패널이나 동체내의 오일 탱크등에도 방탄판이 존재하였으나 후기형으로 오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콜세어의 엔진은 초기 시제기 시절에는 '프랫&휘트니'사가 개발한 R-2800 더블 와스프 계열 공랭식 성형엔진의 프로토타입으로 분당 회전수 2600에서 1800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는 XR-2800-2를 장착했으나 후기 시제기에는 1850마력을 낼 수 있게된 XR-2800-4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콜세어는 R-2800 엔진을 장착하고 비행한 첫번째 기체로서 서로의 개발에 있어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2단 2속 슈퍼차저와 밴딕스 스툼버그 카뷰레이터가 탑재된 콜세어의 R-2800 엔진은 중력이나 관성, 냉각현상등에 영향받지 않고 높은 고도에서도 강력한 출력을 제공하는 우수한 엔진으로 여기에 제트 추진 배기관 시스템을 적용하여 추가적인 출력을 확보하는 구조였다.
2.4. 냉각 시스템
양 주익 익근부 리딩엣지에 존재하는 에어 인테이크 안쪽에는 내측의 동체 연결부에 슈퍼챠저를 위한 인테이크 덕트와 인터쿨러가, 외측에는 오일쿨러가 위치하고 있는데 같은 R-2800 계열기인 썬더볼트나 헬켓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
- 넓은 용적을 확보할 수 있어 냉각 효율이 좋다.
- 엔진열의 영향이 덜하여 냉각 효율을 유지하는데 좋다.
- 프로펠러 후류를 양쪽으로 받고 냉각에 활용할 수 있어 불리한 환경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
단점
- 정면에서의 피탄에 약하다. 오일쿨러가 엔진 뒤에 위치한 헬켓과 썬더볼트는 정면에서의 공격을 엔진이 막아주며 엔진과 조종석 장갑의 도움으로 정면이 아닌 공격에도 제한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콜세어는 정면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작은 구경이라도 위협적이다. 일단 오일쿨러가 피탄되어 오일이 새기 시작하면 귀환하거나 불시착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의 냉각 시스템은 피탄에 약하긴 하지만 냉각 효율만큼은 뛰어나 밀리터리 파워로 상승시 헬켓이 14도의 오일-인 과열을 기록할때 콜세어는 과열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2.5. XF4U-1
완성된 콜세어의 시제기인 XF4U-1은 1940년 5월 29일 첫 비행에 성공하고 관계자들 앞에서 최고속도 652 km/h (405 mph)를 기록함으로서 육군항공대의 XP-38이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깨고 단발전투기 및 해군기로서는 최초로 400 mph의 벽을 허물며 공냉식 엔진에 대한 편견을 없애버렸다.
당시의 기체는 최대 상승력 2660 ft/min, 최대 작전고도 35,200 ft, 최대 급강하 속도 890km/h를 기록했으며 무장은 양 주익에 장착된 50구경 기관총 2정과 엔진 카울링의 30구경 기관총 2정이었다.
솔로몬 전역의 콜세어, 사진 전방의 기체는 새장캐노피 장착형 기체중에서는 후기형에 속한다.
뛰어난 성능에 만족한 미 해군이 1941년 6월 F4U-1 584대를 발주하면서 양산에 들어갔다. 양산형은 2000마력의 R-2800-8 엔진을 장비하고 카울링에 있던 기관총을 폐지하였으며 대신 양 주익에 총 4정의 .50cal 기관총을 추가하여 총 6정의 .50cal 기관총을 장비, 당시로서는 대단한 화력을 갖추게 되었다. 조종석 앞쪽에는 자동방루식 연료탱크가 신설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조종석의 위치가 뒤쪽으로 밀려나게 되어 이착륙시의 전방시야가 불량하게 되었다. 캐노피는 새장같이 촘촘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일명 버드케이지 캐노피가 채택되었는데 강도면에선 유리한 구조였으나 프레임이 시야를 방해하고 콕핏시트의 위치도 낮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시야가 좋지 못했다.
조종석 앞에 위치한 자동방루식 연료탱크에는 총 237갤런의 연료를 탑재할 수 있었고 양 주익 내부에는 각각 62갤런씩 총 124갤런의 연료를 추가로 탑재할 수 있는 연료탱크가 있었다. 익내에 존재하는 연료탱크는 자동방루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아 보조연료탱크로서 사용되었는데 긴급시에는 분사가 가능하도록 하여 피탄에 의한 위험을 줄이도록 했다.
1942년 등장한 극초기형의 모습.
이 초기형의 F4U-1들은 콜세어를 수령한 최초의 해군 비행대인 VF-12의 착함 훈련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 드러내어 항모운용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 연장된 기수로 인해 이착륙 자세에서의 전방시야가 나빠 이착함 난이도가 높고 사고위험이 크다.
- 덱에 닿는 순간 테일이 튕겨오르거나 좌우로 흔들린다.
- 착륙속도에서 왼쪽 날개가 갑작스런 스톨에 빠진다.
결국 F4U-1은 생산량의 거의 전부가 해병대에 제공되었고 보우트사는 개량에 매진하게 된다.
첫 실전의 주인공은 과달카날의 핸더슨 비행장에 전개한 VMF-124였는데 기체에 대한 이해 부족과 아직 선회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전투사상, 당시 비교적 뛰어났던 일본기 파일럿들의 숙련도등의 문제가 겹친 결과 43년 2월 14일날 치뤄진 데뷔전에서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해병파일럿들은 이후 빠르게 콜세어에 적응하여 4월에 케네스 A 월쉬 중위가 첫 콜세어 에이스가 된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전과를 올리기 시작했고 43년 말에 전장에 등장한 헬켓과 투톱체제를 이루며 일본군을 밀어붙였다.
"남태평양에서 날마다 계속된 싸움으로 콜세어는 일본 제로의 모든 모델보다 확실히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 체스터 니미츠
참고로 이 시기의 초기 양산형들은 콕핏 설계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비상용 유압으로 랜딩기어를 긴급전개하는 레버가 그것이었다. 조종중 무심코 건드리기 쉬운 장소에 위치한데다 한번 전개하면 기어를 다시 올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전투중 실수로 건드려 내려버리면 끝장이었다. 테스트 파일럿의 증언에 따르면 이로 인한 희생으로 화가나 직접 따지러 온 조종사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VMF-224 소속 F4U-1A, 해병전투기라는 특수한 환경은 해변의 백사장과 야자수가 어울리는 전투기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후기형 새장캐노피 콜세어는 백미러 위치를 높여 후방시야의 향상을 도모했으나 근본적인 시야불량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콕핏시트의 위치와 캐노피의 형상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대대적인 개량으로 콕핏시트의 위치가 변경되고 프레임이 적은 벌브형 캐노피와 신형 건사이트 반사경이 설치된다. 결과, 콜세어는 확트인 전방 시야를 가지게 되었으며 거기에 더해 캐노피 프레임 상부와 양측면에 총3개의 백미러가 설치되어 우수한 후방감시력도 가지게 되었다.
VF-17 Jolly Roger의 최고 에이스인 아이라 캡포드기. 신형 캐노피, 높아진 시점, 신형 건사이트 반사경, 상부와 측면의 백미러를 확인할 수 있다.
기존과는 구분되는 형상을 가지게 된 이 신형 콜세어들은 후기형 새장캐노피 기체들과 함께 태평양 각지에서 일본기들을 몰아붙이며 대단한 전과를 올리게 된다. 이중에는 VMF-214 일명 검은양 비행대나 VF-17 졸리 로져스 등이 특히 유명하다. 또한 이들이 사용한 콜세어들은 비행성능을 높이기 위해 어래스팅 후크를 제거한 상태였기 때문에 성능면에서 약간의 향상이 있었으며 이 후의 콜세어들도 지상작전시에는 후크를 제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콜세어는 적과 아군의 기존 기종들을 모든 면에서 능가한다."
- 로버트 프레이저
개량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구형의 13피트 4인치 직경의 6525A-21, 혹은 6443A-21 프로펠러깃을 F6F에 쓰이는 주걱(Paddle) 모양의 13피트 1인치 직경의 6501A-0 프로펠러깃으로 교체하여 성능의 향상을 이끌어냈고 43년 말부터 생산된 후기생산분에 이르러서는 물분사기를 장비한 최대 출력 2250마력의 R-2800-8W 엔진을 갖추게 되어 여기에 6501A-0 프로펠러깃으로 업그레이드까지 마친 F4U-1A는 최종적으로 피크고도에서 693km/h에 달하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또 항모 운용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개량의 일환으로 후기생산분부터는 오른쪽 날개의 리딩 엣지에 6인치 정도의 크기를 가진 스포일러를 설치하여 완만한 스톨특성을 확보했고 테일휠을 길이가 연장된 새로운 타입으로 변경, 러더조작과 직접 연동되도록 수정하여 착륙순간 기체가 튕겨 오르거나 좌우로 흔들리는 문제를 해결했다.
새장캐노피 콜세어부터 F4U-1A에 이르는 시기까지 콜세어는 해병항공대의 주력전투기로서 육상에서 운용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콜세어는 특징적인 3-tone 도장과 함께 함재기임에도 해변의 백사장과 야자수가 어울리는 독특한 기체로 남게되었다.
F4U-1C는 F4U-1A에 M2 20mm 기관포를 장착한 기종으로 200대만 한정생산되었는데 첫 시제기는 43년 등장했으나 실전 투입은 1945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실전 배치된 기종들은 시기상 F4U-1A보다는 F4U-1D에 무장을 환장한 기종으로 실전에서는 고고도에서 기관포가 얼어붙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새로운 오일을 사용하고 개량된 히터등을 설치하는 개수가 이루어졌다.
사용한 비행대로는 VMF-311과 VF-85이 유명한데 이중 VMF-311은 71:0이라는 무지막지한 공중전 교환비를 자랑한다.
"F4U-1D는 일본의 최신 기체들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랭크 및 조지와의 성능차는 크지 않지만 적극적인 공격으로 승리하기에 충분하다."
- 로저 핸드릭
44년에 등장한 F4U-1D는 극초기형까지는 F4U-1A 후기형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이내 캐노피 상부에 남아있던 프레임과 방루처리가 되어있지 않아 사용이 기피되던 익내연료탱크를 제거하고 R-2800-8W 엔진과 6501A-0 프로펠러 깃을 기본적으로 탑재한채 양산되었다.
F4U-1D는 등장 시기상 이미 일본의 항공세력이 헬켓에게 박살난지 오래였기 때문에 주로 전폭기로서의 활약이 많다.
지상공격능력과 항속거리의 향상을 위해 양 주익 안쪽에는 각각 최대 1600파운드의 탑재량을 가진 스터브 파일런이 추가되었으며 양주익 외측에는 HVAR로켓 8발을 장착할 수 있는 로켓랙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추가된 파일런과 랙들로 인해 무게와 항력이 늘어났음에도 F4U-1A 후기형과 같은 엔진을 사용한 결과 F4U-1A 후기형에 비해 비행성능은 약간 낮아졌다.
F4U-1D부터는 완전한 항모운용능력을 획득하여 44년 말부터 항모부대에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새장캐노피를 가진 초기형 콜세어에 AN/APS-4 레이더를 설치한 야간전투기 형식으로 배기관등의 추가 개량이 이루어진 기종이다.
항모에서 작전한 최초의 야간전투기이자 최초로 미항모에서 정식 운용된 콜세어이기도 한데 44년 1월부터 44년 7월까지 CV-6 엔터프라이즈에서 작전했던 VF(N)-101소속 F4U-2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최종적으론 5기의 확정격추와 다수의 비확정격추를 기록하며 한대도 잃지 않았다.
F4U-2로 개수된 F4U-1은 총 34대로 32대는 공장에서 2대는 VMF(N)-532에서 이루어졌다.
"적의 기체는 F4U-4에 의해 압도당했다. F4U-4는 적기의 머리위를 압박하며 우월한 스피드를 드러냈다."
- 1945년 6월 21일 VMF-223의 항공기 활동 보고서, 쇼키로 추정한 하야테와의 교전후.
엔진을 새롭게 재설계된 C시리즈 R-2800인 R-2800-18W로 교체하고 프로펠러날도 4엽으로 늘린 기종. 기수가 살짝 연장되고 카울링 아래에 흡입구가 추가되어 기수형상이 변경되었다.
자세한 성능은 문서의 시작부에 있는 제원란 참조.
45년 말에 생산된 1000번째 기체부터는 엔진이 R-2800-42W로 교체되어 성능이 더욱 향상되었다.
또 F4U-4 후기 생산분 부터는 캐노피의 형상이 변경되고 캐노피 후상방의 방탄판이 사라져 시야가 개선되었다.
F4U-4B형은 본래 영국군을 위한 것이었으나 전쟁이 끝나 취소됨에 따라 미해군이 접수해 M3 20mm 기관포 4문을 장착한채 사용했고 한국전쟁에서도 맹활약한다. 최초로 미그 15를 격추한 프롭기가 바로 이 F4U-4B형이다. 한때 F4U-4C라 불렸던 기종도 미군의 서류상으론 F4U-4B이다.
F4U-4B/C 부터는 R-2800-42W 엔진이 기본이 되며 로켓만 장착이 가능했던 주익 외측의 랙들이 100~200파운드 폭탄도 장비가능한 새로운 타입으로 변경된다.
고정 무장의 경우 F4U-1, F4U-1A, F4U-1D, F4U-4는 날개에 장착된 6문의 AN/M2 12.7㎜ 기관총이었고 F4U-1C는 M2 20㎜ 기관포 4문이었으며 F4U-4B와 F4U-5는 신뢰성이 향상되고 발사속도가 증가한 M3 20mm 기관포 4문이 무장이었다.
F4U-1 초기형은 양 날개에 100lbs 폭탄 2발 밖에 장착할 수 없었으나 이후 센터라인과 양 주익 내측에 폭탄/드롭탱크용 파일런을 장착할 수 있게 되면서 F4U-1A는 센터라인과 동체양옆에 폭탄이나 드롭탱크를 최대 3개까지 장착할 수 있었다. F4U-1C와 F4U-1D형은 양 날개에 HVAR 로켓을 위한 랙 8쌍을 갖추고 있어서 추가로 8개의 로켓을 탑재할 수 있었다.
이후 F4U-4형은 100lbs나 250lbs같은 소형 폭탄도 장착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로켓 랙을 장비했으며 이후 F4U-4B와 F4U-5에서는 무게와 부피가 줄어든 새로운 형태의 랙이 적용되었다.
폭장량의 경우 초기형부터 2,000lb(약 900kg)에 달했는데 이는 일본군 항공부대의 쌍발 폭격기 G4M의 800kg보다 100kg 많은 양이다. 그러나 폭장량은 이후에도 계속 늘어나 F4U-1D 시점에는 4,000파운드가 넘는 최대폭장량을 가지고 있었다.
똑같이 항모에서 이함하는 주제에 전투기도 아닌 순수 폭격기인 D4Y 스이세이는 500Kg이었다.
장착할 수 있는 무장은 5인치 FFAR/HVAR 로켓, Tiny Tim 로켓, 100lbs/250lbs/500ls/1,000lbs/2,000lbs 폭탄, Bat 레이더 유도 폭탄등이었다.
하드포인트 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체 센터라인 파일런 = 1발의 250~2000lbs 폭탄, 1발의 Tiny Tim 로켓, 1개의 150~175갤런 드롭탱크, 1발의 Bat 레이더 유도 폭탄
양주익 내측 파일런 = 6발의 100lbs 폭탄, 2발의 250~1600lbs 폭탄, 2발의 Tiny Tim 로켓, 2개의 150갤런 드롭탱크
양주익 외측 파일런 = 8발의 FFAR/HVAR 로켓, 8발의 100~250lbs 폭탄
이러한 폭장능력으로 인하여 콜세어가 대량으로 배치된 대전 말에는 대함공격 임무까지 도맡아 처리했고, 어벤져나 헬다이버 같은 뇌격기나 급강하폭격기들은 피격된 파일럿 구조용 구명보트나 탑재하고 출격하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태평양 전쟁 말기, 사실상 일본군의 대형 함선이 소멸하고 콜세어가 폭격기로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게되자 미해군은 콜세어가 항공모함 함재기 구성의 대부분을 이루게 되는 "전투기 항모"가 등장하면서 사실상 대함/대공/육상지원 세가지 역할을 모두 해낼수 있는 멀티롤 전폭기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런 폭장량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해병대였다. 콜세어의 폭장량이 뛰어나기는 하나 항모에서 작전해야 하는 한계가 있는 이상 너무 무거운 폭장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배치 초기부터 주익이나 센터라인에 간이 파일런을 설치하는 등의 각종 야전개조로 콜세어의 폭장량을 늘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44년 찰스 린드버그가 기술고문으로 마샬 제도에 방문함으로서 극적인 진전을 맞이하게 된다.
함재기인 이상 콜세어도 긴 항속거리를 요구받아 237갤런의 내부 연료탱크를 갖추고 초기형들의 경우 양 주익에 각각 62갤런 총 124갤런의 익내연료탱크를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내부연료 361갤런을 만재할 경우 보조연료탱크 없이도 2438km의 항속거리를 확보했고 여기에 하나의 175갤런 보조연료탱크를 추가할 경우 그 항속거리는 3444km에 달했다.
F4U-1D 부터는 날개 내 연료탱크가 사라져 내부연료로는 237갤런 만재시 항속거리 약 1600km가 최대 항속거리가 되었다. 대신 양주익에도 150갤런 보조연료탱크를 하나씩 장착할 수 있게되어 최종적으로 3개의 보조탱크로 최대 712갤런의 연료를 탑재해 더욱 장대한 항속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군은 일본군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통 1~2개의 보조 연료탱크를 사용했다.
전쟁말이 되면서 헬켓은 여전히 센터라인에 1개의 보조 연료탱크를 사용한 반면 콜세어는 2~3개까지 사용이 가능했으며 갤런당 항속거리도 콜세어가 더 길었기 때문에 헬켓은 주로 함대방공이나 중단거리 임무를 담당한 반면 콜세어는 빠른 속도를 이용한 요격임무는 물론 본토를 대상으로한 제공권 장악이나 공격대 호위 등의 장거리 임무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대체적으로 후기형 콜세어의 항속거리는 전비중량 기준으로 P-51B/C 머스탱과 비슷한 수준으로서 일본기와 비교하면 떨어지는 편이지만 유럽전선의 기준으로 긴편이다. 이는 유럽전선의 기종들과 비교시 상당한 이점이 되는데 전비중량을 기준으로 하는 카탈로그 성능이 아닌 동일 임무형상을 기준으로한 비교에서 콜세어는 카탈로그 이상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F4U-1D를 예로들면 전비중량 12028lbs는 2400발의 50구경 중기관총탄과 237갤런의 연료를 만재한 상태인데 이 상태에서 F4U-1D는 항속거리가 1600km를 넘기고 6정의 기관총을 동시에 사격해도 30초 동안이나 사격할 수 있다.
이를 유럽 전선의 La-7 같은 소형 기종과 비교해보면 전비중량 기준으로 항속거리가 약2.4배(1600 vs 665 km)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동일 임무형상에서 비교시 La-7 이 만재상태로 수행해야할 임무를 콜세어는 연료를 반 이상 덜고 수행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탄약을 덜어내도 임무수행에 지장이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렇게 되면 콜세어의 기동성과 상승력은 크게 증가할 것이므로 긴 항속거리는 동일 임무형상 기준에서 성능상의 이점을 어느정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기 상대론 오히려 반대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대체적으로 일본기들의 항속거리가 더 긴데다 콜세어는 주로 본토공격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요격을 위해 가벼운 셋팅으로 출격한 일본기들을 상대로 장거리 및 지상공격 임무를 위해 증조탱크와 추가파일런, 폭탄 및 로켓등을 장착한 상태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6. 성능
콜세어는 속도, 화력, 기동성을 겸비하여 성능면에서 사각이 없는 기종으로서 동시기 그 어떤 기종과도 호각이상으로 싸울 수 있는 올라운더였다. F4U-1 계열은 상승력과 가속력이 대전말의 일선급 기체로서는 평범하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F4U-4부터는 해당 분야에서도 최고수준에 도달함으로서 대전 최강 레시프로기의 반열에 들어간다. 더군다나 육상기도 아니고, 설계면에서 제약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함재기 이면서 대전중 만들어진 대부분의 전투기들을 압도한다는 것은 콜세어의 설계가 그만큼 우수했다는 반증도 된다.
최대한 항력을 억제한 설계와 고출력 엔진의 결합이 가져오는 속도는 F4U-1계열만 해도 대전기의 함재기로서는 최고이며 공냉기로 한정하면 저공의 La-7, 고공의 P-47 정도만이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대전말에 등장한 F4U-4계열은 아예 전반적인 고도에서 최고급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가벼운 스틱포스와 효과적인 조종면으로 대형기임을 무색하게 하는 반응성과 순간기동성을 가진 콜세어는 특히 보조익과 승강타의 부스트탭이 효과를 발휘하는 고속영역에서 독보적인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44년 말부터는 Z-2 여압복이 보급되어 그 뛰어난 고속 기동성에 방점을 찍었다.
빠르고 중량급에 강력한 엔진을 가진만큼 에너지 파이팅에도 톱클래스 기체중 하나였는데 여기에 상기한 고속기동성이 더해진 결과, 콜세어는 고속에서의 붐앤줌 전투시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속비행을 중시한 대형기로선 체급에 비해 익면하중이 낮고 양력계수가 높은편이라 유럽전선 기준으론 선회반경이 꽤 좁은 편에 속했고 여기에 우수한 저속추력과 뛰어난 조종성이 어우러져 저속 기동성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특히 자동화 기능이 탑재되고 효율이 뛰어난 NACA 슬롯티드 플랩은 제로센과도 제한적인 저속선회전이 가능할 정도의 잠재력을 제공하여 콜세어를 저속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로 만들었다.
기골강도와 G내성도 막강했다. 태생부터 고속설계를 적용한 체급이 있는 함재기로서 튼튼하게 설계된 콜세어는 다른 해군전투기에 비해서도 더 견고한 기골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넓은 날개, 5톤급의 체급, R-2800 엔진의 우수한 내탄성 및 신뢰성이 어우러져 맷집도 좋은 기체가 되었다.
즉, 처음에도 말했듯이 성능에 사각이 없다. 빠르고 속도에 관계없이 우수한 기동성을 가지며 에너지 파이팅도 잘하는 만능기체인데 거기다 맷집도 좋고 폭장량도 우수하며 항속거리까지 쓸만하다. 이러니 해군과 해병대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다만 F4U-1 계열은 25000피트 이상부터는 슬슬 힘이 빠진다. 44년 말부터 전달된 F4U-4나 전후에 등장한 F4U-5 계열은 고공성능에도 문제가 없지만, 배치가 지지부진하여 거의 활약하지 못했으므로 전쟁중에 주로 쓰인 F4U-1계열 기준으론 유럽의 고공전투형 기종들과 비교시 고공성능이 좀 부족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래의 성능란 세부 항목들은 위의 내용을 좀 더 길게, 그리고 자료와 함께 설명한 것에 불과하므로 결론만 읽고 싶었던 사람들은 읽지 않아도 된다.
사실 대전기 내내 가장 많이 사용된 대표적인 콜세어인 F4U-1 계열은 700 km/h를 넘는 최고속도를 가진 후기형 기종들에 비하면 좀 미묘한 최고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고속도란 기체가 최고의 효율을 보여주는 고도에서만 달성이 가능한 것이므로 실제 전장에서 공중전시 체감하게 되는 상대속도는 고도마다 달라지게 된다. 그런면에서 콜세어는 당시 R-2800계열 기체로서는 예외적으로 해수면부터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전반적인 속도면에서 유리한 기종이었다.
실제로 최고속도로만 따지면 대전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썬더볼트 계열은 막상 실제 전장에선 독일기들에 비해 수평속도면에서 대체적으로 열세를 보였는데, 이는 고고도에서의 최고속도는 빠르지만 고고도를 벗어난 전반적인 고도에선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의 P-47D와 F4U-1A를 비교해보면 신형프로펠러를 장비한 성능향상형 P-47D를 상대로 콜세어의 우위는 25000ft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해수면에서 44km/h의 속도우세를 확보하고 있던 것이 20000ft에서도 34km/h의 우세를 유지하는등 25000피트 이상의 고고도를 제외한 전반적인 고도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후기형끼리도 비교를 해보자면 대전기의 단발 기체중 최고속도에 있어서는 사실상 최고이자 썬더볼트 계열 중에서도 실험기를 제외하면 가장 빠르다는 P-47M을 상대로 비슷한 시기의 F4U-4는 26,000피트까지 우위를 유지하며 해수면에서 30km/h의 우세를 확보하고 있던 것이 20,000피트에서는 40km/h에 이르는등 여전히 전반적인 고도에서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F4U-5에 와서는 29,000피트까지 우세를 보이게 되어 사실상 썬더볼트가 우세를 보일 수 있는 구간은 사라지게 된다.
또한 고도에 관계없이 수평속도면에선 고공에서의 썬더볼트를 제외하면 사실상 동시기 최고라고 말해지는 멀린엔진형 머스탱계열을 상대로도 F4U-1 후기형이 P-51B를 상대로도 24,000피트 이하에선 호각세를 보이며 F4U-4의 경우는 전쟁중 등장한 모든 머스탱계열을 상대로 우세를 보이게 된다.
6.2. 기동성
체급과 무게로 인한 선입견과는 달리 넓은 익면적과 고양력 에어포일을 가진 콜세어는 기동성이 좋은 기종이다. 저속에서의 지속선회가 특기인 제로기나 와일드캣, 헬켓과 비교되었기 때문에 저속선회만을 가지고 기동성이 나쁜 기종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잦은데 이런 저속기동도 유럽전선 기준으로서는 좋은 편에 들어가는 기종으로서 특히 가벼운 스틱포스로 인한 민첩성과 고속기동성의 영역에선 전역에 관계 없이 독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태평양 전선 후반, 일본군 에이스 파일럿이자 교관인 이와모토 테츠조는 제자가 콜세어를 격추했다고 하자 "확실히 잡았나? 불 붙은 정도만으로는 안돼. 구라망은 그 정도로도 살아돌아갈 수 있으니까."라고 평가했다. 미군 군용기들의 우수한 내구성에서 콜세어라고 예외는 아니었던 셈이다. 타니미즈 타케오 비조장에 의하면 특정한 각도에서 사격하지 않으면 아예 총알이 튕겨져나왔다고 한다.
단, 이러한 사례들만 가지고 콜세어가 기관총 공격엔 끄떡없다거나 대구경 기관포의 피탄에도 무난히 귀환이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상술했듯이) 항공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프트 타겟이므로 피탄당한 장소가 나쁘면 제 아무리 크고 튼튼한 항공기라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에하라 료지같이 콜세어를 다수 격추한 일본군 에이스의 '기관총 맞췄는데 튕겨나갔다는건 오인이고 20mm 맞추면 박살난다.' 같은 증언도 있으므로 비행하는 장갑차나 전차 같은 맷집을 상상해서는 안된다.
또 구조상의 취약점도 있었는데 익근의 인테이크 가장자리에 위치한 오일쿨러가 그것이다. 헬켓이나 썬더볼트는 엔진바로 뒤쪽에 오일쿨러가 위치하고 있어 전방에서의 공격을 엔진이 방어해주지만 콜세어는 그렇지 못하므로 정면에서의 공격을 자주 받게되는 지상공격시 생존률은 상기한 두 기종에 비하면 떨어지는 편이다. 이는 한국전쟁에 사용되는 후기형 기종들에서야 해결되게 된다.
7. 평가
1943년 미육군 항공대에서 초기형의 콜세어를 입수하여 테스트한 결과 선회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격투전 성능에 있어서 일선급 육군기들인 머스탱, 썬더볼트, 라이트닝 트리오보다 뛰어나며 주밍 능력에 있어서도 썬더볼트와 동급으로 평가했다.
1944년 미해군 항공대 또한 육군항공대의 P-51B를 입수해 후기형 F4U-1과 비교한 결과 콜세어가 머스탱보다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일본 제국 측의 평가는 의외로 헬캣보다 무섭지 않았다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F6F가 격투전으로도 제로기에 대항할 수 있는 기체였고 F6F를 탄 파일럿들이 F4F 시절부터 제로기와 싸워오던 백전연마된 베테랑들이었던 것에 반해 콜세어의 파일럿들은 초기부터 콜세어를 수령한 일부 부대를 제외하면 평균적인 실력면에서 밀렸던 점등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다른 전투기와는 다르게 어떤 고도에서 만나도 상대하기 어려웠다는 소리나 늑대가 나타났다며 절망감을 나타낸 수기등도 있으므로 기본적으로는 무서운 상대였던 것 같다. 이상하게 콜세어와 헬켓은 일본과 미국에서 상대적인 평가가 다른데, 미국에선 스펙도 뛰어나고 다목적임무도 더 잘 수행하고 한국전쟁에까지 활약한 콜세어를 더 쳐주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본 측에서는 헬캣의 평가가 압도적으로 높다. 콜세어는 제로센으로 어떻게 해서든 격투전으로 끌고 들어가기만 하면 이길 수 있었지만 헬캣은 상기한 것처럼 격투전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힘든 기체였다. 미 해군의 자료에 따르면 후기형 기준으로 전비중량 상태에서의 콜세어와 헬켓의 선회력 차이는 미미했는데 심지어 플랩을 동시에 사용하면 헬캣보다 더 날카롭게 선회할 수 있었고 실제로 선회반경만 놓고 봐도 가장 작았다. 주로 함대방공임무를 담당한 헬켓에 비해 콜세어는 공격대의 호위나 제공장악을 위해 내륙쪽을 드나드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윙파일런과 증조탱크 등을 장착하고 다닌 덕분에 기동성이 저하된 상태였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콜세어는 1944년 말이 되어서야 항모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주로 지상기지에서 해병대 소속의 전폭기로 운용되었고 항모와 함께 적을 찾아다니며 박살내고 다녔던 와일드캣이나 헬켓등의 함재기들에 비하여 능동적인 전투기회가 적어 전과를 올리기 힘들었다. 거기에 본격적으로 항모에 탑재되던 시기에는 이미 일본 제국 항공력은 소멸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전투기보다는 전폭기로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어 많은 기체가 VBF 같은 전투폭격비행단의 주 공격기로 활동하게 되면서 순수한 전투기로서 활약할 기회가 적어 일본 항공기와의 격추 교환비는 헬캣의 19:1에 밀리는 2위인 11.3:1에 머물렀다. 든든한 폭장능력을 활용한 전투폭격기로서의 활약은 투입 초기부터 두드러져 콜세어는 태평양 전선 기간동안 총 14,171톤의 폭장을 투하했다. 전쟁기간 동안 미군 전투기에서 투하된 폭탄의 70%가 바로 콜세어로 부터 투하된 것이다.
대전 후반부터는 문제가 해결되어 운용기간 전체로 따져보면 대전 후반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대부분의 기간동안 함재기로서 잘 운용되었다. 그래도 가장 필요할 때 항공모함 위에 없었다. 이를 증명하는 수치로 콜세어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64051번의 출격을 했는데 그 중 9581번만이 항공모함에서의 출격이었다. 전쟁 중 콜세어 손실은 적 항공기으로 인한 격추로 손실입은게 189대, 대공 사격과 비전투 손실 및 지상 파괴같은 기타 사유 손실로는 1435대였다. 공중전에서 189대가 격추 되고 2,140대의 적 항공기를 파괴하여 최종적인 공중전 교환비는 11.3:1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