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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버팀목이 흔들리면, 그 사회는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된다. 사회의 기본이 되는 교육, 법과 윤리 그리고 언론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교육은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살 수 있게 해야 하고, 법은 국민의 통합을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언론은 공동체를 살찌게 할 시멘트 역할을 해야 한다. 그걸 다 정치, 즉 권력관계로 풀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 ‘독립’ 그리고 만국공법을 이야기했다. 만국공법은 이성이 작동할 때에만 풀리고, 그 때 선악의 판단이 기본이 된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2023.08.07.),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다〉, 잣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바른 소리는 바른 소리이고, 맞는 얘기는 맞는 얘기다. 다른 정파 사람이 바른 소리를 한다고 틀리는 얘기가 되고, 같은 집단 사람이 틀리는 얘기를 하는데 바른 소리가 될 수는 없다. 이치가 그러함에도 반대편이 상식을 말하면 몰상식이라 여기고, 자기편이 거짓을 말하면 참이라 믿는 희한한 세상이다.미국은 지금 문화 전쟁(culture war) 중이다.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 나라들도 참전한 상태다. 아동 인신매매 현실을 고발한 영화 ‘자유의 소리(Sound of Freedom)’가 흥행 가도를 달리는 까닭이다. 미화 1450만달러를 투입한 이 영화는 8월 1일까지 1억5000만달러의 총수입을 올렸다. 덕분에 20배의 예산을 쓴 ‘미션 임파서블’과 ‘인디애나 존스’가 찌그러졌다.
이 영화가 왜 논란거리가 되었나? 콜롬비아 아동 인신매매단의 손아귀에서 120여 명의 아이를 구출해 낸 팀 밸러드라는 실제 인물과 그 배역을 연기한 짐 커비즐이 “큐어논(QAnon) 우파 음모론자들”이라며 문화계 좌파 논객들이 주류 매체를 통해 일제히 이념적 십자포화를 가해댔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싶어 아내와 함께 캐나다 토론토 교외의 인구 54만 도시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직접 보았다. 웬걸 이 영화는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그 메시지는 “신의 아이들은 사고팔 수 없다!(God’s children are not for sale!)”는 한마디로 요약된다...공화국은 특정 정파나 일부 세력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공동 문제를 슬기롭게 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현대판 노예제의 척결은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서 해결해야 할 인류 공동의 숙제다. 그 문제를 고작 우파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문화 전쟁의 용병들은 이제 그 거친 입을 다물라. 팀 밸러드처럼 밀림의 오지에 들어가 군벌 두목의 침실에서 어린 소녀를 구출할 수 없다면, 아동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대안이라도 모색해야 옳다. 어떤 신을 믿든, 어떤 정치 성향이든, 어떤 단체 활동을 하든 그가 악의 소굴에서 120여 명의 아이를 구출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인권을 입에 달고 다닐만큼 중시하면서 북한인권은 외면한다. 인권을 정치로 푸니, 그들이 중요시한 인권이 정치 속에 매몰된다 자유일보 손광주 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08.06), 〈2000명 탈북민 구출 ,국제규범·연대의 힘으로 나서 보자〉, “지금 중국에 2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탈북민들이 강제북송 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3년 6개월 간 코로나로 봉쇄된 북·중 국경이 다시 열리면서 중국 구금시설에 수감돼 있던 탈북민들도 북송 위기에 처한 것이다. 더욱이 지난 7월 1일 중국은 개정 반(反)간첩법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중국·북한은 탈북민을 ‘비법 월경자’로 간주하고 강제북송 해왔다. 이제는 탈북민을 ‘간첩’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또 이들을 돕기 위한 중국내 각종 지원 활동도 ‘제3국을 겨냥한 간첩활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북한만 관련된 게 아니다. 대만·신장 위구르·티벳과 함께 소위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한 행위들이 어떤 제재를 받게 될지 지금은 알기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인권이 빠진 중국 정치에 북한 동포를 맡긴다. 세계 ‘잼버리 정신’에 문재가 생겼다. ‘스카우트 정신’은 각기 다른 문화체험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정신이다. 손 전 이사장은 새만금 뻘밭에 잼버리 대회를 유치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리석었다. 아마도 속셈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전라북도와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문재인 정부 때 새만금고속도로 건설비 등 중앙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잼버리 대회를 유치했을 것이다. 세계 청소년들의 해맑은 꿈을 담보로 지역예산을 따내는 데 활용한 것이다. 이런 못된 잔머리가 대한민국 국격을 뻘밭에 처박았다.”
조선일보 원선우·김승재 기자(08.07), 〈예산 1171 중 아이들 야영장엔 129억만...조직위 운영에 740억〉, 스카이데일리 장혜원 기자(08.07), 〈새만큼 잼버리 강행 왜?...국제공항 노린 文정부 ‘무리수’〉, 그런 정신이 스카우트 교육 정신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나쁜 국가사회주의 형태가 그들의 생각임에 틀림이 없다.
못된 정신머리를 퇴치시키고, 통합을 해야 할 법원이 문제이다. 법은 항상 교화를 통해서, 국민 통합을 갖고 온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래도 인성교육이 되지 않은 법조인은 로스쿨 젊은 변호사들로 교채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08.06), 〈새 대법원장 찾기와 '법조 카르텔' 깨기〉, 만국공법에서 ‘카르텔’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대장동 게이트에 연루된 박영수 전 특검이 구속되면서 '대장동 법조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개인적 인연을 배제하고, 누구든 예외 없이 철저히 수사하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에 지시해야 한다. '검수완박' 상황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빨이 빠질 정도로 고군분투했다지만, 좀 더 화끈한 성과를 내야 한다...사법부의 개혁과 쇄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공직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비상식이 만연하고, 불의와 불법이 제대로 응징되지 않고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죄를 지어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고, 일부 판사들이 재판을 차일피일 미루니 정의와 불의가 뒤섞였다는 사건 당사자들의 하소연이 적지 않다.”
정치는 포퓰리즘으로 하향 평준화의 길을 걷는다. 386 운동권 세력의 정치를 종식시키고자 한다. 스카이데일리 허겸 기자(08.07), 〈‘망월동 무연고 유해 DNA 감식...’북한군 의혹‘ 풀자’〉, 동 신문 조정진 발행인·편집인(08.07), 〈한두 정권 통째로 도려내도 ‘부정선거’ 밝혀 내라〉, “약 20년 전 전방 육군 모 부대에서 권총 한 자루가 분실됐다. 부대는 발칵 뒤집어졌고, 총기 담당관이던 중사는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었다. 흔히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수년 후 부대 해체 명령에 따라 내무반을 철거하던 와중에 분실됐던 권총이 나왔다. 한 귀퉁이에 빠져 찾지 못했던 것이다. 동료들이 중사의 억울함을 풀어 주자고 했다. 하지만 부대장은 “이미 끝난 일이다. 쓸데없이 시끄럽게 하지 말자”며 권총을 땅 깊숙이 다시 묻었다. 중사는 권총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군복을 벗었다. 평생직장인 군에서 물러나야 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지만 후임 부대장은 단지 ‘번거롭고 시끄럽기’ 때문에 진실을 땅 속에 묻는 길을 택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총기 분실 책임자로 몰려 옷을 벗은 중사의 인권과 진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발생 3년째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건이 대한민국에 있다. 바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였던 2000년 4·15 총선거의 부정선거 논란이다. 4·15 총선거는 당시 집권당으로 선거를 치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이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득표율(군소정당 제외 수치)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모두 63%대 36%로 일률적으로 나왔다. 있을 수 없는 수치였다. 오죽하면 통계물리학자 박영아 명지대 교수가 “마치 1000개의 동전을 동시에 던졌을 때 모두 앞면이 나오는 경우”와 같다며 “인위적인 작동이 있었다고 통계학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단정했을 정도다.”
나머지는 언론과 교육의 문제이다. 언론은 사회화의 기능, 즉 교육기능이 중요하다. 그런데 언론이 난장판이다. 사회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단절 현상은 언론인 개인의 문제와 더불어 언론이 사회를 다루는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언론인 개인이 ‘어떻게 행위하여야 하는가’하는 주체적․내적․자율적 자아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못했을 때, 공동체의 구성원이 사회적 존재양식(문화 양식)에 대해 보편성을 갖지 못했을 때, 그 구성원은 커뮤니케이션 단절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과 집단이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의식의 사회화에 문제가 생긴 탓으로 돌릴 수 있다.
개인은 신뢰가 없는 사회,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사회에 격리되어 있다.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민중들에게 제공되나 진솔한 대화를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하며, 그들의 뜻이 직접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지도 않는다. 권력 기구를 출입하는 기자의 수는 늘어나지만 시민이 즐기고, 필요를 충족시키는 지역 단체, 사회단체, 혹은 직업단체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풍부 속에 빈곤을 경험하게 한다. 제도권 언론은 민주노총 등의 ‘정파적 언론’으로 사유화를 걷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 커뮤니케이션 활동화에 도울 책임을 갖는다. 그 만큼 제도권 언론인 개개인은 절제를 요구하고, 난잡한 언론세계에 질서를 줄 필요가 있게 된다.
또 하나의 포식자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포털의 등장은 괄목하다. 그들은 알고리즘을 통한 기존 뉴스 선택을 하면서, 동시에 댓글로 중국, 북한 같은 공산권을 무차별적으로 불러들인다. 그 편향성은 정부까지 마음대로 바꿔치기 한다.
민주노총 하부기구로서 언노련은 난폭 운전뿐만 아니라, 미디어는 점점 국민들과 거리가 있는 독점적 기업들에 의해 지배되어가고, 그들과언론의 틈새는 더욱 벌어져 가고 있다. 1996년 여름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간에 벌어진 판매 경쟁은 여러 신문이 합세하면서 지면 전쟁을 방불케 했다. 한겨레신문의 논조에 의하면 ‘재벌언론’과 ‘언론재벌’의 한판 대결로 묘사된다. 그러나 ‘역사는 우연성보다 필연성의 연속이다’라고 볼 때, 이런 지면 전쟁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라 볼 수 없다.
언론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 간의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와 평론을 제공한다. 언론은 개인으로 하여금 만족, 통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개인들 사이에 진솔한 대화가 이뤄져 사회적 공통성과 문화를 창출하게 한다.
사회 내 커뮤니케이션의 단절현상이 교육에 수렴이 된다. 교육은 과거·현재·미래를 엮어주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정용관정용관 논설실장(08.07), 〈광화문의 검은 물결… 교육이 죽었다〉, 동량(棟樑)이 흔들리는 사회이다. “주말에도 광화문 일대는 ‘검은 물결’을 이뤘다. 좀 떨어진 곳에선 교사 수만 명이 운집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조용한 집회였다. 너무도 질서정연해 ‘집회의 품격’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땡볕 아스팔트로 몰려 나온 선생님들은 좌절감, 무력감을 호소하며 “다시 뜨거운 열정으로 가르칠 환경을 만들어 달라”며 ‘교육권’ 보장을 숨죽여 외쳤다...이렇게 공교육에서는 악성 민원, 툭하면 벌어지는 인권 침해, 학대 논란 등으로 난리이지만 지금까지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을 고발하였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다. 금전적 계약관계니 그렇다 치더라도 공교육과 사교육을 대하는 희한한 이중심리가 작동하는 건 아닐까.최근 사태로 악성 민원이 잠시 주춤할지 모르나 상황이 본질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 ‘교권 대 학생 인권의 대립’ 운운하는 수준에 그칠 게 아니라 뭘 가르칠 건지, 학교는 훈육이 가능한 곳인지 등 큰 원칙과 방향을 깊이 논의해야 한다. 학교를 이념의 진지로 만들고 인권 운운하며 정상적인 학생들의 인권까지 침해하는 교실 분위기를 만든 정치 교육감들은 제발 뒤로 물러나고..생명의 탄생은 부모의 몫이지만 사회로의 ‘재탄생’은 교육의 몫이고, 공동체의 몫이다. 지금은 ‘가르침’의 역할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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