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순반란사건을 배운것은 교과서에 분명하게 여순반란사건 으로 명문화된
것을 보고 배웠다 요즈음 갑자기 반란은 없어지고 여순사건으로 미화가 되더니 가끔씩 여순항쟁 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배운대로 하는것이 내 양심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지역 제14연대 국방경비대 14연대의 소속 군인들이
반란을 잃으켜서 여기에 호응한 좌익계열의 시민들이 봉기가 발생 유혈진압한 사건 ~한국민존문화대백과 ~
대한민국 건국 두달만에 여순반란사건이 터진다 대한민국 국군이 자리도 잡기 전에 국방경비대가 창설이
되고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자 박헌영의 남로당은 이런 군에 침투를 시작 하지요
허술 하기만한 경비대의 약점을 노려서 남로당원 세포들은 경비대를 지원하여 그들의 도피처가
되었지요 장교들도 많이 포섭이 되어서 밤마다 공산주의 학습장이 되어 버린것이지요 경비대 연대는 남산에서
벌어지는 공산당 집회에 장교가 사병을 인솔하고 참여도 하였지요 그시절 군과 경찰은 앙숙이 되었지요 치안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일제의 경찰들을 대거 고용하고 당시 경찰의 학력수준은 수비대 보다 훨씬 높았지요
경찰은 미군이 지원한 제복을 입고 M1 소총으로 무장을 했지만 국방수비대는 일본이 버리고간 국복을 입고
33식 소총과 99식 장총으로 무장 하지만 부족하였지요 경찰은 군인을 무시했고 군인은 친일 부역자가 많은 경
찰 을 인정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남 영암 지역에서는 수비대와 경찰간 총격전 까지 발생을 하였지요
여수 순천 주둔 14연대 속에는 이미 지창수 김지회 홍수석이 모두 광주 4연대에서 14연대로 소속을 옮겼지요
이 남로당 프락지는 장교식당을 공격하여 장교들이게 총질하여 장교들이 많이 죽습니다 그맇게 하고는 경찰이
14 연대를 공격을 했다고 거짖말을 하지요 동시에 여수 여천일대의 민청 민예청 인민위워회 간부들 까지 무기를
주고 이용가치가 있는 장교 외에는 사살하라
먼저 경찰이 습격 해온 것으로 가장해서 세력을 규합하고 민간인 들에겐 인민 해방군이
38선을 넘어 오고 있다고 선전하라는 남로당의 지시였다 14연대 내부에서는 반란세력과 충격정이 벌어지고
대부분의 장교와 하사관을 반동분자로 사살하였다 육사 2기 에서부터 6기 까지 장교만 30여명이 현장에서 몰살
시키고 지창수는 자신은 사령관이 되고 부사령관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 까지 임명한후 부대를 완전 장
악을 하고는 부대앞에는 여수 인민 위원회 소속 위원 23명이 집결해 있다가 부대가 장악된 것을 알고는 바로
부대안으로 진입해서 무장을 합니다 그이후 수많은 좌익 인사들은반란군이 된 14 연대에 지원 합니다
늦은밤에 무장 좌익들과 지창수 이하 반란군은 여수 읍내로 진입을 하고는 관공서를 모두 점령하고
경찰 소방관 공무원 우익인사와 우익 청년단을 무차별 학살을 합니다 이내 경찰서 신문사 은행도 모두 정령을
당하고 세벽 다섯시가 되지 점령당한 관공서에는 인공기가 계양이 되지요 심지어 읍 사무에 인민위원회를 만들고
잔류 공무원과 우익 인사들을 색출해서 계속 학살을 했습니다 지창수는 그것도 모자라서 여수 중앙거리에서
날마다 인민 위원회를 열어서 학살을 해대면서 인민해방군이 지금 38선을 넘어 오고 있다고 또거짖말을 합니다
여수시민들은 3일이 지나서 라디오 뉴스를 듣고 지창수가 발란을 잃으킨 것을 알았지요
그러나 김지회가 이끄는 반란군은 순천 벌교 고흥 광영 구례 곡성 남원 까지 차례로 점령을 합니다 이런중에
반란군에 계속해서 남로당 조직원 들이 불어나고 투항한 병력까지 무장을 했으며 가는곳마다 경찰 공무원 우익
세력들을 엄청나게 할살을 했지요 길거리 어느곳을 가도 시체가 켜켜히 쌓여 있고 어떤건 썩고 어떤건 개가 뜯어
먹고 있다 경찰서나 관공서를 가보면 시체 썩는 냄새와 피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70여구의 시체는 뒤엉켜있고
불탄 버스 속에는 백골이 우수수했다 ~10월25일 순천 탈환후 조선일보 유건호 특파원 보도 ~
~ 10월 22일 조선일보 대서특필 ~ 경찰관 이나 그의 가족들은 모두가 전멸이 되고 그중에는 어린 아이들도
많았다 정부는 38선 경계병만 남기고 국군의 반군 토벌 전투 사령부가 구성이 되어서 12개 대대가 급히 투입
반란군의 거센 저항에도 10월 22일 오후에 순천을 탈환 24일에는 고흥 광양 보성을 탈환하고 27일 까지 곡성
남원 까지 모두 탈환한다 그후에도 악착같은 반란군은 남원의 국군 대대를 습격하여 승리를 하자 국군은
백선엽 장군의 동생 백인엽 부대를 보내어서 섬멸 하였지요 그에 김지회와 홍순석의 지휘아래 지리산으로
숨어 들어서 빨치산이 되었지요
대구 광주 마산 군산 등지의 연대에 스므든 남로당은 끈질기게 부대 내부에서 혼란을 가중 시켰지요
그러다가 6.25가 발발 하여 바로 여수 순천 지역에 인민군이 주둔을 했다가 물러나고 다시 주둔 하고를 반복
하는 동안 지리산 빨치산은 시내로 내려와 엄청난 양민을 학살하고 숨어 있었 우익 청년단은 국군이 진압을
하면 좌익 들을 학살하고를 반복하여 수천의 양민이 모두 죽었던 반란사건이 연출한 사건 이였습니다
그걸 8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이 정치적 상황을 대입시켜서 여 순 항쟁이라 한다면 그 때 돌아가신 원혼
들이 기절을 할것 입니다 여수 순천의 그당시는 남로당이 벌인 반란이 맛습니다 여순 반란사건 입니다
남로당과 동조 새력이 학살한 경찰 공무원 양민 학살은 쏘옥 빼고 지금에 와서 국군에게 학살 당한 것만
이야기 하면 안되지 그시절에 니편 내편 가리느라 영민도 양민을 학살에 가담한 아사리 판인걸 지금 와서
어쩌라고 ~
좌파 빨갱이들은 국민을 선동 할시에는 거짓말을 그 상황에 맞게해서 국민이 동조하게 하는 세력 입니다
최근 광주 5/18도 초기에 경상도 군인들이 와서 광주시민은 때려 죽인다 하는 한마디 거짓말이 엄청난 결과
를 초래 하였지요 인민군이 오지도 않았는데 38선을 넘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선동 했지요 지금 민주당이
하는 꼬리지와 너무 닮아 있지 않습니까
첫댓글 자기들이 한 짓을 빼고 자기들도 가해자 였으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역사까지 왜곡 하려는 하등동물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