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상형문자 해독 과정
로제타 석 (Rosetta Stone, 1799)
바로 동일한 내용이 헬라어(그리스어), 민중문자, 상형문자로 기록된 석판을 발견한 것이다.
고고학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다.
1000년 넘게 묻혀져있던 비밀을 해독할 실마리를 잡은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1799년, 한 석판이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로제타라는 마을의 쥘리앵 요새에 주둔해 있던 프랑스 군인들에 의해 발견됐었다.
로제타 석이라는 이름 붙인 이 석판은 정말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 ,
같은 내용이 상형문자 , 민중문자 , 헬라어(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프랑스는 로제타 스톤을 본국으로 옮길려했지만 나폴레옹이 패배하면서 영국이 소유하게 되었고 ,
지금도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로제타 석의 가장 위에는 상형문자 , 가운데는 민중문자, 맨 밑은 헬라어(그리스어)로 되어있었다.
헬라어(그리스어)를 번연해봤더니 이집트 왕 프툴레마이오스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동일한 내용을 담고있었으므로 학자들은 단순하게 대조하는 것만으로도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이유는
헬라어(그리스어) 텍스트는 총 54행 중 26행이 손상되어 있었고 ,민중문자는 32행 중 첫 14행의 앞부분이 훼손되어 있었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특히 상형문자는 가장 상태가 나빴는데, 전체 행 절반이 완전히 떨어져나갔고, 남은 14행도 일부가 없었다.
심지어 이 부분은 헬라어(그리스어) 텍스트와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이었다.
헬라어(그리스) 단어와 대응하는 이집트어 단어를 찾더라도 이집트어의 음가를 알아내는게 불가능하였다.
어떻게 발음하는지 추론할 수 없었고, 여전히 이집트 문자를 단순한 표의문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집트 문자를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로 생각하고 해독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한 천재가 등장했으니, 바로 영국출신인 토머스 영이 었다.
토머스 영은 14세때 12개의 언어를 공부했으며,
빛의 파동 이론을 수립했고, 인간이 어떻게 색을 인지하는지 알아내기도 하였다.
양자역학의 시작을 알린 이중 슬릿 실험이 바로 토마스 영이 해낸 실험입니다.
영은 1814년 휴가를 가면서 왠지는 모르겠지만 로제타석의 사본을 가지고 가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상형문자 중 일부 문자들이 타원형 모양에 둘러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위의 문자에서 타원과 세로선에 싸여있는 문자들이 있는데, 이를 카르투슈(Cartouche) 라고 부릅니다.
영은 카르투슈 안에 있는 문자가 이집트 왕의 이름이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왕이나 군력자들이 이름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거라 생각한거죠
그 중에서도 특히 로제타 석 헬라어(그리스어) 부분에 나왔던 프톨레마이오스라 예상하였다.
영은 각 상형문자에 그리스어 한글자를 대응시켜보기로 합니다.
이는 곧 이집트어 해석의 가장 기초적인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비록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1000년만에 이집트어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이 해낸 놀라운 점은 이집트 문자를 표음문자로 상정하고 각 음가를 찾을려고 했다는 것이다.
파라오의 이름은 어느나라 말이든 비슷하게 발음되기 때문에 그 음절을 추측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추측과 틀린 부분이 있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상형문자와 음가를 정확하게 찾았다.
이집트 문자는 P와 T, L과M처럼 문자를 위 아래로 함께 놓기도 했는데, 미적인 이유로 음가의 명확성을 희생한 결과였다.
이를 직관적으로 해석해낸건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였다.
프톨레마이오스를 알아낸 후 같은 방식으로 다른 카르투슈를 해독해 나갔다.
테베의 카르낙 신전에 있는 상형문자에도 카르투슈를 발견했는데
영이 이를 프톨레마이오스의 왕비인 베레니카 (Berenike) 라고 추론해냈다.
영은 두 개의 카르투슈에 나온 열세 개의 상형문자 중 절반에 대한 음가를 완벽하게 찾아냈고,
4분의 1은 부분적으로 맞췄습니다.
그리고 왕비와 여신의 이름 뒤에 오는 여성형 음절 기호도 정확히 알아냈다.
이렇게 이집트 문자의 비밀이 풀리나 했지만 갑자기 연구를 중단해버립니다.
영은 상형문자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자신의 성과를 "여유 시간을 활용한 오락"이라 평가했다.
아무도 엄두못내는 상형문자 해독을
여유시간을 활용하는 오락이라 말한 영은
정말 천재였다.
영의 오락은 프랑스의 언어학자 샹폴리옹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20대 후반에 불과했던 샹폴리옹은 이 과업을 매듭지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1822년 샹폴리옹은 영의 접근법을 다른 카르투슈에 적용하였다.
샹폴리옹은 영의 연구를 참고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정확한 음절을 알아냈으며,
헬라어(그리스어)와 상형문자가 새겨진 또 다른 오벨리스크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알렉산드로스의 음절을 추측해내었다.
그러나 결국 영의 작업을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곧 한계를 맞이했습니다.
연구는 헬라어(그리스)문자의 대조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상형문자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1822년 아부심벨 신전에서 나온 한 조각품을 받게됩니다.
이 조각품에는 그리스-로마시대 이전의 카르투슈가 포함되어 있었고,
전통적인 이집트인의 이름이 있을만큼 아주 오래된 것이었죠
기존의 연구가 헬라어(그리스어)에서 음절을 따와서 추론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 카르투슈는 전과 같은 방법으론 해독이 불가능하였다.
그만큼 굉장히 중요하였다.
헬라어(그리스)문자로 대조할 수 없는 부분을 알아낸다면, 다른 문자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알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뒷 부분의
는 이미 알렉산드로스에서 밝혀낸 문자로 S를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이 카르투슈는 ?-?-S-S를 나타낸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샹폴리옹의 그동안 갈고닦은 언어학적 지식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카르투슈 앞 부분의
가 어쩌면 태양을 나타내는 표의 문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한자처럼 태양의 모습을 기호로 나타냈다고 본 것입니다.
마침내 샹폴리옹은 표의문자의 음가가 콥트어 단어로 태양을 뜻하는 "RA"일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고대 이집트어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콥트어는 11세기 이후 사어가 됐지만, 라틴어처럼 그 형태는 남아있었다.
샹폴리옹은 이미 10대 시절 콥트어를 배워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일기를 모두 콥트어로 기록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놀라운 집념과 우연이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Ra가 맞다면 카르투슈는 Ra-?-s-s가 됩니다.
여기에 누락된 글자를 m이라고 가정한다면 나온 글자는 Ra-m-s-s
즉 이 카르투슈는 Rameses 라메세스(람세스)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가장 위대한 파라오였으며, 가장 오래된 파라오였던것이다
헬라어(그리스) 문자로 풀리지 않는 부분은 바로 표의문자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필경사들이 때로는 그림과 글자를 조합하는 방법을 이용해냈다는걸 알아내었다.
예를 들어 영어 Belief의 경우
Belief → Be-lief → Bee-Leaf 로 생각해서 벌과 나뭇잎을 그려넣을 수 있다.
이처럼 단어를 콥트어로 나눈뒤 일부는 그림으로 기술하는 방식이었다.
Ra-meses처럼말입니다.
이 카르투슈를 콥트어로 해독하면 라-메세스라 발음할 수 있다.
마침내 이집트 문자의 비밀이 풀리게 되었고, 1400년만에 파라오들의 역사를 읽을수 있게 되었다.
3천년이 넘는 세월의 언어와 문자의 변천과정을 연구해낼 수 있었으며
이 상형문자를 이용해 신관문자와 민중문자 역시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샹폴리옹은 41세 나이에 사망하였다.
이렇게 없어져버린 언어를 연구하는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